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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흥망 : 진나라
최초의 천하통일
따뜻한손 200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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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동양문화 top100 9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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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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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대일통(大一統)과 법치의 시대
- 진(秦)나라 개술
* 제업의 시작
- 상앙변법(商?變法)
* 음모 대 음모
- 합종책과 연횡책
* 역사 발전의 그림자와 대가
- 흐르는 선혈이 방패를 띄웠던 전국시대의‘전쟁’
* 4대 가문의 축출과 원교근공(遠交近攻)
- 진나라 재상 범저(范雎)
* 상인에서 한 나라의 재상으로
- 여불위와 『여씨춘추(呂氏春秋)』
* 천하를 휘두르다
- 영정(?政)의 친정과 1인통치 체제
* 왕사(王師)의 공적과 과실
- 한비(韓非)와 그의 법가(法家)이론
* 예현하사(禮賢下士)
- 양사(養士) 풍속과 객경(客卿)제도
* 진(秦), 천하백성의 마음을 얻다
- 구정(九鼎)의 확보에서 천하통일에 이르기까지
* 세계가 한집안이 되다
- 대일통(大一統)을 향한 출발
* 후손 만대를 위한 기반을 닦다
- 진시황의 이상과 그 실천
* 절대황권을 가진 폭군
- 진시황 폭정사(暴政史)
* 법치(法治)의 성과와 과오
- 진법(秦法)의 이모저모
* 사상의 독존과 겸용
- 백가쟁명에서 진(秦)의 통치이론까지
* '본(本), 말(末)' 논쟁
- 중농억상(重農抑商), 그 이론과 실제
* 진(秦)제국의 붕괴
- 진시황의 죽음에서 자영의 투항까지

저자 소개

저자 : 양쯔강 楊志剛
상하이에 있는 중국의 명문 푸단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중진 학자. 현재 푸단대학교 문물 박물관학과 교수 겸 푸단대학교 문화유산연구센터 주임으로 재직하고 있다. 『문화유산연구논문집』 같은 방대한 책을 저술하였으며, 국내외 학계에서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는 논문을 수십 편 발표했다.
편집자 : 거지엔슝 葛劍雄
문화혁명 이후 선정된 중국의 제1호 박사이자, 광범위한 학문적 영역을 자랑하는 동양의 대표적 석학. 역사학 이외에도 중국 학계 전반에 걸쳐 맹렬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푸단대학교 중국역사지리연구소 소장 겸 교수로 재직 중이며, 특히 역사지리·중국사·인구사·이민사 등에 조예가 깊다.
『서한 인구지리』 『중국 인구 발전사』 『천하 : 통일 및 분열과 중국정치』 『통일과 분열 : 중국역사의 계시』 등을 저술하였다. 공저로는 『중국 이민사』『과거사와 현대사』『미래의 생존공간?자연공간』『천추흥망』 등이 있으며, 100여 편에 이르는 주옥같은 논문을 발표했다.
역자 : 고예지
숙명여대에서 중문학을 공부한 뒤 북경 사범대학교 대학원 중문학과를 졸업했다. 북경 제39 중학교에서 중국어 교사로 재직했을 만큼 고대와 현대의 중국어에 뛰어나다. 지금은 중국은행 한국지점에서 근무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약하고 있다. 역서로는 『헬로우 묵자』, 『조조의 윈윈 경영』, 『맹자, 처세를 말하다』, 『프랑스 여성-우리가 바로 세상이다』, 『세계 역사 도감』 등 다수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8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476쪽 | 713g | 153*224*30mm
ISBN13
9788991274365

책 속으로

이에 상앙은 이렇게 반박했다. “하, 은, 주 삼대는 서로 다른 정책을 시행했으니, 과연 어느 것을 본받아야 합니까? 각 제왕은 서로 다른 예법을 사용했으니, 도대체 누구의 예법을 따라야 합니까? 황제(黃帝), 요(堯), 순(舜)과 주문왕(周文王), 주무왕(周武王)은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에 근거해 법과 예법을 세웠습니다.” 그는 또 “옛 것에 반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며, 옛 법에 따르는 것 역시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정책과 법령은 반드시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정해져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상앙의 이론과 주장은 당시 진나라의 발전상황에 부응한 것일 뿐만 아니라 국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효공의 목표와도 일치하고 있었다. 결국 효공은 상앙의 의견을 수용하여 변법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효공이 결정을 내리자, 상앙은 즉시 구제도를 개혁할 법령을 제정했다. 그는 법의 시행에 앞서, 공포된 변법이 반드시 지켜진다는 믿음을 백성에게 심어주기 위해 ‘남문의 나무를 옮기는(南門徙木, 남문사목)’ 행사를 벌였다. --- p.73

