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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무덤을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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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강시의 부활

1. 비극의 탄생
인간 세상으로 솟아오른 무덤
‘음양의 전쟁’을 부른 지하 보물창고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떨게 한 도굴

2. 도굴의 시작
무덤을 파고 시체에 채찍질한 오자서
선진시대 도굴 비망록
무덤에서 발견된 두개골
뇌고돈 도굴 현장 재현
무덤굴에 빠져 죽은 도굴꾼

3. 미스터리에 싸인 진시황릉
땅 위의 세상을 옮겨놓은 진시황릉
진시황의 자만과 고통
진릉은 정말 도굴되었는가

4. 도굴 광풍
중국 최초로 박장을 거론한 제왕, 조조
72개 의총의 수수께끼
며느리의 묘와 이어진 조조의 묘
제갈량의 묘지에 얽힌 이야기
왕공 귀족이 이끈 도굴 집단

5. 고고학 발굴 현장 생방송
부풍원의 능묘
양견의 ‘박장’ 유언
양광 묘 도굴 이후

6. 도굴에 미친 사나이
도굴꾼을 속인 이세민의 박장
미치광이 도굴꾼 온도
「난정집서」를 둘러싼 논쟁
소릉 6준의 운명
‘태자총’ 공릉 도굴 사건

7. 도굴과 반도굴
북송 일곱 황제의 8릉
황제의 능을 도굴한 황제
두개골 요강을 만든 도굴꾼 중
기련곡에 묻힌 이민족 군주

8. 능묘의 저주
대명의 도굴금지법
목재를 훔친 건륭과 만낭분의 시련
도굴과 유실된 문명

9. 도굴 장군의 역사 비화
청 황릉 조성 과정
청 동릉의 비밀
군대와 토비의 황릉 쟁탈전
지궁의 입구를 찾아서
지궁의 대문이 뚫리다
자희의 ‘살아 있는’ 시체
폭파된 건륭의 지궁 입구

10. 두 번 죽은 서태후
다시 찾아온 재앙
강희의 관곽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
뗏목을 타고 지궁으로 들어가다

11. 부자가 되려면 무덤을 훔쳐라
민간에 전해지는 도굴 기술
남방의 집단 도굴꾼
도굴꾼의 가보, 낙양삽

12. 절묘한 도굴방지술
철벽과 석곽
물로 채우고 돌로 쌓고 모래로 메우고
칼, 창, 자동 궁노, 무장한 인형
축을 설치한 나무판과 쇠밧줄로 매단 돌
미궁과 가짜 묘
다양한 기술을 혼합한 도굴 방지법

에필로그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며
옮긴이의 말 땅 속의 산 자와 땅 위의 죽은 자

저자 소개 4

Yuenan,岳南

역사학에 대한 남다른 깊은 조예와 뛰어난 문화적 소양을 갖춘 웨난은 오랜 기간 동안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축적한 예리한 관찰력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고고학 발굴의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수많은 학자들과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 발견자들을 취재하여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아우른다. 다큐멘타리 작품이 주는 사실적인 생동감은 독자들에게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여겨지기 쉬운 고고학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며 풍부한 인문적 지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작은 유물 하나를 통해서도 시공을 넘나들며 역사의 자취와 진실을 엮어내며, 속도감있는 글쓰기와 문체로 문학성을 바탕으로 고사나
역사학에 대한 남다른 깊은 조예와 뛰어난 문화적 소양을 갖춘 웨난은 오랜 기간 동안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축적한 예리한 관찰력과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고고학 발굴의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수많은 학자들과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 발견자들을 취재하여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아우른다. 다큐멘타리 작품이 주는 사실적인 생동감은 독자들에게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여겨지기 쉬운 고고학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며 풍부한 인문적 지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작은 유물 하나를 통해서도 시공을 넘나들며 역사의 자취와 진실을 엮어내며, 속도감있는 글쓰기와 문체로 문학성을 바탕으로 고사나 전설을 연결하여 고고학 발굴을 통해 중국 역사를 읽는 색다른 재미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1963년 산동성(山東省)에서 태어났으며, 10년 동안 군 선전부에서 근무했다. 해방군 예술학원 문학과를 졸업한 후, 북경사범대학 연구소와 노신(魯迅)문학원 작가 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열하의 피서산장(熱河的冷風)』『북경의 명십삼릉(風雪定陵)』『법문사의 불지사리(萬歲法門)』『마왕퇴의 귀부인(西漢亡魂)』『하북성 준화의 청동릉(日暮東陵)』등이 있으며, 현재 잡지 『쯔광거(紫光閣)』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하의 피서산장(熱河的冷風)』『북경의 명십삼릉(風雪定陵)』『법문사의 불지사리(萬歲法門)』『마왕퇴의 귀부인(西漢亡魂)』『하북성 준화의 청동릉(日暮東陵)』등이 있으며, 현재 잡지 『쯔광거(紫光閣)』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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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志龍

