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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전차에서 핵무기까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향한 전쟁과 과학의 어두운 공생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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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 전쟁과 과학, 그 파멸의 변주곡
머리말 - 전쟁과 과학, 그 저주의 관계가 시작되다 1. 인간의 용맹이 전쟁터를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 2. 중세 유럽으로 밀려 들어온 이슬람의 과학지식 3. 유럽을 중심으로 만개한 군사과학 4. 항해술의 발달과 제국주의의 탄생 5. 정치라는 재갈을 물게 된 과학 6. 과학자의 양심이 먼저인가, 애국심이 먼저인가 7. 현대산업은 1·2차 대전에 헌신한 과학의 산물이다 8. 인류 최악의 과학 드라마, 원자폭탄의 개발 9. 엄청난 파괴력을 소유한 현대과학은 어디로 갈 것인가 10.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꺼이 정치의 시녀가 된 과학 주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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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우주인은 어떤 종류의 우주 유영이나 비행 훈련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는 비행기도 한번 타본 적이 없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식료품 가게의 점원이었다고 하나, 역사에는 단지 'L'이라고만 알려져 있는 그 유대인 남자는 1942년 봄 독일 다카우의 강제수용소에 설치된 감압실(減壓室)이라는 방으로 떼밀려 들어갔다. 그는 실험실의 공기압이 대기권 밖의 수준으로까지 떨어지자 남은 생애의 마지막 몇 분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마침내 죽음의 자비가 그의 고통을 종식시켜주었을 때, 그의 몸뚱아리는 방에서 질질 끌려나와 쓰레기 소각장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타고 남은 그의 유해는 삽으로 퍼내져 도랑에 뿌려졌고, 거기서 이름 모를 또다른 수천 명의 희생자 유해와 뒤범벅이 되었다. 흰색의 실험실 가운을 걸치고 L의 끔찍한 죽음을 무신경하게 지켜보면서 그 광경을 녹화까지 하고 있던 10여 명의 사람들에게, L은 소위 '과학적 연구'라는 미명하에 폐기되어 버리는 인간 쓰레기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의 실험 대상이었던 L은 제대로 선별된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 왜냐하면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로서 L은 생체 실험용 생쥐와 다를 바 없는 지위를 지닌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해 봄에 수용소의 외딴 병동으로 무리지어 보내졌다가 전쟁의 절박한 사정 때문에 희생되고 만 수백 명의 수감자들 중 한 명이었다.
--p.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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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빈치는 다양한 작업에 몰두하면서 밀라노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대개는 걸작 그림들을 그리는 일을 했지만 1494년에 엄청난 위기가 닥쳐오자 그는 그 일을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영감을 얻기 위해 그는 자신의 공책을 파고들었다. 거기에는 그가 지난 몇 년의 짜투리 시간 중에 짬짬이 기록해 놓은 다양한 종류의 과학적 성찰들이 들어 있었다. 그런 내용말고도 공책에는 그의 민첩한 두뇌 회전에서 샘솟은 미래의 무기 목록에 실린 개략적인 그림들도 들어 있었다. 그 목록에는 독화살, 큰 낫을 단 전차, 박격포, 소형 무기용 탄약통, 공기총, 증기동력 캐터펄트, 로켓 발사기, 헬리콥터, 철갑 차량 그리고 독가스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나 그것말고도 프로이트가 '어둠 속에서 너무 일찍 깨어났던' 인물이라고 기술한 바 있는 그 사람은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예고라도 하듯이 자신이 스케치하고 있는 무기들에 관해 일종의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겪고 있음을 공책의 여러 부분에서 표현했다... 스스로도 깨닫고 괴로워했던 그 도덕적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 다 빈치는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자 노력했다. 이를테면 바다에서 적의 해군을 분쇄할 수 있는 잠수함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서술하면서, '인간의 악마적 본성상'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공개를 거부했다. 그런 발명들은 '너무 사탄적'이기 때문에 이미 '사타적인 인간'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될 것이라고 그는 적었다. 그의 공책에 적혀 있는 항목들 중에는 많은 내용이 거꾸로 쓰여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히 그가 무언가를 적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봄으로써 그 '사탄적' 지식을 훔쳐가게 되는 일을 방지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p.1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