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웅대한 한나라 - 백 년의 흥망성쇠
사슴은 과연 누구의 손에 죽을 것인가? - 초(楚)한(漢) 전쟁의 승자 말 위에서는 천하를 통치하지 않는다 - 유방과 유생 분봉에서 추은(推恩)까지 - 서한 초기의 제후국 번왕(藩王)들 오랑캐의 말들이 음산을 넘지 못하게 하라 - 한과 흉노 간의 투쟁과 융합의 역사 사상 최대의 영토 확장 - 양한의 영토 장건의 실크로드 개척 - 한제국과 세계 윤대궁에서 자신의 잘못을 질책하다 - 한 무제의 만년 정권의 찬탈자 혹은 개혁자 - 왕망의 비극 재산 증식이 무슨 죄인가? - 상인과 상업의 지위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 지식인의 딜레마 한위고사(漢魏故事) - 선양의 진상 |
葛劍雄
|
반만년 중국역사를 아우른 총서 ‘천추흥망(千秋興亡)’ 전 8권 중 ‘한나라(부제:세계 최대의 강국)’출간
- 405년의 최장의 역사와 최고영토를 자랑하는 한제국의 이야기를 역사학계 거장의 필치로 되살리다! 중국역사 총서『천추흥망(千秋興亡)』전 8권 중 최장의 역사와 최고 영토를 자랑했던 시대인『한나라』편이 출간되었다. 현재 푸단대학교 중국역사지리연구소 소장 겸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화혁명 이후 중국의 제1호 박사인 역사학계의 거장 거지엔슝(葛劍雄)이 집필을 담당했다. 거지엔슝 교수는 한나라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 한은 진의 제도를 계승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 왕조의 존속기간은 매우 짧았기 때문에 그 제도는 오랜 세월의 시험을 거칠 틈도 없었으며, 왕조의 단명 자체는 오히려 진의 제도에 불길한 색채만 더했을 뿐이다. 따라서 진 왕조의 제도를 진정으로 보존, 발전, 완성시킨 주체는 바로 한 왕조였다. 진의 제도들은 한 왕조 400년의 검증을 거치고 난 후 그 실용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이야말로 당시의 많은 제도들이 근대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중화제국의 기틀을 마련했고, 한족은 중화민족의 주체가 됨으로써 한나라는 중국역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강국이라는 부제가 붙은『한나라』편에서는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건국이야기를 시작으로 유방의 유가(儒家) 채택의 과정, 분봉과 개국공신들의 제거, 한나라의 대외정책, 한 무제의 실크로드 개척, 왕망의 신(新) 왕조 건국, 농본억상(農本抑商) 정책과 실상, 한 헌제와 조비의 선양에 관한 일화인 ‘한위고사(漢魏故事)’ 등 한나라의 흥망성쇠가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한(漢)의 건국은 진나라의 폭정으로 인한 역사의 필연이었다. 이때 항우는 우수한 배경과 뛰어난 자질을 바탕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천하를 차지한 인물은 배경도 지식도 없는 유방이었다. 유방이 자신보다 우수한 항우를 물리치고 400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항우와의 대결, 한나라 건국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유방의 성공요인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우리에게 인생의 지혜와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또 한나라 시대 유명한 인물로 한 무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시기에 장건을 통해 서역이 개척됨으로써 유명한 실크로드가 열리고 무제의 적극적인 영토 개척으로 한나라는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보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토확장이 한 무제의 개인적인 욕망이 원동력이 되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제는 위대한 황제였지만, 개인적으로는 결함이 많은 인물이었다. 사람을 믿지 못해 수많은 주변 사람들을 처형했고, 미신과 주술에 빠져 국가의 재산을 신선을 찾거나 자신의 불로장생을 위해 쏟아 부었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실책을 뉘우치고 민생의 안정을 위해 힘썼으며 자신이 죽은 이후의 후계자를 위한 조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진나라가 진시황이 죽은 뒤 얼마 못가 무너진 것과는 달리 무제 사후에도 방대한 영토를 유지하며 400년의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이 무제가 죽기 전에 마련해 놓은 이러한 조치들 덕분이라고 거지엔슝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진시황과 무제 모두 불로장생을 꿈꾸며 영원히 살기를 바랐지만, 이 두 위대한 황제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진시황은 신하들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했던 반면 무제는 자신의 죽음 뒤에 일어날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게 한 점이다. 그 유명한 실크로드는 한나라 시대에 개척되었다. 이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가 전래되고 동양과 서양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진다. 실크로드의 개척과정과 당시 대외정책이 일화를 바탕으로 생생히 소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헌제가 조비에게 양위하는 한위고사가 소개되고 있다. 개국황제들은 자신의 건국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의례적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도참이나 예언을 조작하여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황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임을 증명하려 했다. 조비는 문인이자 학자였던 만큼 여기에 화려한 선양의식을 더한다.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신하들이 각본대로 연출했으며 허수아비 황제인 한 헌제의 협조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한위고사가 완성된다. 이렇게 조비가 황위에 오름으로써 가장 긴 한 왕조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유방의 건국이야기부터 헌제의 선양으로 멸망하기까지의 한의 역동적인 역사가 사료와 일화의 소개를 바탕으로 필자의 분석과 해설이 곁들여져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