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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민족
정체성의 정치에서 횡단의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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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1장 _ 젠더와 국가의 이론 정립
여성과 젠더 관계 분석 l 민족과 국가의 이론 정립
민족화된 젠더 그리고 젠더화된 민족

2장 _ 여성과 생물학적 국민 재생산
혈통과 소속 l 인구의 힘 l 우생학 담론
맬서스 담론 l 사회적 맥락
결론의 말 : 재생산권, 국민 재생산 그리고 페미니즘 정치

3장 _ 문화 재생산과 젠더 관계
문화의 개념 l 문화적 차이와 ‘타자’
인종차별주의와 섹슈얼리티 l 동화주의와 분리주의
다문화주의와 정체성 정치 l 문화 변화와 근대성
근본주의와 근대성 l 세계화와 문화 l 결론

4장 _ 시민권과 차이
시민권, 국가주의 그리고 공동체 l 사회적 권리와 사회적 차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l 적극적/소극적 시민권
시민권의 권리와 의무 l 결론

5장 _ 젠더화된 군대, 젠더화된 전쟁
군복무와 시민권 l 현대 전쟁과 여성의 군 편입
군인으로서의 여성 l 병역과 여성의 권리
젠더화된 구성물로서의 전쟁 l 여성의 정치와 반전 운동
결론

6장 _ 여성, 민족성 그리고 세력화: 횡단의 정치를 위하여
페미니즘과 민족주의 l 정체성 정치와 다문화주의
국제 여성 활동 l 반발 l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횡단의 정치 l 권말에 부쳐

참고문헌 l 옮긴이 후기 l 찾아보기

저자 소개 2

니라 유발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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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런던 대학교 이민ㆍ난민ㆍ소속 연구소(The Research Centre on Migration, Refugees and Belonging) 소장이다. 이스라엘 반체제 학자로 런던 소재 국제연구단체인 ‘분쟁지역 여성들의 네트워크’(Women in Conflict Zones Network)와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또한 국제사면위원회, 유엔개발계획, 유엔여성폭력보고위원회와 같은 여러 국제기구에서 자문위원 및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여성-민족-국가』(Woman-Nation-State, 1989), 『인종차별화 경계선』(Raci
이스트런던 대학교 이민ㆍ난민ㆍ소속 연구소(The Research Centre on Migration, Refugees and Belonging) 소장이다. 이스라엘 반체제 학자로 런던 소재 국제연구단체인 ‘분쟁지역 여성들의 네트워크’(Women in Conflict Zones Network)와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또한 국제사면위원회, 유엔개발계획, 유엔여성폭력보고위원회와 같은 여러 국제기구에서 자문위원 및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여성-민족-국가』(Woman-Nation-State, 1989), 『인종차별화 경계선』(Racialized Boundaries, 1992), 『정착하지 않는 정착민 사회』(Unsettling Settler Societies: Articulations of Gender, Race, Ethnicity and Class, 1995), 『여성, 시민권, 차이』(Women, Citizenship & Difference, 1999), 『근본주의의 경고 신호』(Warning Signs of Fundamentalisms, 2004), 『소속의 상황 정치』(The Situated Politics of Belonging, 2006) 등이 있고, 최근 『소속 정치: 구역 간 논쟁』(The Politics of Belonging: Intersectional Contestations, 2011)이 출간되었다. 그녀의 저서들은 유럽과 이스라엘, 그 밖의 정착민 사회에서의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 근본주의, 시민권, 정체성, 소속, 젠더 관계와 관련한 이론 및 경험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와 서울대(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학부 때는 희곡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원에서는 내러티브 이론을 공부하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서 페미니즘 시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강의와 번역을 오래했고 지금은 틈틈이 에밀리 디킨슨 시를 번역해 모았다가 시집으로 만들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딸은 축복 속에 자란다』 (들녘출판사), 『남녀가 평등한 페미니즘 동화 흑설공주 이야기』(뜨인돌출판사), 『흑설공주 이야기 2 -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신화』 (뜨인돌출판사), 『젠더와 민족 (그린비출판사)』, 『황금요정 이야기』, 『플롯찾아읽기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와 서울대(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학부 때는 희곡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원에서는 내러티브 이론을 공부하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서 페미니즘 시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강의와 번역을 오래했고 지금은 틈틈이 에밀리 디킨슨 시를 번역해 모았다가 시집으로 만들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딸은 축복 속에 자란다』 (들녘출판사), 『남녀가 평등한 페미니즘 동화 흑설공주 이야기』(뜨인돌출판사), 『흑설공주 이야기 2 -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신화』 (뜨인돌출판사), 『젠더와 민족 (그린비출판사)』, 『황금요정 이야기』, 『플롯찾아읽기 - 내러티브의 설계와 의도』 (강출판사)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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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40g | 152*224*20mm
ISBN13
9788976827586