어느 날, 여불위가 급하게 뛰어들어와 난데없이 부친에게 물었다.
“농사를 지으면 이윤을 얼마나 얻을 수 있습니까?” 부친이 대답했다. “10배는 남길 수 있다.” 여불위가 다시 물었다. “장사를 하면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부친이 답했다. “100배는 남길 수 있다.” 여불위가 이어서 물었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왕을 세운다면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들의 엉뚱한 질문에 한동안 어리둥절해하던 부친이 대답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 않겠느냐.”
여불위는 이렇게 물은 까닭을 부친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지금 세상에서는 죽어라고 논밭을 갈고 농사를 지어도 기껏해야 먹고사는 게 고작입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왕을 사서 그를 제 뜻대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평생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물론 후손들에게까지 혜택이 미칠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장사를 해 볼 생각입니다.” 여불위는 당시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던 진 소왕(秦昭王)의 손자 이인(異人)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여기서 ‘인질’이란 바로 제후국들 간에 연맹을 맺을 때 서로 교환했던 귀족자제나 왕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각자의 본국에서 맹약을 어기면 이들 인질이 그 나라를 대신해 처벌을 받았다. 이인은 진 소왕의 태자 안국군(安國君)의 서자였다. 안국군에게는 2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인은 서열도 중간이고 그 어머니 하희(夏姬)마저 안국군의 총애를 받지 못했던 탓에 조나라에 인질로 보내졌다. 본래 진나라에서도 설 자리가 없던 이인이었지만, 인질로 조나라에 온 이후에도 진나라가 계속해서 조나라를 공격했기 때문에 그는 매우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불위는 상인의 직감으로 바로 이인이 자신이 찾아 헤매던 ‘최고의 투자상품’임을 확신했다. 그는 최소투자로 최대이익을 얻을 수 있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 p.174

다음은 『맹자·양혜왕(孟子?梁惠王)』에 수록된 일화다.
맹자가 제 선왕(齊宣王)에게 말했다. “대왕의 신하가 친구에게 그 아내와 아이들을 부탁하고 초나라로 유세를 떠났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무렵, 그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있었습니다. 이 같이 친구를 대한 사람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선왕이 말했다. “절교해야 하오.”
맹자가 말했다. “만일 형벌을 관리하는 자가 그 부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제 선왕이 말했다. “그를 파면해야 하오!”
맹자가 다시 말했다. “만일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제 선왕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현대문 해석)
이것이 바로 맹자가 비유를 통해 제나라의 사회병폐에 대해 질책했다는 유명한 일화다. 구구절절 이어지는 호된 지적에 제 선왕은 결국 주위를 둘러보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위의 일화들을 통해 제나라가 추진했던 ‘양사의 풍속’을 살펴볼 수 있으며, 현사와 그 사상이 존중받을 때 그것이 국가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 p.253

출판사 리뷰

오천년 중국사의 흥망성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천하의 영웅 ‘진시황’이 이룩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천하통일 시대


제12회 중국도서상을 수상한 중국역사 총서 『천추흥망』의 세 번째 한국어 판 ‘진나라(부제:최초의 천하통일)’가 『삼국·양진·남북조』 『수·당나라』에 이어 출간되었다.
불로장생을 추구했던 황제로 유명한 진시황이 바로 통일제국 건설의 주인공이다. 진제국이 건설되기 이전까지 중국은 영토확장을 목표로 하는 제후국 간의 이권다툼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약소국에 불과했던 진나라는 효공시기 상앙의 변법을 통해 강국으로 부상한다. 그 뒤를 이은 왕들 또한 훗날 진나라가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진시황은 동방 6국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통일제국 건설의 대업을 완성한다. 그는 봉건제도로 말미암아 각 제후들이 세력을 키우고 할거하던 춘추전국시기의 국가체제를 거울삼아 군현제를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확립하고, 강력한 법치를 행사한다. 법치로 부국강병을 실현했지만, 진시황과 그의 뒤를 이은 진 2세 황제의 가혹한 형벌과 혹독한 수탈로 진나라는 통일을 이룩한 지 15년 만에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백성이 일으킨 전국적인 봉기로 멸망하고 만다.

거상이자 재상으로 유명한 여불위도 이 시기의 인물이다. 장사를 통해 큰 부를 거머쥔 여불위는 사람이 최고의 투자상품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인질로 조나라에 가 있던 이인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결국 노력은 결실을 거둬 이인은 태자를 거쳐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여불위는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 여불위는 문객들을 모아 『여씨춘추』라는 자신의 정치강령을 담은 선진잡가(先秦雜家)의 대표작을 탄생시킨다. 여불위는 군사방면에서도 많은 공적을 쌓아 동주를 멸망시키고 각 제후국의 영토를 점령하면서 진나라의 판도를 넓히는 데 크게 공헌한다. 이렇게 문치와 대외확장의 성과에 힘입어 여불위는 진나라 최고의 권력가가 된다. 그러나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중앙집권 확립에 박차를 가하던 진시황은 어느 누구와도 권력을 나누기를 원치 않았기에 여불위를 제거하기에 이른다.
『진나라(최초의 천하통일)』편에서는 법치로 일어서고 가혹한 법으로 망한 진나라의 흥망성쇠와 역사적 인물들의 공적과 과실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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