북경대학 철학과에서 헤겔 철학을 공부했다. 헤겔 『논리학』의 전문가이자 중국 고대사 전문가이다. 고고학 발굴 자료를 근거로 문헌에 기록된 역사 사건의 오류를 파헤치는 새로운 유파를 형성했다고 평가받는다. 저서로 『역사의 혁명』, 『과거 없는 과거』 등이 있다.

商成勇

남경 정치학원 및 중국 인민대학에서 신문방송과 국제정치를 전공한 후, 90년대 초부터 고고학과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진했다. 저서로 『대지에 여쭙다』, 『사라지지 않는 역사』 등이 있다.
단국대학교 아시아중동학부 조교수. 중국고전문학 전공. 고대 중국의 대중적인 이야기, 문학작품 속 외국, 필사본 문화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논저로 『敦煌變文校注』(공역, 2015), 『그림과 공연』(공역, 2012), 「「夷堅志」 속 宋代 동남해안 상인의 행적과 ‘문학적’ 기록」(2022), 「디지털 이미지를 활용한 P.4524 「降魔變文」그림두루마리 분석」(2023)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중화미각』, 『현대중국학특강』이 있고『중국문화사전』, 『맹자 교양강의』 등 중국 고전과 문화에 관한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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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5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63g | 153*224*30mm
ISBN13
9788971993361

출판사 리뷰

문화재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조선왕릉 40기가 사실상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선 당시의 원형과 자연 경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유네스코 실사단이 무척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우리나라는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전 지역에 걸쳐 오랫동안 역사?문화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유물 유적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정작 이에 대해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 책이나 자료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화재와 유물의 보호가 무척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임에도 이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여전히 태부족하다.

수천 년간 왕조의 문화(문물 포함)와 거대한 국토를 지닌 중국은 그 유물이나 유적의 분량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다면 문화재 보존과 관련한 중국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황제의 무덤을 훔치다』(원제: 中國盜墓傳奇)는 중국을 대표하는 고고학 전문 작가인 웨난의 역작이다. 이 책은 중국 역대의 도굴 사례를 중심으로 중국의 문화재 훼손과 관련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면서도 황제들의 흥미로운 사후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웨난은 『마왕퇴의 귀부인』, ??진시황릉의 비밀?? 등을 이미 출간하여 이미 국내에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경우도 사료를 꼼꼼히 읽고 능묘 현장을 답사하고 문물기관과 공안국 담당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수차례 수정한 끝에 원고를 완성했다. 중국의 도굴 역사를 되짚으면서 저자는 수없이 탄식한다. 선인의 위대한 지혜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이자 후대에게도 다양한 영감과 교훈을 제공하는 우수한 문명이 무지하고 야만스런 도굴꾼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현실에 울분을 토로한다. 그리고 저자가 털어놓는 집필 의도는 다음과 같다.
“현대인이 역대 도굴 사건과 인류 자신의 문명을 훼손한 죄악에서 교훈을 얻어, 중국 문명과 세계 문명의 열매를 끝까지 보존할 방법을 함께 찾기를 바란다. 그래서 훌륭한 문화가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도굴은 우리 일상에서도 낯설지만은 않다. 「인디애나 존스」, 「미이라」, 「툼 레이더」 등과 같은 할리우드 영화는 고고학과 도굴을 버무렸다. 한국에서는 「마이캡틴 김대출」에서 정재영이 도굴꾼으로 출연했고, 엄정화가 열연한 「인사동 스캔들」에서도 인사동의 화상들이 함께 돈을 갹출해서 무덤을 파헤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대체로 자극적인 소재로만 다뤄질 뿐 문화재 보존에 관한 시각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문화재를 지나치게 흥밋거리로만 여겼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이 문화재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중국의 도굴 현황
최근 수십 년간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도굴당한 무덤은 적어도 20만여 좌에 달한다. 중국 국가문물국 부국장 겸 중국고적유지보호협회 회장 장보청(張柏曾)은 2005년 7월 일본TV협회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기층 고고학 관련 종사자들은 이 수치도 무척 적게 잡은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전국 10대 고고학 발견으로 정리된 100항목 가운데 무덤이 21항목을 차지하고, 분명하게 도굴당한 흔적이 없는 것은 3항목뿐이다. 이러한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10년간 10대 고고학 무덤 항목이 도굴당한 확률은 90%에 달한다.

