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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장 고대의 해적질 2장 바이킹과 바르바리 해적들 3장 극동의 해적들 4장 해적의 민주주의 5장 바닷가의 형제들 6장 카리브 해의 전설 7장 해적질의 황금시대 8장 오늘날의 해적질 부록 한국 선박과 선원들의 소말리아 해적 피랍일지 참고문헌 |
Brenda Ralph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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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 매년 잊을만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바다를 공포에 떨게 하는 해적들. 창문 하나 노리는 수준의 초고공 정밀폭격이 가능한 이 시대에, 어째서 해적들은 열세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낭만과 전설의 존재였던 해적들, 고대로부터 전세계적 범죄조직과의 연계에 이르기까지, 해적의 모든 면면을 샅샅이 훑어본다.”
지난 1월 21일,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와 선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이른바 ‘아덴만의 여명’이라는 이름의 군사작전을 펼쳤다. 물론 이런저런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질을 모두 구출했으며(선장은 중상을 입었지만), 해적 중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한 성공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런 단발적인 군사작전에 대해 3000년이 넘는 해적의 역사를 고찰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은 그저 한순간에 불과했다.” 해적에 관한 기록은 기원전 13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야말로 인류가 배를 만들어 바다를 항해한 바로 그 시절부터 해적들은 존재해 왔다. “해적의 역사”는 고대 해적들, 바이킹, 일본의 왜구, 제국주의 시절의 사나포(승무원은 민간인이지만 정부로부터 적의 배를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무장한 사유 선박) 업자들, 그리고 남중국해와 소말리아 등에서 활동하는 현대의 해적들까지 거의 모든 해적들의 역사를 되짚는데, 단순히 해적들의 역사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각 시대 별로 해적들에 대항하고 맞서온 온갖 노력과 투쟁들도 함께 살핀다. 그리하여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해적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바다의 이야기를 많은 그림 자료들과 함께 생생히 전달한다. 해적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해적에 대해(특히 서양의 해적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을 잘 나타내는 단어는 ‘모험’과 ‘낭만’일 것이다. “보물섬”과 같은 문학작품이나 “캐리비안의 해적” 등의 영화가 멋진 이미지의 해적들을 만들어 냈다. 물론 낭만이나 모험을 찾아 바다로 떠난 해적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적들은 거칠고 욕심 많은 악당들이었다. 저자인 브렌다 랄프 루이스는 그 점을 분명히 한다. 해적들의 무자비한 약탈에 마을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 고향 땅에서 끌려나와 머나먼 이국의 노예로 팔려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중세의 멋진 범선들을 타고 바다를 탐험하는 해적의 이미지는 지워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해적을 단지 악질적인 도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것은 말 할 것도 없이 가난과 배고픔 때문이었다. 사람에는 여러 종류가 있듯, 해적 역시 마찬가지다. 모험을 찾아 나선 이들도 있었고, 너무나 잔인하여 필요 이상의 폭력과 살상을 행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적들은 기근과 가난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갔다. 특히 제3장 ‘극동의 해적들’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일본의 해적(왜구들)에 대해 자세히 살피는데, “흉작과 기근, 그리고 가난과 결핍이라는 고통에 짓눌린 사람들의 절망은 또 다시 해적질을 하도록 만든 요인이었다.……수많은 해적들이 붙잡혔고, 이따금은 목이 잘렸는데, 그러면 잠시 동안은 그들의 활동도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상황이 나빠지고 또다시 굶주림이 찾아오면 이내 해적들은 출발점으로 되돌아갔다.”(76쪽) 왜구들은 조선이나 중국뿐 아니라 이웃나라들과 외교적 분쟁을 만들지 않으려는 일본의 지배층 사이에서도 골칫거리였다. 생각해보면 조선, 중국, 일본 3국이 군사작전이든, 기근의 구제든 서로 협력하여 대처했다면 왜구에 의한 주민들의 손실이나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해적 문제의 해결에 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또한 흔히 하는 해적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포악한 선장이 독재자와 같은 권력을 휘두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막연한 생각이다. 해적의 규율 해적들은 분명 잔혹한 약탈자였지만 아무런 규칙 없이 위험한 바다를 떠도는 망나니들은 아니었다. 민주주의란 단어가 생소한 17∼18세기에 이미 해적들은 나름대로 공정한 그들만의 규율들을 가지고 행동했다. 물론 중요한 결정은 선장이 내려야 했지만 선원들도 그저 선장만을 바라보며 바다를 떠돈 것은 아니다. 그들 사이에는 계약이 존재했고, 17세기에 들어서 그 계약은 조항별로 정리되어 ‘협의조항’이라는 문서 형태로까지 만들어졌다. 협의조항은 보통 약탈을 하러 바다로 나가기 전 선장과 선원들이 일회성으로 맺는 계약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선장뿐만 아니라 거칠고 사나운 선원들을 통재하기 위해서 양쪽 모두는 서로에게 공정한 규율이 필요했다. 해적들은 투표로 많은 것을 결정하였으며 심지어 선장을 내쫓는 것도 가능했다. 약탈한 물품을 나누는 것도 선장의 임의가 아니라 지위에 따라 공정하게 배분했으며, 해적질을 하다 다쳤을 경우, 그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상세히 적혀있다. 도박이나 술도 매우 엄격하게 금지했고, 사형이나 외딴섬의 유배 등 무거운 형벌을 받는 죄목을 상세히 밝혀서 그런 형벌이 임의적으로 마구 행사되는 것을 막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진 도적들의 규율들이 오늘날 상선 안에서의 규칙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해적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근대에 들어와 해적들은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국제관계와 외교에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되었다. 제국주의와 해적들 해적들에게 가장 큰 위협을 주었던 것은 바다를 통해 식민지를 넓히고자 했던 스페인, 영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건설과 그곳의 보물을 본국으로 수송하는 데 방해가 되는 해적들을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식민지 건설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적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밍스라는 해적은 영국 해군 출신으로 어느 순간 바다의 약탈자로 변신한 인물이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밍스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카리브에서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는 스페인의 기반을 흔들고 무너뜨리려는 영국의 변함없는 대외정책에 이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139쪽) 이는 앞서 말한 단발적인 군사작전으로는 왜 해적을 근절시킬 수 없는가에 대한 대답일 수 있다. 제국주의 시절 많은 해적들이 유럽의 정부나 왕실과 연계되어, 혹은 사실상 그들의 보호 아래 해적질을 했던 것처럼, 오늘날 해적들은 국제적인 범죄조직과 손을 잡고 활동한다. 인도네시아나 소말리아의 해적들은 거의 단순한 행동대원일 뿐이며, 그들은 어떤 배가 어느 항로로 움직이고 그 배에 실린 화물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나포한다. 이는 한 번의 해적질에 많은 이들이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배들이 많이 나포된 소말리아 해역의 해적들은 영국의 범죄조직과 연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말라카 해협(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해협)의 인도네시아 해적들은 중국 본토나 홍콩,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범죄조직의 지원을 받는다. 즉 가장 위험한 바다에서의 활동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맡고 있으며 그들을 조종하는 것은 부유한 나라의 범죄조직들이다. 그러므로 “한 순간에 불과한 성공”이 아니라 진정으로 바다의 평화를 원한다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해적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서 해적들보다 더 많은 몫을 챙기는 이들에 대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