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제임스 브루스 토렌스
감사의 글 약어 서론 1부. 도입 질문 1장. 주제의 본질과 범위 2장. 추가 도입 질문: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 2부. 신약성경 해석학의 더 광범위한 쟁점 3장. 해석학과 역사: 역사의 거리라는 쟁점 4장. 해석학과 신학: 해석학의 정당성과 필요성 5장. 해석학과 언어 3부.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 6장.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현존재, 세계성, 이해 7장. 하이데거 초기 사상에서 다루는 또 다른 주제들 8장. 하이데거의 철학 이전에 불트만이 가졌던 해석학적 관심사 9장. 불트만의 해석학 속에 들어 있는 또 다른 철학 요소들 10장. 불트만의 해석학과 신약성경 11장.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과 그 해석학이 신약성경 해석에 시사하는 의미 12장. 후기 하이데거, 가다머, 새 해석학 13장.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하는 철학과 언어 14장. 비트겐슈타인, “문법”, 신약성경 덧붙인 글 A. 비트겐슈타인과 구조주의 덧붙인 글 B.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성경의 권위에 관한 논쟁 15장. 결론 참고문헌 주제 찾아보기 인명 찾아보기 성구 찾아보기 성경 외 고대 문헌 찾아보기 주요 인물 소개 옮긴이의 말 |
Anthony C. Thiselton
앤서니 티슬턴의 다른 상품
박규태의 다른 상품
|
이 책은 해석학 분야를 훌륭하게 개관할 뿐 아니라, 철학이 그 논쟁에 끼친 기여를 아주 속속들이 살펴봄으로써, 철학이 (1) 해석학이 해야 할 과업을 밝혀 주고 (2) 신약성경의 여러 부분이 지닌 의미를 펼쳐 보이며 (3) 해석자의 선이해와 개념 파악 능력을 확대하여 의미론과 전통적 언어학 너머로 이끌어 줄 도구를 얼마나 많이 제공할 수 있는지 묻는다.
--- 「서문(제임스 브루스 토렌스)」중에서 약 15년 전, 데니스 나인햄(Dennis Nineham)은 이렇게 썼다. “나는 이런 성서학자 몇몇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이를테면, 그 문제에 대한 최신 쟁점을 다룰 만한 전문 지식이 있으며…진지한 성서학도 모두에게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학자 말이다.”…하나님이 오늘날에도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믿음은, 해석학 과업을 하찮아 보이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해석학을 더욱더 긴급한 연구 대상으로 만든다. --- 「서론」중에서 해석학 문제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은 텍스트와 해석자가 역사 속에서 부여받은 자리가 그 둘을 규정하는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이해가 생기려면 두 변수가 서로 관련을 맺어야 한다. 가다머가 쓴 지평 융합이라는 이미지는 해석학의 주요 문제와 과업을 서술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공한다. --- 「1장 주제의 본질과 범위」중에서 우리 연구에서는 특정 철학에 진리의 이론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어떤 웅대한 형이상학적 주장도 하지 않으려고 일관되게 노력했다. 하이데거나 가다머나 비트겐슈타인이 신약성경의 진리를 실증한다거나 훼손한다는 주장을 어디에서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철학적 서술이 신약성경 해석자가 마주한 해석학 과업의 본질을 밝히 설명하고 신약성경의 어떤 부분이 가진 의미를 펼쳐 보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고 주장할 뿐이다. --- 「2장 추가 도입 질문」중에서 사실 성서학자들은 “과거의 과거성”이 실제로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가를 놓고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저술가들은 그것을 무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또 다른 저술가들은, 비록 소수이긴 해도, 이 문제의 몇몇 측면을 과장하려 하는 것 같다.…우리는 해석학과 역사의 관계를 체계 있게 재검토하면서, 역사의식의 등장을 관찰하고 역사 이해의 본질을 탐구해야 한다. --- 「3장 해석학과 역사」중에서 그렇다면 전이해가 신약 해석학에서 가지는 중요성이 특별히 신학에 호소하거나 아주 편협한 철학적 근거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 현상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피할 수 없다. 성공회 교리위원회 보고서인 『그리스도인이 믿는 것』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는 준거틀, 성경 밖의 근원에서 유래하여 자신만이 가정하는 유형을 따르지 않고서도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성경을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 「4장 해석학과 신학」중에서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 사이에는 여러 차이점이 있지만, 하이데거도 후기 비트겐슈타인처럼 언어가 인간의 삶에, 진정 인간의 삶 속에 자리한 특별한 맥락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이런 맥락을 삶의 형식에 근거한 언어 게임이라 부르든 현존재의 세계성에 근거한 ‘세계’라 부르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언어는 의사소통 혹은 ‘담화’로 이해해야 한다. --- 「7장 하이데거 초기 사상에서 다루는 또 다른 주제들」중에서 특정 철학의 개념을 인용하는 것은 신약성경 해석자가 본문을 꿰뚫어 보는 자세한 통찰을 갖게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반면, 그렇게 특정 철학의 개념을 인용하면, 한쪽에 치우치고 부분만을 본 해석이 나오게 되어 결국 보완이 필요해진다. 