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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인원을 위한 앱 야생의 마음, 인류세의 정신 까만 구슬 수제 경관 돌의 방언 기후를 만지작거리다 성난 가이아 적도에서 극지까지 브레인스토밍 청색혁명 2부 돌과 빛의 집 아스팔트 정글 초록 그늘 속 초록 남자 실내 식물? 너무 구식이잖아 기회를 틈타 데우다 3부 자연은 지금도 “자연적”일까? 자연은 지금도 “자연적”일까? 슬로모션으로 다가오는 침입자들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유전자 풀에서 물장구질하기 달팽이에 대한 사랑으로 4부 자연, 픽셀화한 감각의 (부)자연스러운 미래 나노 규모에서 재다 자연, 픽셀화한 종과 종을 잇는 인터넷 시계꽃이 당신에게 야한 문자를 보낼 때 로봇이 울면 누가 위로해주지? 데이트하는 로봇들 화성에서 흔들목마 프린트하기 5부 우리 몸, 우리 본성 그가 빌려준 (3D 프린팅한) 귀 사이보그와 키메라 DNA의 비밀스러운 문지기 나의 창조자, 이 미쳐 날뛰는 분자를 만나보시죠 결론: 야생의 마음, 인류세의 정신(을 재고하다) 감사의 말 더 읽을거리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Diane Ack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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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든 나쁘게든, 우리는 풍성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와 다른 생물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꾼다. 일부 존재들은 ‘유해 생물’로 간주하여 박멸하고, 또다른 존재들에게는 우리가 발명한 희한한 것들(의약품, 복잡한 도구, 음식, 특수 언어, 디지털 장난감)을 권하며 자연과 비자연의 경계선을 흐리는 일에 끌어들이는 식으로. ---「유인원을 위한 앱」중에서
인류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는 인간이 지구 위를 걸어다닌 지는 20만 년쯤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변덕스러운 주변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가혹한 기후와 험난한 대지에 맞섰고, 우리보다 훨씬 사나운 동물들을 겁냈고, 주술로 우리를 압도하고 장엄함으로 우리를 초라하게 만드는 자연에 복종하며 삶을 조심스럽게 그 둘레에 비끄러매두었다. 온전히 기억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과 온전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삶이 흘러간 뒤, 그저 자연에 매료되어 살아오기만 했던 우리는 마침내 자연의 힘을 거역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손재주, 지략, 융통성, 꾀, 협동을 익혔다. 불을 가두고, 도구를 만들고, 창과 바늘을 깎고, 언어를 만들어 곳곳을 떠돌며 사용했다. 그리고 눈부신 속도로 증식하기 시작했다. ---「야생의 마음, 인류세의 정신」중에서 그동안 우리는, 비록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구적 혼란을 초래해 스스로의 안녕을 위협해왔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시급히 단속해야 하고, 좀더 안전한 방식으로 식량과 연료를 구하고 문명을 다스릴 길을 찾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많은 문제와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대단히 낙관적이다. 우리 시대는 숱한 죄를 지었지만 숱한 발명도 이뤄냈다. 수명을 세 배로 늘렸고, 어린이 사망률을 낮췄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 면에서나 일상의 안락 면에서나 과거보다 엄청나게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했다. 우리의 실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우리의 재능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야생의 마음, 인류세의 정신」중에서 “인류는 두 발로 선 순간부터 땅에서 무언가를 파냈습니다. 버려진 땅을 보면서 우리는 ‘흉물스럽네’ 해버리지요. 사실 다른 방식으로 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 장소들이 방치되기는 했지만 그대로 죽은 건 아닙니다. 생명은 그곳에서도 계속 이어지죠. 우리는 그런 장소들과 다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 장소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일부이니까요.” ---「수제 경관」중에서 한때 지구에 살았던 생물들은 대부분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 유해는 비바람에 갈려나갔고, 슬로모션으로 빙하가 무너져내리면서 납작하게 눌렸다. 하지만 코넬 대학의 테리 조던 같은 지질학자들은 지층에 남아 있는 이야기를, 돌들의 방언을 읽어낼 줄 안다. 허리케인 샌디나 태풍 하이옌처럼 바다를 뒤흔들었던 사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층의 쐐기 무늬까지도. ---「돌의 방언」중에서 2013년에는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폭설, 가뭄, 폭우, 홍수, 혹서, 허리케인, 산불, 토네이도, 심지어 메뚜기떼까지 닥쳤다. 이런 기후의 장난들은 규모가 어마어마했을 뿐 우리가 평소에도 예상하는 말썽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한꺼번에 극단적인 규모로 사방에서 발생할 줄은 몰랐다. 