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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트로이 전쟁에서 마케도니아 정복까지
김진경
안티쿠스 200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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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그리스의 태동
아름다운 나라 그리스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형성된 고대그리스
슐리만, 그리스 청동기 시대를 깨우다
신화의 섬 크레테를 발굴한 에반스
미노아 문자를 해독하다
미노아 왕국은 해상왕국이었을까
미노아 문명의 파괴와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
트로이 전쟁은 역사적 사실일까?
미케네 문명의 몰락과 바다의 민족
철기와 알파벳사용으로 새로운 시대를 잉태한 암흑시대

2.역사 시대의 개막
폴리스 폴리스 폴리스
정복전쟁과 노예제도의 스파르타
개혁으로 스파르타의 기틀을 마련한 입법가 리쿠르고스
테세우스의 전설과 아테네의 성립
킬론의 반란과 피로 쓴 드라콘의 성문법
조정자 솔론, 민주정의 기초를 닦다
신화적 황금시대의 모범적 독재자, 페이시스트라토스
도편추방을 시행한 민주적 개혁가 클레이스테네스

3.페르시아 전쟁과 아테네의 약진
친 페르시아냐, 반 페르시아냐
마라톤 전투의 수수께끼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결정과 제국의 운명
아테네, 강력한 해군 국가로 거듭나다
스파르타,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패하다
아테네, 살라미스해전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치다
플라타이아 전투로 30년 동안의 페르시아전쟁을 끝내다
스파르타를 누른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
아테네 두 영웅의 종말
권력투쟁의 희생자, 에피알데스의 과격 민주정시대
아테네, 제국의 길로
민주정 시대의 독재자 페리클레스
아테네 영광과 번영의 시대

4.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스파르타의 제국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충돌
시켈리아 전투 패배의 원인, 아테네의 대중 민주정
불안한 정국을 틈 탄 두 차례 과두파의 혁명
아테네의 당파 싸움과 스파르타왕의 중재
대중민주주의가 낳은 비극,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테네의 명장 크세노폰의 리더십 〈아나바시스〉
제국화한 스파르타의 몰락

5.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변방의 새로운 세력 마케도니아의 등장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적인가 동지인가
페르시아 원정을 결정한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
그리스를 평정한 새로운 패자 알렉산드로스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동방원정을 떠나다
끝없이 승리를 추구한 전쟁마니아, 알렉산드로스의 요절

6.서양정신의 기원 그리스 고전
호메로스와 호메리다이
〈일리아스〉는 그리스인의 성서이다
그리스 최초의 농민사상가, 헤시오도스
신이 아닌 인간의 운명을 노래한 서정시들
제례와 잔치에서 함께 부르던 가요, 합창시
민중의 예술, 민주정의 산물, 그리스 비극
인류보편의 비극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
그리스 비극의 대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프스왕〉
전통에 반대한 새로운 사조의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
현실풍자로 언론의 역할을 한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
역사의 탄생
전쟁을 중심 주제로 다룬 최초의 역사가 헤로도토스
한 편의 비극으로 쓰인 투키디데스의 〈역사〉

저자 소개 1

193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수료한 후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했으며, 경북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2005년 8월 75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그리스 비극과 민주정치』, 『지중해문명산책』, 『서양 고대사 강의』(공저) 등을 저술했고, 『고대 노예제』(M.I.핀리), 『그리스 문화사』(H.D.F.키토), 『그리스 국가』(V. 에렌버그)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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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765g | 153*224*30mm
ISBN13
9788992801126

출판사 리뷰

서양 문명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의 역사!
청동기 미케네문명에서 태동하여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하기까지
학문적 깊이에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여 풀어주다

