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출신인 모파상은 계속되는 부모의 불화로 어머니, 동생과 함께 노르망디의 에트르타에서 자라게 된다. 루앙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플로베르의 집을 자주 방문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플로베르는 모파상에게 당대의 위대한 문인들을 소개해 준다.
1869년에 그는 법률 공부를 시작했으나 ‘보불전쟁’으로 군에 지원·입대하였다. 전쟁의 영향으로 인한 염전사상(厭戰思想)은 문학 지망의 동기가 되었다.
1883년에 장편소설《여자의 일생 Une vie》을 발표하면서, 그의 명성이 높아졌고,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젊어서부터 신경 질환이 있었던 모파상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여자의 일생>, <죽음처럼 강하다>, <우리들의 마음> 등의 장편과 약 3백 편의 단편, 3편의 기행문, 1권의 시집을 남겼다.
작품으로 인한 피로와 복잡한 여자관계로 신경 질환이 더욱 악화되자, 1892년 1월 니스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정신발작을 일으켜 이듬해 7월 6일, 43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