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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그래서 치명적인
2. 우리 마음속에 오래가는 상처들 3. 엄마의 첫사랑 4. 순결보다 더 중요했던 것 5.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6. 싫어, 라고 말하지 못했네 7. 오빠의 여자 8. 독처럼 스며드는 금기의 뒤끝들 9. 빛과 그늘의 그림자들 10. 인생이라는 것, 혹은 산다는 것은 11. 병실에서 모녀가 말했네 12. 그리고도 가야 할 길은 |
李舜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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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어간 다음 거기 계단에 앉아 나 그런 생각했어. 엄마한테는 참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구나 하고. 나는 그렇지 못한데. 나는 그 아저씨가 누군지 몰라. 그런데 엄마한테 참 좋은 사람 같았어. 평생을 두고도…….”
“윤희가 그렇게 생각해 주면 엄마 마음이 가볍고.” “고등학교 때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랬어. 나는 엄마들은 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랑 같은 건 아예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거든.” “윤희야.” “혼자 앉아서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을 했어. 엄마 사랑은 그런데 나는 뭔가 하고…….” “앞으로 있을 거다. 아직 그런 사랑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지.” “엄마.” “왜?” “나 엄마 딸 맞지?” “그래.” ---p. 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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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회복실로 돌아와 누울 때에도 그랬다. 엄마와 단 둘이 있는 방에서도 아이는 여전히 챙이 넓고 긴 개량 야구모를 쓰고 옆으로 다리를 오므리고 누웠다. 병원에서 주는 한 끼의 회복식으로 미역국이 나왔고, 누워 있는 아이를 일으켜 그 국에 밥을 말아 먹일 때, 이 아이를 낳던 날 친정 엄마가 말아주던 첫 미역국을 먹던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수술실에서 나오면 안쓰러움이 덜할 줄 알았는데, 빈 배를 채워줄 미역국을 떠먹이는데 국에 만 밥이 아니라 대접 가득 담겨 있는 어미 몫의 안쓰러움을 어미 손으로 직접 퍼 먹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울지 마. 엄마. 나도 이제 안 울게…….” ---p. 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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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 먹은 딸아이가 마흔여섯 살 된 엄마한테 서로 가장 깊은 비밀을 나누어 간직한 사이처럼 은밀한 목소리로 엄마는 알지? 하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예전에 우리에게 있었던 것이다. 다른 집 아이가 다른 상황에서 자기 엄마에게 엄마는 알지? 하고 묻는 것과 지금 이 상황에서 윤희가 엄마는 알지? 하고 묻는 것은 같은 말이라도 그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이어 윤희가 말한 ‘내가 왜 이런 말하는지’가 바로 예전의 그 일인 것이었다.
“그래. 엄마도 알아.” “엄마.” “응.” “나는 엄마가 내가 말할 때마다 그래, 라고 말하는 게 참 좋아.” ---p.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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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서서히 밝혀지는 비밀들이 수수께끼처럼 흥미진진한 서사물
소설이 재미를 잃어버렸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이야기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야기의 힘은 문장을 매끄럽게 쓰는 재주나 줄거리를 늘어뜨리는 재주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작가만의 개성적이면서도 정확한 문장, 탄탄한 구성으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탁월한 역량을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발표된 작품들을 통해 이순원은 폭넓은 소재와 다양한 주제를 섭렵하면서 어떤 형태의 소설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전천후작가로 평가받아 왔다. 이 사실은 이순원 소설이 갖고 있는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스물셋 그리고 마흔여섯』도 소설 전체에서 아주 특별한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는 뛰어난 작품이다. 가벼운 에피소드로 전락해 버릴 수 있는 내용까지도 작가의 문체에 녹아들어 우리 삶이 어떤 무늬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리고 그 작은 내용들이 모여 큰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삶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게다가 이 소설은 딸과 엄마의 비밀들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마치 수수께끼가 풀려나가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이순원 소설이 갖고 있는 감동에 흠씬 취하면서 동시에 독자가 다음 이야기를 예측해 보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