평생을 서양고대사 연구와 강의에 바친 김진경 교수의 내공이 팍팍!!
2005년 작고한 저자가 30년 동안 강의한 내용을 학문의 깊이와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고려하여 “헤로도토스의 설화성과 투키디데스의 역사성을 겸비한 글이 되기를” 시도한 저작이다. 청동기 시대 미케네문명부터 고전기까지 에게해 주변의 도시국가들과 페르시아 그리고 마케도니아간의 전쟁과 정치세력다툼을 중심으로 엮었다. 그리스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저자의 통찰력과 서양정신의 기원이 된 그리스 고전에 대한 해석이 돋보이는 책. 저자는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플루타르코스 디오도로스 외 다수의 당대 저술들을 넘나들며 인용하고 비교하기도 하며 저자 나름의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Ⅰ. 트로이 전쟁을 실제 있었던 일일까?
슐리만의 발굴 이전에는 트로이 전쟁의 실재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발굴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그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리아스의 내용이 트로이 전쟁의 전모를 사실대로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하지만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다 하더라도 호메로스가 그린 대로 헬레나라는 여자 한 명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입장들이 제기된다. 예컨대 리프F.X.Rief는 무역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즉 트로이는 지리적으로 교통의요지에 위치했으므로 사방에서 모여드는 무역상인 들에게 시장세와 통과세를 부과해 번영했고, 그런 상황에서 그리스 인은 관세장벽을 제거하고 흑해와의 금속무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원정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입장으로 미틀러는 트로이가 교통의 요지였다는 이른바 지협이론으로 이 전쟁을 설명한다. 즉 헬레스폰토스 해협은 바다의 물살이 급해 미케네 시대의 항해술로는 선박을 항해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상인들은 이 해협을 건너지 않고 지협의 입구에 위치한 트로이시장에서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은 미케네 시대에 활발한 무역활동이 존재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와 다르게 당시의 활발한 상업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도 있다. 닐슨M.P.Nilsson에 따르면 트로이 원정은 무역 전쟁이 아니며 중세의 바이킹처럼 재물을 약탈하기 위한 영웅들의 해적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트로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국력이 소진되어 해적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왕과 가신 간의 관계가 이완되고 이로 말미암아 왕권이 쇠퇴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 원정을 왕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습격으로 여기지는 않았으며, 금속원료 등 왕국의 필수물자를 획득하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으로 생각했다.
버묄E.Vermeule은 호메로스가 전하는 대로 파리스가 헬레네와 재물을 약탈한 것이 전쟁을 유발했다고 본다. 원정은 연해민족이 왕권지배에서 자립하여 해상활동(약탈)을 시작한 것이며, 그것은 그 후 큰 규모의 해상 민족활동의 서곡이 된다고 주장했다.
요즘 각광을 받는 것은 페이지D.Page의 이론이다. 그는 트로이 제7시가 화재 때문에 파괴된 점, 미케네 시대의 점토판에 영웅의 이름이 적혀 있는 점, 함선표가 당시 각국의 세력을 반영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전쟁의 실재성을 논증한다. 그리고 이어서 소아시아 서부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던 히타이트 제국이 에게 해를 사이에 두고 미케네와 대립하며 세력의 균형을 유지했으나 제국의 동부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데 전력을 기울임으로써 서부에서 정치적 공백이 생겼고, 이 틈을 타 미케네가 진출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트로이 전쟁의 실재를 논증하려는 입장과 달리 슐리만의 발굴 후에도 트로이 전쟁을 호메로스의 문학적 허구로 취급하거나 아니면 미케네 인 아닌 다른 민족의 침입이 와전되었다는 식으로 전쟁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학자들도 여전히 많다.

2. 마라톤 전투의 수수께끼-삼류 도시국가였던 아테네가 강대국 페르시아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거대한 페르시아에 맞서 싸웠다. 두 차례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의 활약에 힘입어 페르시아를 무찌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전투는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이다. 마라톤의 신화를 낳은 마라톤전투 승리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그리하여 약 1만 명의 중장보병이 출동하여 마라톤 평야 서쪽 끝에 진을 쳤으며, 그 후 6일간 양군은 대치한다. 아테네 군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대기했는지, 또한 마라톤에서 ?군이 어떻게 포진했으며 싸움의 경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헤로도토스의 기술이 너무 간략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테네 군은 병력의 열세를 깨닫고 스파르타 군의 도착을 기다렸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 페르시아 군은 왜 멈칫했을까? 페르시아 군이 마라톤에 상륙한 전략적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페르시아의 주력 부대인 기병대가 활약할 수 있는 평야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헤로도토스의 기술에는 기병대의 말이 상륙했다는 표현은 있지만 기병대의 동정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아테네 군의 중장보병의 밀집대는 적의 보병이나 궁수에 대해서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기동성이 뛰어난 기병이 측면이나 배후에서 공격해 오면 대열이 쉽게 무너져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병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10세기의 수우다 사전에는 기병대가 마라톤에서 철수하자 그때까지 페르시아 군에 속해 있던 이오니아 병사가 나무에 올라가 아테네 군을 향해 기병대가 떠났다는 신호를 보냈고, 다음에야 비로소 밀티아데스는 공격을 해서 승리했다는 기술이 있다. 페르시아의 기병대가 있는 한 밀티아데스는 쉽사리 공격할 수 없었기에 스파르타 군을 기다리며 6일이나 대기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기병대는 왜 싸우지도 않고 철수했을까? 페르시아 군이 상륙한 해변 바로 전면에 큰 늪지대가 있어 예상과는 달리 기병대가 활동하기 불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테네 시내가 무방비 상태인 것을 알고 기병대를 급속히 팔레론 만에 상륙시켜 아테네 시내로 진격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마도 후자였을 가능성이 컸겠지만, 두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페르시아 군도 첩자를 통해 그리스 군의 동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서 스파르타 군이 도착하기 전에 아테네로 진격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페르시아 군으로서도 기병대 철수로 병력이 분산되었기 때문에 작전이 변경되고 지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밀티아데스는 더 이상 스파르타 군을 기다리지 않고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공격했을 것이다

