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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위한 변명
박홍규 저
우물이있는집 200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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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 top2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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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말

1. 노동자의 아들 (1913~1934)
2. 아나키스트 (1934~1942)
3. 이방인 (1942~1947)
4. 반항인 (1947~1954)
5. 알제리인 (1954~1960)

나오는 말
주석
카뮈 연보

저자 소개 1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 로스쿨, 노팅엄 대학, 프랑크푸르트 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 『인문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 로스쿨, 노팅엄 대학, 프랑크푸르트 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밀레니얼을 위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야기』,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내 친구 톨스토이』, 『불편한 인권』, 『인문학의 거짓말』, 『놈 촘스키』, 『아나키즘 이야기』 외 다수의 책을 집필했으며,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유한계급론』,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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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7쪽 | 366g | 153*224*20mm
ISBN13
9788989824152

출판사 리뷰

착한 식민주의자 카뮈

카뮈의 한계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 왔다.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은 “유럽인으로서의 카뮈는 자유의 이념에 대한 의무감을 느꼈지만, 알제리 문제를 다루는 카뮈는 그저 ‘정의’란 단어를 긁적거리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고 평했고, 사르트르는 카뮈의 철학서 『반항인』에 대해 ‘그저 당신의 철학적 무능함이나 드러내준 것’ ‘얼기설기 재탕으로 걸러져서 주어모은 지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특히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한 이유가 ‘우리 어머니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카뮈의 ‘궤변’은 지식인들과 알제리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이 대목은 어쨌든 카뮈의 명백한 한계이며 그 점이 우리나라 불문학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중대한 점이다.

그럼에도 왜 카뮈를 읽는가

그럼에도 카뮈를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의 삶과 문학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그의 소설의 표제이기도 한 ‘반항인’적 태도이다. 그에게는 프랑스도, 알제리도, 그 어느 곳도 자신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카뮈는 전형적인 식민주의자는 아니다. 여기에 카뮈 사상의 핵심인 ‘반국가-반권력’의 사상이 있는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이 지닌 가치는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국가나 조국, 법과 재판, 자본주의나 기독교 도덕이라는 유럽 근대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부정적 도발이다. 말하자면 『이방인』이라는 제목처럼 남의 이야기를 듣듯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읽어내지 않는 한 카뮈의 『이방인』은 아무런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도 실존적 저항은 흔적은 역력하다.

반항인으로서의 카뮈

카뮈의 인간적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실천적 반항인이라는 데 있다. 카뮈는 평생에 걸쳐 하게 될 연극을 공산당에서 시작했다. 프랑스 인민전선의 지원하에 카뮈가 한 연극은 대체로 성공적이었고, 그 수익금은 모두 구호기금으로 쓰였다. 카뮈에게 연극의 공동체는 평생 아나키스트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스승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을 하지만 카뮈는 곧 당의 교조성에 회의를 느낀다. 그는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어리석은 일들이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37년에 카뮈는 당시 정치현실을 꼬집으며 “여러 해 전부터 어떤 정치연설을 듣거나 우리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쓴 글을 읽을 때면 나는 인간적인 소리가 담긴 것이라곤 전혀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오싹해지곤 한다. 항상 똑같은 단어로 똑같은 거짓말들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뮈의 정치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연대그룹> 활동이었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선구라고 할 수 있는 이 조직은 카뮈의 도움에 의해 1948년 가을에 창립되었다.

사르트르와 카뮈

카뮈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과 친하게 지냈다. 카뮈는 그들에게 사교, 웃음, 예의의 모범이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특히 카뮈의 편안한 태도를 좋아했다. “카뮈가 여자에게 말을 걸 때나, 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춤을 능숙하게 추면서 여자들의 허리를 잡고 조일 때면, 거기에서 느껴지는 지중해 남성의 위풍당당함에 감탄했다.”

