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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들어가는 말 1장 찰스 1세의 재판과 최후의 심판 2장 루이 16세의 재판과 공포정치 3장 1차 세계대전 후의 전쟁책임론 4장 피고석에 앉은 패전, 리옹 재판 5장 숙청으로서의 정의, 페탱과 그의 고발자들 6장 재판정에 선 반역자, 비드쿤 크비슬링 7장 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하다, 뉘른베르크 재판 8장 정당성을 조작하다, 안토네스쿠 재판 9장 체코슬로바키아의 인종청소와 민족말살(1945~1947) 10장 자유를 찾은 헝가리 시민의 정의 11장 처형에서 사면과 특사까지, 불가리아와 핀란드 그리고 그리스 전범재판 12장 음모로서의 정치, 도쿄 재판 13장 그리스의 대령들, 보카사 황제, 아르헨티나의 장군들(1975~2007) 14장 돌아온 혁명,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재판 15장 재판정에 선 국가, 모아비트의 에리히 호네커 16장 재판 없는 유죄판결, 장 캄반다 17장 코소보와 새로운 세계 질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18장 체제 교체와 사담 후세인 재판 맺는 말 옮긴이 후기 주 찾아보기 |
John Laug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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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검찰은 종종 언론에 ‘거물급 증인’ 또는 ‘핵심 내부자’가 출석할 것이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었다. 라토미르 타니치는 밀로셰비치의 최측근 고문으로 알려졌지만, 반대신문에서 둘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르비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타니치는 새로운 내무부 장관 미하일로비치로부터 사기꾼이자 몽상가이자 거짓말쟁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위증에 대해 어떠한 조사도 기소도 받지 않았다. 재판관은 오히려 검찰 측 증인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밀로셰비치의 말을 수시로 중단시킴으로써 조직적으로 검찰을 도왔다.
다른 ‘내부자’들도 검찰을 곤란하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선 라도미르 마르코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비밀경찰 총수는 밀로셰비치에 대한 기소가 완전한 허구라고 증언했다. 그는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를 축출하려는 계획은 없었으며, 모든 것은 시민을 보호하고 KLA와의 싸움에서 전쟁법을 존중하기 위해 실행되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검찰 측 증인인 알렉산더 바실례비치도 마찬가지의 증언을 했다. 밀로셰비치의 전임자로서 유고 대통령을 지낸 조란 릴리치 역시 검찰 측 증인이었음에도 밀로셰비치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검찰에 크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유고 대통령을 지낸 세르비아계 보리사브 요비치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그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내전에서 폭력을 불러온 데 대해 분리주의 국가들을 비난했던 밀로셰비치의 역할에 특히 주목하며, 당시(1991) 벌어진 사건에 대해 밀로셰비치가 끼친 영향은 미미했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검찰 측 증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증언 역시 검찰 측 주장과는 모든 면에서 상충되었다. 이상하게도 제프리 나이스 검사는 요비치가 (수정된)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기소장 양쪽 모두에 음모자로서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었음에도, 요비치의 증언이 이어지는 동안 ‘공동범죄계획’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그는 기소를 당하지 않았다. --- pp.374-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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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패자에게 강요한 정치 재판의 역사
“편의가 되어버린 정의는 결코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미디어법에 대한 헌재의 판결을 두고 ‘정치적 재판’이라며 난리다. 권력에 기댄 ‘사법적 정의’에 대해 힐난에 가까운 성토뿐 아니라 헌재의 기능을 두고도 폐지하라는 비난이 거세다. 미디어법이 갖는 기능(보수우익세력의 정권 연장을 위한 기능)은 차치하고서라도 집권세력에게 합법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법적 ‘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헌재마저 권력의 편에 섰다는 자괴감이 국민들 사이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입법 과정에서의 위법 사항을 적시했음에도 법을 인정함으로써 민주주의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법이 권력자에게 순순히 협력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정치권력의 힘에 따른 말도 안 되는 재판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현실은 지난 역사에서도 부단히 반복되어 왔다. 최근의 예로 걸프전 패배에 따라 전범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중세의 마녀 사냥처럼 ‘악의 화신’으로 그려졌고, 그의 죽음은 마치 ‘법의 심판’으로 정의가 승리한 모양새를 취했지만 그 역시 승자가 패자에게 강요한 정치 재판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나는 죄 없이 죽는다》(원제 《A History of Political Trials》)는 지난날 국가원수들을 국제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행위에 대해 절차적 정당성과 사법 정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승자의 위선과 불의를 통렬히 까발린다. 이 책은 영국의 왕 찰스 1세부터 사담 후세인까지 18개의 범주에서 행해진 국가원수들의 재판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주권자로서 행한 정치적 행위에 대해 새로운 주권자가 정적 제거의 목적과 지위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재판을 활용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또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재판소가 행한 재판의 목적처럼 오늘날 국제재판소가 연속성이 아닌 단절을 강요하는 ‘파괴의 재판’을 하고 있으며, 아울러 국가제도 자체를 강제로 변화시키고 있다며 비난한다. 이 책에 소개된 국가원수들 모두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원수에게 정치적 단죄를 가하는 법적 절차와 기소하기 위한 소급적 법률 행태들에 대해서는 과연 보편적 정의가 실현되었는지 그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가 이들의 변호인이 되어 철저하리만치 문헌을 조사해 찾아낸 변명(?)들은 기존의 역사책에서 기술한 승자의 입장이 아닌 패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항소 이유서’였으며, 재판 과정 역시 ‘공정’도 ‘정의’도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럼, 왜 이렇게 저자는 ‘정의’에 대해 집착했을까. 이 책을 옮긴 역자가 후기에 밝혔듯이 “정의가 편의가 되고 편의가 되어버린 정의는 결코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을 재판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이 가져온 오늘날의 국제재판소에 대해서도 “어떠한 정부의 일부분이 아니며 관할권의 대상이 되는 국가정부와도 명백히 구분된다”며 “심지어 사회계약의 고유한 속성으로 알려진 흥정의 측면을 충족시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국제재판소는 자신의 행위를 관할권 적용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귀속시키는 정치적 책임에 관한 어떠한 시스템에도 종속되지 않으며, 국가 입법부의 통제도 받지 않고, 정치문화나 국민 여론의 간접적인 지배도 받지 않”는 “3만 피트 상공에서 떨어지는 폭격”의 다름 아니라고 일갈한다. 도쿄 전범 재판과 페탱의 재판이 친일문제와 관련해 우리에겐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책 전반에 걸쳐 제기되는 주제의 문제로 한 번 더 생각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온다. 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에리히 호네커, 장 캄반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등 우리가 익히 알던 인물들이 어떻게 재판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지 저자의 꼼꼼하고 세세한 글쓰기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은 오늘 우리의 헌재 위상이 떨어지면서 ‘사법적 정의’에 대해 조금이나마 고민해볼 수 있는 유용한 텍스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