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시작하며_문국진(법의학자)
Part 1. 미술평론가의 풍미 지식 갤러리 _ 맛의 예술을 탄생시킨 음식물 정물화 풍미 지식 갤러리 1. 삶과 죽음의 경계 Flavor Gallery 1. 음식물 정물화,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다 1 Flavor Gallery 2. 푸줏간을 가득 채우는 실존의 그림자 Flavor Gallery 3. 품격 있는 식탁을 위한 죽음의 연회 Flavor Gallery 4. 수확, 인류가 느끼는 최상의 기쁨 Flavor Gallery 5. 부엌, 풍성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풍미 지식 갤러리 2. 식탁 위의 희로애락 Flavor Gallery 6. 일상의 여유, 야외에서의 식사 Flavor Gallery 7. 식당을 찾는 사람들 Flavor Gallery 8.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농부의 식탁 Flavor Gallery 9. 커피 한 잔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가치 Flavor Gallery 10. 소망과 기원을 함께하는 주식, 빵 풍미 지식 갤러리 3. 화가는 왜 그 그림을 그렸을까 Flavor Gallery 11. 고대 벽화와 모자이크에 새겨진 음식의 의미 Flavor Gallery 12. 신이 먹는 음식, 신이 내린 음식 Flavor Gallery 13. 인간의 본능과 욕망, 신화 속 음식 Flavor Gallery 14. 존재를 이어주는 생명의 끈, 어머니의 젖 Flavor Gallery 15. 음식 풍자, 욕망의 빈틈을 공격하다 Part 2. 법의학자의 풍미 감각 갤러리 _ 욕망과 죽음의 코드로 보는 음식물 정물화 풍미 감각 갤러리 1. 오감이 만든 걸작 Flavor Gallery 16. 인간의 감각에 의해 탄생한 맛의 예술 Flavor Gallery 17. 미식 문화, 고유한 풍미를 찾아서 Flavor Gallery 18. 식욕과 성욕에 대한 욕망 Flavor Gallery 19. 음식의 풍미를 더하는 음악 Flavor Gallery 20. 남자들은 모르는 생명탄생 인고의 맛 풍미 감각 갤러리 2. 술이 정신을 지배할 때 Flavor Gallery 21. 술이 없었다면 그 작품은 탄생했을까 Flavor Gallery 22. 압생트의 유혹,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화가들 Flavor Gallery 23. 클레오파트라의 진주 칵테일 Flavor Gallery 24. 아버지에게 권한 한 잔의 술 Flavor Gallery 25. 술 마시는 왕과 술 마시지 않는 독재자 풍미 감각 갤러리 3. 축제와 죽음의 이미지 사이에서 Flavor Gallery 26. 유대 전통 축제 음식의 유래 Flavor Gallery 27. 죽음을 예고하고 부활을 알리는 음식 Flavor Gallery 28. 식물의 카니발리즘으로 탄생한 카니발 Flavor Gallery 29.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술잔 Flavor Gallery 30. 음복과 성체배령, 그리고 스파게티 증후군 글을 마치며_ 이주헌(미술평론가) |
이주헌의 다른 상품
문국진의 다른 상품
|
Flavor gallery 1. 음식물 정물화,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다
장르의 측면에서 음식물 그림의 기본은 정물화다. 풍속화에 음식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심지어는 풍경화에도 점경 형태로 음식물이 들어가곤 한다. 인물화를 그릴 때 보조적인 소품으로 음식물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으니 음식물은 웬만한 장르에는 다 등장하는 단골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음식물이 화면의 주인공이 되어 그 자체로 부각되는 경우는 정물화가 유일하다. 사물을 접사해 그리는 정물화는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그림이다. 음식물 정물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식욕과 관련되어 있으니 사실 따지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음식물 정물화를 감상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식물 정물화는 우리의 욕망에 대한 중요한 진실들을 명료히 전해주는 그림인 것이다. --- pp.16-17 네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도축된 고기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게 하는 대표적인 그림 중 하나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1669)의 [도살된 황소]이다. 이 그림은 매우 감동적이다. 일단 보는 사람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전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죽은 소를 껍질을 벗겨 거꾸로 매달아놓은 그림이 뭐가 그리 감동적이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렘브란트의 [도살된 황소]는 소의 육신, 소의 뼈와 살을 마치 실물처럼 매우 박진감 넘치게 표현한 그림이다.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그려 소가 지닌 물질감과 육질감이 생생히 살아난다. 