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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영결/후회/눈이 내린다/내게로 와서 노래가 되어라/빗방울/예감/네 이름을 지운다/잊을 수 없네/ 어찌 잊을까/영혼의 노래/공무도하(公無渡河)/마음은 잊었다 하여도/아파도 추억해야 하리라/꿈/ 홍시와 까치/만남과 헤어짐/나비와 개나리/천상에서/너의 노래/불놀이 2부 봄비 내리는/새벽바람/슬픔의 파도가 잦아들면/천리길 끝에서도/어둠/거울1/거울2/그날의 행복/ 문재(文才)가 일찍 죽는 까닭/이 가을/미처 나누지 못한 말/봄맞이/낙엽/돌이 되어버린/가슴 속/ 더불어 가자/마음의 불꽃/일요일 오후/슬픔과 기쁨/언덕에 3부 달력/별을 보고 싶네/부여 가는 길/아버지의 옛집에서/금전출납부/정월 초하루/시/여름날의 노동/ 꽃 보고 웃네/너무도 투명한 햇살/그날 우리는/지상의 모든 것/삶의 법칙/잊히지 않게 하라/ 용서해다오/봄비 내리는 소리/얼마나 살고 싶었을까/비 내리는 날/잿빛거리/즈믄 강에 달 비쳐/ 좋은 언어를 주소서 |
신좌섭의 ‘가지 않은 길’
- 애도의 형식에 담긴 ‘저항적 순수’에 대하여 인간의 감정 표현 중에서 애도처럼 숭고한 형식은 없다. 한 존재가 뼈아픈 ‘상실감’ 앞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우주 복판에 던져놓고 호출하는 순간 지극히 불완전한 자아가 물아일체(物我一體)에 이르는 마술이 일어난다. 자신의 내부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빠져나갔건만, 무엇이 비었다 하고 무엇이 차 있다 할 것인가? 그때 솟아나는 글자 한 자 한 자에 담긴 탄식과 경배의 무게를 시의 형식이 아니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잠시 내게 왔던 순간을 곁에 머물며 끌어안던 흔적을 깊이 묻는다 가슴 속 - 「가슴 속」 전문 자아와 세계의 경계를 단박에 지워 버리는 이 놀라운 제의의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에 ‘신’을 들여놓게 하는 진정 이타적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한 영혼의 복잡성이 여기에 있다. 인간의 크기는 신체의 크기가 아니라 신성의 크기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애도를 다 숭고하다 할 수 있지만, 그렇지만 모든 애도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애도의 가치는 그것을 ‘당하는’ 자보다 오히려 ‘행하는’ 자의 정신에 의해서 크기가 달라진다. 신좌섭의 시집 「너의 이름을 지운다」가 주목되는 까닭은 자아의 상실이 세계의 상실로 승화된다는 데 있고, 또한 그것이 역사적이고 심미적인 파문으로 확장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떠나가 버린 이들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너무 일찍 떠난 그들은 오늘도 나와 함께 길을 걸을 것이다 (…) 수백의 인파와 겹쳐 보이는 수천의 원혼들과 함께 - 「비 내리는 날」 일부 하나의 잃음이 수백 수천의 얻음을 낳는 역설의 현장이 여기에 있다. 신좌섭에게 이 독특한 감정을 촉발시킨 것은 ‘아들의 죽음’이었다. 나이 서른일곱에 득남하여 만 18년을 더불어 살고 떠나보내야 했던, 아직 미성년의 망자를 향해 시적 화자의 태도가 한없이 경건해지는 것은 그를 잃고 견뎌야 할 상실의 무게가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제 바람 한 점, 물방울 하나조차 그냥은 지나칠 수 없게 돼 버렸다. “내게 꿈을 준 이들은 예전에 다 떠나고/꿈을 이을 사람도 떠나”(「부여 가는 길」 일부)버린 기막힌 공허 앞에 망연자실 서 있는 자, 시적 화자가 이제 남은 삶을 끌고 가기 위해 마음속에 모시고 길러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그는 과거(꿈을 건넨 이)도, 미래(그것을 이어갈 사람)도 사라진 ‘자아사(自我史) 실종’의 자리에서 ‘존재의 저 뒤쪽 어디’를 구성할 새로운 영혼의 부품들을 어루만지며 허공에 대고 갈구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기도이지만 한편으로는 시가 될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이렇게 한 세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신좌섭의 심상을 역사적인 것으로 물들이는 것은 신씨 가계사의 맥락이다. 직업적 문필가로 훈련 받지 않은 ‘한 저항적 지식인’의 육성 속에서 자꾸만 50년 전 신동엽의 정신이 현현하는 것은 그가 단지 시인의 아들이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만은 아닌 것이다. 