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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배운다
비틀린 문명과 삶, 교육을 비추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깊은 지혜와 성찰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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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의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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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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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장인의 시대를 증언하다

1부 - 나무에게 배운다
천 년을 사는 가람을 짓고 지킨다는 것 ∥ 자연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라 ∥ 성깔을 살려 강하고 튼튼하게 ∥ 살아온 만큼 살려서 쓴다 ∥ 솜씨와 더불어 감각을 기르는 일 ∥ 긴 호흡으로 나무를 길러야 한다

2부 - 오래된 것에는 새것이 짊어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아스카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지혜를 배운다 ∥ 오래된 목재는 보물이다 ∥ 목수의 혼이 실린 연장 ∥ 주춧돌, 천삼백 년을 버텨 온 힘의 근원 ∥ 학교나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 ∥ 나무를 다루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 ∥ 장인과 건물이 학자보다 먼저다

3부 - 싹을 기른다는 것
도제 제도를 다시 살핀다 ∥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나무를 기르듯이 ∥ 아이의 싹을 찾아내 기르는 어머니처럼 ∥ 제힘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 쓸모없는 것은 없다 ∥ 섣부른 칭찬은 독이다 ∥ 굽어진 것은 굽어진 대로,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진 대로

4부 - 나무와 더불어 살아오다
엄한 할아버지 밑에서 대목장으로 자라다 ∥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잇다 ∥ 아이들에게 대를 물리지 않은 까닭 ∥ 오직 호류지 대목장으로 살다 ∥ 자연을 장구하게 살려 낸 건물을 짓고 싶다 ∥ 뜻깊은 인연을 돌아보다 ∥ 좋은 시대를 만나 이룬 것들
호류지 목수 구전 _ 천삼백 년을 이어 온 소중한 지혜

역자 후기 - 여기 천 년 학교가 있다

저자 소개3

니시오카 쓰네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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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unekazu Nishioka,にしおか つねかず,西岡 常一

1908년 나라 현에서 니시오카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예닐곱 살 무렵부터 현장을 드나들며 호류지 대목장 재목으로서 일을 배웠다. 스승이자 할아버지였던 니시오카 쓰네키치의 뜻에 따라 이코마 농업 학교를 졸업한 뒤, 두 해 동안 농사를 지었다. 천삼백 년 전에 지어져 지금도 창건 당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호류지를 평생에 걸쳐 돌보며 수많은 선인들의 기술과 지혜를 배웠다. 20세기에 남은 마지막 미야다이쿠로 불리다가 단 한 명의 제자 오가와 미츠오(小川三夫)를 키워 그 명맥을 잇게 했다. 일본건축학회상, 녹색문화상(みどりの文化賞), 훈사등서보장(勳四等瑞寶章)을 받았다. 궁
1908년 나라 현에서 니시오카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예닐곱 살 무렵부터 현장을 드나들며 호류지 대목장 재목으로서 일을 배웠다. 스승이자 할아버지였던 니시오카 쓰네키치의 뜻에 따라 이코마 농업 학교를 졸업한 뒤, 두 해 동안 농사를 지었다. 천삼백 년 전에 지어져 지금도 창건 당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호류지를 평생에 걸쳐 돌보며 수많은 선인들의 기술과 지혜를 배웠다. 20세기에 남은 마지막 미야다이쿠로 불리다가 단 한 명의 제자 오가와 미츠오(小川三夫)를 키워 그 명맥을 잇게 했다. 일본건축학회상, 녹색문화상(みどりの文化賞), 훈사등서보장(勳四等瑞寶章)을 받았다. 궁궐목수들의 우두머리로서 오래된 일본 건축물의 수리와 재건에 참여하며 몸에 새긴 그 아름답고 심오한 가르침을 『나무한테 배워라 ― 호류지와 야쿠시지의 아름다움』, 『궁궐목수 대목장 니시오카 쓰네카즈 ― 구전의 무게』 같은 책으로 남겼다. 암 투병 끝에 여든여덟이 되던 1995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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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요네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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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ematsu Shiono,しおの よねまつ,鹽野 米松