물론 물감을 두텁게 발랐다는 사실만으로 소의 근골이 제대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렘브란트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데생과 효과적인 명암 표현, 그것에 기초한 탁월한 질감 묘사가 더해져 소의 살이 되고 뼈가 된 것이다. 실물을 보는 듯한 생동감, 그리고 주검을 이토록 생생히 재현해내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은 놀라움에 관객은 진한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된다. --- p.28 일상의 작고 소소한 단편, 서민의 부엌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가 그린 [우유를 따르는 여인] 또한 부엌에서 벌어지는 부엌 하녀의 평범한 일상을 아무런 교훈적인 내용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유럽에서 부엌 하녀는 아직 그 집의 요리사는 아니지만 요리사를 보조하며 부엌일을 돕는 하녀를 말한다. 이 그림에서 부엌 하녀는 지금 우유를 따르는 일에 여념이 없다. 오로지 흘러내리는 우유만 움직일 뿐, 일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 공간은 부엌의 한 코너이고 창문 아래에 부엌 테이블이 자리해 있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종류의 빵이 놓여 있는데, 특별한 장식이 없는 공간이지만 이 먹을거리들로 공간이 왠지 넉넉해 보인다. 여인 뒤편의 바닥에 놓인 ‘발 난로’는 궂은 노동에 대한 따뜻한 배려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조형 요소는 빛이다. 빛으로 여인의 몸은 뚜렷한 실재감을 띠고 다른 세부 묘사들도 생생하게 부각된다. 심지어 벽에 생긴 구멍과 못 그림자까지 명료하게 드러나 보인다. 비록 일상의 작고 소소한 단편을 그린 그림이지만, 보는 사람은 우유 따르기에 집중하는 여인을 따라 저도 모르게 깊은 명상에 잠기게 된다. 부엌 안의 찰나의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시간이 되고 있다. --- pp.71-72 가난 속에서도 풍미를 만끽하다 르누아르와 함께 인상파를 이끌었던 인상파의 거두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또한 멋진 야외 식사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그 작품이다. 이 그림은 선배 화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 대한 오마주이자 그 선배에 필적하고 싶은, 혹은 그를 넘어서고 싶은 모네의 의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미완성작으로 남았는데, 이 작품이 이처럼 잘리고 일부가 망실된 상태가 된 것은 모네의 가난 때문이다. 당시 집세를 낼 돈이 없었던 모네는 이 그림을 집주인에게 담보로 내주었고, 집주인은 돈을 갚을 때까지 그림을 지하실에 처박아놓았다. 모네가 돈을 마련해 집주인에게 건네고 보니 그림은 이미 곰팡이가 슨 상태였다. 모네는 되찾은 그림을 모두 세 조각으로 나눠 보관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결국 망실되고 말았다. 화가의 가난하고 궁핍했던 젊은 날을 증언해주는 작품인 셈이다. --- pp.80-81 지상 최고의 만찬이 된 두 잔의 술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녀는 환영 만찬을 열어 그를 초청했다. 안토니우스는 그녀의 초청에 응해 만찬장에 도착했고 그녀는 자랑 삼아 그 만찬을 ‘지상 최고의 만찬’이라 표현했다. 그런데 만찬 식탁에 차려놓은 것은 단지 두 잔의 술밖에 없었다. 안토니우스는 속으로만 코웃음을 치며 ‘이것이 지상 최고의 만찬이냐’는 말은 하지 않은 채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 일화를 표현한 것이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 1696~1770)의 작품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회]이다. 거대한 궁전의 만찬 식탁에는 아무것도 차린 것 없이 단지 술이 담긴 술잔 두 개뿐이다. 이를 본 안토니우스가 실망하는 듯하자 클레오파트라는 자기 귀에 달고 있던 커다란 진주를 떼어 술잔에 담근다. 진주는 서서히 녹아 들어갔고 이로써 참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진주 칵테일’이 만들어진다. 클레오파트라가 나머지 귀걸이의 진주를 떼어 술에 담그려 하자 안토니우스는 그만 자신이 경솔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녀를 만류한다. --- p.282 과일을 살해하다 식물의 카니발리즘과 카니발의 관계를 표현한 그림이 있는지 찾아보았더니 스페인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 1617~1682)가 그린 [과일 먹는 소년들]이라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무리요는 원숙하고도 자유로운 느낌을 주면서 감정의 진실이 잘 나타나는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성화뿐만이 아니라 소년과 거지, 방탕한 자식, 농부의 아들 등을 다룬 풍속화도 여러 점 그렸다. 