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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늘 아닌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 구효서(소설가)
마지막 남은 시간 / 김지룡(문화 평론가)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 김영수(출판 평론가) 창조주와의 대화 “미션4320” / 박기현(인터넷 서점 리브로 본부장) 금지선 앞에서 멈춰서다 / 신현림(시인, 사진작가) 이승의 마지막인 72시간 동안 못다 한 사부곡을 부르고 싶다 / 이경기(영화 칼럼니스트) 어리석은 자는 책장을 함부로 넘기고, 현명한 자는 열심히 읽는다 / 이기현(현문가족 대표) 종말이란 말은 없다 / 이재운(소설가) 한여름 밤의 판타지 / 이평재(소설가) 산, 소설, 골프채널 / 임동헌(소설가) 노란진달래 / 원재훈(시인) 비양도에서 보낸 마지막 시간 / 장우현(경희대 한약학과 교수) 집 / 장석주(시인, 문학 평론가) 예정된 마지막 시간, 사흘 / 정관용(방송인, 정치 평론가) 울음을 찾아가는 숲 속 / 정우영(시인) 그러니까 나는 산벚나무가 된다 / 정희성(시인) 마지막 3일 / 황필호(철학자, 작가) 지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행 / 현길언(소설가, 한양대학교 교수) |
申鉉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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具孝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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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란 비록 24시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해도 마치 영원을 초월하는 듯이 관심을 가질 가치가 있다. 만약 우리가 하루밖에 살 수 없고, 그 다음에는 백지 이외에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해도,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우리가 영혼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황필호 그렇다. 사흘 중에 이틀은 여행하는 일로 보낸다. 산을 오르는 것도, 내 글을 읽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다. 아니 살아 있는 시간동안의 모든 행위가 여행이다. 맞다. 여행이 모든 삶의 근간을 이룬다는 말은 온당하다. 내 글속에 내가 있고, 내가 가고 싶었던 정신의 착륙지가 거기 있다. --- 임동헌 살아가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죽음도 생노병사 순환 현상중의 하나로 이해해온 동양의 선인들에게는 그다지 복잡한 개념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냥 무더운 여름에 옷을 벗거나 추운 겨울에 옷을 덧입는 것처럼 몸도 벗기도 하고 입기도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 이재운 다 그만두자. 그냥 떠나자. 무조건 떠나자. 가급적 아무도 없는 곳,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으로 가자. 술 한 병 들고, 그 누구도 날 볼 수 없는 곳이라면 아무 데라도 가자. --- 정관용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꽤나 많은 집들과 만나고 헤어졌지요. 내가 거쳐온 그 하나하나의 집들은 그 자체로 삶의 흔적들이고, 개인의 역사겠지요. 대부분의 그 집들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집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노병사의 업과 저마다의 타고난 운명을 그 내면에 갖고 있겠지요. 집들은 다만 저마다 사진처럼 뚜렷하게 기억의 현존으로 남아 있지요. 집은 거기 사는 사람의 품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니 집은 곧 사람이지요. --- 장석주 --- 뒤표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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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제리의 지진으로 인해 수 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괴질 사스도 사라지질 않고 있다. 이라크 전쟁으로 무수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으며, 대구 지하철 화재로 죽은 사람들 또한 잊지 못할 우리들의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없는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다. 하지만 요즈음 같이 불의에 의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죽음은 이제 나이순도 아니고, 병에 걸려야만 맞이하는 하는 것도 아니다. 지하철을 탔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게 될 줄 누가 알았으며, 전쟁과는 무관한 아이들이 미군의 폭격을 받으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또한 잘살아보겠다고 이국땅에서 열심히 공부하러 간 학생들이 사스라는 공포에 휩싸일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과 공생을 하며 살아간다. 죽음은 바로 우리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간된 <나에게 남은 生이 3일 밖에 없다면> (생각하는 백성)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 시대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제목에서 보듯이 만약에 나에게 살날이 3일 밖에 없다면, 그 3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죽음을 앞에 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 정치평론가인 정관용은 이 책에서 ‘다 그만두자. 그냥 떠나자. 무조건 떠나자. 가급적 아무도 없는 곳.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으로 가자. 술 한 병 들고, 그 누구도 날 볼 수 없는 곳이라면 아무데라도 가자.’ 이렇게 죽음을 가족들에게 마저 보여주기 싫어 무작정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구효서(소설가)는 ‘오늘은 오늘 아닌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글에서 일상적인 삶 속에서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들과 함께 아파트 옆 상추밭에서 김을 매다가 지나가는 아낙에게 다 자라면 뽑아다 드시라고 한다. 경비 아저씨한테도 마찬가지다. 끝내 다 김을 매지 못하고 쓰러진다. 이렇듯 일상에서 평범하게 맞이하고픈 죽음이 있는 반면, 임동헌(소설가)은 더 구체적이다. ‘그렇다. 사흘 중에 이틀은 여행하는 일로 보낸다. 산을 오르는 것도, 내 글을 읽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다. 아니, 살아 있는 시간동안의 모든 행위가 여행이다. 맞다. 여행이 모든 삶의 근간을 이룬다는 말은 온당하다. 내 글 속에 내가 있고, 내가 가고 싶었던 정신의 착륙지가 거기에 있다.’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죽음 또한 여행을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승의 마지막인 72시간 동안 못다 한 思夫曲을 부르고 싶다 어느 날 붓다가 싯다르타 왕자였을 때이다. 화려한 궁궐에 갇혀 살던 그는 몇 번이나 궁궐에서 빠져나와 마차를 타고 궁궐 부근을 산책하곤 했다. 그때 그는 궁궐 밖에서 어떤 남자와 마주치게 된다. 병들고 이가 빠지고 주름진 얼굴에 백발이 성성한 그 남자는 꼬부라진 허리를 지팡이에 지탱하고 떨리는 손을 내밀며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여 댄다. 깜짝 놀란 왕자에게 마부는 사람이 늙어 노인이 되면 다 그런다고 설명해준다. 그러자 싯다르타 왕자는 이렇게 외친다. “오, 불행이로다. 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은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만심에 취하여 늙음을 보지 못하는구나.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놀이며 즐거움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의 내 안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도다.” 죽음이 만일 주민등록번호 순서대로 온다면 우리는 나름대로 죽음을 맞이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죽음을 맞이하는 지침서 같은 것도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무차별적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맞이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죽음 자체를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좀더 효율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지 않듯, 죽음 역시 우리 곁에 있음을 인정하고, 하루하루를 마치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최선을 다하며 살자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