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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여인
이순원
&(앤드)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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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일본여자 시라키 레이의 딸
제가 시라키 레이의 아들입니다
순정한 시간
그 아이 연희
비운의 국가대표 선수
오수도리 산장의 남자
주호와 연희의 [마음산책]
연어와 마가목
그해 크리스마스 선물
유강표와 시라키 레이의 화려한 연애 시절
주호가 몰랐던 연희
낯선 곳에서도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들
그리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저자 소개 1

李舜源

1958년 강릉 출생.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 『은비령』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첫눈』, 장편 소설 『우리들의 석기시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미혼에게 바친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순수』 『첫사랑』 『19세』 『나무』 『흰별소』 『삿포로의 여인』 『정본 소설 사임당』 『오목눈이의 사랑』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허균작가문학상, 남촌문학상, 녹색문학상, 동리문학상, 황순원작가상 등을 수
1958년 강릉 출생.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 『은비령』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첫눈』, 장편 소설 『우리들의 석기시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미혼에게 바친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순수』 『첫사랑』 『19세』 『나무』 『흰별소』 『삿포로의 여인』 『정본 소설 사임당』 『오목눈이의 사랑』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허균작가문학상, 남촌문학상, 녹색문학상, 동리문학상, 황순원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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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124*195*30mm
ISBN13
9791194462002

책 속으로

저마다 아버지들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톱과 자귀와 대패로 아들의 스키를 만들어 주었다. 스키 앞머리는 불에 바짝 달구어 힘을 주어 휘었다. 스키에 신발을 끼우는 앞 바인딩은 깡통을 오려서 만들고 뒤축을 고정시키는 뒤 바인딩은 철사를 꼬아 앞뒤로 끈을 묶어 신발을 고정시켰다. 스키화는 눈 위에서 신는 고무장화를 사용했다. 검정 운동화보다 장화가 뒤축이 높고 든든해 나무스키를 발에 묶기가 좋았다. 양말도 두툼하게 신을 수 있었고, 신발 속에서 발목을 놀리기도 편했다. 스키 폴도 대나무로 만들었다.
---p.112

여기 산장뿐 아니라 대관령 마을의 집집마다 마당 한 귀퉁이거나 헛간 뒷벽에 가지런히 쌓아놓은 장작을 보면 그 장작들이 영락없이 그 집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장작을 패 쌓아놓은 솜씨 하나에도 고태복의 집에는 고태복 아버지의 무늬가 있고, 그의 집엔 그의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무늬가 배어 있었다. 장작 하나에도 그 나무와 그것을 팬 사람의 내력과 인품이 나타나고 삶의 결 같은 것이 드러났다.
---p.124

길 아저씨의 지론은 간단했다.
“열심히 일만 하며 지나가는 시간이나 인생을 즐기며 지나가는 시간이나 다 똑같이 귀한 ‘그때의 시간’이지. 열심히 일하고 나중에 폼나게 즐기려 하면 ‘그때의 시간’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는 거야. 그건 청춘의 시간도 마찬가지고 장년과 노년의 시간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인생은 그때의 시간으로 즐겁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 거라고. 인생에서 다음이란 미래의 시간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접근할 수 없는 과거나 마찬가지의 시간이지.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다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다음에 가면 그건 또다시 그때의 시간으로 접근할 수 없는 다음이 되는 거지.”
---p.176

연희는 다시 길게 들숨과 날숨을 내쉰 다음 차에서 내렸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연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연희는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바다 멀리 엄마를 불렀다. 그게 그가 횡계 버스터미널에서 처음 보았던 여섯 살 때의 연희가 막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의 모습이었고, 또 그가 마지막으로 본 연희의 모습이기도 했다.
---p.252

그때 거짓말처럼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마당가 화덕에 떨어지듯 긴 빗금을 그으며 그의 눈 속으로 떨어졌다. 별똥별을 보면 알프스의 목동들은 가슴과 어깨에 성호를 그었다지만, 그는 가만히 술잔을 들어 허공을 지나가는 맑은 바람과 잔을 부딪쳤다.
---p. 260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 시간 또한 맑게 흘러 다시 서로 이름을 부르게 된다면 이번엔 자신이 먼저 그 시절 연희처럼 그곳이 삿포로든 어디든 찾아가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내가 가는 길 네가 좀 시간을 내어달라고…….
---p.260

첫눈은 좀 얌전하게 내려야 예쁜데 올해 첫눈은 말괄량이처럼 좀 시끄러웠어요. 예전 그곳에 있을 때 대관령도 아직 나무에 단풍이 매달려 있고, 어떤 때는 푸른 잎사귀가 그대로인 나무도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린 눈으로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것처럼 여기 홋카이도의 가을도 언제나 갑자기 내리는 눈에 강제로 종료되는 느낌이에요.
---p.263

