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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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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h Kyu Hong,高圭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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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찾는다는 건 나무만 만나는 게 아니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나무를 온전히 만나려면 나무와 더불어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의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 땅의 나무가 모두 그렇다. 나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가며 우리 사는 세상을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일궈간다.
--- p.78 모든 생명이 그렇다. 쌍둥이도 똑같지 않다. 오래 보지 않았고 자세히 살피지 않았기에 똑같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꽃 아니어도 세상의 모든 생명들 사이.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는 바라보는 사람에게 기쁨과 사랑을, 미소와 희열을 전해준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다르다. --- p.187 한참 땅에 엎드려 꽃을 바라보고 나면 이제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심지어 뽑아버리기 일쑤인 풀 한 포기가 이 땅의 여느 생명 못지않게 귀한 생명 존재로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는다. 바라보는 사람 많지 않은,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의 생명은 그렇게 태어난다. --- p.203~204 꽃은 역시 산 깊은 곳 길섶에서 우연히 문득 만나야 생명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있다. 생식능력을 잃지 않고 온전히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한창 생명 활동에 나선 바로 그 꽃, 원초적 본능의 그 꽃! --- p.228 나무 곁에 머무르면서, 나무의 온갖 표정을 하나둘 헤아리는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 나무를 스치고, 나무 앞에서 있는 내 곁을 흐르는 시간이다. 언제나 시간 흐른 뒤에야 깨닫는다. 저녁 되어야 겨우 허기를 느끼는 텅 빈 배 속과 다르지 않다. 천 년을 사는 나무 앞에서 흐르는 세월의 속도를 뒤늦게 깨닫자 백 년을 채 못 사는 사람살이의 세월이 서러워진다. 사람의 마을에서 떠나보내는 봄을 아쉬워하는 짧은 시 한 수가 가슴에 오래 남는 이유다. --- p.249 사철 푸른 잎, 꺾이지 않는 꼿꼿함, 사람들은 대나무의 듬직한 자세를 사람의 절개에 비유했다. 그래서일까. 대나무 곁에는 벌도 나비도 꼬이지 않는다. 꽃이 없으니 벌 나비가 찾아들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시인은 꽃도 벌도 나비도 없는 대나무를 번거로움을 피하려는 대나무의 순결함 때문이라 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 일으켜 세우는 사람살이 의 지혜다. --- p.256 |
“나무와 함께하는 삶은 마침내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나무 한 그루에서 일으켜 세우는 사람살이의 지혜 저자는 옛시에 새겨진 나무의 흔적을 새롭게 찾는다. 선인들은 오늘의 우리보다 나무와 함께하는 자연적인 삶에 충실했다. 나무가 대상물로만 머무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벗과 다름없었다. 따라서 나무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는 더 굳건하다. 대나무는 꽃을 60년에 한 번 피운다. 대개의 식물이 사계절로 한 살이를 이루는 것에 비해 대나무는 60년을 한 살이로 본다는 것. “사철 푸른 잎, 꺾이지 않는 꼿꼿함”이 있고 꽃이 없으니 벌 나비 찾아들 이유가 없음을 옛 시인은 노래한다. “한 마디 다시 또 한 마디/ 천 가지에 돋은 만 장의 잎/ 스스로 꽃 피우지 않고/ 벌 나비 부르지 않는다”(정섭, 「대나무꽃」) 대나무의 인내와 듬직함을 사람살이에 대입하며 저자는 말한다. 꽃잎 하나 바람 한 줄기 그늘 한 줌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주어지는 건 없다고, 자연의 생명만큼 제 앞의 사정에 치열하게 맞서는 것이 없다고 설파한다. 스스로를 엄혹하게 다스려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의 한결같은 태도에 감탄한다. “아슬아슬한 삶의 고비를 넘어선 기쁨의 소리이고, 생명의 울림”인 나무 곁에서야말로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음을 아는 저자의 고견이 귀하다. 매실나무 잘 키워 매화꽃 보고 소나무 길러 솔바람 소리 들으며 대나무 키워 삽상한 그늘에 들고 국화 길러 떨어지는 꽃을 먹는다 오래도록 잘 키우는 법 물으니 나무 곁 덤불부터 잘라내라 하네 마음 기르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욕망의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 허나 욕심 버리기 쉽지 않으니 하릴없이 늘 깨어 있는 수밖에 -정온, 「한가로이 노래하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저마다 다르다” 나무 읽기는 곧 사람 읽기 “오래 보아야 예쁘고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이즈음의 시구는 참 좋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나무를 본다는 것은 사람을 본다는 것과 같다. 식물 관찰의 가장 바탕이 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세심함이다.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거의 비법이라 해도 될 만큼 놀라운 결과를 일으킨다. 관심과 정성을 가지고 관찰하면 세상의 모든 꽃들은 다 예쁘고 사랑스럽다. 정성된 관찰이 없으면 제아무리 예쁜 꽃이라 해도 그게 다 그것이다. 보면 볼수록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꽃들은 저마다 다르고 예쁘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동백과 목련이 다르고, 국화와 수선화가 다르다고, 비슷한 종류의 나무들에서 피어나는 꽃도 그렇다고 말한다. 배꽃과 오얏꽃이 그렇고,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그렇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그루의 나무에서 피어난 꽃송이들조차 서로 다르다. 똑같은 건 단 하나도 없다고 말이다. 저자는 박제가의 옛시를 읽어주며, 꽃 아니어도 세상의 모든 생명들 사이,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는 바라보는 사람에게 기쁨과 사랑을, 미소와 희열을 전해준다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다르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의 온갖 꽃들을 붉다고만 할 수 없어라 꽃술마다 제가끔 다르니 오래 자세히 살펴야 하리 -박제가, 「꽃술」 나무와 시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다양하다는 것, 흔하지만 그냥 지나치기 쉽다는 것, 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가까이 두고 음미하면 할수록 보이고 들리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잠시 멈춰 관찰하고 기다리면 지금껏 몰랐던 감동을 준다는 것. 천천히 걷다 보면 목적지만을 향해 빠르게 달릴 땐 미처 몰랐던 여러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우연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무와의 만남, 그리고 옛시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천년 세월의 이야기를 듣고, 오랜 사람의 향기에 눈뜨게 된다.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까지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은 없음을 다시 강조한다. 옛시를 통해 선인이 “나무로 지은 언어의 사원”, 그 오래된 나무의 품을 다시 우리의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눈과 귀가 밝은, 오랫동안 길 위의 나무 이야기를 받아 적었던 저자의 요원한 세월이 앞서서 우리를 이끈다. 75편의 ‘나무-옛시’와 함께 그 소중한 시간을 가늠해볼 기쁨이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