모든 사건을 종합해서 지구의 기후가 균형을 잃은 모습으로 인식하면, 당연히 우리는 마음이 무거워지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기후를 만지작거리다」중에서 “물론, 끔찍한 기상 사태는 늘 벌어진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두 번이나?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 기상학자 제프 매스터스의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기후 상태로 접어든 것 같다. 극심한 기상이변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은 상태다.”---「성난 가이아」중에서 지금까지 사람들이 제안한 지구공학적 방안 혹은 적응 방안은 ‘아뿔싸, 내가 왜 이걸 미처 생각 못했지’ 싶은 것부터 말짱 정신 나간 소리까지 다양하다. 일례로 ‘모노크롬(단색) 지구’ 기법은 도시와 도로를 새하얗게 칠하고, 사막에 흰 비닐을 덮고, 작물을 유전공학적으로 개량하여 더 옅은 색을 띠게 만듦으로써 햇빛을 우주로 더 많이 반사시키자는 발상이다. 더운 날에는 하얗게 변하고 추운 날에는 검게 변하는 타일을 지붕에 설치하자는 제안도 있다. 이보다 더 괴상한 기술적 해법으로는 수조 개의 작은 거울을 우주로 쏘아올려서 길이가 15만 킬로미터 이상 되는 지구용 차양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고, 이산화황 입자를 대기로 뿜어내어 햇빛을 차단하는 소형 화산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유전공학을 이용해 미래 인류의 덩치를 지금보다 더 작게 줄임으로써 자원을 덜 쓰도록 만들자는 ‘소박한 제안’도 있다. ---「적도에서 극지까지 브레인스토밍」중에서 인류세의 역설 중 하나는 우리가 도시에 사는 영장류이지만 몸은 아직 야생에 맞춰져 있다는 것, 한편으로는 모든 야생을 파괴하고 그 위에 뭔가를 짓거나 농토로 바꾸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야생을 갈구하고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스팔트 정글로 쇄도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도시 생활을 인류 및 지구의 안녕과 조화시킬 독창적인 방법을 얼른 찾아야 한다. 둘 다를 해내면서 지구를 보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아스팔트 정글」중에서 “열대에서 기원한 인간은 좀더 추운 곳으로, 나아가 얼음이 덮인 기후로 이주하면서 비로소 안과 밖을 구분하는 생활양식을 갖게 되었는데, 저는 그 경계를 신경쓰고 싶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어리석게도 열대 도시에서 살 때는 냉방으로 실내 공기를 차갑게 만들지요. 계절에 무관하게 세계 어디를 가든 집에 난방이나 냉방을 하고요.” 우리가 어리석다는 말에 동의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우리는 열 균형을 좀더 잘 맞추는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초록 그늘 아래 초록 남자」중에서 세계 각지의 많은 지역사회와 나라가 창의적인 방식으로 에너지를 수확하고 재사용하려 노력하고 있는데도, 그런 풀뿌리 시도들은 언론에서 좀처럼 다루어주지 않는다. 지역적으로는 삶을 바꾸는 변화지만 다른 세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르네오 섬의 다약 사람들은 디젤발전기를 수소발전기와 (개울에서 얻는) 수력에너지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다. 브라질의 쿠리치바 시는 한때 교통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으나, 지금은 통근자의 70퍼센트가 버스를 탐으로써 매년 2700만 리터의 연료를 아끼고 대기오염을 줄인다. ---「기회를 틈타 데우다」중에서 얼룩덜룩한 암사슴이 길을 잃을 만큼 희뿌옇게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동네에 출몰하는 사슴들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100명이 넘는 주민이 모여서 총기 관련 규칙을 수정하자는 제안을 논의했다. 야생동물 제거 전문가를 불러서 미끼로 사슴을 꾄 뒤 쏘아 잡자는 제안이었다. 단 집, 학교, 마당에서 15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만. 옥수수로 사슴을 꾄 뒤에 고성능 활과 라이플로 죽이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총알이나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튈지도 모르기 때문에 수백만 달러의 책임보험을 들어둘 계획이라고 했다. 이 방법이 사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너무 위험하고 극단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반대자들이 얼마나 울화통이 터졌는지 이해할 것이다. ---「자연은 지금도 ‘자연적’일까?」중에서 사람들은 생태계의 균형을 다시 맞춘다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완벽한 ‘자연의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구적 조화와 불변을 장담하는 전략이란 있을 수 없다. 자연은 대담한 변화와 수정이 끝없이 이어지는 콩가 춤 행렬이다. 그렇다보니 에버글레이즈를 왕뱀 없는 생태계로 만들어야 하느냐, 아니면 무엇이 되었든 알아서 다음 단계로 진화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1920년대부터 플로리다 습지를 주택지로 탈바꿈시켰다. 따라서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길들여진 야생을 선호하느냐다. ---「슬로모션으로 다가오는 침입자들」중에서 클라크 부부는 위기 대응책으로 1996년에 냉동 방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표는 딱 하나, 단순했다.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멸종하기 전에 그들의 DNA가 포함된 냉동 세포 표본을 저장해두자는 것이다. 