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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저자 서문 - 도대체 왜 카프카인가? 1. 배척된 존재, 카프카의 어두운 성장기 2. 권력의 세계를'쓰는 인간'―고통스러웠던 십대 3. '문학이란 민중의 문제다'― 갈등에 찬 대학 시절 4. 힘없는 이들을 위한 직장생활 5. 창작의 불을 지핀 지독한 사랑 6. 참혹한 전쟁 속 관찰자, 카프카의 도전과 저항 7. 절대자도, 지배권력도 없는 곳을 향한 혁명 나오는 말 자유를 꿈꾼 아나키스트 작가, 카프카 각주 / 연보 |
朴洪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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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곳에 우리는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이곳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성이 있지요. 차가운 자만감으로는 한치의 오성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들은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서 죽입니다. 그러면서도 동물의 썩은 시체는 경멸하지요.
(『변신』 229쪽.) 재칼은 나에게 원하는 것은 '순수함' 뿐이라고 말하며, 가위로 아랍인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아랍인들은 재칼에게 썩은 낙타 고기를 던져준다. 재칼은 아랍인도, 증오심도 잊고 고기에 달려든다. 아랍인이 채직질을 하자 재칼들은 멀리 도망친다. 이 소설에 대해서 재칼은 아들, 예술가, 혁명가, 유태인을 상징하다고 보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이러한 해석은 아랍인을 아버지, 세속인, 지배자, 유럽인으로 대응시키리라. --- p.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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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왜 결혼을 거부하였는가?
카프카는 직장생활을 겸하면서 철저히 집필계획을 세우고, 많은 독서와 강연회와 극장에 자주 출입하였다. 특히 크라우스가 유태인 작가들의 독일어에 대한 태도를 비판한 강연회를 듣고, 유태인에 의해 독일어가 파괴된 것이 아니라 독일어를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유태인 작가들의 비극적 딜레마에 주목하기도 했다. 이제 카프카는 자신이 느낀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글쓰기에는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했다. 그것이 5년 동안 5백 통이 넘는 편지로 묶을 수 있는 여자, 펠리체였다. 카프카가 사랑한 여인은 많았지만, 카프카 생에 펠리체를 빼놓을 수는 없다. 두 번이나 약혼을 하였으나 결혼은 하지 못했던 그들. 왜 카프카는 펠리체와의 결혼을 거부하였는가? 카프카는 펠리체와 사귀는 동안 하루 2,3통의 편지를 쓴다. 그러나 그것은 달콤한 연애시가 아니라, 끝없는 자기폭로, 세밀한 사회관찰, 사회비판 등을 써서보낸다. 카프카는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는 자신과의 대화였던 것이다. 반면 펠리체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 카프카를 어디까지나 장래 남편 후보감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펠리체는 카프카가 가장 혐오한 부르주아 여성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즉 카프카는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활의 거부라고 생각했다. 또한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결혼이란 자아의 완전한 포기를 의미했고, 작은 변신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카프카는 결혼이 상징하는 권력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카프카에게 결혼은 단지 '구역질나는 관습’이었을 뿐이었다. 권력에 덫에 걸린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카프카가 말한 '성’의 세계는 악의 세계이다. 성의 주인은 권력자들이다. 권력자들은 국가의 기능과 개인의 운명에 대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개인의 한계를 설정하고, 금지하고, 굴욕을 주며, 속이고 통제한다. 민중은 마냥 권력에 호소하고, 간청하며, 희망하고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민중은 언제나 거절당하고 허위의 약속만 다짐받는다. 교묘하게 움직이는 권력 조직은 잔인하고, 거만하고, 변덕스럽고 추악하다. 왜 인간은 인간을 억압하고 괴롭히는가?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나는 포기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악의 지배를 확신하나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 카프카는 권력을 향해 저항의 외침을 그치지 않는다. 카프카의 저항적 외침이 갈망하는 궁극적 목표는 이렇다. 5백 명 미혼 남자로 구성된 노동공동체 일원들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1일 4-5시간의 노동과 사회보장제도를 인정받는다. 양심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카프카의 새로운 노동공동체는 임금은 동등하며 착취나 불평등은 원천적으로 없다. 카프카가 꿈꾸는 세상은 그리 대단한 곳이 아니다. 어른은 아이에 군림하지 않고 아이를 훈련하는 학교도 없다. 