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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Ⅰ 출발을 위한 느긋한 채비 전화벨 소리 잠의 사용법 망명 사진 적당한 순간 책들의 시간 어느 카페 안에서 얼어붙은 창문 뒤쪽 밤 열차 세제르라는 이름의 시인 비 내리는 맨해튼 부루클린의 작은 방 가방 마지막 아침 Ⅱ 귀향 호텔의 발코니 인간의 강 새들은 어디로 떠났을까? 사람들은 이곳에서 죽지 않는다 지역적인 삶(이전과 이후) 무無로의 여행 방에서 전쟁 중인 게토 풀밭 위의 작가 도시가 수다를 떨고 있다 어머니의 노래 슬픔이 춤춘다 사회적인 문제 맹목적인 사수 원시 그림 속에서 죽다 배고픔 조카의 해석 죽은 자들이 우리 안에 있다 잃어버린 사물들과 사람들 소설의 창문을 통해 붉은 지프 소와송라 몽타뉴 부근의 소박한 그림 같은 작은 묘지 열대의 밤 절름발이 세대 설사에 대한 찬가 비가 달아나고 있다 무심한 젊은 여자 오토바이를 탄 살인자 대학 근처에서 오래된 카리브 해의 바람 베나지르 부토의 죽음 극서 지역 승용차 뷰익57 속의 전 혁명가 어떻게 70년을 한 박물관 안에서 살 수 있는 것일까? 신과 마주치는 인간들 바나나 나무 아래 앉은 한 남자 바다와 마주한 창문 내 아버지의 다른 친구 녹색 도마뱀 남쪽으로 카리브 해의 겨울 폴린느 켕게의 아들 이별식 여기 바라데레, 내 아버지의 고향 한 댄디가 댄디로 죽었다 그 지방의 아이 마지막 잠 옮긴이의 말 |
Dany Laferri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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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든 올 수 있다.
목덜미를 가격하는 한 발의 총알처럼, 한밤중의 붉은 뇌우처럼. 죽음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볼 틈도 없이 그렇게 빠르게 도착하는 것이다. 이런 속도가 바로 죽음의 존재를 의심하게 하는 모양이다. --- p.111 나는 저곳에서 살기 위해, 저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모르면서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을 내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 이는 몬트리올에서 사람들이 내가 포르토프랭스에 있다고 믿고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사람들이 내가 몬트리올에 있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아직 몬트리올에 있다. 죽음은 이 두 도시에서 어떤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 p.158 짓밟힌 풀로 만들어진 이 오솔길은 묘지를 가로질러 지방도로로 이어지는 자갈길로 통하고 있다. 아버지가 포르토프랭스로 가기 위해 맨 처음으로 갔던 길이다. 몇 년 후에 라 아반느, 파리, 제노바, 부에노스 아이레스, 베를린, 로마 그리고 세계의 대도시에 가기 위해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지나간 길이다. 검은 알파카 양복과 같은 색의 좋은 넥타이를 맨 아버지를 보러 뉴욕으로 가기 위해. 항사 우아하게 맨, 그 사람들처럼. 아버지의 유일한 특징은 그의 얼굴에 고정된 웃음, 고통의 극적인 경련의 징표였다. -355p 내 아버지는 고향에 다시 돌아왔다. 내가 그를 데려왔다. 얼음이 뼈까지 불태울 것은 몸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큰 외로움에 정면으로 대적하게 했던 영혼이다. --- p.358 사람들은 항상 자신 앞에 너무나 많은 희망을 두고 자신 뒤에는 너무나 많은 실망을 둔다. 삶은 죽은 시간 없이 흘러가는 긴 리본이다. 그리고 유연한 순간 속에서 희망과 실망이 교대한다. --- p.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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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 오르한 파묵, 폴 오스터, 도리스 레싱 등
