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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세기 중반 중앙 정치세력의 성격과 정치운영
국왕과 신료의 역학관계 주요 정치기구의 성격과 위상 조선 군사력의 실태 2. 17세기 중반 정치쟁점과 주요 정책의 성격 예론의 전개와 그 양상 조청관계의 추이 사회경제정책 논의의 정치적 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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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들이 국왕 및 왕실로 하여금 관료체제의 한계 안에서 움직이도록 하려는 노력은 면세 등 궁가의 특권을 축소하고 내수사의 기능을 억제하려는 방향으로 제일 강하게 나타났음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러나 그러한 신료들의 노력이 결정적인 성과를 올릴 수는 없었다. 내수사의 업무는 공식 관료체제 안에서 처리되도록 되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국왕이나 왕실에서 직접 처리하고 있었다. 인조 6년 4월 장유에 의해 지적되었듯이 내누사 공사는 반드시 이조를 경유해서 감사에게 이문토록 되어 있었으나 그 규정을 어겼다 하더라도 사족 관인들은 몇 차례의 항의 외에 실질적인 힘을 가진 조치를 취할 방도가 따로 없었다.
오랜 세월 전해온 군주체제 속에서 사족들 스스로도 자기들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인조 16년 9월 병자호란 후, 척화론자인 김성한과 정온의 책임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병조참판 이경여는 그들을 두둔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청에의 항복이 종사와 생민을 위하여 불가피한 조쳐였음을 인정한 위에서 그들의 척화론이나 반청론이 '과(過)'와 불급(不及)'을 논할 것 없이' 명나라를 위해 의를 지킨 것이어서 깊이 다스릴 수 없다는 소극적인 발언이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극단적인 반청론이 사족 사회를 압도하고 있던 시점에서 『인조실록』의 찬자들이 이경여를 기회주의지라고 비난하기보다는 유보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들이 지닌 신하로서의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pp. 7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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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 조선왕조 정치사에 대한 체계적 연구서
조선시대에서 17세기는 위기의 시대였던 동시에 정치, 사회 체계의 한 전형을 이룰 만큼 중요한 시대적 의미를 가진다.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1623년 군사력을 동원, 새 국왕을 세운 인조반정은 17세기 이후의 정치세력과 국가 운영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곧이어 일어난 두 차례의 호란과 각종 자연재해는 당시 국가 운영에 어려운 과제를 부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사회 유지의 기본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왕조가 바뀌지 않았음은 물론 지배계층의 성격이나 사회질서 역시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당시 체제 유지의 주체는 사족이었다. 17세기의 사족은 토호적인 향리세력을 규제하고 수령ㆍ훈척 세력의 간섭과 견제를 배제하면서 자율적으로 자기 지방을 이끌어가는 사족지배체제를 정착시켰고, 공동의 이념적ㆍ사회적 기반 위에서 복수의 붕당을 이루어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던 붕당정치를 운영하였다. 이 책은 17세기 중반 조선의 정치의 구조와 내용을 이해하고 이후 사회 변화의 방향과 성격을 가늠하려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국왕과 신하들의 역학관계, 비변사와 삼사 등 핵심 정치 기구, 정치권력과 군사력의 관계, 사상과 이념이 정치와 결합된 예론과 예송, 패전국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청나라와의 외교 관계, 국가를 꾸려나가던 구체적인 사회경제정책 등이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특히 제1부 『17세기 중반 중앙 정치세력의 성격과 정치운영』에서는 당시 주요 정치세력이었던 국왕, 사족의 특성과 상호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제2부 『17세기 중반 정치쟁점과 주요 정책의 성격』에서는 인조반정을 통해 정치세력의 변동이 초래되고 명청교체와 두 차례의 호란을 통해 대외정책의 기조가 변화하는 가운데 조선이 맞닥뜨려야 했던 사회경제적, 사상적, 대외적 난제들을 살펴보고 당시의 정치세력이 이러한 난제들에 대응했던 방식을 고찰하고 있다. 인조에서 현종에 이르기까지의 정치, 사회상을 심도 있게 규명하고 있는 이 책은 조선중기 정치사상사를 문제사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