책 속으로

민족 담론에서 여성의 재생산 역할의 중요성은, ‘한 핏줄’이라는 신화(혹은 사실)가 대부분의 민족 집단체 구성의 작용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대체로 출생과 동시에 이 집단체에 참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분명해진다. 이는 몇몇 경우, 특히 민족주의나 인종차별주의 이데올로기들이 서로 매우 촘촘히 얽혀 있을 때, 집단체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 그 집단에 태어나지 못해서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기도 한다.

특히 종종 여성들에게 이러한 ‘재현의 짐’이 요구되는데, 이는 여성이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집단체의 정체성과 명예의 전달자라는 상징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아 쿤즈는 히틀러 청년 운동 당시 소년 소녀들에게 주어졌던 여러 모토들을 인용한다. 소녀들을 위한 모토는 “정숙하여라, 순결하라, 독일인이어라”였다. 한편 소년들을 위한 모토는 “충실히 살아라, 용감히 싸워라, 죽을 때 웃어라”였다. 소년의 민족적 의무는 민족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다. 소녀들은 행동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이 해야 했던 것은 민족의 구현이었다.

여성들은 이들의 ‘올바른’ 행위, 이들의 ‘올바른’ 의상으로, 집단체의 경계를 의미하는 선을 구현한다. 다른 주요 사회의 여성들 역시 간음이나 집에서 도망쳤다는 이유 혹은 이들의 남성 친척들과 그 공동체에 불명예와 수치를 가져왔다고 인식된 그 밖의 문화적 위반 행동 때문에 자신의 친척들에게 고문받고 살해당한다. 집단의 명예를 배신한 여성들에 대한 보다 약한 보복이 여성들의 집단 삭발이다. 2차대전 후 여러 유럽 국가에서 전쟁 중 점령군 나치와 교제한 사실로 고소당했던 이들이 바로 이러한 경우다.

횡단의 대화는 정착과 이동의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 즉,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면서 대화상대자의 다른 입장에 감정이입하고, 이로써 참여자들은 헤게모니의 좁은 시야와는 다른 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대화의 경계는 전달자가 아닌 전달 내용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대화의 결과는 여전히 다른 입장을 지닌 사람들과 집단들을 위한 다른 기획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회에서든 모든 여성이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민족, 인종, 계급, 연령, 능력, 성에 따라, 그리고 그 밖의 사회적 속성에 따라 구분하는 신분의 차별이 젠더 구분에도 간섭한다. 따라서 여러 시행기관들을 통해 대체로 여성은 남성과 달리 구성되고 취급받으면서도, ‘남성들’은 물론이고 ‘여성들’ 역시 사회적 수행체로나 사회적 대상으로 구성된 동질적 범주가 아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여성주의는 왜 다시 ‘민족’을 사유해야 하는가?
경계를 가로지르는 ‘횡단의 정치’를 말한다!!


