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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 정말 그녀가 거기에 있었을까
부여 │ 백제의 여자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밀양 │ 밀양에서 언니귀신을 만나다 진주 │ 논개와 주논개 사이 남원 │ 천지상공에 흐르는 그녀들의 소리 고창 │ 새로운 패러다임의 땅, 진채선 목포 │ 그녀들, 이 도시를 기록하고 노래하다 광주 │ 소녀와 할머니 사이, 나눔의 집 혼불문학관 │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통영, 평사리, 원주 │ 우주의 나무, 박경리 |
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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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의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은 이 땅에서 살다 간 여성의 자취가 남은 공간을 지그시 음미하며 “여성의 시선”으로 과거의 그녀들을 “새롭게” 추억하고 과거의 그녀들과 접속할 지점을 오늘의 우리에게 보여주는 21세기의 “대동女지도”를 구축하는 작업으로서, 그 첫 작업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에 이은 두 번째 성과물이다.
첫 책에서는 선덕여왕 등 신라의 여자들에서 그 포문을 열어 현대의 고정희 시인에서 끝을 맺었고, 그 두번째 이야기인 이 책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에서는, 백제의 삼천궁녀와 소서노를 필두로 하여, 조선 시대의 기생 논개와 “언니 귀신” 아랑을 거쳐, 최초의 여성 소리꾼이었던 조선말의 진채선과 그녀의 후배들인 식민지 시대의 이화중선과 박초월을 훑고, 근대의 작가 박화성과 ‘목폭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에 이어, 정신대 할머니, 「혼불」의 최명희와 한국문학의 거목 박경리에서 여정을 마친다. 지은이는 그녀들이 활동했던 공간과 그 흔적을 발로, 마음으로, 무엇보다 “새로운 눈”으로 찬찬히 뒤따르며, 그녀들의 삶과 꿈, 사회적, 예술적 성취를 성실하고도 섬세하게 헤아린다. 그리하여 이천 년 전, 몇백 년, 몇십 년 전의 시공간 속에서 걸출한 재능을 발휘하고, 시대와 불화하거나 기림을 받고, 또 역사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미지로서 존재하던 그녀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오늘에 되살린다. 삼천궁녀, 소서노, 계백의 부인, 아랑, 논개, 이화중선, 박초월, 진채선, 박화성, 이난영, 최명희, 박경리. 지은이는 그녀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래된 도시(부여, 밀양, 진주, 남원, 고창, 목포, 전주, 통영, 평사리, 원주)가 갖는 고졸한 맛에 취하기도 하며, 꽃잎 위에 맺혔던 아침이슬처럼 찰나를 한생으로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무엇보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 지은이는 “관점을 바꾸어 보기”로 기존의 이야기를 뒤집는 시도를 한다.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는 눈을 통해, 지은이는 드러나지 않았거나 왜곡되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낯선(새로운) 이야기로 바꾸어 낸다. 그리하여 역사 속에서 치밀하게 왜곡되고 가리워진 그녀들에 관한 농담 혹은 거짓말을 들추어 내거나, 또는 그녀들의 삶의 배경이 된 공간에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서로 맞물려 가면서 직조해 낸다. 오래된 농담 속에 치밀하게 숨어 있는 거짓말 찾아내기 삼천궁녀는 의자왕의 타락과 부패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한편 절개와 순국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녀들은 벼랑에서 추락하면서도 꽃처럼 하늘거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이지만 국가의 몰락을 초래하는 거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여자들의 몸은 꽃으로 이미지화-낙화암-되면서 백제 멸망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가려버리는 역할을 한다. 여자들의 몸이 갖는 이미지는 국가의 존망을 둘러싼 치열한 국경 전쟁, 왕의 항복 선언 이후에도 이어지는 백제 사람들의 격렬한 항쟁을 덮어버린다. 삼천궁녀는 역사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보여 주는 한 예다. 낙화암과 더불어, 삼천궁녀는 한 국가의 몰락을 초래한 것은 여성의 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반복하는 기표가 된다. 