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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기묘한 할머니 2. 어디로 갈까요, 아줌마? 3. 가장 고귀한 직업 4. 빌바이야 5. 기관 절개! 6. 타액 분비 보장 7. 우아한 부인의 제안 8. 첫 번째 현장학습 9. 영국인 아가씨 10. 우리는 선생님이 좋아요 11. 레디 고! 12. 번쩍이는 키스신 13. 아슈람으로 돌아와서 14. 크리켓 경기장에서 15. 마음의 부 16. 신나는 연극 준비 17. 사친의 죽음 18. 리허설 19. 낮은 담에 올려놓은 발 하나 20. 아슈람 이겨라! 21. 막이 오르다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
Will Land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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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조차 허락되지 않는 가난 속에도 희망이 있을까?
인도로 튀어
주식 중개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런던으로 온 윌 랜달은 비어가는 통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런던의 한 학교에서 선생 일을 시작했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법 집단인 데다가 선생들의 의욕도 제로 상태였다. 어디에서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미술관 단체 관람을 간 운명의 그날도 마찬가지. 아이들은 미술관을 자신들의 놀이터로 만들고자 했고, 다른 선생들은 내빼기 바빴다. 바로 그때 윌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한 할머니가 있었으니. 눈 깜짝할 새 아이들을 제압한 마리아 헬레나 폰 위르펠베르퍼는 윌에게 인도 여행을 제안한다. 자기가 비행기 삯을 댈 테니 가방만 들어달라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도시나 시골을 겉핥기식으로 스치듯 지나쳐 봐야, 다른 문화에 대한 아주 얄팍한 이해나 사람들에 대한 정형화된 인식 이상을 얻기는 힘든 법이다. 여행은 기분전환, 책임으로부터의 도피, 내가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일 뿐이었다.” 그래도 일단 런던을 벗어나야 했다. 윌은 인도로 튀기로 결심한다. “여행이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공짜니까.” 1년간의 인도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얼떨결에 떠맡은 영어 수업 할머니가 인도에서 오랜 연인과 함께 길을 떠남과 동시에 윌의 임무는 끝이 났다. 가능한 빨리 인도를 벗어날 생각을 하던 윌은 우연히 만난 아비세크라는 청년의 제안으로 고아들을 돌보는 학교(아슈람)를 방문한다. 거기서 한 아이의 갈색 눈동자에 낚여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윌과 아이들의 수업이 시작된다. 위기에 빠진 학교 구출 프로젝트 인도 슬럼가의 집들은 대개 사유지에 허가 없이 지은 것들이다. 사회안전망이 구축된 것도 아니어서, 땅 주인이 개발을 하겠다고 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출연한 인도의 아역 배우 루비나 알리와 그 가족이 판자촌 강제 철거로 노숙자 신세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의 학교도 같은 위기에 처했다. 땅 주인이 개발에 나선 것이다. 용역 깡패를 동원해 폭력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한 아이가 사망하기까지 했다. 윌과 아이들은 우아한 부인(독지가)의 권유를 따라 학교를 구하기 위해 연극을 준비한다. 과정은 역시 순탄하지 않다. 재정이 부족한 것도 그렇고, 빈부 격차에서 온 계층 간 갈등도 넘어서야 했다. 교양을 내세우는 부유층의 눈에 슬럼의 아이들은 “희망을 주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그래 봤자 아무것도 해 내지 못할” 존재였으니까. 인도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는 이유 학교를 구할 수 있는, 그리하여 희망의 끈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연극 공연이, 부유층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 윌은 실의에 빠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담담했다. “이 아이들은 냉소를 모른다. 그럴 수 있을 만큼 ‘기회’가 많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는 삶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삶은 좌절과 실망으로 가득했다. 힘없는 아이들은 그저 싸워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사람들은 그렇게 했다. 인력거꾼 산자이는 부자 동네 금주주의자들의 폭력에 분개한 슬럼 사람들을 다독여 분을 가라앉히는 데 성공했고, 우아한 부인은 부자 동네의 과격파를 특유의 온화함으로 잠재웠다. 아이들은 이내 활기를 되찾고 연극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요가 학원에서 만난 영국인 배우 페넬라는 작품 선정에 도움을 주었고, 크리켓 경기장에서 만난 게리는 무대와 소품 준비를 맡았으며, 술집에서 만난 마이크는 조명과 음향을 책임졌고, 차투라슈링기 부인은 직접 무대의상을 지었다. 모두의 힘이 모였으니, 과연 인도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열정과 행복의 사회학 처음 만났을 때, “서양인 세계여행자가 갖춰야 할 장비는 모두 갖춘” 크리스천은 “도무지 자제할 줄을 모르고 귀여운 척하는 바보스러운 목소리로 떠들어” 대는 “낯이 뜨거워 차마 돌아볼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이 말을 하는 윌 역시도 자포자기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인도를 거닐던 사람. 그런 그들이 인도 여행을 통해 확 바뀌었다. “한 가지는 분명해요. 전 영국에 돌아가서 자격시험에 통과하면 바로 여기로 돌아올 거예요. 저한테 가장 용기를 주는 게 뭔지 아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할 정도로 적은데도 환자들이 모두 예의 바르고 참을성 있고 고마워한다는 거지요. 영국에서 응급실 근무할 때 하고는 전혀 달라요. 거기서 일하다 보면 내가 정신병동에 들어갈 것 같죠.”(크리스천) “한 아이 한 아이가 나에게 엄청난 부를 ?져다주었다. 대도시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얻을 수 없는 것, 오쇼에서 몸에 좋은 과자와 허브차를 앞에 놓고 아무리 대화를 나눠 봐야 얻을 수 없는 것. 이 아이들은 만질 수도 설명할 수도 없이 순수한 무언가를 주었다. 내가 지금 관객들과 함께 일어서서 큰 소리로 박수를 치지 않으면 눈물을 터뜨리고 말게 만들 무언가를. 내가 한 역할이 아무리 미미했다 하더라도, 이 넓은 바다에 단 한 방울의 도움이라도 보탰다는 사실에 만족했고 뿌듯하기까지 했다.”(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열정이 고갈된 채 표류를 반복한다.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실제로 그렇게 살았던 크리스천과 윌에게, 사람의 손길 자체에 감사하는 인도라는 공간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그 속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억눌린 열정은 다시 타올랐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그들대로, 인도인들은 인도인대로 행복해졌다.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행복한 슬럼 학교가 만들어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