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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2. 훼손 3. 생의 어느 저녁 4. 나비의 근황 1 5. 괜찮아요? 6. 테미안의 처녀 7. 오래된 추문 8. 나비의 근황 2 9. 구름 모자 벗기 게임 10. 내상의 표정 11. 권태가 슬픔으로 변할 때 12. 국도변의 휴게소 여자 13. 그가 온다면... 14. 부정의 궤적 15. 달의 잠행 16. 용의 나라 17. 정오의 숲길 18. 나팔꽃이 피는 시간 19. 그대의 죄인가 나의 죄인가 20. 첫 입맞춤 21. 소녀 시절의 우울 22. 불안정한 활기 23. 사랑의 두번째 이름, 혹은 부정 24. 나팔꽃이 지는 시간 25. 고래는 떠났어요 26. 예술과 외설과 가사일 27. 우리가 얼굴을 갖게 될 때까지 28. 세상에서 가장 슬픈 폭력 29. 이토록 남루하고 무상한 것을 위하여 30. 일요일의 슬픔 31. 허공에서 부리를 물고 32. 새로운 추문 33. 네겐 돌아갈 집이 없어 34. 에필로그 작가 후기 |
全鏡潾, 본명:안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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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꿈꾸며... 삶, 사랑이란 어차피 진부한 것
--- 99/10/15 김선희(rosak@hanmail.net)
그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날씨는 더웠고, 삶은 무가치했다. 그러다 잠깐 쨍하고 빛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문득 호흡이 멈춰졌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을 갈망하지만 사랑은 소문처럼 그렇게 도처에 널린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으면서도 여전히 매우 예외적이고 특별한 이야기, 그것이 사랑이다.' 이제 세상을 웬만큼 알고 있는 둘은 시작부터 그 결말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이라는 게임을 시작했다. 소설의 스토리 라인은 분명 진부하고 통속적이다.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었던가. 연인들의 사랑의 장소가 물레방앗간에서 모텔로 옮겨진 것 말고는 지금껏 진절머리나게 들어왔던 사랑에 바뀐 것은 없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듯 사랑도 진부하니 그리 진부함에 혹평을 삼가 하시길.)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이 진부한 사랑에도 분명 마력(魔力)이 있다. 그것이 불륜(나는 이 진부한 단어를 몹시 싫어한다. 내가 아는 '불륜'이란 자연스런 인성을 거스르는 사회제도이기 때문이다.)이기 때문에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본 그들의 사랑, 그 순간에 적어도 그들은 계산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흔'은 세상에 대하여 백치가 되었다. 난 그 백치 같은 순수함에 끌렸다. 삶이란 견뎌내는 것이다. '육 년간의 가뭄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육십 도의 고열을 받아들이고 건조한 모래바람과 사막을 인생 속에 받아들여야하는 이집트의 처녀처럼' 결혼이라는 가장 강력한 힘과 당위성을 업고 있는 관습을 받아들여야한다. 그러나, 그 처녀도 나도 때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 느끼는 대로, 내키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하라고 나는 배웠다. 그러나, 결혼 안에서 우리의 감성은 맥을 못춘다. 때론 그 받아들일 수 없는 틀을 한번쯤 깨보고 싶다. 그것이 내 삶을 나락으로 몰고 갈 것이 눈에 보여도 나비처럼 날 수만 있다면야……. 너무 세련미를 추구하다 오히려 촌스러운 '미흔'과 '규'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전경린'의 세련된 문체와 감정처리, 그리고 깔끔한 결말은 그 실수를 충분히 감출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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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 알았어. 너를 데리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겐 이제 집이 없어. 우린 집을 가질 수가 없어. 우리가 날려버린거야. 아주 값싸게..... 하필이면 내가 너를 위해 안간힘을 다하던 때에. 너와 수를 위해서 모든 좋은 것을 다 해주고 싶었던 때에, 가족을 위해 내 전체를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믿기 시작했을 그 때에......'