여기에 “백마강” 같은 유행가처럼 대중의 통속적 향수도 한몫 한다. 백제의 절망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순결한 몸이면서 한편으론 최고권력을 무너지게 만든 타락한 몸, 이 이중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만들어낸 그녀들의 몸은, 그렇지만, 실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유력하다. 삼천궁녀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이 그렇게 드러난다. “오래된 농담 속에 치밀하게 숨어 있는 거짓말을 드러내는 일은 풀밭에서 초록색의 실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은이는 백제의 옛도읍 부여에서 백제의 아사녀들을 만나는 작업에 이어, “의기” 논개의 고장 진주, 아랑의 전설이 있는 밀양, 또 정신대 할머니들의 “나눔의 집”을 몇 차례씩 걸음하며, 그녀들을 온전히 또는 새롭게 만나기 위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맥락 없이 불쑥 버려져 있는 부서진 말의 파편을 조합하”고, 행간을 읽어내고, 뒤집어 읽고, 의도적으로 숨기려는 문장을 갈파해 나감으로써, 조금씩 그녀들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관기” 논개. 기생은 사농공상 네 계급 바깥에 있던 비천한 존재였다. 그 비천한 여자들 중 한 여자를 호명하는 새로운 말이 태어났으니, 논개가 “의기”가 되는 순간, 사람이 되기 어려웠던 그들 중 하나가 사람으로 들림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어느 순간부터 “순국”으로 명명되고, 그녀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민족의 딸이 되었다. 그런데 비천한 기생 논개는 뒷날 느닷없이 서당 훈장이었던 아버지가 생겨 주논개가 되고, 최?희 장군이 사랑한 첩으로서 비장한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의기” 논개가 애국의 상징으로 호명될 때, 사실과 무관하게, 그녀는 끝내 한 남성의 딸이 되거나 아내가 되어야만 했던 것이 이 땅의 주류들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월하의 공동묘지’ 같은 한국 공포영화의 기원이 된 “언니귀신” 아랑. 억울한 죽음을 하소하려고 원혼이 되었다는 아랑에 관한 전설의 고향 밀양. 밀양강 가에 있는 영남 제일의 누각 영남루 밑으로 으시시한 숲을 끼고 아랑각이 있고 해마다 아랑제가 열린다.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인물 아랑에 대한 그런 방식의 기념에서, 정절을 지키느라 죽음을 불사했다는 “정절 이데올로기”를 지키려는 위선적 태도에 냉소하며, 지은이는 조선 시대에 떠돌던 이 “언니 귀신” 이야기에서 “기존 질서로부터의 일탈이나 통쾌한 배신”을 읽고 싶어한다. 귀신은 그 문화가 억압하고 있는 자질들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 주는 메타포라는 점에 주목하며, 그들 “언니귀신”들은 사회적으로 가시적 존재가 되지 못했던 조선의 여성들이 “귀신” 형용을 빌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라는 것이다. “나눔의 집”에 모여 살며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자기 기만 또한 가증스러운 거짓임을 지은이는 날카롭게 꼬집는다. 소녀 시절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고국은 그녀들에게 때로 남태평양의 밀림만큼이나 낯설고 두려운 곳이었다. 익숙한 말,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의심과 소외는 타지에서 겪는 고난보다 때로 더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웠다. 그 50여년 동안 한국 사회는 그녀들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은폐했거니와, 이제 그녀들의 “커밍아웃” 앞에서도, 그들 “소녀들”의 끔찍한 경험에 분노하고 늙고 병든 “할머니”들을 연민하는 관객을 자처할 뿐이다. 이 드라마에는 나쁜 일본군과 일본 정부, 불쌍한 소녀, 가엾은 할머니라는 타자만이 존재하고, 그녀들이 우리와 부대끼며 사는 동안 우리가 그녀들을 손가락질하고 소외시키며 더 쓰라린 고통과 절망을 안겨 주었던 지난 50여 년은 마치 없었던 시간인 양 아무런 성찰도 기울이지 않는다. 진채선, 이화중선, 박초월, 여성 판소리 창자들의 길을 따라 걷다 최초의 여성 판소리꾼 진채선이 대중 앞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건 1869년 7월에 있었던 경회루 낙성연 무대에서였다. 대원군 때 경복궁 복원 공사가 마침내 완료되고 경회루 낙성연 잔치에 전국의 내로라 하는 명창들이 초대되었다. 그들 틈에 유일한 여성 진채선이 있었다. 그녀 이전에는 판소리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성 판소리의 기원이 된 진채선 이후에도 한동안 그녀의 후예들은 눈부신 소리를 지녔어도 죽을 때까지 기생이거나 무당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빛을 보기 어려웠다. 