하지만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르트르와는 달리 카뮈는 항상 고독했다. 그리고 그들은 뭐니뭐니 해도 출신성분이 달랐다. 가난한 어머니 밑에서 불우하게 자란 카뮈와는 달리 프랑스 본토의 지식인들은 대개 부유한 집안사람들이었다.

카뮈와 사르트르는 ‘현안’에 대해 언제나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식민지 알제리에 대해서도. 그러나 카뮈와 사르트르 논쟁에서 주의해야 하는 점은 그 정치사상의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누구나 자본주의국가의 식민지주의나 소련의 전체주의를 함께 비판했으며, 미국과 소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 유럽을 희망한 점은 같았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자본주의의 폐해를 시정하는 수단으로서 사회주의를 긍정했고,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그러한 이념에 근거한 사회참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장하는 공산당에 회수될 수 없고, 독립한 존재일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인간 카뮈의 매력

카뮈는 토드가 말한대로 ‘좌파의 이단이라는 불명예도 받아들인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카뮈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타고난 정직성에 기대를 걸었다. 극도로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가난을 불행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아주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생각했던 사람이다. 오히려 그는 권력과 명성에 대한 근시안적이고 맹목적인 탐욕을 갖는 전체주의적인 지식인들이 너무 많다고 보았으며,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구분했고, 마르크스도 성경도 신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자유로움은 연애에도 나타났다. 한마디로 바람둥이였던 카뮈에게는 수많은 여인이 주변에 끊이지 않았다. 생애 마지막에 와서도 그는 네 여인을 함께 사랑했다. 아내, 마리아, 카트린, 미였다. 험프리 보가트를 좋아하고 그처럼 담배를 피워물고 다니며, 남녀간의 섹스를 가장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여 도덕적 굴레로부터 늘 탈출하고 싶어했다. 이것이 그를 아나키스트로 만든 동인(動因)이다. 까뮈는 종교와 정치와 자본으로 타락한 인간을 구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자고 주장한 사상가였다. 그가 세상을 부조리한 것으로 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그 극복의 방편으로서 종교는 물론 자살까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0세기 후반기를 산 문인 가운데 그는 거의 유일하게 평생을 두고 스페인의 프랑코정권에 반대한 사람이었다. 아니 정권에 반대했다기 보다는 차이를 짓밟는 전체주의, 즉 정부 자체를 비판했던 것이다.

1세기 우리에게 카뮈는 무엇인가

20세기는 그 이전의 진보, 계몽, 인간해방이라고 하는 고상한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1백년 간 그것을 상실해왔다. 우리가 카뮈를 비롯한 20세기 문학가나 사상가를 읽는 이유는 그들이 그러한 상실의 증언자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살아갈 21세기에 그러한 상실을 되풀이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이다.

20세기 말에 카뮈가 이미 20세기 중반에 거부한 공산주의는 끝이 났다. 그래서 후쿠야마를 비롯한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이성의 승리와 역사의 종언을 주장하고 다시 서양의 세기가 도래함을 예언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구가하는 자유주의를 위한 새로운 이론을 구축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 상황에서 카뮈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아무런 위안 없는 정치이론을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점이다. 즉 근대 이데올로기가 전형적으로 옹호하고자 한 어떤 보장이 없는 정치이론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런 정치이론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한나 아렌트이지만, 어쩌면 카뮈는 그녀의 선구자였다.

카뮈나 아렌트는 포스트모더니스트와 마찬가지로 과학과 이성이 인간을 강화시켜주는 아무 문제없는 도구라고 본 계몽주의의 믿음을 비판하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조건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인권의 정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정치활동과 조직의 보다 자율적이고 아나키적인 형태를 이상형으로 주장했다.
“알베르 카뮈의 삶과 문학에 대한 재해석”
카뮈 탄생 90주년

카뮈는 전세계적으로 호평받는 소설가이며 희곡작가, 연출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의 전 작품이 모두 소개되었으며, 수많은 불문학자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그의 반항적 기질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곤 했으며, ‘부조리’라는 말은 곧 카뮈의 문학과 카뮈 자신을 말하는 동의어처럼 쓰였다.