1947년 아키타 현 가쿠노다테 마을에서 태어났다. 도쿄 이과 대학 이학부 응용 화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곳곳을 돌면서 어부와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듣고 받아써 왔다.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와 몸에서 몸으로, 일에서 일로 전해지는 ‘손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1992년 《옛 지도》를 시작으로 네 차례나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고, 2003년 《여름 연못》으로 일본 그림책 대상을 받았다. 같은 해, 국제 천문 연맹은 그의 업적을 기려 소행성 11987에 ‘요네마쓰 Yonematsu’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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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라는 아호를 쓰고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이다. 20대 후반에 자연농법을 만나 인류가 갇혀 있는 거대한 우물을 보는 경험을 황홀하고도 강렬하게 하며 인간 편에서 자연 편으로 건너온다. 30대 초반에 귀농, 그 뒤로 30년이 넘게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 규모의 논밭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글과 번역, 그리고 ‘자연농 교실’ 등으로 자연농법의 세계를 알리는 데 힘을 쏟는 한편, 하루 한 통의 손글씨 엽서로 자연생활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자연농법』 『자연농 교실』 『신비한 밭에 서서』 『어제를 향해 걷다』 『나는 숲으로
‘개구리’라는 아호를 쓰고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이다. 20대 후반에 자연농법을 만나 인류가 갇혀 있는 거대한 우물을 보는 경험을 황홀하고도 강렬하게 하며 인간 편에서 자연 편으로 건너온다. 30대 초반에 귀농, 그 뒤로 30년이 넘게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 규모의 논밭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글과 번역, 그리고 ‘자연농 교실’ 등으로 자연농법의 세계를 알리는 데 힘을 쏟는 한편, 하루 한 통의 손글씨 엽서로 자연생활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자연농법』 『자연농 교실』 『신비한 밭에 서서』 『어제를 향해 걷다』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공역)』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 『돈이 필요 없는 나라』 『나무에게 배운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과 같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래서 산에 산다』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오래 봐야 보이는 것들』 『좁쌀 한 알』 『시코쿠를 걷다』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와 같은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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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4월 0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20g | 146*194*20mm
ISBN13
9788996751427

책 속으로

1300년 동안 대를 물리며, 살을 보태고, 키를 키워 온 궁궐목수들의 지혜가 이 한 권에 오롯이 담겨 있다. 늙은 목수가 읊조리듯 풀어 놓은 이야기는 조각보처럼 다채롭고 아름답다. 평생 나무의 마음을 헤아려 온 이가 헤아린 세상의 이치 또한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굵고 단단해서, 어느 대목을 펼쳐서 읽든 놀라운 가르침과 만날 수 있다. 쉽고 깨끗한 입말로 풀어낸 길지 않은 책이지만, 나뭇결을 찬찬히 다듬듯 오래도록 삭여야 하는 대목들로 가득 차 있다. 1300년,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의 길이만큼이나, 근원에 다다른 그의 깨달음은 크고, 드넓고, 깊다.---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잠언」

요즘 사람들은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그런 옛날 기술 따위는 케케묵은 것이라며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건 뭘 모르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콘크리트는 반영구적이라고 믿었습니다. 연구자나 학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콘크리트 건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콘크리트라면, 재료가 석회와 모래와 물입니다. 그 결합체가 그렇게 오래 지탱할 수는 없다고 저는 봅니다. 최소한 삼백 년 정도 버텨 주면, 그것으로서도 좋은 건축 재료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정도가 되기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철근을 넣더라도 반영구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옛 건축물의 재건에 철근을 사용하여 수명을 반영구적으로 하자는 얘기를 해 왔습니다.
모두가 새로운 것이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것이라도 좋은 것은 좋은 것입니다. 메이지 시대 이후입니다, 경험을 믿지 않고 학문에 치우치게 된 것은.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문명 _ 진보의 잣대는 ‘새로움’이 아니다」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나무도 심었습니다. 이 집은 이백 년은 갈 테지, 지금 나무를 심어 두면 이백 년 뒤에 집을 지을 때는 안성맞춤일 테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삼백 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심은 나무가 자라기까지 기다렸고, 또 마구 쓰고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정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습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나무의 성질을 살려서 알뜰하게 쓴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생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무를 살립니다. 낭비하지 않습니다. 나무의 성깔도 좋은 쪽으로 쓰기만 하면, 오래 버틸 수 있는 건물, 튼튼한 건물이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 그걸 위해 기술을 전하고, 구전을 가르쳐 온 것입니다. 조금 더 긴 눈으로 세상사를 보고 생각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좌우간 한 번 쓰고 버리는 생활이 기본이 되어 버렸습니다.--- 「삶 _ 긴 눈으로 보고 생각하라」

