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쓰치미카도 저택의 가을 - 1008년 7월 19일
2. 대대적인 기도회 - 7월 20일 새벽녘 3. 아침 이슬 머금은 마타리꽃 - 그날 아침 4. 대감님의 장남 요리미치 님의 내방 - 그날 저녁 5. 풍아한 연회 - 7월 하순 6. 관료들의 숙직 - 8월 20일 지나서 7. 사이쇼 여방의 낮잠 - 8월 26일 8. 중양절, 국화꽃에 씌웠던 솜 - 9월 9일 9. 향 피우기 - 같은 날 밤 10. 기도하는 사람들 - 9월 10일 11. 중궁님 순산 기원 - 9월 11일 아침 12. 황자님 탄생 13. 크나큰 경사 14. 신검, 탯줄, 첫 모유를 먹이는 의식 15. 첫 목욕 의식 - 같은 날 밤 16. 여방들의 복장 - 9월 12일 17. 황자님 탄생 사흘째 날의 축하 의식 - 9월 13일 밤 18. 황자님 탄생 닷새째 날의 축하 의식 - 9월 15일 밤 19. 달밤의 뱃놀이 - 9월 16일 밤 20. 황자님 탄생 이레째 날의 축하 의식, 흰옷을 보통 옷으로 교체 - 9월 17일 밤, 18일 21. 황자님 탄생 아흐레째 날의 축하 의식 - 9월 19일 밤 22. 첫 손자를 귀여워하는 미치나가 - 10월 10일이 지나서 23. 나카쓰카사노미야 집안과의 인연 24. 물새에 마음을 담아서 - 10월 13일 25. 시구레 내리는 하늘 26. 천황님의 쓰치미카도 저택 행차 - 10월 16일 27. 아악 연주, 승진 - 같은 날 밤 28. 황자님의 첫 이발과 담당 관리 임명 - 10월 17일 29. 중궁 대부와 중궁 권량 - 같은 날 밤 30. 오십일 축하 의식 - 11월 1일 31. 8천 년 이어질 태평성대 - 같은 날 밤 32. 책 만들기 - 11월 10일 전후 33. 황자님의 성장 34. 사가에서의 우울한 마음 - 11월 15일 전후 35. 중궁님과 황자님의 환어 - 11월 17일 밤 36. 대감님께서 중궁님께 보내신 선물 - 11월 18일 37. 고세치 무희들 - 11월 20일 38. 대전(大殿)의 연취(淵醉), 어전 시범 - 11월 21일 39. 동녀 어람 의식 - 11월 22일 40. 사쿄 여방 - 11월 23일 41. 고세치도 지나서 - 11월 26일 42. 임시 마쓰리 - 11월 28일 43. 연말에 혼자 읊조리는 노래 - 12월 29일 밤 44. 섣달그믐날 밤의 강도 45. 신년 하례식 - 1009년 정월 초하루 46. 여방들의 용모와 성격 47. 재원과 중궁전 48. 이즈미시키부, 아카조메에몬, 세이쇼나곤 비평 49. 내 인생을 뒤돌아보며 50. 저마다 다른 여방들의 심성 51. ≪일본서기≫ 박사, ≪백씨 문집≫ 진강(進講) 52. 출가에 대한 고민 53. 편지를 마무리하며 54. 공양당 참배와 뱃놀이 55. 대감님과의 증답 56. 문 두드리는 사람 57. 황자님들의 공양 떡 올리기 - 1010년 정월 58. 중궁님의 임시 손님맞이, 초자일 놀이 59. 나카쓰카사 유모 60. 둘째 황자님의 오십일 축하 의식 - 정월 15일 부록 비평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다 - 젠더적 시점에서 마타리꽃 연정의 실체 - 미치나가의 시첩설 참고 도해 연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
ㆍ황자님 첫 목욕식은 유시부터라고 했다. 등불을 켜고 중궁직 하인이 보통 옷 위에 백견 도포를 입고 목욕물을 날랐다. 목욕통을 앉힌 받침대는 모두 흰 천으로 씌워져 있었다. 오와리노쿠니 지방 수령인 지카미쓰와 중궁직 시장인 나카노부가 목욕통을 메고 발 있는 데까지 날라 오면, 발 안에서 기요이코(淸子) 명부와 하리마(播磨) 여방이 그 통을 받아 물 온도를 가늠하고, 오모쿠(大木工) 여방과 우마(馬) 여방이 그것을 받아 항아리 하나하나에 부었다. 열여섯 개의 항아리를 다 채우자 나머지 물은 욕조에 부었다. 여방들은 얇은 천의 우와기와 당의를 입고 오목 무늬 치마를 둘렀으며, 앞머리에는 사이시를 꽂고 뒷머리는 하나로 해서 흰 천으로 묶었다. 머리가 평상시보다 단정하고 깔끔했다. 황자님께 물 끼얹는 역할은 사이쇼 여방이 하고, 그 보조역은 다이나곤 여방이 맡았는데 두 사람 모두 흰옷 입은 모습이 매우 정갈하게 보였다.