그는 이 기획이 동물을 자연 한가운데에서 보존하거나 동물원에서 기르는 것을 대신하는 대안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보험이라는 것이다. ---「달팽이에 대한 사랑으로」중에서 세상의 제조업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절삭가공 기술의 산업이었다. 깎고 뚫고 파고 자르고 긁어내고 새김으로써 인공물을 만드는. 이 기술은 대단히 놀랍고도 획기적이었다. 산업혁명을 촉발하고, 대도시의 증가를 불러오고, 농장에서 기른 상품을 위한 시장을 넓히고, 볼펜에서 월면차까지 온갖 물건을 만들어내어 우리를 감탄시켰다. 이것은 지금도 굉장히 유용한 기법이다. 다만 좀 너저분한 게 문제다. 절삭가공에는 산더미 같은 낭비와 찌꺼기가 따르고, 이는 곧 땅에서 더 많은 원재료를 캐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대량생산품은 옷이든 전자 제품이든 무조건 최종 손질 단계에서는 값싼 노동력이라는 곤란한 조건을 요구한다. 이와 대비되는 기법이 ‘적층가공’이다. 3D 프린팅이라고도 불리는 이 새로운 제조 기법은 어떤 물체에 대한 디지털 청사진을 바탕으로 그 물체를 삼차원으로 찍어내는 특수 프린터를 쓴다. 견고하게, 세부까지 정확하게, 여러 번 반복하여, 더구나 간접비를 최소화하면서 찍어낼 수 있다. 꼭 SF 드라마 [스타 트렉]에 나오는 만능 복제기나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이 떠오르는 이야기다. 3D 프린팅은 아무것도 깎거나 없애지 않는다. 3D 프린터는 악보를 읽듯이 전자 청사진을 읽은 뒤, 노즐을 받침대 위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미세한 덩어리를 차곡차곡 내려놓아 하나의 푸가를 완성해낸다. 그렇게 한 층 한 층 쌓다보면, 마치 믿기 어려운 방식으로 모래알들로부터 스핑크스가 솟아나듯이, 우리가 바라는 물체가 솟아난다. 알루미늄, 나일론, 플라스틱, 초콜릿, 탄소 나노튜브, 숯, 폴리에스테르…… 원재료는 뭐든 상관없다. 액체나 가루나 반죽 상태이기만 하다면. ---「화성에서 흔들목마 프린트하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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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이 행성을 쥐락펴락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오늘날의 지질시대를 이해하는 열쇳말 ‘인류세’ 이 책의 제목 ‘휴먼 에이지’는 지질시대 개념인 ‘인류세(Anthropocene)’를 일상용어로 풀어낸 말이다. 인류세라는 단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 환경 관련 국제회의 현장에서의 일이다. 토론을 주재하던 의장이 오늘날 우리는 홀로세(현세)를 살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자 한 참석자는 괜히 짜증이 나서 의장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아뇨, 우리는 이미 인류세를 살고 있단 말입니다.” 그는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를 밝힌 연구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기후과학자 파울 크뤼천이었다. 크뤼천은 인류가 지구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행위자로 떠오른 현재의 지질시대를 인류가 자연에 일방적으로 맞추는 편이었던 수천 년 전 시절과 싸잡아서 부르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날 이 발언에 장내는 일순 조용해졌고 많은 과학자가 인류세라는 단어에 흥미를 보였다. 크뤼천에게 단어에 특허를 신청하라고 한 동료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크뤼천은 인류세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후 이 단어는 빠르게 과학계와 대중 양쪽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인류세는 우리가 이전까지 어렴풋하게만 의식했던 현상을 지칭할 표현이 되어주었다는 점에서, 나아가 그럼으로써 그 현상을 새롭고 더 깊이 있는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탁월한 용어다. 우리는 인류세라는 용어 덕분에 인류가 지구 역사에서 새로운 단계를 열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되었고, 먼 미래의 지질학자가 인류세를 연구한다면 과연 무엇을 보게 될까 하는 상상을 토대로 좀더 넓은 시공간적 관점에서 문명과 지구 환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이앤 애커먼의 『휴먼 에이지』는 바로 이러한 지질학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제1부와 제2부에서 저자는 어째서 우리가 인간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인지, 이 시대의 특징은 무엇인지 흥미롭게 설명해나간다. 아울러 저자는 왜 우리가 스스로를 인간의 시대에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지 환기한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에 온갖 재주를 부리는 시대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동반한 기후변화, 도시화, 여섯번째 대멸종을 일으키고 있는 생태계 파괴, 지구적 무역으로 인한 지구적 서식지 교란, 에너지 고갈 등을 불러일으킨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경이로우면서도 섬뜩한 일이다. 우리가 주무르고 휘저은 지구는 이제 끝장나는 걸까? 인간의 손길과 지구의 운명을 잇는 가장 솔직한 고백 인간은 지구를 망치기만 하는 골칫덩이일까? 인류의 시대는 어리석은 결말로 치닫고 있을 뿐일까? 저자는 이 질문을 분기점 삼아 비관적인 미래학자들의 전망과는 다른 짐짓 새로운 목소리와 청사진을 내놓는다. 