--- p.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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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갔더니 네가 사라지고 없었어. 내가 바랐던 대로. 분명히 바랐던 대로 된 일이었는데 비어 있었던 먼지 앉은 빈집에 들어서니까 몹시 당혹스러웠어. 이번엔 너를 찾아 나섰어. 어쩌겠다는 생각도 없이. 날짜가 흘러갈수록 이 모든 것이 기정 사실로 굳어질 테니까 다급했어. 원래대로 해놓고 싶었어. 이상했어. 집 안에 물건들은 그대로 있는데도 네가 없으니까..... 칼로 목을 배는 듯이 섬뜩했어. 네가 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나가버린 것처럼.......
논리도 서지 않고 판단도 서지 않았어. 그래서 무턱대로 너를 쫓았어. 용서할 수 없는데 왜 너를 쫓았는지..... 너를 찾아 다니는 동안 어느 날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기도 했지만 어느 날은 아무일 도 없었던 것처럼,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자 않았던 것처럼 살 수도 있을 것 같았어. 다시 음식 냄새와 수의 목소리와 동동거리는 발소리와 너의 냄새들로 집을 채울 수만 있다면.... 효경은 침대에서 다리를 내리고 일어섰다. '하지만 오늘 알았어. 너를 데리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겐 이제 집이 없어. 우린 집을 가질 수가 없어. 우리가 날려버린거야. 아주 값싸게..... 하필이면 내가 너를 위해 안간힘을 다하던 때에. 너와 수를 위해서 모든 좋은 것을 다 해주고 싶었던 때에, 가족을 위해 내 전체를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믿기 시작했을 그 때에......' --- p.277-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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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한 수상쩍은 남자가 내게 말했다. 인간은 행복이나 불행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고, 오히려 행복이나 불행이 인간을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여름이었다. 권태가 그만 슬픔으로 변해 버리던 길게 늘여진 유월의 오후, 그때를 생각하면 언제라도 구름처럼 일어나던 먼지와 함께 아란수에스 협주곡의 희미한 캐스터네츠 소리가 들려온다.
--- 머리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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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는 늙은 남자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들을 빠르게 바꾸며 아랍 춤을 추고 있었다. 이제 막 결혼식을 했는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장소는 이발소였다. 늙은 남자가 맞추어 추는 아랍 음악이 어쩐지 마음에 사무쳤다. 아주 옛날에 할머니들이 부른 노래 가락과도 비슷한 것 같았다.
'저 남자는 아주 어릴 때부터 미용사의 남편이 되는 꿈을 꾸어요. 마을의 미용사를 짝사랑하기 때문이오. 넌 자라서 뭐가 될 거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미용사의 남편이 될 거라고 대답했다가 따귀를 맞기도 하지. 마을의 미용사는 의문의 살해를 당해 어린 남자의 추억 속에 영영 묻히고 말아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 남자는 드디어 어여쁜 미용사를 만나 오랜 꿈을 이루어요. 남자는 하루 종일 온 인생을 미용사 아내가 일하는 이발소 안에서 보내게 되지. 하는 일이라곤 머리 자르기 두령둬 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아랍 춤을 추거나 신문의 낱말 맞추기를 하거나, 아니면 온종일 일하는 아내의 모습만 얼이 빠져서 바라보는 거요. 그리고 해가 지면 재빠르게 문을 닫아 걸고 둘이 사랑을 나누어요. 둘은 너무나, 그러니까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게 돼요. 조금의 방심이나 상처도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병적으로. 사랑이 너무 깊어지자 미용사의 아내는 그 사랑이 식을까 봐, 그리고 사랑이 식은 뒤의 일이 너무 두려워서 안절부절 못하게 돼요. 그래서 사랑이 가장 깊은 그 순간에 죽기로 결심하지. 어느 폭풍우 치는 날 미용사는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고 밖으로 달려나가요. 옆가게에 가서 클립인지 마요네즌지를 사오겠다면서 달려나가 파도가 치솟는 방파제에서 몸을 던지는 거요. 남자는 계속해서여자를 기다려요. 저 남자의 마지막 대사는 이런 거요. '앉아서 기다리세요. 미용사가 곧 올 거요' 남자는 미쳐 버리고 말아 ..... 사랑이란 저런 거지. 바로 저런 거요. 인간은 사랑의 긴장을 오래 견디지 못해요. 사랑이 스스로 지나가지 않아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 끈을 놓거나 아니면 자살이라도 해야 하는 거요' --- p.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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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들은 나비가 불을 향해 몰려드는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해왔지만 아직은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때로 여자가 스스로 불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규명을 했던가. 혹은 규명하려고 노력이라도 했던가. 나비에 대해서는 노력을 하면서도 말이다. 규가 말한 나비의 날개와 복사열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비의 비밀은 체온이 뜨거운 동안만 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자의 비밀도….