황자님은 대감님께서 안고 오셨는데, 고쇼쇼 여방과 미야노 내시가 각각 신검과 호랑이 두상을 들고 그보다 앞섰다. 내시의 당의는 솔방울 문양이 그려진 것이었고, 치마는 바다 그림 위에 주변 경치를 수놓은 것이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이 치마 허릿단으로, 얇은 천에 당초 문양을 수놓아 매우 화려했다. 고쇼쇼 여방도 허릿단에 가을 풀숲, 나비, 새와 같은 문양을 은사로 수놓은 치마를 둘렀는데 옷감은 신분에 따라 정해져 있으므로 허릿단을 색다르게 꾸며서 입은 것이리라. 대감님의 두 도련님과 겐노 소장(源少將)께서 쌀을 뿌리시는데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소리가 크게 나게 뿌리셨다. 마침 호신법 때문에 대령해 있던 조도사 스님은, 쌀을 피하려고 얼른 부채를 펴서 머리 위에 썼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젊은 여방들은 웃음을 못 참고 내내 키득거렸다. ㆍ천황님 행차 날이 가까워지자 대감님께서는 집안 단장에 한층 더 신경을 쓰셨다. 실로 멋있게 핀 국화를 어디에선가 캐 오시어 집 안을 환하게 장식하셨는데, 형형색색으로 핀 국화 중에서도 탐스러운 노란 국화를 아침 안개 사이로 보고 있자니, 옛말에도 있듯이 몸이 저절로 젊어지는 것 같았다. 아, 내가 이 허무한 세상에서 적당히 사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런 광경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을 느낄까? 이렇게 멋있고 근사한 것을 앞에 두고도 오히려 출가하고픈 마음만 더 강해지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모든 게 우울하고 한탄스럽기만 하다.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안 좋은 일은 다 잊어버리자고 굳은 결심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이런 식으로 살면 오히려 죄만 더 깊어진다며 하루라도 빨리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해도 날만 새면 또다시 멍하니 상심에 빠지게 된다. 연못의 물새들도 언뜻 보면 아무런 근심 없이 유유히 노닐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저기 물새를 물 위에 뜬 허망한 거라 보겠나 이 몸 또한 뜬세상 허무하게 사는데 저 물새들도 남 보기에는 즐거운 듯해도 그 몸이 되어 보면 나처럼 힘든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ㆍ대감님께서 ≪겐지 이야기≫가 중궁님 어전에 있는 것을 보시더니, 농담 식으로 매실 아래 깔린 종이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바람둥이라 소문 다 나 있으니 본 사람마다 모두 꺾었을 거라 이 몸은 생각하네 그래서, “남에게 아직 꺾인 일 없는 사람 그 어느 누가 바람둥이라는 말 함부로 하는 건가 이상도 해라” 하고 여쭈었다. ㆍ2일, 중궁님 대향은 중지되고 임시 손님맞이만 동쪽 마루방을 꽉 채운 채 진행되었다. 열석한 공경님들은 부대납언, 우대장, 중궁 대부, 4조 대납언, 권중납언, 시종 중납언, 좌위문독, 아리쿠니 재상, 대장경, 좌병위독, 겐 재상 등으로, 서로 마주 앉아 계시는 식이셨다. 겐 중납언, 우위문독, 좌우 재상 중장은 중방 아래쪽의 당상관 자리 상석에 앉아 계셨다. 대감님께서 황자님을 안고 납시어 인사를 올리도록 하셨는데, 그때 안방마님께 “작은 황자님을 안아 드리게” 하시자, 큰 황자님께서 “싫어” 하며 투정을 부리셨다. 대감님께서 얼른 큰 황자님을 달래셨는데 그 모습을 우대장께서는 흥미롭다는 듯이 보고 계셨다. 공경들께서 세이료덴에 대령하고 주상 전하께서 대전에 납시자 아악 연주가 시작되었다. 대감님께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술에 취해 계셨다. 나는 시끄러운 것이 싫어 나가지 않고 숨어 있었는데 결국 대감님께 들켜 버렸다. “자네 아버지는 아악 연주에 불렀는데도 대령하지 않고 바로 퇴청해 버렸다네” 하며 기분이 상한 듯 말씀하셨다. “내 화가 풀리도록 노래 하나 읊어 보게나. 아버지 대신 벌을 받는 거니까 그렇게 알게. 더구나 오늘이 초자일이니 노래를 읊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지” 하고 재촉하셨다. 하지만 바로 읊어 올린다 해도 제대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대감님 얼굴은 취기? 올라 불그스름한데 그 모습이 불빛에 비치니 빛이 나고 보기에도 좋았다. “이 수년 동안 중궁께서 아이 하나 없이 쓸쓸히 계셨는데 이렇게 양쪽에 황자님이 계신 모습을 보니 그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라고 하시며 침상 휘장을 제치고 황자님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곤 하셨다. 그리고 “들판에 어린 솔이 없었더라면” 하고 읊조리셨다. 이런 때는 새로운 노래를 읊는 것보다 옛 노래 중에 걸맞은 것을 읊조리는 것이 더 풍취가 있다. ---본문 중에서 |
|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 ≪겐지 이야기≫의 작가 무라사키시키부.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헤이안 시대의 대표적인 재녀로 손꼽히는 그녀의 일기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겐지 이야기≫의 배경이 된 궁중 문화와 귀족들의 생활 모습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글에 드러난 솔직한 서술을 통해 무라사키시키부라는 독특한 여인을 만날 수 있다.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마쿠라노소시≫의 작가 세이쇼나곤, 와카의 명수 이즈미시키부에 대한 비평도 있다.
