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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되는 세상에서 요구되는 그리스도인의 예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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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신념 있는 시민교양: 신실한 믿음과 공손함은 양립 가능한가?
제2장 기독교적 시민교양에 대한 오해 제3장 기독교적 시민교양의 변호 제4장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말하기: 교양을 갖춘 언어 생활의 중요성 제5장 열린 마음: 교양 있는 태도의 중요성 제6장 다원주의의 장점 제7장 시민 교양과 성(性) 제8장 다른 종교의 도전 제9장 다원주의 세계에서의 기독교적 리더십 제10장 "다른 한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 시민교양의 한계 제11장 지옥은 무례한 개념인가? 제12장 아브라함 카이퍼, 테레사 수녀를 만나다: 승리주의의 문제 제13장 느린 하나님을 섬기기: 시민교양과 종말 |
Richard J. Mo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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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더 온유하고 더 '관용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일부 그리스도인을 오도할 수도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하지만 낙태를 자행하는 병원 앞에서 데모를 하고 퇴폐적인 프로그램에 반대해서 시청 거부 운동을 벌이는 열심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런 이들은 시민교양을 쌓게 되면 믿음이 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그렇게 될 필요는 없다고 확신한다. 시민교양을 갖추면 강한 기독교적 신념이 더욱더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 pp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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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한번은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승객 중에 중년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다니면서 여러 사람과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통로를 지나다니면서 어떤 사람과 슬쩍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상대방이 허락하면 그 옆에 앉아 한동안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우리는 15분 가량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나에게 신상에 관한 질문-가족 관계, 공부, 취미 등-을 여럿 던졌다. 그러더니 대화의 주제가 거의 억지로 종교에 관한 것으로 급선회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는 정오에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 운운하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의 따스한 사랑을 언급하였다.
거의 반사적으로 나는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혔다. 이어서 터져나온 그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무방비 상태엣 있던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진작 그걸 얘기했어야지!"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통로를 다니면서 또 다른 대화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전도하는 그레이하운드 전도자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노골적인 만남은 하나의 본보기를 보여 준다. 즉 이 그리스도인 남자의 '고양'은 하나의 책략에 불과했다는사실이다. 내 가족 관계, 공부, 취미 등에 관한 그의 질문은 아주 불성실한 것이었다. 아마 그는 타인에게 관심을 표명할 때 전도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배웠을 법하다. 그래서 그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15분 동안 나에게 '관심을 표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손에 놀아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설사 어떤 비그리스도인이 이 사람의 접근에 대해 기만당했다고 느낀다 해도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시민교양을 복음 전도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 복음주의자로서 이 점을 지적할 때 오해받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좋은 소식, 곧 복음을 영접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복음 전도사역에 상당히 높은 우선 순위를 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적 시민 교양이 단지 전도의 책략에 불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즉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목적으로 그들을 예의바르게 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복음 전도는 중요한 활동이다. 사도베드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소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즉시 '온유와 두려움으로' 답변하라고 덧붙인다. (벧전 3:15-16). 버스에서 그 전도자가 나에게 보인 태도는 온유함이나 두려움(경의)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나는 느꼈다. --- pp 34~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