절대자도 지배권력도 없다. 카프카는 인간을 공동체에서 내모는 지적 노동 대신 순수하고 명료한 자급 자족적인 육체노동으로 인간을 인간에게 인도하는 공동체를 열망한다. 카프카의 죽음과 함께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은 오랫동안 고향에서 추방되었다. 현실세계의 추악한 면을 매우 명석하게 투시했기에 세계는 카프카의 명석함을 참을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우리 앞에 건재하게 버티고 있다. 카프카가 열망한 꿈은 우리가 꼭 이루어야 할 꿈을 보여준 것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덫이 존재하지 않는 그 날을 향한 꿈을.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내면의 혁명가 카프카 카프카는 더 이상 ‘불안과 고독, 절망과 소외의 작가’가 아니다. 카프카는 권력지배의 문제를 철저히 해부하여 세상을 명석하게 투시한 작가이다. 카프카는 사회주의에 공감했으면서도 사회주의자들을 믿지 않았다. 혁명이 일어나도 결국 국가 관료제에 지배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카프카의 모든 작품은 거대한 국가에 짓눌린 인간의 고뇌를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카프카는 인간을 짓누르고 있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무계급 사회의 도래와 인간해방을 주장한 아나키스트 작가이다. 다시 말한다. 카프카는 모든 권력을 거부한 아나키스트였으며, 평생을 권력을 버리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카프카는 그냥 불안하고 고독해서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사람, 작품이 아니다. 카프카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서 소외되지 않는 삶으로 이끄는 새로운 공동체를 원했다. 또한 카프카는 인간을 공동사회에서 몰아내는 지적 노동을 그만두고 인간을 인간에게로 인도하는 수공업자나 농부가 되어 팔레스타인으로 갈 꿈을 꾸었다. 즉 카프카는 진정한 자유인을 꿈꾸었던 내면의 혁명가였다. 권력사회를 당당히 비판한 카프카는 지금도 여전히 권력사회에서 우리가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카프카의 눈은 현미경처럼 밝다. 그래서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시대, 우리세계의 병균을 발견하고 알려준다. 카프카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니 읽어야 하는 그런 작가가 아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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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진정한 자유를 얻은 아나키스트가 되기까지
카프카가 다닌 김나지움은 프라하에서 소위 일류학교였다. 당시 국가는 국립이든 사립이든 조직적인 획일성을 요구했고, 모든 교육 분야를 세세하게 간여했다. 따라서 학교는 카프카에게 또 다른 권력의 덫으로 작용한다. 학생의 창의성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체벌을 포함한 엄격한 규율과 암기식 교육은 카프카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으리라. 그러나 김나지움 시절, 카프카는 외적으로 내성적이며 순종적이고, 어른 같은 아이로 변신해 내면의 휘몰아치는 분노를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카프카는 계속되는 이중생활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구멍을 찾아야했다. 결국 선택한 탈출구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카프카는 왕성한 책읽기를 통해 스피노자, 괴테, 클라이스트, 키에르케고르, 다윈, 니체, 톨스토이, 크로포트킨 등의 정신적 스승을 만나게 된다. 카프카가 아나키즘에 빠질 수 있었던 것도 책으로 만난 정신적 스승들 덕분이다. 열 다섯 살의 카프카가 살던 반유태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는 개혁의 바람을 타고 사회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계급, 국적, 민족, 인종, 종교에 따른 모든 차별을 철폐한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십대의 카프카는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선 사회주의에 평생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카프카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인간소외가 자본주의 사회 이상으로 심각한 것을 알게되었다. 카프카는 완벽하지 않은 사회주의 이론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기에 비판적 관찰자로 거리를 둔다. 카프카가 당시 위험한 사상으로 여겨진 사회주의자였다는 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카프카 이미지인 병적인 환상가, 고독한 몽상가라는 고정 관념을 충분히 깨뜨리게 한다. 도리어 카프카는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였고, 에너지에 넘치는 공격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후 1911년경 카프카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혼자서 여러 정치집회에 참석해 정치지도자들의 연설을 들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회주의자였던 카프카는 바쿠닌, 벨린스키, 헤르첸, 크로포트킨 등의 아나키스트 저서를 접하게 된다. 