3. 소크라테스가 죽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 최고의 지성인 소크라테스는 독신죄로 고발되어 처형당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아마추어리즘의 대중 민주주의와 정치보복 그리고 소크라테스 자신의 오기가 빚은 아테네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 재판에 대한 기록으로는 그의 제자들이 쓴 스승에 대한‘변명’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고발도 매우 훌륭하고 설득력이 있어 소크라테스 자신도 자기가 유죄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하나 그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화되고 성화聖化된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만 남아 있을 뿐, 재판의 진상은 알 길이 없다.
민주파들은 민주정의 약점을 규탄하고 민주파에게 악담을 서슴지 않던 오만불손한 소크라테스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로 말미암은 소란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그를 고소했을 것이다. 민주파 내에서도 과격파와 온건파의 대립이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아무튼 고소 후 사태는 예상치 않게 악화되어 버린다. 1차 투표에서 유죄가 결정된 후 어느 정도의 형량을 받겠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국가유공자로서 종신연금을 요구했다. 예상치 못한 이 말에 가벼운 형량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으려던 온건파들마저 반감을 품게 되었고, 원고의 요구대로 사형을 확정짓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원치 않은 민주파들은 그가 보이오티아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제의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제의를 거절한다. 제자들이 눈물로 탄원을 해도 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왜 죽음을 고집했을까? 그의 죽음은 결국 그의 오기와 대중민주주의 경망함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회피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가 굳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죽음에 관해 여러 가지 말을 남겼다. 가장 감동을 주는 것은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이제 갈 때가 되었다. 여러분은 삶을 향하여. 나는 죽음을 향하여. 우리들 가운데 누가 보다 좋은 운명을 향하여 가는가는 신만이 알 것이다.”하지만 이런 말을 통해서도 죽음을 고집한 그의 진의를 헤아리기는 어렵다. 그가 죽은 다음 아테네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가장 위대한 세기에 행해진 가장 위대한 사상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별다른 파문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크라테스의 비극이요 아테네의 비극이라 하겠다.