나무는 대자연이 낳고 기른 생명입니다. 나무는 죽어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생물입니다. 사람 또한 생물입니다. 나무나 사람이나 자연의 분신입니다. 말 없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눠 가며 나무를 생명 있는 건물로 바꿔 가는 것이 목수의 일입니다. 나무와 인간 생명의 합작이 진짜 건축입니다.
처마로 나와 있는 나무는 오랫동안 비바람을 맞으면 아무래도 끝이 상해 들어갑니다. 그래서 안쪽을 길게 남겼습니다. 앞이 썩거나 하여 상하면 거기를 잘라내고 뒤쪽에 남아있는 부분을 앞으로 내밀어 맞출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고치면 또 한참 동안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입니다. 나무를 소중하게, 되도록 오래 살려 쓴다고 하는 것은.--- 「건축 _ 나무와 인간 생명의 합작이 진짜 건축이다」

연장 갈기는 남에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제자인 오가와한테 한 일은, 이렇게 하면 된다며 제가 깎은 대팻밥을 보여 준 것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랬습니다. 대패란 이런 것이라며, 나무 위에 대패를 놓습니다. 그리고 그 대패를 곰방대 꼭지로 걸어 슬쩍 잡아당깁니다. 그런데 대팻밥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데 정말 없느냐 하면, 입김을 훅 불어 보면 대팻밥이 그제야 훌훌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하실 뿐이었습니다.
기술은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배우고 싶다고 한다면, 개성에 맞춰서 잘 자라 가도록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할아버지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하였습니다.
“들려주고, 직접 해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돼.”--- 「교육(가르침) _ 진정한 가르침은 본보기여야 한다」

목수는 그때그때 시험에 통과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는 안 됩니다. 일을 익히면 그것을 가지고 일생 밥을 벌고, 식구를 돌보고, 이웃을 위해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집을 짓는 건 머릿속 지식이 아닙니다. 자신의 손으로 나무를 자르고 깎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럴 때 머릿속 지식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자기 생각으로 차 있으면 스승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순진한 마음이 아니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승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해집니다. 이런 자리로부터 길을 찾아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육(배움) _ 순진한 마음이 아니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억지로 배우는 것은 몸에 좀처럼 붙지를 않습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머리로 알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해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남이 할 수 있다고 자기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남이 하는 것과 자기가 하는 것은 다릅니다. 직접 해 보지 않고는 자신이 어딜 모르고 있는지, 뭘 할 수 없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려고 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로만 이렇게 하는 거다, 하고 배워서는 익힐 수 없는 일입니다. 일일이,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솔직히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 모색하며 노력할 때 비로소 터득이 됩니다. 애써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직접 해 가는 가운데 툭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거군, 이라며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익힌 것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교육(배움) _ 배움은 스스로 여는 것이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학생을 모두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대합니다. 사실은 다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학교 쪽에 좋게 모두 똑같은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도제 제도는 애초부터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르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을 리가 없잖습니까. 부모가 다르고, 환경이 다른 데서 자란 이들이 똑같을 수가 있습니까? 형제도 다르잖습니까?
그 차이를 처음부터 잘 보고 있습니다. 따라오는 것은 제자 쪽이므로 거기에 맞춰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육(사람을 기른다는 것) _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나무를 기르듯이」

