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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이의 말
글쓴이의 말 1부 미련한 곰이 의사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상처 주지 말자 I / 상처 주지 말자 II / 평생 현역 / 치매 엄마 모시기 / 자유 두 시간이 준 행복 / 의사의 말 한마디 / 냉정과 열정 사이 / 용서 / 불편한 자리 무언가 이상하다 / 진짜 이상하다 / 이상한 병원 / 골목 안 병원 / 병원 이전 1년 잘못된 확신 / 살구나무 병원 / 한입 별당 / 된장 / 선입견 / 감성지수 / 긍정적인 말 왼손 쓰기 / 인공지능 / 패럴림픽 / 강도 퇴치법 / VIP 증후군 / 히포크라테스 선서 때 / 깨닫기 / 닉네임 2부 골목 안 병원에서의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고수 I / 고수 II / 상가 번영회 / 나 목말라 / 가훈 / 나이듦에 대하여 승수효과 (multiplier effect) / 꾸중 / CF 이야기 / 새해 결심 / 불편함과 친해지기 못마땅한 변화 / 더위 즐기기 / 침묵 / 기다림 / 가슴 벅찬 일 / 이런 여행 I 이런 여행 II / 이런 여행 III / 경주 / 춤 / 문인화 / 집밥 / 돌솥 밥하기 / 부부싸움 글씨 / 애완동물 / 인사 / 부부는 이심이체 / 까치 / 새로운 한류 / 영어 / 성악 금메달보다 소중한 것 / 분발하지 않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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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손 쓰기
과거 내 몸을 가지고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배 수술 하고 나서 코에 꽂는 위 장관 호스를 환자들이 힘들어 하기에 나한테 직접 넣어봤습니다. 숨쉬기 힘들고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로 불편했습니다. 중독성 진통제를 맞아봤습니다. 통증이 없는 상태에서 맞으니 구역질이 심했습니다. 밥 굶는 환자들이 어떤 심정일까 궁금해서 굶으면서 진료를 하다가 어지러워 쓰러졌습니다. 장 청소가 유행하기에 많은 소금물과 오일을 들이켰다가 기절했습니다. 다이어트를 모두 너무 힘들어 하길래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나는 아주 쉽게 체중을 25kg 빼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살 빼는 것이 몸으로 실험하는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또 시작이냐고 아내가 중얼거립니다. 그런데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니 좋은 점이 있습니다. 젓가락질이 서투르니까 우선 밥을 천천히 먹게 됩니다. 한 달 정도만 지나니 콩도 집을 정도로 어색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뇌의 균형에도 좋다고 하니 계속 왼손을 사용해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내가 하는 일에 수긍을 하면서 아내도 따라 하고 있습니다. (본문 73, 74쪽) - 닉네임 온라인에서 모임을 하면 이름보다 닉네임을 많이 사용합니다. 내 닉네임은 미련한 곰입니다. 내력은 이렇습니다. 이름이나 아이디를 나쁘게 짓는 사람은 없겠죠. 마찬가지로 나도 한때 우아한 아이디를 가졌습니다. 저희 아버지 별명이 곰이었고 나도 곰이란 얘기를 자주 들었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나 나를 보고 참 편하고 재미있게 산다는 얘기를 해서 나는 아이디를 ‘행복한 곰’이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모임 장소에 나갔습니다. 누군가 나한테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미련한 곰이 아닌가요?” 했습니다. 저는 펄쩍 뛰었습니다. 나 자신이 항상 명석하고 날렵하다고 생각했는데 미련한 곰이라니. 상대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모임을 마치고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해보니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신과에 실언은 없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나만 공연히 행복한 곰이라고 떠들고 다녔지 나를 보는 사람에겐 이미 미련한 곰이란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던 겁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 이제 모든 것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저는 아이디를 미련한 곰으로 바꾸었습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본문 93, 94쪽) - 가훈 큰 아이 진로 결정을 앞두고 가훈을 바꾸었습니다. “긴 호흡으로.” 가훈이 바뀌다니? 내력은 이렇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매년 학기 초에 가훈을 적어오라고 했습니다. 우리 집은 평범한 집안이라 아버지한테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 뭐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내색을 아이들한테 할 수는 없어서 책을 찾아보고 무어라 적어 보냈습니다. 좋은 말로. 그런데 다음 해 또 적어 보내라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뭐 착하게 살자, 이런 식으로 적었습니다. 그랬더니 왜 가훈이 바뀌었느냐고 아들이 따졌습니다. 일순간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밀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때 튀어 나온 말이 “야, 가훈도 옛날같이 변화가 없는 시절에나 몇 백 년 흘러가는 거지, 요즘 같은 시절에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적어갔고, 나도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듯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매일 충고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참고 참다가, 어쩌다 한 번 벼르던 얘기를 하면 잔소리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가훈으로 정하니 잔소리 한다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가훈이라는데 감히 뭐라고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그 이후 몇 년에 한 번씩 가훈은 바뀝니다. 