민족이냐, 여성이냐. 이는 20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과 함께 싸워 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줄곧 맞닥뜨려 왔던 문제다. 한편에선 여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문제라고 언성을 높였고, 또 다른 한편에선 민족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더 폭넓은 여성들 간의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젠더’와 ‘민족’이란 키워드는 많은 이들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자리 잡아 갔다. 얼마 전 광복회와 순국선열유족회 등의 조직이 ‘독립운동을 폄하시키고, 순국선열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를 들어 서대문 독립공원 내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반대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불편한 문제는 또 다시 우리 앞에 출현했다. 이 사건은 여성이 민족으로서 존재하되, 민족의 주변부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리에게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민족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모든 여성은 연대할 수 있는가. 한국 재벌 가문에서 태어나 대기업 임원직을 맡고 있는 여성 A, 필리핀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미국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필리핀 가족들에게 보내고 있는 여성 B, 이슬람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평생을 엄혹한 근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여성 C, 평화 운동가인 여성 D와 군 고위급 장교인 여성 E.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여성들……. 이들은 공통의 지점을 통해 연대할 수 있는, ‘같은’ 여성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책 젠더와 민족(Gender and Nation)은 ‘젠더’와 ‘민족’의 문제가 교차되면서 각각의 위계 관계를 강화시키는 방식에 주목한다. 그리고 동시에 인종, 계급, 직업 등 다양한 사회적 분할이 서로를 강화시키며 여성들 간의 위계를 구성하는 방식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은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개별 민족의 담론 안에서 억압과 통제를 견뎌야 하는 상황과, 민족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수많은 분할들에 따라 차별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는 상황을 나란히 보여 주면서, 여성들 간의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니라 유발-데이비스(Nira Yuval-Davis)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다양한 정체성들을 가로질러 여성들이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 방안으로서 ‘횡단의 정치’(transversal politics)를 주창한다. 젠더와 민족은 ‘횡단의 정치’라는 개념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대표 저서이다.
‘횡단의 정치’는 특정 성, 인종, 민족 등의 정체성을 앞세워 배타적인 권익을 주장하는 ‘정체성의 정치’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정체성의 차이를 토대로 하면서도 동시에 타자를 배제하거나 위계를 구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페미니즘 정치학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다양한 소수자 정치학에 많은 참조점을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추상적이고 무비판적인 연대의 함정이나 연대의 불가능을 점치는 회의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각각의 정체성이 교차하는 접합 지점에서 서로 연대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민족 안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여성으로서 나는 조국이 없다. 여성의 조국은 세계다. ― 버지니아 울프


다양한 사회에서 정치가들은 여성에게 ‘민족/국민의 재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해 왔다. 민족과 국가를 존속시키고 이 경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정 수 이상의 구성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재생산’에 인구 재생산만이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민족의 정체성을 다른 집단과 구별시켜 줄 전통 문화를 후대에 전수해 줄 사람도 필요했다. 여기서도 여성은 민족 문화를 재생산하고 재현하는 몸으로 여겨졌다.

국민의 재생산자로서의 여성
상당수의 민족 집단체, 그리고 민족국가들은 ‘순수혈통’이라는 신화에 기반하여 그 경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신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재생산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책의 2장은 민족/국민의 재생산자로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통제되고 억압받는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재생산자로서의 여성은 민족 집단체 밖의 다른 종과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며, 피임이나 낙태와 관련한 일체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은 역사적으로 특히 소수인종, 소수민족, 제3세계 여성들에게 더 많이 가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같은 사례에는 나치의 우생학적 인구정책뿐 아니라, 미국에서 흑인 공동체에게 시행한 피임(불임)장려 정책도 포함된다. 한편 민족/국가 간 전쟁 중에 ‘인종청소’의 일환으로 집단강간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타민족의 ‘순수혈통’을 오염시킨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민족 문화의 재현체로서의 여성
민족 집단체를 외부 집단으로부터 구분시켜 주는 문화적 경계를 구축함에 있어서, 젠더 상징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사회 안에서 남성성/여성성이라고 구성되어 온 것들을 공고히 지키는 것이 바로 전통이고 민족 고유의 문화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3장은 상징적 ‘경계 수비대’이며 집단 문화의 재현체로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다룬다. 지금도 종종 제3세계 민족 집단체 안에서 행해지는 ‘명예살인’과 같은 행위는 여성을 민족의 전통과 명예 수호자로서 바라보는 데서 기인한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전통’에서 벗어난 행동은 곧 민족(가족/친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로 간주되었고, 그로 인한 폭력들은 집단체 안에서 손쉽게 정당화되곤 했다.