통째로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억력이 좋은 것만으로는 제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통째로 하는 암기에는 뿌리가 없는 것입니다. 뿌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나무는 자라지 못합니다. 뿌리만 확실히 서 있다면, 거기가 바위산이든 바람이 심한 곳이든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만, 사람이나 나무나 기른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교육(사람을 기른다는 것) _ 뿌리를 튼튼하게」

나무의 생명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 이야기한 나무로서의 생명, 곧 수령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무가 목재로 쓰인 뒤부터의 사용 햇수입니다.
편백나무의 사용 햇수가 길다는 것은 호류지를 예로 들면 잘 알 수 있지요. 천 년이 지난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탑의 기와를 들어내고 그 아래 있는 흙을 벗겨 보면, 차츰 지붕의 휨이 돌아오고, 대패질을 해 보면 지금도 질 좋은 편백나무 향기가 나는데, 이것이 편백나무의 생명의 길이입니다.
이런 나무이기 때문에 그 수명을 다하도록 돕는 것이 목수의 역할입니다. 수령 천 년의 나무라면 적어도 천 년 이상 가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나무에게 미안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나무를 잘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전에도 나무 다루기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형 목조 건물을 지을 때는 나무를 사지 말고 산을 사라.”
“나무는 나서 자란 방향 그대로 써라.”
“나무 짜 맞추기는 나무의 성깔에 따라 하라.”
다 나무를 쓰는 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핵심은 자연이 가르쳐 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안목이나 기술 또한 마음가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서는 도무지 늘지 않습니다.
먼저 자연의 생명에 감사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 _ 모든 것은 자연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연장은 목수에게 있어 손의 연장延長과 같습니다. 그 정도까지 연장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목수의 일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솜씨로 일을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낸 일에는 거짓도, 감출 방법도 없는, 그 사람의 솜씨가 있는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들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정성껏 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온 정성을 다해 한다, 이것뿐입니다.--- 「일 _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온 정성을 다해 한다」

제자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쪽이 좋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책을 통해 얻은 예비지식을 가지고 이런 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로는 기억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손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만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러 오는 것이 제자입니다. 기술은 기술만으로 몸에 붙는 게 아닙니다. 기술은 마음과 함께 진보해 가는 것입니다. 일체지요.--- 「기술 _ 기술은 마음과 함께 진보해 가는 것」

구전에, “나무의 성깔 맞추기는 장인들의 마음 맞추기.”, “장인들의 마음 맞추기는 장인들을 대하는 대목장의 따뜻한 마음.”, “백 명의 장인이 있으면, 백 가지 마음이 있다. 그것을 하나로 모으는 것, 이것이 대목장의 기량이자, 가야 할 바른 길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장인이란 각기 기질이 있는데, 그것을 다뤄야 하는 대목장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쓰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만으로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 나무의 성깔을 파악하고, 그 성깔을 살려서 쓰라는 구전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성깔이 있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성깔이란 사용하기 어렵습니다만, 살릴 수만 있으면 오히려 뛰어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목을 자른다거나, 혹은 없애 버리면, 좋은 건축은 불가능해집니다.--- 「인사人事 _ 굽어진 것은 굽어진 대로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진 대로」