세기의 거장을 배출한 메디치상 수상작가, 다니 라페리에르! 그가 읊조리는 지독한 ‘운명’의 랩소디 망명자의 ‘깊은 슬픔’으로 프랑스 문학에 일대 쿠데타를 일으키다 『슬픔이 춤춘다(원제:L'enigme du Retour)』는 아이티의 독재를 피해 망명한 소설가인 주인공의 33년 만의 귀향을 따라간 소설이다. 2009년 메디치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시와 산문을 오가는 독특한 형식의 글쓰기로 프랑스 문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망명자로서의 슬픔을 서정적으로 승화시켜 큰 화제가 되었다. 메디치상은 콩쿠르상, 페미나상과 함께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팔린『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트 에코를 비롯 오르한 파묵, 폴 오스터, 도리스 레싱 등 걸출한 세기의 거장들을 배출한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다니 라페리에르는 전통적인 기법을 깬 실험적인 글쓰기로 21세기 이방인의 아픔을 그려 메디치상을 수상하였고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내 아버지가 방금 돌아가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슬픔이 춤춘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통보로 시작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여지없이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20세기의 『이방인』은 점점 사라져가고, 21세기에 찾아든 혹은 나타날 새로운 ‘이방인’에 대한 예감이 심장을 걷잡을 수 없이 뛰게 만든다. 새로운 글쓰기 기법 역시 독자들을 가슴 뛰게 만들 것이다. 시와 산문을 오가는 실험적인 방식을 통해 작가는 아이티라는 먼 나라의 아름다움과 함께 이에 대비되는 가난과 폭력을 담아낸다. 그 문체 덕분에 강렬한 열대 이미지들을 모자이크처럼 이어나가는 회화성 역시 돋보인다. 일상 속의 지혜를 풀어낸 그의 잠언들은 우리들의 헛헛한 마음에 날카롭게 와 닿는다. 그 날선 아름다움은 마음 둘 데 없는 망명자의 귀환, 그리고 경계인의 ‘깊은 슬픔’과 사슬처럼 이어지는 망명자의 삶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다. 마음 둘 곳 없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귀향,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죽은 시간 없이 흘러가는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슬픔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33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나’는 호텔에 머물면서 고향집을 오간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고 아버지와 함께 독재에 저항한 4인방 중에 남아 있는 이들을 찾아 길을 나선다. 포르토프랭스를 출발해 쁘티고아브, 아켕을 거쳐 아버지의 고향인 바라데레에 닿을 때까지의 여정이 인상주의 그림처럼 묘사된다. 사랑하는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기원을 찾아 떠난 그 길의 끝에는 아이티 사람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이 살아 움직인다. 빈곤, 굶주림, 폭력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나는 예술가의 혼, 끔찍한 가난 주변을 맴도는 어린 소녀들……. 아이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난과 기아,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지만 이 모두를 힘껏 껴안고 있는 것은 이곳에서 삶을 견뎌내는 이들의 희망이었다. 그 희망의 증거를 목격한 주인공은 아버지의 고향으로 서서히 몸을 옮긴다. 비록 아버지의 몸은 뉴욕 맨하튼의 한 묘지에 묻혔지만, ‘나’는 아버지의 고향인 바라데레에 도착해 비로소 아버지의 영혼을 내려놓는다. 혁명을 꿈꾸었지만 실패한 한 망명자의 진정한 귀향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던 ‘나’의 긴 여정은 그곳에서 끝이 난다. 『슬픔이 춤춘다』는 제목 그대로 작품 전체에 슬픔을 짙게 깔려 있다. 아버지의 부고로 인해 한 인간의 삶이 끝났음을 알릴 뿐만 아니라 이는 결국 한 세대의 사이클이 마감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별은 눈물이나 설움의 형태가 아니라, 보다 내재화되고 승화된 형태로 소설 전체를 감싸 안는다. 엉엉 소리 내어 울거나 말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아니면 아예 슬픔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슬픔이 힘이 되어 온몸으로 춤추게 만드는 것이다. 그 슬픔의 한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신의 존재를 되새김질하면서 ‘나’는 긴 여정을 갈무리한다. 열대의 아이티, 영하의 망명지를 떠도는 영혼은 그제야 잠시 가쁜 숨을 고른다. 과거와 현재가 뼈 아픈 화해를 하는 곳, 자신의 고향에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