정순분 교수의 상세한 주석과 친절한 해제, 전문적인 해설이 독자를 헤이안 시대로 안내한다. 부록으로 실린 논문 두 편은 무라사키시키부를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한 덤이다. 무라사키시키부가 궁중에 출사해서 2, 3년 지날 무렵에 일어난 일대 경사가 쇼시 중궁의 출산으로, 쇼시 중궁의 부친이자,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이 중대사의 전말을 무라사키시키부에게 기록하도록 명하고, 그에 그녀는 타고난 관찰력과 치밀함으로 출산 전부터 출산 당일, 그리고 그 후의 축하 연회 등에서 사람들의 배치나 복장, 행동 등을 남김없이 메모해 두고 그것을 토대로 해 2년 후인 1010년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회상록 형태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본 일기는 쇼시 중궁이 회임해 친정집인 쓰치미카도(土御門) 저택에 퇴궐해 출산을 기다리는 7월 중순부터 시작되고 있다. 미치나가에게는 정권을 확립해 가문에 영화를 가져다 줄 쇼시 중궁의 출산이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에 해당했으며 그 대단한 사건의 전말을 써서 남길 필요가 있었다. 이에 미치나가는 학문적 재능이 있던 무라사키시키부에게 쇼시 중궁의 출산 장면을 기록하도록 명한 것이다. 무라사키시키부는 여기에 현재의 신문 기사와 같이 객관적인 기록의 형태를 취하지는 않았다. 쓰는 주체인 자신을 전면에 내세워, 이를테면 ‘무라사키시키부가 본 쇼시 중궁님 출산 전후’라는 르포, 혹은 수기와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 여기저기에 궁중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과, 마음을 터놓고 지낸 동료 여방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러한 사항들은 언뜻 보면 쇼시 중궁의 경사스러운 일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것들 때문에 독자는 무라사키시키부라는 한 개인의 눈과 마음을 통해서 쇼시 후궁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국모인 중궁도 시키부가 그린 모습은 권위적이고 딱딱한 것이 아니었다. 쇼시 중궁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했나 하는 것은 당시의 귀족들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 일기는 화려한 세계 속에 들어 있는 ‘고통’의 면까지도 빼놓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키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인생의 화려함과 쓸쓸함,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개성적인 궁중 출사 기록. 거기에는 약간 앞선 시기에 쓰인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를 의식한 흔적이 역력하다. ≪마쿠라노소시≫는 쇼시 중궁과는 라이벌 관계가 되는 데이시 중궁의 후궁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시키부가 쇼시 중궁의 후궁 문화를 기록하는 이상, 경쟁의식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키부에게 있어서 세이쇼나곤은 넘어야 할 하나의 큰 산이었음이 분명하다. 본 일기, 혹은 ≪겐지 이야기≫가 ≪마쿠라노소시≫의 세계를 넘어서 어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헤이안 여류 일기문학의 효시 ≪청령일기≫(미치쓰나 어머니 / 정순분) 헤이안 수필문학의 효시 ≪마쿠라노소시≫(세이쇼나곤 / 정순분) 세계 최초 장편소설 ≪겐지 이야기≫(무라사키시키부 / 김종덕) ≪겐지 이야기≫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모토오리 노리나가 / 정순희) 헤이안 최초의 칙찬 와카집 ≪고금와카집≫(기노 쓰라유키 외 / 최충희) 일본 최초의 시가집 ≪만엽집≫(유라쿠 천황 외 / 고용환, 강용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