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Stefan Zweig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상품
|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선량하고 마음 속 깊이 뜨거운 감정을 지니고 계십니다. 당신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아끼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너그러움은 매우 특이합니다. 그것은 애써 붙잡으려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열려 있으며, 그만큼이나 크고 무한합니다.
반면에 당신의 너그러움은 - 이런 말을 용서하세요- 어떤 타성에 젖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의 희생으로만 촉발되고, 또 그럴 때만 보상을 받는 너그러움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부르고 당신에게 청하면, 당신은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당신은 부끄러운 명예심, 아니면 유약함 때문에 도움을 주는 것이지 자발적인 호의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은 궁핍과 고난에 빠진 사람들보다는 행복한 친구들을 더 좋아합니다. 당신같은 분들, 어느 누구보다도 너그러운 분들이 사실은 가장 청하기 까다로운 분들입니다. 제가 어린애였던 그 시절, 저는 열쇠 구멍을 통해 어느 거지가 당신 방의 초인종을 누르고 당신께 무엇인가 받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거지가 청하기도 전에 그에게 얼른 무엇인가를 주셨습니다. 그의 청을 듣지도 않고 그야말로 재빨리 무엇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그렇게 하신 것은 그에게서 일종의 불안과 초조를 느끼고 그가 어서 빨리 떠나 주기만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그의 눈을 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같은 불안과 수줍음, 도움을 주면서도 감사의 마음을 받기를 두려워하던 당신의 태도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바로 당신의 이런 면을 간파했기에 저는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저는 잘 압니다. 당신은 그 당시 그 아이가 당신의 아이라는 확증이 없어도 제 말에 동의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저를 위로해 주는 것은 물론, 돈을, 그것도 상당히 많은 돈을 주셨을 겁니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초조감, 불편한 심정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하셨을 겁니다. 심지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해결하라고 권했을 지도 모릅니다. --- pp 83~84 |
|
이 책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는 188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유태인 혈통을 지니고 태어났다. 일찍부터 보들레르와 베를렌느의 시에 심취한 츠바이크는 20세에 상징주의 내지는 표현주의의 영향이 뚜렷이 각인된 처녀시집 <은빛 현silerne Saiten >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시 외에도 소설과 전기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 Brief einer Unbekannten』라든가 『감정의 혼란』, 『환상의 밤』, 등의 소설과 『마리 앙트와네트』를 비롯한 『세계의 건조자(역서명 : 천재와 광기)』 등의 전기는 그의 부드럽고도 열정적인 문학 세계를 대변한다. 특히 섬세한 시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이트적 성애의 묘사는 그를 동시대의 산문 작가 가운데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했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대중적인 인기가 비평가들 사이에서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에로티시즘적 경향을 통하여 독특하게 표현되는 그의 예술성의 진수는 토마스 만 같은 거장에 의해 ‘사랑과 자유 정신’의 분출로서 높이 평가받았다. 본서 『모르는 여인의 편지』에서 우리는 이같은 그의 문학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장르의 특성을 보면 이 작품은 한국에서는 대략 중편 소설에 해당하는 ‘노벨레’라는 범주에 속한다. 그는 이 장르의 분야에서 시와 장편 소설의 절묘한 배합을 시도하면서 노벨레의 본래적 성격인 아주 특이하고 괴상한 것, 일상성에서 벗어나는 특이하고 흥미로운 것을 주관적 감흥에 따라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의 소재라든가 주인공의 성격,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건의 빠른 전개는 바로 노벨레적인 특성에서 나오며,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분석하는 방법은 프로이트식 영혼의 해부학에 의거한다. 말하자면 특수한 인간의 별난 이야기가 그의 작품 전면에 부각되는데, 어느 날 비밀스런 편지를 보내는 이 소설의 여주인공도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특이한 개성과 행위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그녀는 문틈이나 열쇠 구멍, 창문을 통해 한 남자의 행동을 남몰래 관찰하고, 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기나긴 세월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도 그녀가 남자의 기억 속에서 전혀 없는 낯선 여인, 망각의 존재라는 것이 츠바이크가 예리하게 잘라내는 인간 심리의 단면이다. 한 사람의 절대적 관심과 절대적 사랑이 타인이라는 대상으로부터는 절대적 무관심으로 되돌아오는 기묘한 인간 관계는 우리 모두가 되새겨볼 만한 사랑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츠바이크의 소설에서 평범한 삶을 거부하는 병적 존재라든가 괴벽성의 인간, 성적 충동에서 유발된 비극이 흥미로운 인간 유희를 연출하면서도, 결국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을 넘어서 ‘사랑과 자유 정신’으로 승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 자신은 이에 대해 “관계와 관계를 헤아리는 것이 내 핏속까지 자극한다. 특수한 인간들은 그들의 순수한 현존을 통해 내 인식 욕구에 불을 지핀다.”라고 말한다. 오로지 사랑과 자유만을 위해 예술가적 삶을 살아간 츠바이크는 죽음도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한다. 독일 파시즘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와 영국으로 이주한 유태인 계열의 이 작가는 1942년 브라질에서 부인과 동반 자살을 함으로써 자유롭고 ‘영원한 안식처’를 찾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의 친구와 동료들에게 남긴 짤막한 작별 인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내게 불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