4.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권을 빼앗긴 이유는 무엇일까?
페르시아 전쟁을 치룬 후 일약 그리스 최강의 해군국이 되었으며 그에 따라 경제력도 급격히 향상되었다. 안으로는 민주정을 더욱 공고히 하고 밖으로는 델로스 동맹을 중심으로 제국주의적인 확장을 꾀하는 아테네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테네는 시켈리아 원정에서 스파르타에게 패하고 결국 그리스의 패권은 스파르타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아무튼 이 사건은 대중민주정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결과를 낳았다. 민중들은 시켈리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상 열기에 휩싸여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해 버렸다. 더욱이 원정에 반대하는 니키아스와 원정을 주도한 알키비아데스를 공동의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으나 결국은 정파 간의 안이하고도
애매한 타협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알키비아데스에게 해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은 불공정하며 더욱이 전장에서 지휘 중인 지휘관을 소환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알키비아데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국가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이나 명성을 보다 중시했다. 이러한 여러 결함은 결국 패전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5. 왜 고대 그리스 역사를 읽어야 할까?
저자는 그리스의 역사를 통하여 인류 역사의 보편성을 읽도록 이끈다.
예를 들면 투키디데스의 〈역사〉 중 백미로 꼽히는 멜로스 대담을 통해 우리는 강대국과 약소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 인: 세상의 이치에 따르면 정의냐 아니냐 하는 것은 양자의 세력이 대등할 때 결정될 수 있는 것이오. 강자와 약자 사이에는 강자가 어떻게 큰 몫을 차지하며 약자가 어떻게 작은 양보로 위기를 모면하느냐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오.
멜로스 인: 여러분이 정의를 도외시하고 오직 득실得失의 척도로 판단의 기준을 삼는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데, 여러분에게 이익이라는 것은 곧 상호 간의 이익을 무위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소. 생사의위기에 처한 자에게 이치에 호소하고 정의에 호소하는 것을 허용하고, 또 그 호소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여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그것이 당신들에게도 큰 이익이 될 것이오. 왜냐하면 귀국도 몰락하면 모든 나라의 보복을 받게 될 것이고, 당신들이 미래의 본보기가 될 날이 오고 말 것이기 때문이오.
아테네 인: 지배자의 자리에서 몰락하는 날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소. 왜냐하면 스파르타 같이 남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자는 두려운 존재가 못되나 피지배자가 반란을 일으켜 지배자를 타도하는 것이야말로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회담을 통해 우리의 지배권에 이익을 도모하고 아울러 그것이 여러분의 위기를 구하는 것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이오.
멜로스 인: 이해할 수 없는 말씀. 여러분이 우리의 지배자가 되는 이익은 알 수 있소. 하지만 여러분의 노예가 되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우리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말씀이오?
아테네 인: 그렇다오. 왜냐하면 여러분은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고 종속국의 지위를 얻을 수 있으며, 우리는 여러분을 살육하지 않고 살려둠으로써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오.(중략)

이 대담이 아테네와 멜로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강자와 약자 사이라면 어느 시대에서나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며 특히 근대 제국주의시대에 이와 유사한 광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표현은 달라도 어쩌면 구한말 우리 왕궁 내에서 고종과 이토 히로부미 사이에 교환된 내용이었을지도 모른다. 투키디데스가 말한 대로 인간성이 변하지 않는 한 이것은 언제나 되풀이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투키디데스는 우리 인간에게 시대를 초월하는 무서운 진리를 경고했다. 투키디데스의 최대의 강점은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통찰력이었다.

6. 전쟁이야기와 비극을 인간의 운명에 대한 통찰로 승화시킨 그리스 고전
저자는 깊은 이해와 통찰력으로 서양정신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새롭게 읽는다. 그리스 고전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불멸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일리아스는 전쟁이야기로 꾸며져 있지만 사실은 전쟁의 비참함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깨우침을 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호메로스의 시는 전쟁의 노래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전쟁을 예찬하거나 전사의 무용을 찬미하는 전송가戰頌歌는 아니다. 오히려 전쟁의 재앙과 비참함을 얘기하고 죽음을 애통하는 조가와 같은 울림이 있다.
호메로스는 영웅 개개인의 특수성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 인의 이상적인 전형, 나아가서는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이며 근본적인 심성과 이상적인 양태를 그린다. 인물의 묘사에서도 그러하다. 그는 헬레네나 나우시카의 아름다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트로이의 노인들이 헬레네를 보고“여신과 같다.”고 말할 뿐이며, 오디세우스는 나우시카에 대해서 당신은 델로스 섬에서 본 어린 야자나무와 같다는 말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억제된 묘사 때문에 두 여인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상상대로의 미녀, 이상적인 미인이 된다. 그는 개인을 그리면서 보편적인 인간상을 투영한 것이다.
호메로스의 인간에게는 민족의 차이, 문명의 차이가 없다. 서로 싸우는 아카이아 인과 트로이 인은 같은 언어, 같은 습관을 가지며 사회풍습도 같고 같은 신을 모신다. 신들도 양쪽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시는 전쟁의 시이지만 국가 간의, 민족 간의 전쟁이 아니며, 싸움은 격렬하나 양자 사이에는 증오가 없다. 트로이 측이나 아카이아 측이나 다 같은 영웅이며 다 같이 죽어야 하는 인간으로 양자 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또한 그리스 비극은 말할 것도 없이 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며 신 없이는 보편성이 없는 한낱 개별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현대는 신이 없는 시대이다. 따라서 비극과 유사한 사건도 내면적 양식이 없는 고립적인 범죄로만 존재한다. 아가멤논의 이야기도 현대에서는 출정 중인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운 여자의 치정살인극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신이 연관됨으로써 그것은 심오한 생의 근원적 문제로 승화된다. 결과적으로 비극은 신과 인간의 관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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