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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 19세기 후반 조선사회와 정치구조의 변화 3. 개혁관료의 '군민공치' 근대국가 구상 4. 개혁주체의 형성과 갑오정권 수립 5. 일본의 간섭정책과 '보호국화' 기도 6. 근대국가 체제의 권력구조와 지향 7. 근대국가 지배구조의 형성과 국민편성 8. 자본주의 육성정책과 종속화 문제 9. 갑오정권의 농민군 대책과 일본의 역할 10. 근대개혁의 방향과 갑오개혁 11. 결론 |
Wang Hyeon-jong,王賢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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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9월 갑오개혁정부의 권력개편은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즉 9월 21일 고종은 의사부. 행정부가 서로 대치하는 의안과 승선원을 정부에 소속하게 하자는 의안을 일방적으로 폐기시켜 버렸다. 따라서 9월 중순이후에 갑오개혁정권은 고종을 개혁사업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자로서 만들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권력장악의 기반이 되었던 일본의 지지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제 갑오개혁정부 내부의 개혁관료 세력은 매우 불안정한 위치로 몰리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갑오개혁정부는 9월 하순 정권붕괴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더구나 갑오개혁정부를 최종적으로 붕괴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두번째로 시도된 일본의 정치, 군사적 개입이었다. 이 시기에는 일본의 정치. 군사적 침략이 이전에 비해 더욱 노골화되고 있었다. 특히 9월 29일 새로 부임한 이노우에 주한일본공사는 이전보다 확실하게 '사실상의 일본 보호국화'를 이룩하기 위해 대원군계열 및 농민군 등의 반일세력을 거세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이노우에 공사는 현재의 갑오정권을 개편하여 새로이 정권을 만들어내려고 했는데, 이는 기존의 개혁관료들과 더불어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박영효와 서광범 등의 개화파를 영입하여 양계열의 연립내각을 출범시키는 것이었다. ---pp. 223~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