그 해결책은 철학적 탐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철학적 탐구를 포기한다면 불트만의 연구 결과가 지닌 유익한 측면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오히려 해결책은 다른 여러 전통에서 다양한 개념을 가져온 뒤, 각 개념이 이룰 수 있거나 이루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는 자세로 비교하는 것이다. --- 「10장 불트만의 해석학과 신약성경」중에서 루터는 본문 해석이 단순히 해석자 자신의 사상과 태도를 반영한 것에 그치지 않으려면 본문과 해석자 사이의 충분한 거리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 말씀 ‘아래’ 놓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하지만 루터는 본문이 해석자를 파악하고 해석자에게 말을 건네며 해석자는 본문의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평 융합 역시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가다머의 작업은 이 두 측면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을 이론 차원에서 실증한다. --- 「11장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과 그 해석학이 신약성경 해석에 시사하는 의미」중에서 비트겐슈타인의 통찰을 신약성경 해석에 적용하는 것을 좁은 의미의 문법 발화 논리에 주목하라는 요구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신약성경 전체를 인식과 상관없는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신약성경 저자들이 볼 때, 기독교 신앙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넘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 「14장 비트겐슈타인, “문법”, 신약성경」중에서 해석학의 목표는 지평 융합을 향하여 꾸준히 전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목표는 각 지평의 특수성을 온전히 고려하고 존중할 때에 비로소 이룰 수 있다. 이는 곧 본문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본문이 말할 수 있게 함을 뜻한다. --- 「15장 결론」중에서 |
|
성경 읽기와 이해
경전은 종교의 근간을 이루는 문서이며,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하는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탐구하였고, 그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신앙에 몰두하는 방향으로, 누군가는 회의적인 방향으로 변해 가기도 했다. 읽기는 독자의 입장에서 저자의 입장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읽기를 통해 발생한 이해는 변화를 수반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해석의 문제를 고민해 왔다.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기독교인의 고유한 성경 이해 방식이 있는가? 철학적 해석학과 성경 해석 고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세속 철학이 기독교 신학을 타락시킨다는 우려를 담고 있는 이 말은 이후에도 많은 신앙인의 내면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문화적 배경과도 동떨어진 언어 사용과 이해는 불가능하며, 이는 성경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표현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계시의 의미, 진리의 객관성과 주관성에 관한 이러한 문제의식은 특별히 18-19세기 근대를 거치며 계속하여 일어났고, 20세기에는 이 문제의식을 종합하여 해결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오랜 해석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에서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해석학을 발전시켜 나갔고, 티슬턴의 작업은 그 연장선에 있다. 왜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인가? 그렇다면 왜 티슬턴은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네 사상가를 골랐는가? 티슬턴이 보기에 이 넷은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당대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삶의 자리, 전이해, 언어 규칙 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안에 관해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티슬턴은 이 사상가들의 저작을 꼼꼼히 읽어 나가며, 이들의 작업이 성경 해석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상세히 분석한다. 1차 저작을 읽으며 영향사를 분석해 나가는 티슬턴의 장점은 이 책에도 녹아 있으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각 사상가의 특징 및 기여와 한계를 드러낸다. 성서학자답게 불트만을 냉철하게 평가하면서도 불트만이 오해받는 부분과 신약학계에 기여한 바를 분명히 짚어 내며, 철학자들의 사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단순히 그 사상에 묻어가지 않고 신학자로서 통찰을 내보인다. 지평 융합과 진리를 향한 열정 티슬턴은 현대를 살아가는 영국 성서학자로서 성경 본문의 고유한 지평과 독자의 고유한 지평 모두를 존중한다. 그는 지평 융합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이 융합을 향한 길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해석에 참여하는 지평 모두를 존중할 때 그 길이 열린다고 본다.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성경을 존중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성경 해석과 그 결과에 따라 두드러진 삶의 양상을 보일 때가 많다. 티슬턴이 한국 기독교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그의 논의가 한국의 그리스도인 사이에 있는 정서에 파고들어 그들이 진정으로 성경과 해석자인 그들 자신을 존중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평 융합의 길은 단순히 성경 텍스트를 이해하는 길일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독자대상 - 깊이 있는 성경 해석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목회자, 신학생 - 현대 철학과 신학의 주요 사상가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찾는 그리스도인 - 성경, 신학, 철학을 넘나드는 전문적 논의를 즐기는 독자 - 성경의 세계와 오늘의 삶을 심도 있게 연결하기 원하는 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