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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
몸에 관한 시적 몽상 양장
김경주전소연 사진
문학동네 2012.01.13.
베스트
감성/가족 에세이 top100 1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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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序 1 : 뺨 - 동상이몽의 별점들
序 2 : 몽정기 - 신체에 관한 시적 몽상

무릎 : 모음의 연골
눈동자 : 홍채의 사각
눈망울 : 몸속의 천문대
잇몸 : 하오체의 고해성사
손가락 : 다른 문으로 가는 현기증
엄지 : 피아노가 선택한 손
날개뼈 : 숨들의 향수병
목선 : 곱추들로 이루어진 유랑극단의 행렬
핏줄 : 몸속으로 숨어버린 살
달팽이관
쇄골 : 바로크의 빗장뼈
입술
보조개 : 사라지는 우물
목젖 : 금방이라는 단어의 체온
가슴골 : 육체 안에 감추어진 다락의 색
혀 : 인류의 보호색
갈비뼈 : 홀수의 습음들
유두 : 몽문통과 풍속통의 비의
어깨 : 탈구된 누각의 풍경
종아리 : 표본병의 두루미 알
손금 : 신들의 수상술
인중 : 친족의 우듬지
귓불 : 귀를 기다리는 날들의 태내
고막 : 귀띔해줘서 고마워
젖무덤 : 울렁증의 처녀림
아랫배 : 추락의 선해도
배꼽 : 요나, 이주의 상상력
점 : 오해의 동의어들
머리카락 : 인체에 숨어 사는 풍경
솜털 : 환영의 산란기
항문
가슴 : 은둔자의 흉막제
불알 : 은유의 습속
관자놀이 : 아기의 동화
속눈썹 : 첩모난생증
콧망울 : 청매알의 향
손목 : 필기술의 혹한
발등 : 다리 없는 새의 학의행
발목 : 이미지의 방중술
발가락 : 물고기들의 전지탐지
복사뼈 : 발목에 고인 개울
등 : 몸으로부터 추방당한 세계
눈물샘
그림자 : 은수자의 풍유법

저자 소개 2

시인이자 극작가. 1976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내면서 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등단 2년 만인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을 당시, 주최 측에서는 상금 천만 원보다도 더 귀중하고 무서운,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졌다는 극찬을 했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
시인이자 극작가. 1976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내면서 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등단 2년 만인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을 당시, 주최 측에서는 상금 천만 원보다도 더 귀중하고 무서운,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졌다는 극찬을 했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문학 부문상, 2009년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 등을 수상했다.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하였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나는 공항'에서 다양한 문화 작업과 실험극 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빈손의 판타스틱 우주 원정대』, 『시차의 눈을 달랜다』, 『기담』, 『패스포트』 『노빈손 조선 최고의 무역왕이 되다』『고래와 수증기』 등이 있다. 역서로는 『분홍주의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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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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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태어나 2011년에 엄마가 되었고 현재 아들 둘의 엄마로 살고 있다. 특수교사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행 산문집 『가만히 거닐다』와 사진 산문집 『오늘 당신이 좋아서』를 썼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과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습관이 되었다. 엄마가 된 후로는 두 아이의 성장을 주로 기록하고 있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자주 숲으로 가며,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아들 둘 키울 체력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매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짧은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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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1월 13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672g | 140*210*30mm
ISBN13
9788954617215

책 속으로

이를테면 내 귓불을 자주 만져주는 사람에게 가서 어려운 사랑을 고백한 적도 있다. 사람은 상대가 좋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그 사람의 귀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실험한 영역이다. 가만히 귀를 만져주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좋은 냄새가 날 것이라고. 조용히 타인의 귓불을 만져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머지않아 서로의 귀에서 나는 연한 냄새를 알아보는 미물의 관계가 되어갈 공산이 크다. 서로의 작은 귓불에 동감의 본질을 표현하게 된다. 서로 귓불을 만지는 사이는 금방 연인을 넘어선다. 「중략」
누군가 내 귓불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만져주었을 때, 나는 딸꾹질을 했다. 이제 그만 (그 사람을 위해서) 울음을 멈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귓불」 중에서

