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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너는 감염되었다 비행접시 부왕아이르부자르 벙어리 방울새의 죽음 내 사랑 카멜레온 시계 없는 방 야식夜食 캔C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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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김은 입사 동기 R에게 자신의 업적을 신세 한탄인 척 은근히 자랑했다. 그러자 원룸 하나와 1천5백cc 승용차 한 대를 소유하고 있는 R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아파트 세 평은 확보했구나. 20평만 더 확보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 --- p.22 죽음이란 무엇일까.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영혼이 되어 저곳으로 쉬러 가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여기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는 나와,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완전히 없어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 p.45 “그녀는 죽었어요. 그녀가 당신 속에 들어간 게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이 그녀 속에 들어갔죠. 가끔 상대방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머릿속에서 되살리는 경우가 있어요. 지금 당신의 반을 살고 있는 여자는 진짜가 아니라 당신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가짜랍니다.” --- p.118 피리새는 남의 노래를 배운대. 어릴 때, 소리를 배울 때, 뻐꾸기랑 살면 뻐꾸기처럼 울고, 카나리아랑 살면 카나리아처럼 운대. 바에 출근한 마지막 날, 그녀는 느닷없이 새 이야기를 꺼냈다. --- p.122 아버지는 젊었을 때는 나이트 기도였고, 그 뒤에는 술만 먹는 망나니였고, 나이 들어서는 여전히 술을 끊지 못하는 아파트 수위였다. 이미 50대 중반에, 위암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명언을 남겼다. 너는 낮에 먹고, 밤에는 잠자는 직업을 택하거라. --- p.205 “우리 같은 놈들을 좋아해 주는 여자도 있을까?” 어느 날 나는 붕어에게 물었다. 붕어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말했다. “민물에서 태어난다고 연어를 민물고기라 하대? 바다에서 살아도 고래는 포유류인기라. 나 같은 놈이면 몰라도 너는 돌아갈 곳이 있다 아이가. 돌아가서 잘만 살면 과거 따위가 무슨 상관이겠노.” --- p.213 주위 사람들이 연출된 자기 모습에 현혹되어 자신이 예측하고 계산하는 대로 움직여 줄 거라고 믿은 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속은 건 사람들이 아니라 녀석이었다. 연극이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연극이 아니다. --- p.298 난 어둠이었고, 넌 빛이었어. 넌 시대의 희망, 난 처단되어야 할 어둠. 난 네가 부러웠어. 넌 완벽했어. 너의 아버지는 노동자였고, 너는 파출부 일을 하며 너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어머니에게 보답해야 할, 한 가정의 미래를 걸머진 장남이었지. 너는 절망을 말할 자격이 있었고, 희망을 말할 권리가 있었지. 하지만 난…. --- p.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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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파노라마 :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각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심각한 불안에 시달리거나 급기야 편집증적인 분열 증상을 겪으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체험을 한다. 첫 번째로 실린 소설 『너는 감염되었다』의 주인공은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네트워크 보안 엔지니어다. 그가 주된 업무는 해커들로부터 정보를 보호하는 방화벽 관리다. 각종 바이러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남자는 간암으로 죽은 엄마를 떠올리다가 급기야 스스로 에이즈에 걸렸다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부왕아이르부자르』는 확률로 점철된 현실이 어떻게 붕괴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머리 위에 자신을 바라보고 통제하는 비행접시를 얹고 산다는 ‘관찰 망상’을 다룬 『비행접시』, 또한 ‘분리성 정체 장애’라는 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다중인격의 세계를 탐험하는 『벙어리 방울새의 죽음』과, 인격 모방자들의 이야기를 유니크 하고 아이러니하게 풀어낸 『내 사랑 카멜레온』 등이 실려 있다. 현실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과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풍경을 정교하고 생생하게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화려한 망상의 집대성 그리고 카타르시스 이 책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적 고뇌와 일탈을 다루고 있다. 하나같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자기 내면과 싸우며 병리적 징후를 보이는 인간들이다. 지나친 건강 염려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거나 불가능한 바이러스의 확률이 현실에 침투해 일상을 붕괴해 버린다는 설정, 분리된 자아에 통제당하며 사는 사람들, 여러 사람의 삶을 살다가 끝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인간, 타인의 죽음까지도 실패한 연극이라고 믿는 나와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 과거의 기억을 박제해 버린 여자… 이 소설집 ≪내 사랑 카멜레온≫에서는 그야말로 카멜레온 같은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삶과 그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물들이 겪는 내적 갈등과 병리적 이상심리조차 그들이 처한 부조리한 환경 안에서 보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현실과 뒤섞인 환상 속에서 인물들이 갈등하며 보여주는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새로운 차원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상처받은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서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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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눈앞의 대상을 보듬고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여기는, 일상적인 사랑을 거부한다. 아니 거부당한다. 그의 소설은 아슬아슬한 정점에서 우리를 내려놓고 우리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를 흔들고 뒤엎고 흩뜨려 놓는다. 그런데, 이상해라. 그의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이상하게도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립다, 그립다, 그립다…… - 서하진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