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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제1부 사회 1장_청 제국 말기 : 농사와 공부의 가문 | 한 가정의 글공부 | 충양 현관 발령길 | 관아 도련님이 본 풍경 | 열 경의 땅을 일군 어머니 | 수재가 되어 가업을 잇다 2장_민국시대 : 혁명 속 귀향, 중화민국이 수립되다 | 파란 속의 대학 시절 | 근본적인 힘, 칼과 돈 | 새신랑 미국 유학에 나서다 | 접시를 닦으며 공부하다 | 신임 대학교수 펑유란 | 과거제도에 통탄하다 | 안심입명을 바라는 학자 | 서방의 봉건 사회 영국을 만나다 |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 |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다 | 피란 행렬 속 학도들 - 시난 연합대학교 | 전란 속에서 가르치고 배우다 | 장제스의 거짓 입헌을 보며 | 여장부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 승리 그리고 또 다른 격동의 서막 3장_중화인민공화국 시기 : 혁명의 불길 타오르다 | 또 다른 혁명의 나라 인도 | 철학을 지니고 세계를 누비다 | 마오쩌둥과 나눈 계급과 철학 이야기 | “중국인이 일어났다!” | 홍위병, 철학자에게 모자를 씌우다 | 빼앗긴 집과 흩어진 책 | 격랑에 휩쓸리며 나아가다 | 집으로 돌아오다 | 마오와 저우를 위한 시 한 수 제2부 철학 4장_1920년대 : 철학문에 들어서다 | 사상은 동서양으로 나뉘지 않는다 | 철학, 그 새로운 인생 5장_1930년대 : 대강이 아닌 철학사 | 고전 믿기와 고전 의심하기 | 나의 『중국철학사』|《철학평론》 편집장이 되어 6장_1940년대 : 인류의 정신을 반성하다 | 자연, 진정한 철학의 문제 | 사회, 마르크스주의로 사유하다 | 인생, 안심입명을 구하다 | 또 다른 저서들 | 차이를 인식하고 또 초월하라 7장_1950년대와 그 이후 :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 추상이냐 구체냐 | 반론 공세를 받다 | 도덕과 사회의 관계 | 마오쩌둥의 『실천론』을 말하다 제3부 대학 8장_베이징 대학교 : 태학을 기원으로 삼다 | 각양각색 총장들 | 탁 트인 학문의 전당 9장_칭화 대학교 : 세계를 배우는 학교 | 학술화의 성공 | 대학의 임무란 무엇인가 | 항일운동을 지원하다 10장_시난 연합대학 : 전란 속의 상아탑 | 정치의 대학이 열리다 | 격동의 8년을 기리는 기념비 추고_ 이상을 펼치다 주석 부록_ 간추린 펑유란 후기 연보 |
馮友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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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 관아에서 살 때, 나는 관아의 건축물에 대해 개략적인 관찰을 해본 적이 있다. 그것은 소박한 건축물이기는 했으나, 일정한 구조와 형식을 지녔으며, 그러한 구조와 형식은 현관이 그 현에서 갖는 지위를 나타내고 있었다. (...) 베이징의 고궁 같은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은 현 관아에 비해 수백 배, 수천 배 나아 참으로 비교하기 어렵지만, 고궁과 현 관아의 구조나 형식만큼은 일치했다. 그러므로 현 관아는 구체적이고 작은 황궁이고, 황궁은 백 배, 천 배로 확대한 현 관아라고 하겠다.---p.40~43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어떤 유명 인사로부터 자신은 자손대대로 한림이 나오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오로지 자손대대로 수재가 나오기만을 바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그 말이 매우 일리가 있다고, 자손대대로 한림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손대대로 수재가 나오는 것은 가능하며 또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하셨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그 학자 집안이라는 전통이 이어지고, ‘농사와 공부로 가업을 잇는’집안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p.62 “제게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가 사업이고, 다른 하나가 학문입니다. 사업에 있어서 저는 포부가 큰 편이 아닙니다. 그저 좋은 대학 하나를 만들고 싶습니다. 중저우 대학은 우리가 함께 만든 것으로서 저는 중저우 대학을 좋게 만드는 것을 저의 사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저에게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말하면 저는 교무주임이 되고 싶습니다. 만약 총장님께서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학문 연구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럴 경우 저는 학문의 중심지로 갈 필요가 있기 때문에 카이펑을 떠나려고 합니다.”---p.122 강연 원고를 다 쓴 후에 나는 한 부를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선생에게 부쳤다. 그는 내게 보낸 답장에서 “영국인들은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십시오”라고 했다. 