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 삶은 그 어느 곳보다 정원에서 펼쳐진다 ‘Life Happens above all in the Garden...’
chapter 1 - 빈센트의 정원 사랑 Vincent’s Love of Gardens chapter 2 - 빈센트의 네덜란드 정원들 1881~1885 Vincent’s Dutch Gardens, 1881~1885 chapter 3 - 빈센트의 파리 정원들 1886~1888 Vincent’s Parisian Gardens, 1886~1888 chapter 4 - 빈센트의 프로방스 정원들 1888~1890 Vincent’s Proven?al Gardens, 1888~1890 chapter 5 - 빈센트의 오베르 정원들 1890 Vincent’s Gardens in Auvers, 1890 |
Ralph Skea
공경희의 다른 상품
|
평생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린 그는, 울타리가 있는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작업에 필수적인 정신적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극심한 정신 질환을 앓을 때조차 조용한 정원에서 위로를 얻었다. 그곳에서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아를에 있는 병원의 회랑 있는 정원과 생 레미에 있는 요양소의 담장 있는 정원은 평안과 안정을 주는 성소였다. 빈센트는 심한 발작을 겪은 후에도 두 곳에서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 p. 17 중에서
빈센트는 정원, 공원, 텃밭을 사랑했다. 거기에는 인간과 자연의 여러 요소가 정점을 이루는 개성이 잘 스며 있었다. 격식 없는 시골 별장의 정원, 화사한 시골 정원, 말끔하게 가꾼 텃밭, 만남의 장소로 삼기에 좋은 낭만적인 공원, 어느 기관의 한적한 정원, 마지막으로 오붓한 가정 정원이 그를 매료시켰다. 모든 종류의 정원에서 빈센트는 ‘그곳의 영혼’을 감지했고, 이는 작품마다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정원 그림은 사람이 만든, 개성 넘치는 장소에 대한 상상력 풍부한 반응인 셈이다. 더욱이 빈센트는 어떤 타입의 정원을 그리든, 멀리 시골까지 갈 필요 없이 각각의 계절이 식물과 빛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줄 알았다. 빈센트는 화가들이 인습적인 기법을 쓰지 말고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여야 된다고 믿었다. --- p. 22 중에서 요양원의 정원은 화가에게 정서적으로 대단히 중요했다. 천국 역할을 했고, 요양원에 머문 동안 네 차례나 정신 발작에 시달린 후 감시의 눈을 피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용한 은신처가 되었다. 빈센트의 위대한 작품 중 일부는 요양원 정원에서 탄생했다. 잔디밭과 큰 소나무들 때문에 그는 그곳을 ‘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원은 피난처였고 그곳에서 폭넓은 자연 모티브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를에서 겪은 정신 발작의 상처뿐 아니라 재발의 위협을 잊으려 애쓸 수 있었다. 그는 요양원 측의 감독 아래 전원 풍경 속에서 작업할 수 있었지만, 어디든 마음대로 이젤을 펼칠 수 있는 곳은 요양원의 정원이었다. --- p. 82 중에서 |
|
“이 정원이 나를 꿈꾸게 합니다.”
너무나도 짧았던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물질적 빈곤과 정신적 난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원이 있었다. 정원은 반 고흐에게 화실이자, 치유의 장소였으며, 지상의 천국이었다. 그는 정원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마음의 위로를 얻고 몸의 기운을 회복했다. 평생 한 번도 자신의 정원을 소유해본 적은 없지만, 늘 정원과 함께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 10년간의 화가 생활 중 그가 남긴 수많은 정원 그림과 스케치에는 외롭고 치열했던 반 고흐의 삶, 그 자체가 녹아 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사후에 얻은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비루하고 고단하기 짝이 없었다. 화상, 교사, 목회자, 책 판매원 등의 다양한 직업을 거친 후, 1880년 8월 스물일곱 살이었던 반 고흐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미 그 시기에 반 고흐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반 고흐에게 있어서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이었다.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남들보다 늦게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벨기에의 퀴에메에서 샤를 데크뤼크의 집 방 한 칸을 세냈다. 그의 첫 번째 화실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너무 좁고 어두워서 반 고흐의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반 고흐가 선택한 화실은 정원이었다. 조용히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으며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었고, 자연 소재를 탐구하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반 고흐에게 외진 장소에 있는 정원은 훌륭한 화실이 되어 주었다. 네덜란드 사람인 빈센트가 식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잘 가꾼 예쁜 정원이 있는 집에서 자랐고, 고향인 북부 브라반트의 자연과 시골의 아름다움을 처음 접한 곳도 바로 정원이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초기 편지에는 정원과 공원 이야기가 넘쳐난다. 청년 시절 영국에 살 때 런던과 외곽 지역 아일워스에서 정원 조경 일을 돕기도 했었다. 고작 10년 정도밖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했지만, 짧았던 반 고흐의 삶 속에서 정원은 단순한 그림 소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키운 곳이기도 하고, 몸과 마음의 고통을 치유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반 고흐는 평생 자신의 정원을 소유한 적이 없다. 『반 고흐의 정원』이라는 책 제목도 어쩌면 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늘 정원과 함께 살았고, 정원을 소재로 한 수많은 드로잉과 채색화를 남겼다. 사람들은 반 고흐의 대표작으로 ‘해바라기’, ‘자화상’,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정물화, 초상화, 풍경화를 먼저 떠올린다. 정원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정원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빼어난 솜씨를 지닌 데생 화가이자 채색 화가인지를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치열했고, 누구보다 고단했던 반 고흐의 삶 그 자체와 그가 품었던 꿈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크게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빈센트의 정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장마다 빈센트 반 고gm의 화가 이력 중 중요한 단계를 다룬다. 화가로서 경력을 시작한 네덜란드 시기(1881~1885), 파리의 대도시 생활 속에서 그림에 몰입하던 시기(1886~1888), 프로방스의 전원을 탐구하던 시기(1888~1890), 북부 프랑스로 돌아가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보낸 생의 마지막 두 달(1890)까지. 반 고흐는 가는 곳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원이라는 모티브에 계속 매료되었고, 그만의 독창적인 드로잉과 채색화를 그려냈다. 58점의 채색화를 포함해 총 75점의 그림이 담긴 이 책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지친 몸을 위로하고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져준 빈센트 반 고흐의 정원과 그가 꿈꾸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만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