그런데 카뮈 탄생 90주년을 맞는 올해, 저자는 카뮈가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은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사회주의자이며,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카뮈의 작품은 피카소의 작품 <조선의 학살>이 금지당하던 시절에도 당당히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었는데, 그 이유가 카뮈의 삶은 가려지고 문학에 대한 환상을 불문학자들이 심어준 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카뮈의 문학과 삶에 대한 재평가가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카뮈의 대표작인 『이방인』의 배경을 식민지 조선으로 옮겨놓으면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즉,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 청년이 어느날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애인과 정사를 나누다가 해변에 나가 햇볕이 따갑다는 이유로 조선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작품에는 그 정당성이나 식민지의 삶 등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카뮈의 작품을 해설하는 어떤 것에서도 이러한 ‘현실’에 대한 평가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과 동양의 옥시덴탈리즘을 지적한다. 서양우월주의와 서양을 무조건 숭상하는 옥시덴탈리즘의 절묘한 결합 때문에 카뮈는 우리나라에서 과대포장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카뮈는 그에 사로잡힌 수많은 불문학자들이 과대평가한 수혜자인 것이다.

왜곡된 카뮈의 삶과 문학

저자 박홍규에 따르면 카뮈는 평생 사회주의자의 입장을 견지한 사람이다. 한때 스승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했으며, 스페인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며 스페인의 아나키스트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카뮈는 정작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작가인 사르트르나 보부아르 등에게서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소련을 찬양하고 있을 때 카뮈는 홀로 소련공산당을 비판했고, 모든 진보주의자들이 카뮈가 살고 있는 알제리의 독립을 외치고 있을 때 역시 홀로 독립을 반대했다. 이 계기로 많은 동료들이 카뮈의 곁을 떠났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대목, 즉 사회주의자인 카뮈가 프랑스 식민지의 독립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택한 사실은 카뮈의 다중적인 인간관, 세계관을 드러내준다. 이 점이 카뮈의 문학과 삶을 이해하는 데 장애를 주는 것인데, 저자는 그것이 카뮈의 아나키스트적 성격이라고 평가한다.

카뮈는 아니키스트이다?

카뮈의 삶과 문학은 수많은 불문학자들에 의해서 ‘자의식’ ‘아무 생각 없는 반항아’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카뮈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는 영국과 북유럽 노동조합의 자율권을 인정한 제3의 사회주의를 지지한 사람이다. 그는 생산수단과 분배의 공유화가 상정하는 장점을 인정하면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자유기업을 넘는 제3의 길을 모색했다. 특히 카뮈는 스페인 아나키스트와 같은 변두리 저항인들이 보여준, 인간의 고결함을 지키는 명예를 존중했다.

카뮈는 신앙이나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자들을 옹호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의 아나키스트들과 친하게 지냈다. 또한 카뮈의 아나키스트적 면모는 알제리 독립을 반대한 이유에서도 드러난다. 알제리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도 그가 주장한 것은 알제리 주민의 자유와 자치라고 하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 카뮈는 프랑스정부측이 주장하는 식민지배의 존속도 부정하고, 알제리 원주민이 주장하는 알제리 국가독립도 부정했다. 문제는 그가 알제리에 사는 소수 프랑스인의 잔류를 전제로 한 공동체의 자치를 희망한 점인데, 이는 식민지 지배의 청산이라고 하는 점에서 문제가 된 것이었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아나키즘이 국가가 아닌 사회를 주장하는 한 카뮈의 사상에도 경청할만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식민지 문제에 관한 한 그러한 자치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자유를 압살한 식민지 침략세력은 자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카뮈의 아나키즘은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반국가-반권력이라는 큰 틀에서 유효하다. 자유로운 공동체를 추구한 그의 삶과 문학은 어느 한쪽 편을 지지하려는 이분법론자들에게 새로운 사상적 면을 환기시킨다.
리뷰 총점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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