당시에도 신좌섭의 탄생은 신씨 가계사에 내린 큰 은총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1959년은 신동엽이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해이며, 신씨 집안에 4대 독자가 득남하는 경사를 맞은 해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전후 복구 시대가 끝나고 장기 분단이 확정된 대한민국의 국가 기반이 구축되기 시작한 시점이 된다. 이어서 4?19, 5?16을 거치면서 한반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미국 일본에 종속되는 세계자유주의 방위체제의 하부 구성물이 되어간다. 신동엽은 이 시기에 ‘조국 근대화’를 앞세운 강압적 산업화 세력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는 삶을 택했다. 한국문학사에서 신동엽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보적이다. 신좌섭은 자신이 아버지의 이름을 하나의 존재적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이 시집 곳곳에 새겨져 있다. “달빛 스치는 쪽마루에서/기타 선율에 노래 싣는” 풍경은 신동엽이 남긴 사진 속의 한 장면(신좌섭이 다섯 살 때 동요를 가르치는 모습이라 한다)이요, “그 하늘 눈에 담으려고”의 하늘은 신동엽이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말했던 ‘하늘’이다. 자신에게는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신씨네의 행로가 따로 있었다는 얘기이다. 어떻게 해서 그 같은 영혼이 만들어지게 되는지를 신좌섭은 이렇게 노래한다. 동학년 어느 날, 핏덩이로 어미 등에 업혀 부여에 숨어든 탓에 유난히 조상들을 그리워했던 할아버지. 아들의 식민지 가난을 조상들을 대신해 미안해하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4대 독자 아들 젯밥을 남몰래 차례 상에 얹어야 했고, 덕분에 나는 열한 살 때부터 음복을 배웠어. - 「정월 초하루」 일부 이 시집은 신좌섭이 신씨 가계사를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또 본가만이 아니라 외가까지 끌어들여 이룩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좌섭은 열 살 때 아버지를 잃는다. 남겨진 3남매는 어머니에 의해서 길러진다. 어머니 인병선은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농업경제학자 인정식의 딸이자 시인 신동엽의 아내로서, 아버지가 월북하고 남편이 요절하는 불행을 이기고, 절대적으로 열악한 가정사를 꾸리며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농경생활문화박물관인 ‘짚?풀생활사박물관’을 만든다. 신좌섭은 그 때문에 받게 되는 환경적 영향을 이렇게 노래한다. 일 년에 단 하루, 이북 출신이 하는 정육점에 찾아가 돼지 다리 하나 성큼 잘라와 처마 밑 그늘에 걸어놓고, 뭔 허기에 광주리 가득 수백 개의 만두를 빚어 몇날 며칠 이웃들 대접하던 할머니. 나는 숙주나물 시어질 때까지 만두를 먹고 또 먹으면서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존재를 배웠지 - 「정월 초하루」 일부 나는 신좌섭의 언어들이 대거 신동엽의 정신에 연원하고 있는 것을 매우 바람직스럽게 생각한다. 신좌섭의 시어들이 신동엽의 정신에서 연원한다는 말은 그의 가치관이 여기에 발을 딛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신좌섭의 애도는 더욱 가슴 아픈 것이 된다. 한때 신좌섭은 전혀 조급할 필요 없이 미래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아버지 신동엽의 요절로 단절된 신씨 가계사의 서사를 이을 사람이 아들 신재원이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원인불명의 심정지로 요절하고 만다. 눈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엄청난 폭력의 누적 위에서 ‘미처 꽃 피기도 전에 요절한 천재’들의 불우한 서사를 상상하게 된다. 신좌섭의 정신은 정확히 이곳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거의 시를 쓴다는 의식조차도 없이 짧은 시간에 이 많은 고독한 외침들을 쏟아냈으니, 이 시집은 신좌섭의 감춰진 내면을 세상 속에 내놓는 첫 시집이 된다. 그래서 나는 여기 애도의 형식에 담긴 노래들을 신좌섭이 신동엽과 신재원을 대신해 신씨 가계사에 체현된 정신으로 오늘의 세계를 향해 퍼붓는 ‘저항적 순수’의 외침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불행하고 핍박받는 땅에서도 무한한 생명운동을 반복하는 우리 중생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