--- p.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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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감고 싶어요'
규는 손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만져보더니, 욕실로 데려갔다.둥근 욕조의 가장자리가 넓어 바닥에 수건을 펼치고 머리를 욕조 속으로 향한 채 다리를 접고 반듯하게 누을 수 있었다. 규는 욕조 속으로 들어가 허리를 굽혔다. 샤워기의 물이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들어왔다.약간 차갑게 느껴지는 물줄기...그리고 커다랗고 따뜻한 열개의 손가락.....그는 조심스럽게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몇 번인가 쓰다듬고 샴푸의 거품을 일으켰다. 두번째의 샴푸를 할 때 나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상처와 슬픔과 불안과 몸 안에 스민 부정한 섹스의 기억들까지도, 머리가 점점 가벼워졌다. 그가 손을 놓으면 깃털 씨앗처럼 날아오를 것 같이....그가 나의 머리를 두손으로 받쳐들고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내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랑해.....' 규가 말했다. 충분해, 이것으로 충분해.....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 p.246-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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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알에서 육일 만에 나오는데 흔히 애벌레를 풀쐐기라고 하죠. 애벌레인 나비는 미친 듯이 풀잎을 먹어치웁니다. 매번 허물을 벗는 동안 엄청난 에너지로 엄청난 양의 잎사귀들을 먹죠. 탐욕스럽게 느껴질 정도지만 알고 보면 징그러운 벌레로부터 눈부신 나비로 거듭나기 위한 숭고하고 끔찍한 노역입니다. 그 풀은 비단실이 되어 몸에서 풀려나오는데 고치를 만들기 위해 뽑아내는 실이 사십킬로미터나 된답니다. 나비는 자기 몸에서 나온 비단으로 자신을 가두고 그 속에 들어앉지요. .......... 나비가 되고나면 이제 풀잎은 먹지 않습니다. 꽃즙이나 거북이의 눈물, 사람의 땀을 먹지요.
--- p.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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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랑해.....' 규가 말했다. 충분해,이것으로 충분해..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 p.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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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에서는 섹스도 예술이잖아. 대체 예술이 되는 섹스와 외설이 되는 섹스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빈약하고 머리가 짧고 화장도 하지 않고 단순한 속옷을 입은 여자가 하면 예술이고 가슴이 크고 머리가 길고 화장도 하고 튀는 속옷을 입은 여자가 하면 외설이야. 거의 그래.' '그럼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다 예술하게?' '그건 그냥 가사일이지.' --- p.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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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 삶과 연루되지 않는, 관능적이고 부유하는 사랑을 미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쾌락과 감상과 욕망의 비루함과 무상한 환멸을 기록하게 되었으니, 사랑이 왜 지리멸렬한 삶의 가랭이를 벌리고 그 살점 속에 뿌리를 박아 서로의 악성 종양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숙고하게 되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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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욕망, 모호한 생의 불안으로부터,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전경린 문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 문제작!