여성 명창들은 남성 명창의 뒤에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이면서도 천한 신분이라는 이중적 굴레가 싫어 남성들이 떠난 소리판을 지켜 낸 이들은 여성 명창들이었다. 그리고 이화중선이 등장한다. 식민지 시절, 최고의 여성 명창으로 사랑받고 수많은 음반을 남긴 이화중선, 그녀 이후로 수많은 여성 명창들이 남성 명창과 대등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화중선은 그 뒤 여성 판소리 연창자들에게 훌륭한 역할모델이 되었고, 박초월, 김소희 같은 명창이 나올 수 있게 했다. 진채선과 이화중선, 박초월 등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했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온 생을 걸었던 여성들이다. 세간의 무수한 말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간 여성들, 그녀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의 딸로 태어났던들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스승을 찾아 천릿길도 멀다 않고 득음과 독공을 위해 심산유곡을 찾아다니고 공연판이 벌어지는 곳이면 천지사방 어디든 마다하지 않던 그녀들, 이 땅 곳곳의 길 위에, 저 푸른 대지 위에, 천지 상공에 그녀들의 자취가 스며 있고, 또, 혹여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진 못해도, 오늘의 우리들 혈관 아래에서 그녀들의 소리가 따뜻하게 흐르고 있다. 그녀들의 존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작가의 고향에서 이땅에서 “여성 작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다 한 생을 작가로 산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늘 긴장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편안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낯설게 하는 질문을 하고, 통속적이지 않은 관계를 창조해내고, 상상 너머의 것을 꿈꾸는 것, 그 모든 것들을 살아 있는 문장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조금은 모질고 독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타인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의 고향은 그런 작가의 혹독한 시간과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곳일 터이다. 작가들의 밑바닥이 횐히 보이는 그곳, 작가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들, 이야기의 뿌리, 불 같고 물 같은 기질의 원천, 그런 것들을 발견하러 박화성, 최명희, 박경리의 고향을 여행하는 이야기는, 그녀들의 생가와 작품 무대와 무덤을 찾아가는 길은 그녀들의 작품 못지않게 충분히 흥미롭다. 박화성의 고향이자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흐르는 목포에서는 개항 이후 최고의 근대문명 세례를 받으며 번성했던 근대도시의 한 전형을, 전성기는 흘러갔지만 지난날의 영화를 보여주는 유산들이 거리 곳곳에 오래된 나무처럼 서 있는 풍경을 충실히 전한다. 또 17년에 걸쳐 「혼불」 10권을 완성하고 2년 뒤 세상을 뜬 최명희의 삶과 작품 속 무대를 전주와 남원 두 곳에 있는 최명희문학관을 꼼꼼히 답사하는 동안, 마치 소설 「혼불」 속에 들어간 듯도, 아니면 소설을 쓰느라고 혹독하게 자신을 벼리던 최명희의 혼을 만날 것만 같다. 한국문학의 거목 박경리의 자취를 훑기 위해서 지은이는 먼저 그녀의 고향 통영을 더듬는다. 그리하여 비록 오래 전에 그녀는 고향을 떠났지만, 박경리 안에 통영이 온전히 자리하고 있고 통영 곳곳에 또한 박경리가 있음을 발견한다. 이어 「토지」의 무대 악양 평사리, 가상과 실제가 혼재되어 있는 최참판댁에서 「토지」 속 인물들과 접속하고,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박경리가 농사지으면서 살았고, 「토지」를 완성했고, 삶을 마감했던 원주를 찾는다. 21세기 “대동 女지도” 작업은, 시대와의 불화 속에 아파하며 시들어간 그녀들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고 그녀들을 되살려내는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지금은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땅,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가야만 하는 땅, 고구려의 여자들을 비롯하여, 아직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역사 속의 여자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