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성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숙(磬叔)이며 호는 용재( 齋)이다. 1462년(세조8년)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여 박사로 등용되었다. 이어 사록(司錄) 등을 거쳐 1468년(예종 즉위)에 예문관 수찬을 지냈다. 1475년에 한명회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와서 1476년에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여 대사간 등을 지냈다. 그 후 형조참판, 평안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 예조판서 등 요직을 거쳤다.
유자광 등과 함께 『악학궤범』을 편찬했으며 관상감의 중요성을 역설, 격상시켰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공조판서로 대제학을 겸임했다. 죽은 지 수개월 후 갑자사화가 일어나 부관참시를 당했다. 왕명에 따라 유자광 등과 『쌍화점』 등 고려가사를 바로잡았으며 글씨를 잘 썼다. 문집 『용재총화( 齋叢話)』는 조선 전기의 정치 · 사회 · 제도 · 문화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뒤에 신원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허백당집(虛白堂集)』·『풍아록(風雅錄)』·『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주의패설(奏議稗說)』·『태평통재(太平通載)』 등 많은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