이곳 홋카이도엔 정말 많고도 많은 눈이 내리는데, 어떤 눈이 내려도 내 마음엔 그날 그 눈이 첫 번째 눈이에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날 내 마음에 내린 눈은 녹지 않아요.
---p.266

옛날에 벼락의 신이 홍수로 떠내려가다가 죽을힘을 다해 붙잡은 나무가 마가목이었대요.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배를 만들 때 반드시 마가목 나무판 하나를 썼다고 해요. ‘함께 있으면 안심’이라는 꽃말도 그래서 생겨나고요. 정말 거리에서 이제 일본 나이로 열일곱 살의 여자아이가 마가목을 보는 마음이 그랬어요. 그래, 여기가 어디든 네가 있으면 안심이다. 내가 나무에게 말했던 것이 아니라 거리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나에게 안심하라고 말했어요.
---p.275

이렇게나 차가운 계절에도 당신은 여행을 하고 있는 건가요?
당신이 여행을 떠난 것은 아직 눈이 남아 있을 때였어요.
그로부터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제 키도 커졌어요.
천천히 천천히 자라나는 마가목은 생명의 나무
이 나무가 좀 더 자라서 새하얀 꽃을 피울 때쯤
한 번 더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p.278

출판사 리뷰

은빛 설원처럼 눈부시고, 눈보라처럼 격렬한,
그리고 폭설처럼 비극적이었던
한 스키 선수의 인생과 사랑

일간지 경제부 기자인 박주호에게 한 고등학교 체육 교사로부터 연락이 온다. 그는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의 한 소녀, 유연희의 오빠였다.

그로부터 주호는 비운의 국가대표 선수였던 유강표와 일본여자 시라키 레이의 이야기, 그리고 불타버린 오수도리 산장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유강표는 1971년 삿포로 프레올림픽의 크로스컨트리에 출전했던 스키 선수였다. 이 무렵 한국 스키는 어재식과 고태복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처음 그들과 함께 활강 스키를 하던 유강표는 실력에 밀려 장거리 노르딕으로 종목을 바꾼다. 대관령 오수도리산장 주인의 도움으로 삿포로 프레올림픽에 참가하게 된 유강표는 거기서 백인 혼혈인 일본여자 시라키 레이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일본어에 유창한 오수도리산장 주인의 도움으로 편지를 주고받다가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하지만 고태복, 어재식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유강표는 예전 동료들이 스키계에서 코치로 감독으로 또는 스키장 리조트회사 간부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열등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연희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연희 엄마 시라키 레이는 남편의 폭력적 성향을 견디지 못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유강표는 폐인처럼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유명한에게 전해 들은 연희 부모의 이야기는 설원처럼 아름답고, 눈보라처럼 격렬하며 한편, 폭설처럼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주호가 기억하는 그들의 딸, 연희의 모습은 달랐다.

눈꽃처럼 피어난 첫사랑,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

주호는 중학교 시절, 처음 연희를 보았다. 버스정류소에서 술을 마시고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과거의 스키 선수 유강표와 그를 바라보며 서 있던 모녀. 미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일본여자 시라키 레이와 그녀의 딸, 연희였다. 그리고 주호가 제대한 후 대관령 횡계에 있는 친척 집에서 머무르면서 아르바이트로 구판장 일을 돕던 때, 연희는 근처 ‘미라노패션’이라는 양장점에서 옷 수선 일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연희가 일을 마친 후 조용히 책과 워크맨으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구판장의 주호도 실내등을 켜놓고 혼자 공부를 하곤 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관령에 머물렀던 2년의 세월 동안 주호는 그곳에서 길 아저씨와 미옥이, 용래 등과 함께 추억을 쌓아간다. 무엇보다 비슷한 처지의 연희를 동생처럼 아꼈던 주호는, 연희와 함께 길 아저씨의 연어 낚시에 동행하기도 한다. 연희는 엄마가 사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주호에게 편지를 건넨다. 20년이 지난 후, 연희 오빠인 유명한의 도움으로 다시 편지를 주고받게 된 두 사람은 뒤늦게 그때의 눈꽃 같은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때의 시간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나날이었음을.

