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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책을 펴내며 머리말 I 장. 전기 황로학의 정치철학적 해석 전국戰國 시대 말기 『한비자』의 「해로解老」ㆍ「유로喩老」 II 장. 중기 황로학의 기화론적 해석 서한西漢 시대 초기 『회남자淮南子』 III 장. 비판정신의 발휘와 황로무위정치론의 복구 서한西漢 시대 말기 『노자지귀老子指歸』 IV 장. 후기 황로학의 양생론적 이해와 도교적 맹아 동한東漢 시대 중기 『노자하상공주老子河上公注』 V 장. 종교론적 이해와 초기 도교의 성립 동한東漢 시대 말기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 《부록》 『노자』 판본의 변천과 그 사상적 변화 1. 『노자』 판본의 변천 2. 『노자』 사상의 변화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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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획의도
노자는 현대인들에게도 가장 친근한 고전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은 주로 인생의 깊이를 회고하는 의미로 읽히는 책이지만, 노자의 태생은 통치 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장생불사의 도를 알려주는 도교의 기초 경전이 되기도 했으며, 민중 반란 세력의 이념적 교과서가 되기도 했다. 통치 철학이 어떻게 양생의 책으로 이해되었는지, 말하자면 이 책은 노자 이해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다. 노자 해석의 역사를 추적하던 저자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는데, 옛날의 노자 주석서들은 대부분 황로학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황로학이란 한국의 독자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이지만, 한의학, 동양천문학, 태극권, 국선도, 명상수련 등 ‘도를 아십니까’ 분위기를 띠는 제반 분야의 뿌리에 바로 황로학이라는 낯선 이름이 있다. 황제+노자를 뜻하는 황로학은 기원전 200년경 한나라가 성립했을 때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에 대한 당시의 모든 지식을 체계화시킨 거대한 지식체계이다. 당시 유가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황로학은 중앙정계를 벗어나 재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재야에서 전수되면서 황로학은 워낙 복잡다단한 변종이 뒤얽혀 중국 학계에서조차 그 범위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그려내기가 쉽지 않은 과제로 간주되었다. 적어도 20년 이상 중국 한대(漢代) 사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이석명 교수에 의해 황로학 변화의 맥락이 정리된 것은 한국 학계의 기념비적 사건이라 할 만한 업적이다. 이 책에서는 황로학의 핵심 텍스트 5종을 분석하면서, 노자 이해의 변천 혹은 황로학의 변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하였다 2. 주요 내용 노자 이해의 시대별 변천은 동시에 황로학의 핵심 텍스트의 변천이기도 한데, 이 책에서는 그 변화를 다섯 시기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시기를 대표하는 핵심 주석서를 분석하여 노자 주석의 변화 양상 혹은 황로학의 변화 양상을 체계적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그 다섯 시기와 핵심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더불어 부록으로 실린 노자 판본 연구는 죽간본과 백서본 노자의 글자 출입과 사상적 원인을 꼼꼼하게 분석한 전문가용 서비스이다. 3. 흥미로운 대목들 - 극단적인 법치주의는 무위정치와 통한다 노자는 무위정치를 주장한 사람이고, 한비자는 엄격한 법의 지배를 주장했던 사람이다. 철권정치로 유명한 진시황이 바로 한비자의 사상을 기초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에는 노자한비열전이라는 하나의 편명에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가 있다. 한비자 55편 중에는 노자와 관련된 편들이 적지 않다. 한비자 내에서 노자의 경문을 직접적으로 인용하거나 응용, 노자 사상으로 법치 이론을 논한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특히 「해로」와 「유로」편은 현존하는 노자 주석서 중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노자를 최초로 해설하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의 1장에서는 한비자가 노자의 사상을 어떻게 법치사상으로 재해석하는지 상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 통치철학이 어떻게 양생술이 되었나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이론이 중앙 정계에서 밀려난 뒤 자기 몸을 잘 다스리는 이론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고, 심지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지, 여기서『노자』텍스트의 전혀 다른 해석을 만난다. 전기 황로학은 치국(治國)을 강조하면서 통치자는 올바른 판단을 위해 고요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욕망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오면 전기에 보였던 초보적 양생론은 독자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한다. 가령 후기 황로학의 대표저서인 『회남자』에서는 치신(治身)을 중시하여, 인간은 형(形)·기(氣)·신(神)의 3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파악했으며, 더 나아가『노자지귀』에서는 욕망의 제거·오장신을 보존·기의 배양을 통해 장생불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2~4장에서는 『회남자』, 『노자지귀』, 『노자하상공주』 등의 저서를 통해 정치·사회비판서로서의 노자가 양생서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알 수 있다. - 노자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단지 한 사람의 평범한 인물이었던 노자가 점차 신비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장자』에서 노자는 비록 지인(至人)으로 받드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일반 사람들처럼 죽음을 맞는 보통의 사람으로 나온다. 그러나 한대(漢代)의 사기에 소개된 노자의 모습은 주나라의 쇠망하는 조짐을 보고 서쪽으로 떠나다가 함곡관에서 윤희의 요청으로 오천 여 글자를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 존재로 그려진다. 또 장생의 도를 닦은 인물로, 160살 또는 200살 이상을 살았던 인물로 언급된다. 이렇게 볼 때 사마천이 『사기』를 섰던 기원전 2세기 무렵 노자는 이미 신비의 인물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장에서는 정치철학서 → 양생서 → 종교 서적으로 변해간 노자 텍스트와 도교 사상의 성립 과정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담았다. -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자, 진짜 노자가 아니다 『노자』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또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 이 점에 관한 지금까지 우리의 이해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존하고 있다. 『노자』는 주나라의 수장실, 즉 국립도서관 직원이었던 노자라는 인물이 썼으며, 그 책은 상하편으로 5천여자의 글자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과거 『노자』의 주요 판본이었던 하상공본이나 왕필본은 대체로 여기에 부합하였으므로 사기의 기록이 노자 탄생의 정설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마왕퇴에서 백서본 『노자』가, 잇따라 1993년 호북 곽점촌에서 죽간본 『노자』가 발굴되면서 그 성립에 관한 기존의 믿음은 재검토 되어야 했다. 현행 노자 판본과 새로 발굴된 백서본과 죽간본은 적지 않은 차이점이 있다. 저자는 부록에서 각 본의 비교를 통해 이런 차이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