몽정夢精이 육체의 정열이 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그 육체를 사용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몽정은 자신의 몸을 종이에 싸서 물에 띄우듯 먼 곳으로 보내보는 연습이다. 몸 위에 목선木船을 띄우듯, 몽정은 다른 몸을 건너온다. 어느 몸으로 들어가 나는 몽정을 하는 것인가, 몽정은 나의 외가外家다. 「중략」
몽정은 타인의 몸과 나누는 성교가 아니다. 자신의 육체와 벌이는 성교다. 산달을 채우는 산모가 자신의 육체와 밀애를 나누며 아이와 함께 있듯이 몽정은 자신의 몸을 그리워하며 몸을 지나간다. 몸에 잔설殘雪을 남긴다. 불타버린 절의 재처럼, 희고 결별한 듯한 잔설을 몸에 남긴다. 녹는 뿔에 올라탄 기녀처럼, 산중山中을 헤매는 선승의 입술 위에 내려앉는 흰 나비처럼. ---「몽정기」 중에서

쇄골鎖骨에 빗물이 고이는 사람이 있다. 마르고 아름다운 몸의 선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보통 비만인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몸의 리듬은 선과 골격의 리듬이다. 물론 풍만한 몸의 소유자에게서도 선의 미는 발견되기도 한다. 선조들은 오히려 이 풍만함으로부터 선의 매혹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대체로 그들의 균형에 대한 미의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선의 리듬이라는 것은 비균형에서 온다고 믿는 편이다. 예상할 수 없는 선의 비선형성이 주는 매혹, 하나의 육체가 가지는 가장 매혹적인 균형은 역설적이게도 억측이 보기 좋게 들어맞을 경우에 생겨난다. 육체에게 바치는 우리의 탄성은 도저히 그곳으로 뻗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비율을 입고 태어나는 곡선의 질감이다. 「중략」
육체는 선으로 이루어진 풍경이다. 시詩가 가장 부적절한 순간에 언어에게서 태어나는 하나의 육체라면 뛰어난 산문散文은 그 육체를 감싸며 겉도는 하나의 선이다. 몸의 선은 그 자체로 숨 쉬는 비율이며 튀어 오르는 정밀한 뼈들을 감추고 있는 이미지다. 쇄골은 육체가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선線의 풍경이다. ---「쇄골」 중에서

나비 날개가 움직인다. 숨을 쉴 때마다 움직인다. 꽃잎 위에서, 사슴의 발등 위에서, 벤치에 앉아 모든 것에 시선을 주고 있지만 어떤 곳에도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노인의 지팡이 위에서, 이곳과 저곳 두 개의 목소리를 가진 채 잠들어 있는 누군가의 흑암 같은 눈두덩 위에도, 나비는 앉는다. 숨을, 쉴 때마다, 나비의 날개뼈가, 움직인다. 「중략」
나비의 폐에 관해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고집스럽게 하나의 숨결에 대한 회복이며, 하나의 이미지가 자신의 숨을 불러 모아 침묵하려는 태동이며, 하나의 폐에 닿으려는, 우리의 언어가 가지는 향수병이다. 모든 시는 향수병을 앓는다. 「중략」
행간으로 달리는 열차는 나비를 가득 싣고 달린다. 시는 행간行間에서 태어나는 나비의 서식지다. ---「날개뼈」 중에서

몽상하는 눈동자는 몸을 배웅한다. 마치 불면이란 잠들지 않기 위해 눈동자가 몸 곳곳으로 그 시력을 배달하는 일이듯, 몸에게 그 시간을 허락해주도록 눈동자는 특별한 의문과 꿈을 제공했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말한 ‘상응’의 방식이거나 엘리엇이 시와 시극을 연대시키고자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마지막까지 역설한 언어와 몸에 관한 친화력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이렇게 보들레르는 중국인들처럼 고양이의 눈에서 시간을 본다고 했다. 「중략」 꿈이란 한 몸에서 서로 다른 눈들을 가지고 만나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눈동자가 우리 몸에 숨긴 유령의 배후이기도 하다. 몽상은 눈동자의 유령이기 때문이다.---「눈동자」 중에서