그동안의 가훈 중 생각나는 것들입니다. * 변해야 산다 아이들이 회사도 아니고 뭐 이래 전투적이냐고 했습니다. 가훈도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가장 오래 사용했습니다. 말이 좀 투박스럽지만 살아보니 모든 부분에 해당되는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아직도 이 기준에 맞추어 일을 결정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여기에 맞추기가 쉬웠습니다. 공부를 게을리 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고 노력한 만큼 거둔다고 협박했습니다. * 디테일에 신경 쓰자 작은 것을 자꾸 놓치는 것이 눈에 띄어서 정했습니다 . * 긴 호흡으로 생각하자 이번 가훈입니다. 일의 본질을 깨닫고 느긋하게 나아가자고 정했습니다. (본문 110~112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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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이제야 의사가 되어가는 임재양 원장의 고백이다. 때로는 미운 환자도 있고, 한방 때려주고 쌓인 분노를 풀고 싶은 선배 의사도 있었고, 병원에서 사망 진단을 했는데 계속 살아 있는 환자들과 만나는 불편한 자리 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이다. 의사니까 치매 엄마를 모시는 것 정도는 쉬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현실은 달랐다. 몇 년간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 - 너무 최선을 다하지 말자, 우리 엄만데 사위와 며느리는 최일선에서 빼주자 등의 비법을 전수하는 글 등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2부는 올 한해 트렌드어로 자리 잡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담았다. 동네 의사 임재양 원장의 일상에서의 건강한 생각과 마음이 전달되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이, 유별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유머 넘치면서도 합리적인 그의 생각이 담긴 간결한 표현을 읽고 나면 한바탕 크게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돌솥으로 밥하는 법을 터득하고, 춤을 배우고, 비 내리는 것을 홀로 지켜보며 펑펑 울 수 있는 의사의 감성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 책 곳곳에는 이와 같은 에피소드로 공감하게 만든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환자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임재양 원장은 의료는 의술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의과생 시절 멋모르고 했던 선서가 아니라 이제 한 권의 책을 통해 제대로 의미를 아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가는 힘을 전하며 제대로 치유하고 싶어 한다. 그린이의 말 - 이시형 “나도 좀 끼워줘.” 주제넘은 청을 드렸더니 임 박사 특유의 웃음으로 허락해주었습니다. 참으로 영광입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막상 허락을 받고 보니 임 박사의 소박한 생활철학에 걸맞은 그림을 그린다는 게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귀한 글에 먹칠을 하는 죄책감이 앞서 그만둘까도 깊이 생각했습니다. 내 욕심만 부리다 낭패를 보는 듯해서 무척 마음 졸여야 했습니다.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임 박사 글이 워낙 훌륭해서(이건 과장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시원찮은 내 그림이 잘 보이지도 않거니와 임 박사 글이 모자라는 내 그림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습니다. 글쓴이의 말 - 임재양 의사 생활 37년 된 외과의입니다. 의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의학 지식, 기술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의사로서 여러 환자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아직도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매일 만나는 환자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이 나는 좋습니다. 때론 의사로서의 한계에 절망하고, 가슴 아픈 사연에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평생 환자 보고 싶습니다. 책으로 묶은 글은 환자를 진료하고 세상과 소통하면서 느낀 점들을 10년 전부터 세로토닌 문화원의 소식지에 매달 칼럼으로 쓴 것입니다. 나는 환자들과 소통하고 있을 때 이시형 박사님은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이 아니라 이 사회가 어떤 병을 앓고 있으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항상 제시하셨습니다. 힘들고 주눅 들어 있을 때 배짱으로 살자고 국민들에게 힘을 주시다가, 너무 앞만 보고 가는 지금에는 느긋하게 세로토닌적인 삶을 살자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을 알고 지낸 10여 년 동안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또 이렇게 내 글에 문인화까지 그려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