나무를 보는 것도 어렵습니다만, 사람을 보는 것도 어렵습니다. 안 쓰는 쪽이 좋은 사람을 무리해서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기보다 그런 사람도 쓸데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도 신기하게도 그에게 꼭 맞는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오랫동안 대목장 노릇을 해 왔습니다만, 마음껏 부릴 수 없다고 목을 잘랐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오직 나무에 빗대어 꿰뚫은 이치, 일본을 사로잡다
일본의 초대형 종합상사 이토추ITOCHU의 회장 니와 소이치로는 NHK 〈나의 1권, 일본의 100권〉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 어떤 경영서보다도 가치 있는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프로야구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스의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새롭게 팀을 맡자마자 이 책부터 꺼내 읽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이 마지막 구술본을 두고, 누군가는 ‘신의 목소리’라는 헌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무에게 배운다』는 1993년 소시샤草思社에서 처음 나왔고, 2005년 신초샤新潮社로 출판사가 바뀌어 다시 나온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폭넓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목수들이나 고대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필독서를 넘어, 교대 입학생에게 교사와 선배가 추천하는 책, 유아교육과 학생들의 필독서, 소아과 의사들이 엄마들에게 추천하는 책, 대학원 경영철학 수업 필독서, 대학생 교양 교육을 위한 참고서, 도쿄 대 젊은 졸업생 모임 산시로 회 추천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여든여섯, 평생을 말 없는 나무와 이야기를 나눠 가며 나무를 생명 있는 건물로 바꿔 온 사람. 더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비로소 연장을 손에서 놓은 한 궁궐목수의 낯선 세계가 20년 동안이나 독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이 책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1300년 동안 이어져 온 목수들의 가르침을, 찬찬히 돌이켰다. 투박하지만 온화한 장인의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들은 결코 에두르는 법이 없다. 나무에 빗댄 깨우침은 자신의 일과 삶을 넘어, 우리 시대의 문명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자라고 어그러진 자리로 어김없이, 단숨에 가 닿는다. 쉽게 읽히지만, 어느 대목을 펼치든, 그 속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소중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한국 출간과 복간을 결정지은 감명과 찬사의 힘
20여 년 전 최성현 선생은 일본어로 된 이 책을 읽고는, 가까운 이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읽고 감동했던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가 별 뜻 없이 건넨 이야기를 뜻밖에도 사람들은 귀 기울여 들어 주었다. 눈을 반짝이며 이 책의 내용을 궁금해 하던 친구들. 지금이야 널리 알려진 번역가지만 그때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최성현 선생이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그러한 관심 덕분이었다. 결국 이 책은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1996년 한국에서 처음 나왔다. 그 뒤 10여 년이 흐르면서 그 출판사는 문을 닫았고,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 또한 절판되었다. 하지만 독자들의 감명과 찬사만큼은 줄곧 끊이지 않았다.

〈녹색평론〉은 이 책이 나오자마자 29호(1996년 7-8월)에 ‘나무의 두 가지 생명’(《나무에게 배운다》가운데 ‘살아온 만큼 살려서 쓴다’)이라는 장을 옮겨 실었다. 이 글은 훗날 《녹색평론선집3》에도 실린다. 늙은 목수의 꾸밈없는 철학과 깊은 통찰이 일으킨 울림은 컸다. 누군가는 한 마디 한 마디, 옮겨 적고 싶은 구절들로 가득하다고, 기록해 두고, 삶의 지침으로 삼고 싶은 잠언들로 충만한 책이라고, 그렇게 썼다. 어느 건축가는 자신의 삶을 바꾼 책이 있노라고, 오래도록 곁에서 스승이 되어 준 이 책을 소개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나무를 대하듯이, 적소를 찾아내기엔 아직 이른 때, 다만 각기 만만치 않은 아이들의 성깔이 제대로 깊어지도록 지켜 봐 주고 싶은 한 교사는 자신의 교육산문집 제목 《성깔 있는 나무들》에 그 뜻을 담았다. 여행 작가 김남희 씨는 “좋은 목수의 조건에 대해서라면 니시오카 쓰네카즈가 이미 다 말했다.”고 썼다. 전우익 선생은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을 권하면서 “평생 이 책만 읽고 있어도 된다.”고 하셨다. (전우익 선생은 이 책이 한국에서 번역되기 전인 1993년에 이미 일본어로 된 이 책을 읽고 〈녹색평론〉10호에 ‘목수의 가르침’이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다.) 그렇게 한국에도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소중히 되새김질하는 독자들이 있었고, 절판된 이 책을 찾는 이들 또한 꾸준했다. 그 간절함과 애정 덕분에 2013년 이 책을 한국 독자들 곁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 호류지를 지켜 온 마지막 대목장 이야기
자를 든 사제, 뛰어난 목수인 동시에 독실한 불교 신자, 독종, 귀신, 마지막 목수…….
다채로운 별칭만큼이나 대단한 목수였다. 시오노 요네마쓰는 니시오카 쓰네카즈를 일러 “생활 그 자체는 물론, 신념, 기술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겸비했던 호류지의 마지막 대목장”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떠돌던 때에도, 그는 자신이 보았던 대륙의 사찰이나 탑을 일본의 아버지에게 그려 보냈다. 전장에서도 머릿속에는 오직 호류지뿐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 역시 호류지였다. 집도, 가족도, 자신의 안위도 그에게는 늘 뒷전이었다. 결핵에 걸려 살날을 기약할 수 없을 때조차 그는 호류지 목수로서의 삶을 놓지 않았다. 호류지 없는 니시오카도, 니시오카가 없는 호류지도 생각할 수 없는 삶. 그에게 호류지는 온 세계이자 가치, 삶 그 자체였다. 607년에 창건된 뒤 670년에 불타 692년 언저리에 다시 재건된 절 호류지法隆寺.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로 서로 다른 나무를 하나하나 짜 맞춰 세워 올린 건물은, 1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창건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일본 나라 현 이코마 군 이카루가 마을, 그때 그 자리에 힘차게 서 있다.