오래전 ‘우울증은 비밀에 대한 고통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우울증은 몸이 의도하는 것과 저항하는 것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그럴 경우 몸은 뭉클하다. 대개의 경우 환자가 지적하는 통증의 부위는 은유의 화려함에 결정된다는 디알로그는 심층적이다. 몸에 관한 글을 써내려가면서, 몸을 관통하지 못하는 언어는 어디로든 데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 몸에게 닿으려는 언어는 비밀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시가 단어 하나 속에서 숨이 차오르는 숨 쉬기이듯이, 시는 육체를 밀월하는 어떤 부위를 나 아닌 누군가의 몽정이라고 부르려는 호명에 가까운 것이다. 밀어란 보이지 않는 언어로 떠나보는 여행이다. 네 몸의 어떤 부분으로 떠나는 밀월이다. 시인은 몽롱한 번개 같은 언어를 데리고 ‘살 속의 연’처럼 흘러가보고 싶다. 혹은 속삭이는 번개처럼, 내 몸속으로 들어가 네 몸을 잊어보고 싶었다. 이 책은 어떤 이에게는 불필요해 보이는 느낌이 될 수도 있겠으나 어떤 이에게는 뭉클한 몸처럼 그리운 허구 같은 것이 되었으면 한다. 그건 우리들의 언어에 또 다른 생채기를 남길 것이다. 찰과상처럼.

---작가의 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몸이 언어와 밀애를 나누면 그 몸은 시가 된다

21세기 문단의 총아 김경주,
2년간의 담금질로 완성한 파격의 에세이!


시, 희곡,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글쓰기를 해온 문단의 총아 김경주, 그가 2년여 침묵의 시간을 깨고 산문집 『밀어』로 돌아왔다.

2009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시차의 눈을 달랜다』를 발표한 이후 이 책의 집필에 몰두해온 작가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백여 권에 달하는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수십 차례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날카롭고 단단한 글을 벼려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책은 몸에 대한 우리 시대의 가장 전위이고 가장 예술적인 텍스트로, 시와 에세이와 미학서의 경계에 선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문학으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

왜 몸을 이야기하는가

작가는 그간 시를 쓰거나 신체극 이미지극 등의 실험극을 기획하고 극을 쓰면서 몸을 관통하는 언어에 주목했고 그 중요성을 꾸준히 느껴왔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신체에 대한 것을 쓰고 무대에 올리면서 이를 작가적 입장에서 정리할 필요를 느꼈고, 충분한 고찰과 모색을 거쳐 만들어낸 결과물이 이 책 『밀어』이다. “몸을 관통하지 못하는 언어는 어디로든 데려갈 수 없다”는 게 작가의 문제의식이며, 그는 이 책을 통해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해냈다.

『밀어』에서 몸은 주제이자 곧 형식이다. 작가는 몸의 유기적 관계성보다는 몸의 부위 자체가 지닌 개별성에 주목한다. 특히 전체와 상응하는 듯하면서도 개별적 목적성을 지닌 신체의 각 단어들, 지칭들에 주목하고 각각의 이름들이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그 시원을 상상하면서 기존 언어가 가 닿지 못한 파격적인 은유와 상징으로 몸의 언어와 감각의 무한 확장을 꾀한다. 예컨대 작가에게 목선은 “잠자는 육신을 공중으로 데려갈 때 필요한 선”이다. 핏줄은 고독해서 몸속으로 숨어버린 살이며, “아직 발견되지 못한 채 물속 깊이 떠다니는 슬픈 대륙의 이미지”이다. “관습적 언어 등 기존 세계와 싸우려는 의지”(문학평론가 신형철), “서정적이고 섬세하게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시인, 문학평론가 권혁웅) 등 기존에 김경주의 시를 말하는 문장들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몸이 언어와 밀애를 나누면 그 몸은 시가 된다