사회주의자 카프카는 혁명가나 이론가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막연히 거부하는 반자본주의적 낭만으로 사회주의를 동경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카프카는 아나키즘의 반권력주의자에 속한다. 비판적 관찰자, 카프카의 소설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계층화된 관료사회가 지닌 잔인성을 절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나키즘적이다. 소설 속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투쟁을 드러내거나 사회주의 사회의 무계급적 이상을 그리지 않는다. 단지 카프카는 평생 혐오한 국가와 정부, 관료적 쁘띠 부르주아를 고발하고 무계급 사회의 인간 해방과 권력 없는 공동체를 꿈꿨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상징하는 권력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자본주의와 엮이는 결혼은 하나의 '구역질나는 관습’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카프카는 권력의 지배를 벗어난 완전한 자유를 원했다. 어떤 체제나 권력지배의 문제를 철저하게 해부한 반(反)권력주의자, 카프카는 진정한 자유를 꿈꾼 아나키스트 작가였던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사의 문제라기 보다 민중의 문제이다'(1911년12월25일 카프카의 일기 중에서) 19세기 말 무너져 가는 제국 오스트리아에서 등장한 슈니츨러, 무질, 브로흐,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말러, 쇤베르크, 클림트, 쉴레, 코코쉬카. 이들 모두 유럽 예술의 중심선상의 반항아였으며, 당시 썩어빠진 정치를 불신한 격렬한 회의주의자들이었다. 이들처럼 세상을 비판적으로 관찰하던 대학생 카프카는 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사랑도 했다. 카프카가 살던 프라하에서 활동하던 독일계 유태인 예술가와 문인들은 두 개의 거대 세력(독일인과 체코인)과 벌이는 권력투쟁에서 고립된 소수의 무력한 죄수였다. 프라하 문학을 지배한 독일계 유태인 작가들은 하나같이 보수적이고 독일을 숭배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를 답답히 여긴 젊은 문인들은 랭보, 베를렌느, 보들레르, E.A.포 등의 작가에 심취하게 된다. 화려한 수식, 전율적인 이상성욕, 센티멘탈리즘 등으로 뒤범벅된 문체 파괴의 현상은 언어만이 아니라 작가들의 의식마저 더러워지게 했다. 그러나 카프카는 예외였다. 카프카는 이들과는 달리 다양한 삶의 태도를 반영한 인물들을 통해 간결하고 냉정한 문장을 쓴 리얼리즘 소설가로 거듭난다. 이는 카프카가 기성의 것에서 영향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현실을 냉정히 비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카프카가 추구한 문학은 독자적인 동시에 민중을 쓴다. 즉 카프카의 문학은 정치성을 가지고, 집합적이며, 혁명적인 가치나 의미를 지닌 ‘소수적인 문학’(들뢰즈와 가타리가 카프카 문학을 이렇게 구분하였다)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카프카는 권력에 억압받는 모든 민중,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하는 문학을 쓰고자 했다. 카프카가 얼마나 현실을 뚫어지게 관찰하는 문학을 쓰고 싶어했는지는 절친한 친구 폴라크에게 보낸 편지글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자네 말대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도록? 맙소사. 책을 읽어 행복할 수 있다면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책이라면 아쉬운 대로 우리 자신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해주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이어야만 한다. 카프카가 짝사랑한 사람들 길을 가던 소년이 지나가던 거지를 보았다. 소년의 주머니에는 20헬러라는 큰 액수의 돈이 들어있었다. 무언가를 사러 나왔던 소년은 그 돈을 거지에게 주려한다. 그러나 그 돈은 소년에게나 거지에게 매우 큰돈이었다. 소년은 그 돈을 10크로이저 짜리 동전 열 개로 바꾸어 거지가 자신을 같은 사람인 것을 알지 못하게 여러 골목을 돌면서 하나씩 쥐어주었다. 열 번을 오가는 동안 긴장했던 소년은 녹초가 되어 버렸다. 카프카는 억압받는 사람, 노동자에게 연민을 품은 작가였기에 치열하게 현실세계의 한계를 쓰고자했다. 이러한 열정은 직장에서도 계속되었다. 물론 카프카가 직장을 다닌 것은 글쓰는 것이 돈버는 짓과 연관되어서는 안 된다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예술 정신과 삶의 태도 때문이었다. 이후 카프카는 <산업재해보험공단>에 다니면서 산업재해예방의 뛰어난 전문가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의 실태를 직접 알기 위해 공업대학의 기술자 과정을 이수할 만큼 열정이 뛰어났다. 카프카는 수많은 노동자를 재해의 위험에서 지켜주었으며, 권리가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깊이 공감하며 이들을 위해 일하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유태인이었던 카프카가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힘없는 이들을 향한 카프카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분출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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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관찰자, 내 친구 카프카가 어려운가?