“그렇습니다. 호류지는 제가 무슨 일을 하든 본보기가 됩니다. 알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호류지 구석구석을 보며 다닙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단번에 아스카 장인의 영역에 다다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모든 기초가 호류지에 있습니다. 아스카 장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은 아스카 장인들의 정신을 잊고, 벌이가 되는 일로 내달리는 일이 없도록 늘 삼가며 애썼다. 건축 일이 없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농사를 지으며 ‘땅의 생명’을 마주했고, “신이나 부처를 숭상하지 않는 자는 사원이나 사찰 건축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구전에 따라 불교 경전을 읽었다. 그러는 틈틈이 늘 호류지를 살피고 돌보았다. 이것이 바로 오래도록 목수들의 교과서로 꼽혀 온 호류지를 짓고 지켜 온 호류지 대물림 목수들의 삶이었다. 1300년이 넘게 목숨처럼 지키고 물려 온 구전이 그들의 재산이자 양식이었다. 그 구전을 먹고 자란 마음가짐과, 거기에 기대어 익혀 온 기술 역시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대를 이어 물려 왔다. 호류지를 지어 후대에 물린 아스카 장인들로부터 1300년, 그 무리의 마지막 대물림 목수가 바로 니시오카 쓰네카즈이다. 1978년에 나온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호류지를 지탱하는 나무法隆寺を支えた木》 일부는 일본 중등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장인의 시대를 증언하다, ‘손의 기억’을 기록한 구술과 채록의 교과서
여든 해 남짓 한길을 걸어온 장인의 긴 ‘유언’과도 같은 구술이 여기 있다.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말/글’이 아니라 ‘몸’으로 1300년 넘게 대를 물려온 궁궐목수들의 기술과 지혜가, ‘마지막 목수’라 불리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입을 통해 둑이 터지듯 쏟아졌다. “실제로 해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장인들의 그 놀라운 세계가 니시오카 쓰네카즈와 시오노 요네마쓰 두 사람의 마주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시오노 요네마쓰는 이 날것의 언어를 버무려,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세계를 탐험하기에 가장 흥미롭고 감동적인 지도를 그려 냈다. 그 흔한 필명 하나 두지 않은 채, 우리로 치면 ‘돌쇠’나 ‘개똥이’처럼 촌스럽고 우직한 이름 ‘요네마쓰米松’를 외곬으로 지켜 온 사람. 그는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네 차례나 오를 만큼 빼어난 문학적 재능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록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온전히 바쳤다. 오래도록 일본 곳곳을 돌며 장인들의 삶을, 사라져 가는 전통 문화를 기록해 온 그의 헌신과 공적을 기려, 2003년 국제천문연맹은 소행성 11987에 ‘YONEMATSU'라는 이름을 헌정했다.

《나무에게 배운다》는 일본 신초샤가 펴낸 《木のいのち木のこころ - 天·地·人》 가운데 ‘天’ 편을 옮긴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1996년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습니다. 《木のいのち木のこころ - 天·地·人》 ‘地’ 편과 ‘人’ 편은 《다시, 나무에게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올해 여름 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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