편지를 타자기가 아닌 손으로 썼으니, 이는 편지가 본인의 친필로 쓴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p.151 회의가 끝나고 나서 마오쩌둥은 내 손을 끌어당기면서 “열심히 자기 목소리를 내세요. 백가쟁명이라 했으니 선생님은 일가(一家)를 이룬 분 아닙니까? 선생님이 쓰신 글은 빠짐없이 볼 겁니다.” (...) 나는 마오쩌둥과 류사오치(劉少奇) 좌석 바로 뒷줄 중간에 섰는데, 마오쩌둥은 자리에 앉으려고 오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내 손을 잡고 “선생님 몸이 저보다 좋아 보이네요”하고 말했다. 내가 “주석님이 저보다 큽니다”라고 말하자, 마오쩌둥은“저는 틀렸습니다. 벌써 늙은 티가 납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중국철학사 신편』의 진행 상황이 어떠냐고 묻고 “중국철학사를 다 쓰신 후에는 서양철학사도 쓰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저는 중국 것밖에 쓸 줄 모릅니다. 서양철학사를 집필하는 임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마오쩌둥이 말했다. “공자에 대해서 선생님과 궈모뤄(郭沫若) 선생은 같은 파이시지요.” ---p.272~273 당시에 나는 이것이 소련의 새로운 사회와 옛 사회의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봉건사회는 ‘귀한 이를 귀히 여기고〔貴貴〕’, 자본주의사회는 ‘부자를 존경하며〔尊富〕’, 사회주의사회는‘현명한 이를 숭상한다〔尙賢〕.’ 내가 당시에 말한 이른바‘현명한 이〔賢〕’란 학식도 있고 기술도 갖춘 사람을 가리킨다. 내가 생각한 것은 대체로 자본주의국가의 사람들이 말하는 technocracy(기술 정치)와 같은 것이었다. 즉, 정치는 마땅히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손에 장악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주의인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나는‘현명한 이를 숭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이것이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이기는 했지만, 나는 이로 인해 사회주의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다.---p.165 이 두 가지 사실이 당시 미국에서 철학이 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저 노부인은 자신의 희망을 종교에 의탁했는데, 이는 그녀의 정신세계가 공허하다는 점을, 그녀가 정신적으로 ‘안심입명할 곳’을 찾지 못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철학은 종교를 대신할 수 있으며, 실제로 중국철학은 바로 이 점에서 종교를 대신했다. ---p.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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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고자 한다면
펑유란을 찾아가라”-마오쩌둥 동양 문화의 정수를 복원한 철학의 화신 펑유란 유일한 자서전으로 읽는 파란만장한 인생과 역사의 궤적 “이 책을 다 쓰고 나면 나를 죽게 내버려 두어라” 배우고 깨우치는 힘으로 혼돈의 시대를 건넌 대가의 삶을 만난다 청나라가 중화인민공화국이 된 시대, 그 혼돈과 변화의 세월을 살아갔던 철학자가 있다. 사상 최초로 중국 철학의 방대한 세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적의 철학자이자 근현대 격동기 중국의 희망과 좌절을 함께 느끼며 살아낸 민중의 철학자 펑유란. 그는 격변의 시기에 서양의 물질문명을 부러워하지도, 국수적으로 중국의 전통을 고집하지도 않고 동양과 서양, 근대와 전근대의 사이에서 단단히 균형을 잡은 진정한 지성인이다. 철학을 안고 역사를 짊어진 인생을 담담하게 풀어놓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학인(j? 펑유란의 학문과 인간과 시대를 느낄 수 있다. 철학이라는 인류 정신의 빛나는 동력을 배우고 가르치며 격동의 20세기를 살아낸 철인의 삶은 오늘날 중국을 이해하는 동시에 혼란에 빠진 현대를 읽어낼 수 있는 프리즘이 된다. 철학이라는 소명으로 온 생애를 후회 없이 살아갔던 거장의 모습은 아름답다. 평생을 학문에 헌신하고 죽는 순간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은 이의 열정과 사유, 열린 세계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 책에서 우리는 한 시대의 거대한 초상과 만나게 된다. “펑 선생의 글은 현대 중국철학사에서 가장 해박하며 깊이가 있다. 이 분의 저서는 분명히 전 세계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칠 것이다. 수많은 한학자와 서구의 중국학자들이 그의 저서를 세기의 책이라고 보는 데 이의가 없다.” -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철학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고자 한다면 펑유란 선생을 찾아가라. 나는 펑 선생의 글은 빠짐없이 볼 것이다.”-마오쩌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