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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속에는 그리스도와 붓다가 다 들어 있다
2. 삶은 결국 만남의 연속이다 3. 시대의 불빛이 내 불빛이길 빌면서 4. 역사는 독기와 향기의 변증 관계다 5. 남의 글을 읽는 것은 내 글을 쓰기 위함이다 6. 대학은 개인을 숭상하는 곳이다 7.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물음과 대답으로 이어진다 8. 모든 이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며 9. 흔들림 없이 뿌리 내리는 나무가 어디 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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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거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때 그 기쁘고 고맙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이 힘이 되어 계속하여 생각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오늘도 또 편지를 쓴다. 어떤 때인가 나는 내가 ‘진리의 편지’가 된다면 참으로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기까지 나는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외로워서 그런다. 그렇게 쓰다보면 혹 진리의 말씀 궁극의 소리가 편지지에 묻어 들려오지 않을까? 그래서 그것을 내 운명이요, 삶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될 수 있겠지. 이제는 붓이나 펜으로 쓴 편지가 아니라 삶으로 쓰는 편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p.10
여러분에게 편지를 쓰려니 매우 막막하네. 아직 수업을 통해 만난 것이 아니고 전체 모임에서만 보았을 뿐이기에 더욱 그러하네. 가만히 내가 대학에 들어갔던 때를 되돌려 생각해보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의 일이니 빨리 지나가고 달라지는 세상의 속도에 따르면 먼 원시 시대라고 해야 하겠지. 그때 나도 매우 우왕좌왕하고 방황했던 것 같아. 대학은 스스로 공부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만 들려주었지 어떻게 스스로 해야 하는지는 일러주지 않았어. 오늘의 대학은 그때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 같아. 이름이 대학이지만 ‘큰 배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게 됐어. 깊은 학문을 연구하고 배우지도 못하고 탁월한 전문 기술을 배우는 곳도 아니며 높은 인격을 도야하는 것도 아니야. 바깥 사회가 많이 달라진 것에 비해 대학은 크게 변화하지를 못했어. 스스로 자기 변혁을 하지 못하고 바깥 세계가 변하니 덩달아서 마지못해 변한 꼴이지. 대학 자체가 자기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 새롭게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비전을 분명히 주지 못하고 어벙벙한 상태로 있는 거 같아.---p.184 우리의 삶을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 구별하고 규정하는 것은 품위가 떨어지는 천박한 틀이라고 봐요. 우리의 삶은 성공과 실패의 패러다임을 훨씬 뛰어넘는 아주 위대한 것이에요. 그래서 좀 더 통 크게 툴툴 털고 허허 웃으면서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중간시험이 끝났으니, 답안을 잘 썼다, 못 썼다는 것을 넘어 깊은 삶의 체험으로 들어가면 좋겠어요. 특히 젊은이들은 일찍 ‘성공-실패’의 틀을 완전히 뒤바꾸어 참신하고 산뜻한 독특한 틀을 만들어보면 좋겠어요. 젊음의 특권을 최대한으로 잘 나타내고 창의력이 발현되도록 애쓰면 좋겠어요. ---p.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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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대의 낯선 스승의 편지
교사가 학생을 폭행했다거나 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는 뉴스, 혹은 학부모가 교실에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시대가 되었다. 초·중·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곳으로, 대학은 직업 양성소로 전락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때 ‘스승’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조용한 대학 캠퍼스에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는 학생에게 전해지고, 학과 게시판에 붙었다. 수업 관련 공지 사항도 아니고 학생들이 쓴 대자보도 아닌 이 편지는 순식간에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가르치는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쓴 스승의 편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도 뒤처지는 SNS 범람의 시대에 소박한 이 손 편지는 낯선 만큼 울림이 크다. 제자 한 명을 위한 기도와 단상이 담긴 편지는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아침 하루에 한 통씩 450명에게 전해졌다. 방황하는 제자를 향한 스승의 편지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처럼 바로 댓글을 달 수도 없고, 손쉽게 글을 퍼가거나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지만, 넓은 파급력 대신에 깊은 소통을 담당했다. 청춘에는 매뉴얼이 없다 있는 힘껏 방황하며 생각하라!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기성세대는 죄인이다. 이러한 현실을 물려줄 수밖에 없어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런데 심정적으로 이러하면서도 이 시대는 앞뒤 좌우 꽉 막힌 어두운 터널 속에 놓인 청춘에게 참 많은 것을 바란다. 20대에 꼭 해야 하는 일은 목록화되어 무게감을 더해 청춘을 누른다. 그러나 저자는 청춘에는 매뉴얼이 없다고 한다. 그저 방황하고 생각하라고 한다. 생각하는 법이 몸에 배는 것. 청춘에게는 그것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다. 이때 생각의 씨앗을 던지는 것이 스승의 몫이지, 매뉴얼을 가르치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김조년 교수의 편지는 나에 대해, 타자와의 소통에 대해, 시대와 역사에 대해, 지금 자기가 속해 있는 대학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의 삶과 앞으로 삶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독자 역시 내면을 향해 자연스럽게 질문하도록 안내한다. 스스로 질문하며 방향을 찾아 만든 자신의 길이 우리가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부족한 시대에 던지는 씨알사상 저자는 편지마다 각자의 기준으로 생각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땅의 청춘이 아파하는 이유가 생각하는 힘의 부재에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저자가 이토록 개인 저마다의 생각에 방점을 찍는 것은 20세기 대표적인 우리 철학자 함석헌 선생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저자인 김조년 교수는 사상가이자 민권운동가로 ‘한국의 간디’라는 별명을 지닌 함석헌 선생의 충실한 제자로 유영모-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씨알사상의 계보를 잇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 주체의 철학에 감흥을 받은 저자는 각자의 주체적인 생각이 개인의 삶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운명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경재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밝힌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더욱 인간다운 얼굴을 한 사회로 변화하고 성숙하려면 대학의 젊은이들이 그런 세상을 꿈꾸며 생명 중시의 가치관을 지니고 사회로 진출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저자에게서 살아 있는 연어 떼들처럼 시대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주체적 인격체가 되도록 학생들을 도우려는 참교사의 범례를 찾을 수 있다.” 흔들리는 청춘들이 중심을 잡고,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갈 때 사회가 성숙해지고 다음 세대 청춘들이 더 행복할 수 있다. 청춘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신의 청춘은 안녕한가요? 10년 뒤, 20년 뒤가 아닌 당장 1년 뒤, 6개월 뒤가 보이지 않는 것이 요즘 청춘의 현실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청춘의 솔직한 생각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다림에도 끝이 있다고 말한다. 기다리며 흔들리는 방황은 젊은이의 특권이며, 방황 끝에는 안식처가 있다고 위로한다. 가혹한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10년 뒤, 20년 뒤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현재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답한다. 미래와 과거에 대한 고민으로 순간을 허비하지 말고 현재에 몰입하여 하고 싶은 일을 확실히 알고 하루하루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안감에 패하여 생각을 멈추고 다시 걸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 우리에게 지금 길옆에 핀 들꽃을 보며 다시 걷기 시작하라고 독려한다. 인생에는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이 통하지 않고 방황에는 끝이 있는 법이니 묵묵히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청춘이 있다면, 이제 저자가 뿌린 생각의 씨앗을 품고 다시 길을 나설 차례다. 저자는 오늘도 청춘에게 안부를 묻는다. 당얽의 청춘은 안녕하냐고. 생각대로 걷고 있느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