그중 [과일 먹는 소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의 주인공들이 천진난만하게 과일을 살생하고 그 맛을 음미하면서 서로 오가는 눈길로 마치 축제를 누리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소년들은 과일을 먹는다, 아니 살생한다. 오른쪽의 소년이 칼을 쥐고 멜론을 자르는 모습은 마치 과일을 살해한다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두 소년은 살해한 과일을 입에 넣고 이번에는 씹는 행위를 계속하다 보니 그 우러나는 맛 또한 즐거워 서로 말은 못 하고 오고 가는 눈길로 즐거움을 나눈다. 더 자세히 보면 왼쪽의 소년은 기다란 포도 줄기를 들어 입에 넣으려는 순간에 옆에서 멜론을 입에 한입 물고 있는 다른 소년을 바라보며 눈길을 주고받는데 마치 맛의 축제가 벌어지는 현장 같다. 식물의 카니발리즘으로 탄생되는 카니발의 현장이다. --- pp.328-330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밥 고인을 위해 제사를 올리는 행위는 조상이 있어 내가 존재하므로 그 은혜를 기리는 한편,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또 사회적인 큰 의미에서 우리는 자연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천지신명께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공식共食의 의의를 예술로 표현한 작품으로 조각가 강용면의 [온고지신 2000 영혼]을 들 수 있다. 거대한 놋쇠 밥그릇에 노란 종이꽃을 가득 담은 이 작품은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의 감성을 그야말로 솔직하게 잘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놋쇠 그릇 가득히 쌓아 올린 밥은 모두가 상여喪輿를 장식하는 종이꽃들이다. 상여는 가마같이 생긴 것으로 장례 때 시신을 묘지까지 운구하는 도구다. 따라서 이 밥그릇 속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 생명의 밥이요, 망자를 애도하는 제사상의 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삶과 죽음 간의 소통을 의미하는 음복飮福을 표현한 것으로도 보이는데, 음복의 의의를 간소하면서도 알기 쉽게 표현한 걸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p.347 |
|
맛있는 그림 이야기
법의학자와 미술평론가가 ‘음식물 정물화’ 속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파헤친다. 이 책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한 미각을 주제로 명화 속에 담겨 있는 음식의 풍속과 사람들의 욕망을 풀어내고 있다. 인간들이 느끼는 맛은 분위기, 성향, 감정, 심성 등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기 때문에, 저자들은 단순히 ‘맛’이라는 표현보다는 ‘풍미’라는 말로써 명화 속에 담겨진 풍성한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있다. 법의학자 문국진은 음식물에 포함된 과학적, 의학적 의의와 맛의 감각성에 대해 명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음식 문화가 예술로 승화된 인문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으로 명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 『풍미 갤러리』는 맛이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사람 그리고 이 모두를 표현하고 있는 그림에 대해 과학적,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그림에 대해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안한다. 죽음으로 보여주는 강렬한 삶에 대한 욕구 “제아무리 예쁘게 장식되고 아름답게 꾸며진 음식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죽음과 일대일로 마주하게 된다.” 푸줏간에는 지금 돼지 족발, 소시지, 곱창, 가죽이 벗겨진 소머리, 가금류, 생선 등 방금 잡은 온갖 동물들이 걸려 있다. 피테르 아르트센이 그린 [푸줏간](1561)의 모습이다. 어쩌면 풍성해 보이는 먹거리에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핏빛으로 내걸린 동물들은 존재의 사멸, 곧 죽음을 드러낸다. 이것은 동물들뿐만 아니라 인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음식물 정물화는 죽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림이다. 음식물이 주는 풍요로움 뒤에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은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진지해질 것이다. 화가들이 그 그림을 그린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죽음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해 감사하고, 삶을 누릴 수 있는 희생에 대해 기도하고 인생을 허투루 낭비하지 말라는 진지한 사색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음식물 정물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다 “신화에 등장하는 음식에는 인간의 염원이나 소망, 금기, 호기심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그 바탕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연회장에서 남자들이 굴을 즐기고 있다. 