저명한 고고학 전문가 리보첸(李伯謙) 선생은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왕후급(王侯級) 무덤이 도굴 비율은 90%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도굴은 재난이다. 이는 도굴을 통해 얻는 엄청난 경제적 수익 때문일 것이다. 유네스코의 한 고위 관리는 전 세계적으로 대놓고 혹은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문물 교역을 통해서 얻는 이득은 마약과 무기 교역 바로 다음이라고 말했다. 중국, 인도, 이집트 등 3대 문물 수출대국 가운데 중국은 도굴꾼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정확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47개국 218개 박물관에 보관된 중국 문물은 163만 건이다. 이 수치는 세계적으로 개인들이 소장한 양의 1/10에 불과하다. 중국, 이집트, 그리스와 같은 문물 수출대국에서는 문물 유실 사례가 심각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 유실 문물 가운데 거의 100%가 도굴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내용
중국에는 학술적인 도굴사 저작이 출간되어 있을 정도로 도굴에 관한 문헌 기록과 자료가 풍부하게 보관되어 있다. 이 책은 학술적인 근거를 바탕에 깔고 일반 대중에게 이야기로 도굴의 피해와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관련된 역사 지식도 함께 전하는 대중서이다.
선진시대부터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까지의 장구한 역사를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하나씩 짚슴다.
왜 무덤을 훔칠까? 도굴은 오랜 유래를 가진 사회문화 현상이다. 도굴 행위는 초기에 부장 풍습이 생기고 후장을 하게 되면서 발전했다.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도굴 행위는 중국의 모든 조대에서 발견할 수 있다.하물며 중국은 수천 년간 황제가 지배했던 나라가 아닌가? 황제들과 권문세가, 부호의 무덤 수를 세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 안에 부장된 보물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위 문제 조비(曺丕)는 “예부터 지금까지 망하지 않은 나라 없고 파헤쳐지지 않은 무덤 없다”고 말했고, 진나라 사람 황보밀(黃甫謐)은 “예부터 지금까지 죽지 않은 사람 없고 파헤쳐지지 않은 무덤 없다”고 말했다. 이런 기록은 도굴 현상이 얼마나 흔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을 비롯하여, 현재 중국의 틀을 만들었다 할 수 있는 한 무제, 72의총을 만든 조조, 제갈량 사후의 무덤에 얽힌 이야기, 1998년 10월에 중국 CCTV에서 실황 중계한 법왕탑 지하궁의 발굴 현장도 엿볼 수 있다. 도굴꾼을 속이기 위해 ‘박장] 유언을 남긴 당 태종 이세민, 미치광이 도굴꾼으로 이름을 남긴 온도, 무덤에서 나온 대서예가 왕희지의 「난정집서」를 둘러싼 논쟁,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힌 칭기즈칸을 비롯한 원나라 황제들, 같은 황제이면서도 황릉을 도굴한 엽기적인 송나라의 유예, 명당에 묻히려고 다른 사람들의 무덤을 싹 밀어버린 명 태조 주원장, 청나라의 명군으로 불리는 강희, 옹정, 건륭 황제가 무덤을 만들면서 명대 건축물과 명 13릉을 부수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은 서태후의 무덤을 파헤친 도굴장군 손전영의 이야기다. 이 부분은 도굴 장면 묘사가 너무나 핍진해서 도굴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영화 장면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11장에서는 도굴과 관련한 잡다한 지식, 즉 민간에 전해지는 도굴 기술과 중국 내의 다양한 도굴꾼 부류, 도굴에 쓰이는 도구들에 대해 다루었다. 도굴꾼이 발명해서 지금은 중국 고고학계의 상징이 된 낙양삽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마지막 12장에서는 도굴꾼에 맞서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묘주들이 강구한 대안을 종류별로 나누어 분석한다. 도굴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확인할 수 있다.
가진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모두가 지켜야 할 문물 유적의 소중함을 지적하고 우수한 옛 문명이 잔인한 도굴꾼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이는 비단 중국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내용인 만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본문 중에서