인간은 자신의 파괴력과 무지막지함을 자각하고 자연의 분노를 뼈아프게 인지했다는 것, 과학기술과 자연본성을 길잡이 삼아 다른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우리가 이대로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며 이미 수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가 완전히 지나간 것은 아니다. 이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것은 관계와 인식의 변화다. 실제로도 인간과 자연의 연대 의식, 무엇이 자연이고 인공인가 하는 인식, 자연은 늘 좋고 인공은 늘 나쁘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인간이 자연을 만지작거린 만큼이나 크게 바뀌어왔다. 저자는 인식의 한계를 한번 더 깨뜨려보자고 제안한다. 지금까지의 통념처럼 자연과 인공, 생명과 기계, 보존과 개발을 대립하는 것으로만 인식해서는 인간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선 이 시대를 정확하게 잘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많은 인류세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을 떠올릴 수도 없을 것이다. (제3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류세에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이미 선명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그 모호함은 개탄하고 두려워할 일이기보다는 양쪽에게 이롭게 적극 활용할 지점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어둡고도 밝은 지구의 미래를 만드는 참신하고 감각적이며 속깊은 발상들! 생각을 어느 쪽으로 깨뜨리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우리의 창조력과 재주 또한 뛰어나다는 것이다. 애커먼은 지구를 구하고 다른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과 현장들을 찾아나선다. 그동안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그래서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열어젖히고자 분투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발상은 참신할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사려 깊으며 희망적이다. 제1부에서 제3부까지 인간의 손을 탄 자연과 자연의 분노를 눅이는 인간의 노력에 집중했다면, 제4부와 제5부에서는 로봇공학, 나노 기술, 3D 프린팅, 후성유전학, 미생물학 등 오늘날 각광받는 여러 과학기술이 지구와 인류에 미칠 영향에 집중한다. 이 부분에서는 저자 특유의 낙관적인 시각이 돋보인다. 사실 요즘 인류세라는 용어는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기후변화나 생물다양성 소실과 관련하여 이야기된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세에서 비관적 전망만을 읽어내진 않는다. 얄궂게도 우리는 지구를 함부로 사용해온 과정에서 지구와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으니, 앞으로는 그 덕분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령 바다를 무조건 가만히 놔두는 것보다는 개발과 정화를 동시에 하는 방법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 도시의 높은 인구 밀도에서 난방열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 등을 말할 때 저자의 목소리는 희망적이다. 근거에 기반을 둔 그런 희망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그렇듯 전개 방식도 명랑하고 더없이 흥미진진하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다종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전하는 말들이 생생하다. 멸종 위기종의 DNA를 냉동 방주와 북극의 지하 저장고로 실어나르는 생물학자, 해조류와 조개를 길러 폭풍해일을 막는 바다 농부, 삭막한 도시의 벽면과 지붕을 녹색 식물로 덮는 식물학자, 매년 닥치는 물난리에 대비해 보트 주택과 보트 학교를 짓는 건축가, 인간의 열을 연료로 한 건물 난방 설계를 개발한 디자이너, 흙 한 줌 없는 남극에서 채소를 기르는 정원사,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 부상자의 재활을 돕는 인체기관 3D 프린팅 개발자, 지능을 스스로 진화해나가는 로봇사피엔스를 발명중인 공학자, 미생물 연구로 희귀병 치료법을 연구하는 생명공학자 등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한 자리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이 책의 백미다. 이 책은 과학책이지만 과학책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류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선보이는 철학적인 책이면서 여행기이기도 하다. 하여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머릿속에는 다양한 풍경과 장면이 스쳐갈 것이다. 동시에 누군가의 절박한 제언을 들었을 때처럼 고민과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일 것이다. 저자가 책 곳곳에서 던지는 질문이 앞으로 어떤 답으로 되돌아올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자료 근거가 충분한 합리적이고 흥미로운 질문인 것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