다이어트, 성형, S라인과 초콜릿 복근… 몸을 몸 아닌 것으로 화하는 천박한 담론의 범람 속에서 이 책이 하고 있는 작업은 우리 몸이 가진 태곳적 아름다움을 복원하는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귓불, 솜털, 뺨, 입술, 쇄골, 유두, 항문, 불알, 복사뼈 등 마흔여섯 가지 우리 몸의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 언어의 산책로를 내고, 깊이 응시하고 은밀하게 더듬어 때로는 관능적이고 때로는 숭고하게 표현해냈다. 철학, 언어학, 역사학 등 인문적 고찰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이내 학문 간 경계를 훌쩍 넘어 민속학, 생물학, 의학, 운기학(우주법칙과 자연현상을 연구해 운명을 점치는 학문)까지 아우르며 전방위적 고찰로 나아간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몸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객관적으로 응시하고 성찰하는 한편, 그 생생한 감각과 아름다움을 새로운 언어의 힘을 빌려 깨우치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몸’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 사진들

여행 에세이 『가만히 거닐다』의 저자이자 「시차적응」 「빛의 유목」 「Passport Project No.1 앨리스 증후군」 「흰고래의 등」 등의 사진전을 연 사진작가 전소연이 『밀어』의 사진을 담당했다. 피사체에게서 밀도 있는 질감을 잡아내는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작가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찾아낸 몸의 선과 양감의 아름다움이 48쪽의 화보에 걸쳐 펼쳐진다. 50여 명의 모델을 섭외해 찍은 누드 사진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작품인 동시에 텍스트와 어울려 절제되면서도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책에 엄선해 실은 사진 외에 다른 사진들은 따로 사진전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추천평

시가 써지는 건 육체의 숨구멍을 통해서이다. 이 책에서 시인은 신체 각 부위에 명명된 인간의 욕망과 고뇌의 흔적들을 들춰낸다. 시가 백지 위에 고착된 언어의 표피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육체적으로 재현하는 일. 이건 혈관이나 뼛속 깊숙이 각인된 상처, 그리하여 우리가 흔히 ‘영혼’이라 부르는 물리적 진동의 어떤 양상들을 그 근원에서부터 읽어내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 시는 대뇌의 독자적 망집이거나 반복구술 되는 윤리의 지령이 아니다. 시는 육체의 극점에서 한 개인의 기억, 그리고 세계의 기원, 또 그리고 우주의 도상들을 한데 엮어 공명하는 언어 바깥의 신체이다. 문득 자신의 몸이 신비스러운 이물로 여겨질 때, 언어를 부리고 언어에 다스림 당하는 자는 신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지점에서 마치 제 몸과 섹스하듯, 영혼의 혈류를 거꾸로 끌어올리는 문장들을 써내곤 한다. 시인의 숨결로 짜낸 동서양 온갖 지식들의 극세사 무늬. 언어로 수놓아진 기하학적 보디페인팅의 만화경. 「중략」

신체를 통해 영육의 조건과 기원들을 탐사하는 일은 어느 개인의 특수한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는 여태껏 오직 단 한편의 시만 써왔던 건지 모른다. 마치 신체의 모든 조직이 같은 설계도를 토대로 반복재생 되어왔듯, 우리는 그저 몸이 가진 단 하나의 기원을 잊지 않으려 그토록 많은 말들을 떠들어댄 건지 모른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할수록 우린 몸을 잃는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저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우주의 파동에 전신으로 반응하는 숨결의 반사체일 뿐이다. 정말 당신이 외롭고 아프고 고독하다면 오래 전 일기장을 들추듯 당신의 몸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마음이 미처 판독하지 못했던 세계의 숨은 질서를 몸이 알아서 대필해줄 지 모른다. 당신이 가장 그리워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의 광활한 육체일 뿐이다.
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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