일상의 평범함 속에 내재된 욕망, 관습과 제도를 거부하는 불온함의 내면풍경을 섬뜩하게 포착하며 9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급부상한 전경린의 두번째 장편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지난해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구름모자 벗기 게임’을 대폭 손질한 것으로, ‘나쁜 날씨’ 같은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 삶을 향해 ‘나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무섭고도 두려운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이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사막의 달」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1996년에는 단편 「염소를 모는 여자」로 제29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과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전경린은 1997년 장편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로 제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1999년에는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으로 제3회 21세기문학상을 수상, 가장 짧은 기간에 90년대 문학의 최전위로 나섰다. 전경린의 이번 작품은, 작가가 그동안 작품 속에서 제기했던 질문, 즉 인간과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심연, 즉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격렬하고도 섬뜩한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이다. 염소를 몰고 생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여인으로 상징되던 전경린 문학은, 이제 ‘생은 과연 무엇이고 나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탐사한다. 적요와 우수, 일탈과 격정이 정밀한 문체에 의해 교직되어 있는 이번 장편은 나비, 나팔꽃, 따뜻한 바닷물, 한적한 교외, 폐가 등 가벼운 이미지들을 배경으로, 일탈, 격정, 정념, 배반, 도피 등과 같은 가차없는 사랑의 사건들이 질주한다. 그러나 그 격렬한 사랑의 드라마를 포착하는 카메라는 어느 순간, 외부로 향하지 않고, ‘나’의 내부를 응시한다. 내 안에 있는 또다른 나, 새로운 나, 진정한 나를. 이 지점에서 전경린 문학은 성큼, 놀라운 진화를 성취한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여러 겹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휘감고 있는 하나하나의 겹은 모두 가면이다. 결혼 생활이 가져다주는 미지근한 평화에 안주하고 있던 여주인공 미흔은, 그 미지근한 안정감이 사랑의 정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로 인하여 미흔의 삶과 정체성은 여지없이 깨어져버린다. 남편은 극도의 불화를 수습하기 위해 지방 도시의 한적한 교외로 이주하지만, 미흔의 삶은 회복되지 않는다. 유월의 오후처럼 권태로운 나날들. 수용소에 갇혀진 것 같았다. 기억으로부터 단절되고, 세상으로부터도 격리된 유폐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미흔에게 한 남자가 나타난다. 시골에서 사설 우체국을 운영하는 남자. 그 남자는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을 제안한다. 일정 기간 동안, 조건없는 사랑을 나누되,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쪽이 지는 게임. 서로 약속한 기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헤어지고 마는 게임이다. 이 소설은 남편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미흔과 사설 우체국장이 벌이는 사랑 게임을 중심 줄거리로 세워놓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조연의 삶’을 배치해 소설의 부피를 한층 확대시킨다. 여고 시절에 사랑했던 남자를 십수년 만에 만난 여자 ‘부희’의 지독하지만 순결한 사랑의 전설, 감옥에서 출소한 남편을 피해 살며 화물트럭 운전기사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휴게소 여자 등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얼핏,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이혼 소설’로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분류를 거부한다. 이혼과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소재를 뛰어넘어 인간과 삶에 대한 궁극적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말한다. 진실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무엇이라고! 미흔은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이라는 가볍고도 돌발적인 상황 속으로 빨려들지만, 그것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미흔은 두렵고도 무서운 질문, 즉 나는 과연 누구이고, 이 생은 진정 무엇인가라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와 맞닥뜨리는 것이다. 분명하게 존재해왔던, 그러나 결코 예감하지 못했던 ‘내 안의 나’는 낯설어서 매혹적이고, 신랄해서 아름다운 현실이었다. 미흔이 ‘나’를 만나기 이전의 현실은, 밖에서 미흔에게 돌을 던지는 현실은, 이미 미흔에게는 비현실이고 과거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이혼 소설이라는 소재적 범주를 훌쩍 뛰어넘어, 존재의 심연에 가 닿으려는 문제작으로 변신을 이룩한다. 가정에의 복귀나, 세상과의 타협과 같은 섣부르고 서툰 화해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가급적 삶과 연루되지 않는, 관능적이고 부유하는 사랑을 미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쾌락과 감상과 욕망의 비루함과 무상한 환멸을 기록하게 되었으니, 사랑이 왜 지리멸렬한 삶의 가랭이를 벌리고 그 살점 속에 뿌리를 박아 서로의 악성 종양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숙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사랑은 지독한 역설이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가혹한 역설이다. 사랑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나라는 실체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랑과 나는 무엇보다도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런 사랑과 나를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삶은 그런 사랑과 나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매우 ‘특별한 소설’로 우뚝 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