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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서문
총서 다문화로 이룩한 아름다운 시대 - 원나라 역사 개관 고비 사막 북쪽을 통일하다 - 칭기즈칸 제국의 등장 시체가 산을 이루다 - 대몽골국의 3차 서방 원정 흡혈귀의 쇠락 - 남송 평정 세계 속의 중국 - 몽골 원나라 시대의 대외관계 군현으로 전락한 토번 - 원나라의 티베트 관리정책 비련(悲戀)의 술 공작담(孔雀膽) - 성정왕정과 단씨의 나라 대리국 2차 유교 정치와 그 결과 - 국술(國術)과 유술(儒術)의 힘겨루기 여러 관점에서 본 원나라 - 지배층 밖의 백성들이 본 시대상 외눈박이 돌사람 - 홍건의 발기와 원의 멸망 역사 연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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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년에 이르는 원나라의 역사는 성격상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첫 단계는 1206년부터 1259년에 이르는 기간으로, 대몽골국의 통치 중심인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칭기즈칸, 우구데이(칭기즈칸의 셋째 아들, 보통 오고타이로 알고 있음), 구유크(우구데이의 장남), 뭉케(칭기즈칸의 막내아들 툴루이의 장남)에 이르는 4명의 대칸大汗이 몽골국을 다스린 이 시기를 ‘사한시대四汗時代’라고 한다. (중략)
원나라의 두 번째 단계는 1260년 쿠빌라이(칭기즈칸의 손자)가 즉위한 순간부터 원나라 말엽에 이르는 시기이다. 고비 사막 남쪽, 한족 지역에서 세력권을 형성하기 시작한 쿠빌라이는 대몽골국의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남쪽으로 이전했는데, 먼저 개평開平으로 옮겼다가 훗날 대도大都를 세우고 다시 그곳으로 이전했다. 아울러 이때부터 중국식 국호를 사용해??대원大元??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 시기를 ‘원 왕조’라고 부른다. --- p.18 좀 더 크게 확장해서 본다면 1250년부터 1350년에 이르는 100년 동안 구대륙 전체가 거대한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연결된 최초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시스템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모두 일곱 개로 구성된 지역 경제축, 즉 서유럽, 지중해 동부 연안 지역, 바그다드-페르시아만 지역, 이탈리아-이집트-홍해 지역, 아라비아해 연안 지역, 인도양 연안 지역, 중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지역은 다시 3대 글로벌 시스템, 즉 유럽(서유럽과 지중해 지역으로 구성), 중동(바그다드-페르시아만, 이탈리아-이집트-홍해 지역과 아라비아해로 구성)과 극동 아시아(인도양 지역과 중국)로 재편성되었다. 이렇게 구성된 글로벌 시스템에서 원대의 중국은 육로와 해로를 동시에 손에 쥐고 대외 협력 사업을 벌였는데, 이는 전 세계를 연결하는 시대를 앞선 최초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탄생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 p.78 세 사신의 이름은 마르코 폴로가 말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절단이 페르시아로 돌아갔을 때 세 사람 중 코자 외에 나머지 두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결국 페르시아어로 된 문헌 속에는 코자의 이름만 등장한다. 마르코 폴로가 서역의 어느 지역에서 중국어로 인용된 문헌을 베꼈다면 천리 밖에서 어떻게 이미 죽은 두 사신을 포함한 세 사신의 이름을 알 수 있었을까? 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마르코 폴로가 분명 세 사신과 함께 중국에서 서쪽 항해길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 p.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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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 중국 역사를 아우른 총서 『천추흥망(千秋興亡)』
전 8권 중 「원나라 - 유목민족의 세계 제패」출간 :: 끝없는 정복사업으로 통일을 이루어 낸 대제국 중국역사 총서『천추흥망(千秋興亡)』전 8권 중 유목민족의 세계 제패의 시대 「원나라」편이 출간되었다. 원나라는 중원의 혼란을 종식시킨 통일 국가 건설로, 중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의 중심에 우뚝 선 시기로 평가받는다. 칭기즈칸에 의해 통일된 유목국가로 세워진 몽골제국은 활발한 정복사업을 통해 옛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했다. 유목국가의 근원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유목과 농경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기지를 찾아서 강대한 제국을 세우려 한 것은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였다. 고비 사막 남쪽 지역에서 세력권을 형성한 쿠빌라이는 집권 후 중국화된 명칭과 제도로 중국 역사상 통일 왕조로서의 위치를 가지게 된다. 역사상 이민족이 중국의 일부를 차지해 왕조를 세운 일은 있었지만 중국 전체를 지배한 적은 없었다. 쿠빌라이에 의해 비로소 북방민족과 중국이 하나로 통일된 대원제국이 세워진 것이다. 이후 유럽까지 정복활동을 펼치며 세계에 중국의 존재를 인식시켰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원나라는 중앙관제나 지방행정단위 등 외형은 중국의 전통을 따르는 듯했지만 주요 지배층은 대다수의 몽골귀족이 차지했다. 지배층뿐 아니라 제도 및 문화에서도 기존 몽골제국의 유목국가적인 특성이 강했다. 또한 역참제도를 실시하여 기동성을 살렸으며, 최초로 지폐를 사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원나라는 다민족 국가로서 외부에서 유입된 각 민족의 다양한 문화로 인해 중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문화와 경제의 교류가 활발하고 왕성하게 일어난 개방된 시기였다. 그로 인해 동·서의 문물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국제무역이 번창하였다. 원나라 시기 다문화가 이처럼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끝없는 정복사업과 역참제도에 기인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몽골의 역참제도는 중국의 대도(大都, 지금의 북경)에서 남부 러시아 대초원과 페르시아 각 지역에까지 뻗어 있었다. 이러한 ‘비즈니스 네트워크’ 기반 위에 경제·문화 교류 사업이 자연스레 활기를 띄게 된 것이다. 소수민족에 의해 세워진 원 왕조는 비록 ‘오랑캐 정권’, ‘이민족 정권’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사실상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줄곧 한족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한족과 다른 소수 민족 모두의 귀중한 유산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원나라는 중원이라는 테두리가 아니라 보다 넒은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민족을 품에 안으려고 노력한 적극적인 역사적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목민족의 세계 제패」편은 이처럼 다문화가 찬란한 빛을 뿜어낸 순간들을 흥미 있게 서술하고 있으며, 다민족이 통일 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옛 유라시아 대륙의 화려한 문명의 정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