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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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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시
별 헤는 밤
새로운 길

트루게네프의 언덕
눈 오는 지도
슬픈 족속
아우의 인상화
소년
자화상
병원
간판 없는 거리
산상
삶과 죽음
바람이 불어
돌아와 보는 밤
내일은 없다
비둘기
또 다른 고향
참회록
쉽게 씌어진 시
산림
그 여자

위로
유언
코스모스
소낙비

바다
고추밭
사랑의 전당
무얼 먹고 사나
귀뚜라미와 나와
흰 그림자
비 오는 밤
이적
산골물
달같이
장미 병들어
황혼이 바다가 되어
산협의 오후
비로봉
사랑스런 추억
(이하생략)

저자 소개 1

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윤동주의 다른 상품

편저자 : 김수복
1953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하여 단국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하였다. 1975년 「한국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시집「智異山 타령」「낮에 나온 반달」「새를 기다리며」「기도하는 나무」「또다른 사월」「모든 길들은 노래를 부른다」를 펴냈으며, 저서로는 「정신의 부드러운 힘 : 우리 시의 표정과 상징」「별의 노래」가 있다. 현재 단국대 한국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99쪽 | 321g | 154*224*20mm
ISBN13
9788995449684

책 속으로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 이 「슬픈 족속」은 윤동주가 연희전문 졸업 기념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하려 하였을 때, 스승 이양하가 이 시는 검열을 통과할 수 없을 뿐더러 시집 원고가 영원히 햇빛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므로 때를 기다리라고 만류했던 작품으로서 민족의식이 짙게 깔려 있는 시이다. 시인 김정우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주일날 교회당으로 예배를 보러 오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의 얼굴이 구름처럼 떠오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한국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옷차림이었지만, 예배가 끝나고 교회당 뜨락에서 하얀 머릿수건을 두르고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시골 부인네들이 모여 오순도순 함경도 사투리로 이야기하던 그 순박한 모습에서 얻어진 심상이 일제에 대한 백의 동포의 슬픔을 읊게 된 원천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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