“이것도 문학이냐?”, “이런 개새끼를 내가 읽다니!” 우리는 고서점에 나돈 카프카 소설 책 뒷면에 이러한 낙서를 쉽게 볼 수 있다. 카프카가 어려운가? 지은이 박홍규는 과감히 카프카는 어렵지 않다고 주장한다. 어려울 것이 뭐가 있는가? 카프카는 권력을 거부하고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를 꿈꾼 희망에 찬 작가였을 뿐인데, 소위 카프카 전문가들이 말하는 독일인 특유의 관념적인 소리들에 어지럽기만 하다. 카프카가 불안과 고독, 소외와 부조리, 실존의 비의와 역설에 빠진 기괴하고 난해한 작가라고만 떠든다면 우리가 카프카를 읽어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카프카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고뇌하고 불안하며 소외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하지 않는가? 카프카는 우리가 사는 사회와 인간을 누구보다도 명료하게 보여주고자 했던 치밀한 관찰자였으며, 위대한 묘사가였다. 분명히 말한다. 카프카는 어렵지 않다고. 카프카는 자기 이름으로 수수께끼 같은 언어 유희를 즐긴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세상을 향하여 투명하게 글을 쓰고자 한 내 친구 카프카를 어렵게 변신시키는 사람들, 이제 그만하자. 왜 카프카를 평생 권력에 대항한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가? 카프카에 대한 문헌과 서적은 많다. 심지어 『카프카 문학사전』이라는 책까지 나올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카프카를 다룬 많은 책들은 카프카는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는 작가, 절망과 소외에 빠져 불안하고 고독한 작가라고만 이야기한다. 독문학자도 아닌 법학자 박홍규 교수가 카프카를 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카프카의 이미지는 잘못된 것이라고, 카프카는 이해하기 쉬운 친구며 어떤 이보다 적극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관찰하여 낱낱이 해부하고 투쟁한 작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왜 아무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평생 권력의 세계와 싸운 카프카가 자신을 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글쓰기였다. 그렇기에 카프카는 ?쓰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고, 삶을 이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직업인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오직 하나의 수단으로, 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글쓰기를 했던 카프카. 카프카의 글쓰기 태도는 권력이 판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권력과 싸워 고뇌와 힘겨움을 이겨낸 한 인간의 소중한 진실과 연결된다. 평생 '권력’이란 괴물과 대담하게 싸운 카프카만이 가진 글쓰기 태도는?변신되기’가 아니라 스스로 '변신하기’를 시도했다. '변신하기’의 결과가 패배 또는 죽음이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권력에 저항한 작가 카프카. 카프카의 '변신하기’가 지금 우리에게 의미가 있고, 앞으로도 의미를 간직하는 이유일 것이다. 카프카의 어두운 성장기 ―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19세기 말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태인 카프카. 당시 프라하는 체코인을 독일인이 다스리는 식민지와 같았다. 체코인과 독일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프라하를 이해할 수 없는 혼란의 도시로 만들었다. 카프카와 같은 유태인들은 지배계층이었던 독일인들과 체코인들의 대립에서 유리한 쪽을 선택해 동화(同化) 될 수밖에 없었다. 동화 유태인이었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철저하게 기회주의, 이기주의, 권위주의, 출세주의를 지향한 사람으로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그런 아버지가 선택한 독일계 유태인의 삶은 철저히 권력에 기생해 사는 삶이었다. 카프카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저항의 대상이었다. 카프카는 아버지가 가정에서 큰 소리로 아이들에게 협박하고 완벽한 예의를 요구하면서 자신은 언제나 야만인처럼 굴었던 비열한 폭군이었으며, 가족이나 종업원들에게 가축처럼 대한 잔혹하고 편견에 가득 찬 최고 권력자라고 당당히 고발한다. 여기서부터 카프카의 끝없는 권력 저항은 시작된다. 어느 누구도 당당하게 아버지를 고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그렇게 한다. 그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저는 고통스러운 생각에 시달려야 했지요. 거대한 몸집의 남자, 최고의 권위를 가진 심판자인 나의 아버지가 굳이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찌 그처럼 달려들어 나를 침대에서 들어올려 낭하로 내리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께 그토록 아무 것도 아닌 하잘 것 없는 존재였구나. 이런 사무치는 아픔에 부대꼈던 것입니다.(『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중에서) 그렇다면 카프카를 끝없이 권력에 저항하게끔, 평생을 비판적 관찰자로 살게 한 원인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흔히 '카프카가 쓰는 글의 주제는 아버지이고, 아버지는 카프카의 작품 세계를 여는 열쇠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단순한 반발심으로만 국한시킨다면 카프카가 평생동안 쓴 글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국에서 흔히 말하듯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아들 카프카 내면의 기록이 아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세상을 보이지 않게 옥죄고 있는 권력의 덫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가정 권력, 사회 권력, 정치 권력, 문화 권력, 지식 권력, 언론 권력 등, 모든 권력을 거부하고,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기에 카프카는 권력이란 괴물을 향해 죽을 때까지 당당히 고발하고 저항했다. 있는 그대로 써서 괴물을 죽이고 복수하고자하는 카프카의 작품은 권력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다. 더 이상 카프카를 불안하고 고독한 작가라고 말하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