작가는 어느 가을, 방문한 삿포로에서 도로 가로에 심어진 마가목을 보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대관령의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붉은 열매의 마가목이 놀랍게도 삿포로의 도로 가로수로 자생하고 있었다. 대관령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이곳에 와 살아도 이 나무 때문에 외롭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연희가 주호에게 알려준 일본노래 ‘나나카마도(마가목)’의 노랫말이 여운처럼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하얗게 얼어붙은 아침 언덕에서 새빨간 보석을 찾아냈어요.
서리가 내린 마가목 열매를 입김을 불어 녹여주었지요.
손바닥 위의 빨간 열매를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당신이 떠올랐어요.

이렇게나 차가운 계절에도 당신은 여행을 하고 있는 건가요?
당신이 여행을 떠난 것은 아직 눈이 남아 있을 때였어요.
그로부터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제 키도 커졌어요.
천천히 천천히 자라나는 마가목은 생명의 나무

이 나무가 좀 더 자라서 새하얀 꽃을 피울 때쯤
한 번 더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 시간 또한 맑게 흘러
다시 서로 이름을 부르게 된다면 이번엔 자신이 먼저 그 시절 연희처럼
그곳이 삿포로든 어디든 찾아가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내가 가는 길 네가 좀 시간을 내어달라고……”_본문 중에서

[작가의 말]

어느 가을 삿포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날씨가 내가 살던 대관령과 너무 비슷했다. 산에 있는 나무들도 들에 핀 꽃들도 대관령의 나무와 대관령의 들꽃과 똑같았다. 놀랐던 것은 대관령의 깊은 산속에 있는 마가목이 그곳에 도로의 가로수로 심겨 있는 것이었다. 산에서만 보다가 거리에서 보니까 붉은 열매가 더욱 고혹적이고 반가웠다. 대관령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이곳에 와 살아도 이 나무 때문에 외롭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삿포로는 일본에서 눈이 많은 고장이고, 대관령은 우리나라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다. 내 기억으로 눈이 내리지 않는 4월보다 눈이 내리는 4월이 더 많았고, 어느 해는 5월에도 눈이 내렸다. 그것 역시 대관령에서 자란 아이가 삿포로에 와 살아도 저 나무들과 눈 때문에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삿포로에서 자라 겨울에 끊임없이 내리는 눈 말고는 모든 것이 낯선 대관령에 와서 사는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가 낳은 아이가 다시 대관령에서 보았던 붉은 열매의 마가목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낯선 삿포로에 가서 살고 있다.

삿포로에서 태어나 대관령에 와서 사는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대관령에서 태어나 삿포로에 가서 사는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사랑이 그들의 몸을 움직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들의 겨울눈 같은 사랑과 봄눈 같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겨울눈은 무거워 운명적이고, 봄눈은 미처 눈을 돌릴 사이 없이 녹아버려 안타깝다.

글을 쓰는 내내 이 겨울눈 같고 봄눈 같은 소설과 함께 해준 대관령의 내 형제들에게 감사하고, 구상과 취재에서부터 한 편의 소설로 완결될 때까지 동행해 준 사람에게 감사하다.
나는 여전히 대관령의 봄눈을 기다린다.

2024년 다시 눈 내리는 겨울
이순원

추천평

꽤 오래전부터 선생을 알아 왔다. 고백한 적은 없지만, 선생을 이룬 것 중에 내가 은밀하게 샘내는 것이 있다. 선생의 대관령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있다고 해도 선생처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선생은 선생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관령을 말한다. 삶과 죽음을 나누고, 잇는 것. 한 번도 넘어보지 못한 자와 기어코 넘어가 버린 자를 가르는 것. 다시 한번 선생은 그곳을 부지런히 넘어 선생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썼다. 한밤 한낮에 선생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썼을까를 생각할수록 서둘러 읽을 수가 없었다. 거의 모든 문장을 소리 내 읽기를 권한다. 선생이 그렇게 썼을 것이다. 선생은 공들여 쓴 바른 문장으로, 일과 사람의 전후 사정을 정확한 바둑처럼 똑, 똑, 제자리에 놓는다. 조바심도 숨이 넘침도 없다. 인간을 두루 살피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한 편을 읽고 나면 누군가 소설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이 소설을 읽은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연희일 수도, 유강표일 수도, 시라키 레이일 수도, 길 아저씨일 수도 있겠다. 내게는 ‘누이들’이었다. 연희를 비롯한 그 시대의 딸들. 누나들. 소설에서 빠져나왔다기보다는 현실에서 소설로 들어간 사람들. 그보다는, 소설이라는 탁한 거울에 잠시나마 얼굴을 비춘 사람들. 변변치 못한 이 추천사 말미에라도 꼭 그녀들을 말해두고 싶었다. 그녀들에게도 삶이, 너무 지나가 버리지는 않았기를. 부디. - 황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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