병사들이 뚜껑 틈에 각자의 연장을 꽂았다. 이미 한 번 들어 올려서인지 이번에는 쉽게 관 뚜껑이 열렸다. 방금 전의 기체는 이미 사라졌고 매캐한 냄새만 코를 찔렀다. 병사들은 들어 올린 관 뚜껑을 북서쪽 모퉁이에 갖다 놓았다. 관 속의 시체와 보물은 엷은 가래나무 칠성판七星板(관 속의 시신을 덮거나 관 안쪽의 바닥에 까는 판으로, 북두칠성을 본 딴 7개의 구멍이 있어 '칠성판'이라 부른다)으로 덮여 있었다. 칠성판 위에는 불경의 경문과 묘지墓誌, 보살상이 금실과 금박으로 박혀 있었다. 칠성판을 걷어내자 반짝반짝 빛이 나는 진주 망사이불이 드러났다. 한 병사가 칼끝으로 이불을 들어냈다. 관 속은 무수한 빛줄기로 가득했다. 이 빛은 다시 보라, 자주, 빨강, 녹색 등의 빛깔을 내며 지하궁 곳곳을 비쳤다. 서쪽 하늘의 무지개처럼 환한 빛이 피어오르면서 후실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금방이라도 깨어날 듯 생생한 얼굴의 자희는 화려한 수의를 입고 구룡九龍이 꿈틀대는 봉관을 쓴 채 진귀한 오색의 보석들 사이에서 조용히 누워 있었다. 봉관 위쪽에는 비취 줄기의 순금 연잎이 사뿐히 얹혀 있었고, 발아래는 벽옥으로 만든 큰 연꽃이 깔려 있었다. 약 60cm 길이의 옥침玉枕은 녹색의 광채를 뿜고, 구룡 봉관 위에 꽂힌 보주 4개가 금빛으로 반짝였다. 해돋이가 시작된 수평선처럼 관 전체가 푸르고 환한 빛으로 너울거렸다. 자희는 꽃밭 속의 선녀인 듯 검푸른 먹빛의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광대뼈와 이마 사이로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신비스러운 아름다움도 잠시였다. 외부의 공기가 갑자기 관 속으로 유입되면서 탱탱하던 그녀의 몸은 솨 하는 소리와 함께 금방 수축되었다. 분홍빛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자주색에서 다시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은은히 감고 있던 두 눈이 움푹 들어가면서 이마는 툭 튀어나오고 곰팡이가 변해 흰 털이 한 치나 자란 손도 바싹 쪼그라들고 꾹 닫고 있던 입술이 옆으로 벌어지면서 이빨이 훤히 드러났다.
그때였다.
"시체가 살아 있다!"
―9장 「자희의 '살아 있는' 시체」 중 271페이지