바닥에는 이미 남자들이 먹어버린 굴 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기둥에는 비너스와 큐피드가 조각되어 있다. 이제 큐피드는 사랑의 화살을 쏘려고 하고 있다. 천장에는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이 황금으로 조각되어 있다.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가 그린 [굴 점심식사](1735)의 모습이다. 굴은 스태미나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카사노바는 연인들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하루에 굴 50개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자들은 모두 잘 차려 입었고, 상차림 또한 격식 있다. 하지만 손으로 굴을 허겁지겁 먹고 있다. 격식 있는 모습과는 달리 손으로 굴을 먹는 모습은 육체적 쾌락에 대한 갈망을 의미한다. 천장에 조각되어 있는 황금 조각들은 이 굴을 먹은 후 남자들이 상상하는 바로 사랑의 순간이다. 빈첸초 캄피가 그린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을 입 안 가득 리코타 치즈를 넣은 남자들의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남자들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식욕에 대한 만족도가 곧 성욕에 대한 만족도라는 것이다. 성적 만족도도 물론 해결되어야 하지만, 몇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식욕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면 인간은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런 그림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욕망인 먹는 즐거움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음식물 정물화를 감상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식물 정물화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진실을 명료하게 전해주는 그림이다. 음식물 정물화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을 그린 그림들을 그리며 화가는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음식 풍자, 욕망의 빈틈을 공격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사티로스는 산속을 헤매던 농부를 만났다. 불쌍한 농부를 구해주기로 한 사티로스는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농부는 손에 후후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티로스가 물어보자 농부는 언 손을 녹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집에 온 사티로스는 농부에게 뜨끈한 수프를 대접했다. 그러자 농부는 수프를 한 수저 떠서는 후후 입김을 불었다. 사티로스가 왜 그러냐고 또 묻자 뜨거워서 식히는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티로스는 냉정하게 농부를 쫓아냈다. 왜 사티로스는 농부를 쫓아냈을까? 그 이유는 어떻게 한 입에서 뜨거운 김과 차가운 김을 모두 내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티로스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순에 대해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티로스는 이 이야기를 한 농부의 집에서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이 우화를 야콥 요르단스는 [사티로스와 농부]에서 위트 있게 그려냈다. 인간은 음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은 인간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기 위해 화가들은 이 음식을 가지고 삶과 사회를 풍자해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절실한 욕망의 주체가 우리의 빈틈을 공격할 때 우리는 아차 하는 깨달음은 물론, 위트 있게 정곡을 찌른 풍자에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공식과, 음주의 역사와 문화, 카니발리즘 그리고 음식에 배어 있는 문화인류학적 배경 등을 명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미술이 다뤄온 음식 주제의 그림들과 그 배경에 자리한 인간의 본능적, 역사적, 문화적 욕구들을 두루 살피는 책이다. 풍성한 식탁에 한가득 차려진 음식들, 그리고 그 음식들을 즐기며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숨겨진 이면에는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