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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말 / 7
제1장 여는 글 - 요한 복음서에 담긴 믿음의 여정 / 11 제2장 세례자 요한 / 33 제3장 카나의 혼인 잔치와 예수의 어머니 / 67 제4장 니코데모 / 95 제5장 사마리아 여인 / 127 제6장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 149 제7장 라자로의 소생 / 173 제8장 예수가 사랑한 제자 / 191 제9장 마리아 막달레나 / 233 제10장 ‘쌍둥이’라 불린 토마스 / 263 참고 문헌 / 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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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와 ‘보다’, 이 두 동사는 요한 복음서에서 ‘믿다’와 동의어로 쓰인다. 믿음은 한순간에 어떤 확신의 경지로 올라간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역동적인 움직임, 곧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육화한 ‘지혜’와 함께 머물기 위해 그가 묵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또한 믿음은 ‘보는 것’이다. 이는 단지 스승이 묵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 안에서 예수를 통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것이 곧 믿음이다
--- pp. 17-18 세례자 요한을 통해 우리는, 믿음과 겸손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배운다. 실제로, 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해 가는 과정이 바로 겸손의 길이었다 --- p. 59 마리아가 중재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잔치의 상황을 제일 먼저 간파한 사람이 바로 마리아다. 이는 다른 이에 대해 자연스럽고 끊임없는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살다보면 우리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다른 이의 절실한 속사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우리에게 마리아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 바로 다른 이에 대한 관심 어린 시선과 하느님에 대한 신뢰다 --- pp. 89-90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헤아릴 수 있는 신앙적 가르침은 무엇인가? 우선 신앙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신앙은 하나의 만남에서 발생한다. 그 만남은 물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욕구 안에 잠재된 더 깊은 열망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망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생생히 만나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신앙은 대화이다. 이 대화 안에서 인간은 숨겨진 자아를 발견하고 예수가 이 세상의 구세주임을 알아보게 된다. … 신앙은 해방이다. 우물물에 의지하는 삶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유로워진 신앙인들은 수로水路가 된다. 그리고 이 수로를 통해 살아 있는 물인 예수가 흘러나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줄 것이다 --- pp. 143-144 어두움 속에서, 반대와 적대감 속에서 믿음을 간직한다는 것은 자신의 온 삶을 다해 밤의 한가운데에 하나의 빛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치유 이야기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에 전해 주고자 하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유 익하고 풍요로운 가르침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 p. 171 우리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예수를 알아볼 수 있었던 신앙적 통찰력일까?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녀의 신앙에 따른 결과이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배울 위대한 점은 바로 인내와 용기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특징짓는 것은 바로 ‘서 있음’이다. 십자가 곁에 서있었고, 무덤에 서 있었다. 그렇게 ‘머물렀고’, ‘견디었으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 pp. 258-259 분명한 사실은 우리 각자에게 맞는 방식과 그 시간을 주님께서 잘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그렇게 찾고 계신다. 우리 눈에 고집이 세고 완고하게 보이는 사람들조차도, 또 그 안에서 주님을 끝까지 거부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주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위한, 우리 신앙을 위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보증이다. 바로 그것을 우리 모두의 쌍둥이인 토마스가 잘 보여 준다 --- p. 2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