1923년 봄, 이압자는 맹진현孟津縣의 한 식당 앞에서 소고기국을 먹고 있었다. 무심결에 옆쪽을 보자 천막을 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이 삽처럼 생긴 도구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못 보던 연장이라 이압자는 유심히 그것을 살펴보았다. 한 번 땅을 팔 때마다 연장에 진흙이 딸려 올라왔다. 호기심이 동한 이압자는 아예 가까이 가서 자리를 잡았다. 자세히 보니 반원형 삽 안쪽으로 땅속의 지층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흙이 딸려왔다. 그는 노새나 말의 발굽에 흙이 끼어 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순간 그는 영감이 떠올랐다. 이 반원형의 연장이 평소에 쓰는 삽이나 가래보다 무덤을 훨씬 잘 찾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연장의 도안을 그려서 이웃마을 장씨 대장장이에게 주며 그대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예순이 넘은 장씨는 이압자가 가지고 온 희한한 도안을 보고 도굴에 쓰려는 것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사실 그는 도굴꾼에게 큰 악감정은 없었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은 일에 괜히 휘말렸다가 가게의 명성에 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압자의 부탁을 완곡히 거절했다. 이압자는 잘 아는 사이인 장씨 말고 다른 곳에 일을 맡겼다가 공연히 비밀이 새나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게다가 장씨의 쇠 불리는 솜씨는 먼 곳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이압자는 대양大洋(민국시대에 발행된 동전) 하나를 연장 값으로 쳐주겠다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결국 장씨는 철거머리 이압자에게 혀를 내두르며 도안에 따라 대충 비슷하게 반원형의 삽을 만들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압자는 신식 무기에 장대를 꽂고 마당에서 시험을 해보았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 번 땅에 꼽을 때마다 서너 자 정도가 푹푹 들어갔고, 위로 들면 땅속의 흙이 반원의 삽 안쪽에 박혀 원래 모양 그대로 딸려 올라왔다. 얼마 작업하지 않았는데도 사람 키만 한 구덩이가 쉽게 파였다. 최초의 낙양삽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일단 한 번 쓰기 시작하자 낙양삽은 금방 도굴꾼 사이에 퍼져나갔다. 대장장이 장씨는 한 달에 대양을 300개씩이나 벌어들였다고 한다. 직경이 작아 주로 구멍을 뚫고 땅속을 탐측하는 용도로 썼으므로 사람들은 이것을 '탐측삽'이라 불렀다. 또 처음 등장하고 사용된 지역인 낙양의 이름을 따 '낙양삽'이라 부르기도 했다.
명대의 철침에서 민국 초 낙양삽으로의 변화는 중원 지역, 더 넓게는 중국 북방 전체의 도굴꾼이 사용하는 탐측 도구의 역사에서 일종의 혁명이었다.
―11장 「도굴꾼의 가보, 낙양삽」 중 344페이지

중국 도굴산업 시스템
중국 도굴 산업의 전반적인 체계는 이렇다. 샤쿠와 투이쯔가 도굴해서 문물을 훔쳐내는데, 그들이 가진 기술의 함량에 따라 몇 백 원에서 몇 천 원까지 고생스레 돈을 번다. 그들을 고용하고 도굴 비용을 대는 사람은 즈궈라고 불린다. 장옌은 비교적 고난이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으로 특수한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보통 옛무덤을 찾고 문물을 감정한다. 어떤 이는 즈궈에게 고용되기도 한다.
일부 장옌은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의 감정 실력으로 도굴된 문물 전부를 구입하기도 한다. 즈궈의 손에 있는 문물은 보통 2급 문물시장으로 들어가고 가격도 그다지 높지 않다. 장옌은 종종 획득한 문물을 북경 등 3급 문물시장으로 보내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가격이 수십 배 이상 뛴다. 2급 시장의 문물 중 어떤 것은 구입자에 의해서 바로 국외로 유출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3급 문물시장으로 가게 되는데, 그 경우 가격이 보통 수십 배 이상 뛴다. 3급 시장의 문물 중 어떤 것은 개인 수장가나 브로커에게 구입되고, 어떤 것은 홍콩을 통해 외국으로 유출된다.
여러 차례 외국 상인의 손을 거쳐 최종적으로 문물은 대형 골동품상으로 가기도 하고, 1급 문물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정보들이 다 세탁된 상태에서 당당하게 경매에 붙여지기도 한다. 1급 수장가가 구입하기도 한다. 문물의 거래 가격은 최초 가격의 만 배 이상이다. 이쯤이 되면 문물의 회수는 어려워지고 도굴꾼도 영원히 법 밖에서 노닐게 된다. 이러한 도굴을 통한 문물의 유출 과정은 6장 「‘태자총’ 공릉 도굴 사건」에 생생하게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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