저자는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민족의 경계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맡은 여성들이 대체로 남성에 비해 강압적인 정책과 폭력에 취약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동일한 민족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예컨대 혼종들), 그리고 집단 외부의 수많은 타자들 역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취약한 위치에 처해 있음을 밝힌다.

여성은 완전한 시민/국민일 수 있는가?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난다고 했으면서도, 모든 여성이 노예로 태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메리 아스텔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마도 세계의 소수 국가들에서, 적극적 시민권의 지위를 지니게 된다.
― 니라 유발-데이비스

루소는 일찍이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나며, 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국가(사회)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시민 개념은 애초부터 ‘남성’을 상정하고 있으며, 여성, 이방인 등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루소의 이론 외에도 많은 보편적 시민권 담론은 이처럼 주변의 수많은 ‘타자’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다양한 인종, 민족, 계급들이 교차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시민권은 더더욱 뜨거운 주제가 되어 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같은 물리적 영토 안에 살고 있다고 해서 모든 이에게 똑같이 ‘시민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시민권은 성, 인종, 출신민족, 재산의 많고 적음 등 다양한 조건들에 따라 달리 주어진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시민/국민’이라는 보편적 시민권 담론의 환상은 이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은폐한다. 아직까지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불완전한 시민권을 구성하고 있는 제3세계 여성들, 형식적으로는 완전한 시민권을 보장받고 있지만 병역 등에 있어서 여전히 수동적인 시민권을 구성하고 있는 제1세계 여성들, 시민권은커녕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한국의 결혼 이주민 여성들, 취약한 이주노동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 소수인종과 소수민족의 구성원들……. 보편적 시민권 담론의 환상은 이러한 차이들이 표면화되었을 때, 비로소 해체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공공 영역이 점차 축소되고 시장의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적극적인’ 시민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들은 더더욱 극소수밖에 남지 않았다. 이는 공식적으로는 시민의 지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받는 혜택은 점차 줄었다는 이야기다(루스 리스터의 말마따나 “가난하다는 것은 조건부 시민권을 참아내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에 따라 사회의 주변부는 점차 늘어나게 되었으며, 남성들보다는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타자들의 취약성이 더욱 심화되었다. 저자는 전 지구적인 추세이기도 한 이러한 시민권 양상의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해 내고 있으며, 지구적 위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색한다.
‘여성은 완전한 시민/국민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거의) 모든 여성은 완전한 시민/국민일 수 없다’라는 절망적인 대답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국민의 재생산자, 민족 문화의 재현체로서 여성은 민족과 국가 담론의 중심에 늘 서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전한 시민/국민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여성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치적 주체일 수 없는 것일까? 관점을 바꾸어 민족과 국가 담론 바깥에서 사유를 한다면 여성들은 오히려 더 많은 타자와 연대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에 따라 우리가 품게 될 물음 또한 이렇게 바뀔 것이다.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완전한 시민일 수 없는 여성들, 그리고 주변부 타자들 간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차이와 경계를 가로질러 연대하라 ― ‘횡단의 정치’

저자는 다양한 상황 속에 처한 타자들 간의 연대를 위한 방안으로 ‘횡단의 정치’를 제안한다. 횡단의 정치를 위해서는 우선 민족, 국가의 담론 안에서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타자들이 취약한 위치에 놓쿀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여기서는 오히려 차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평등, 동일함’이라는 신화를 걷어 냈을 때, 민족 담론하에서 은폐되었던 각기 다른 어려움들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비로소 ‘차이와 경계를 가로지르는’ 연대의 지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제3세계 여성들이 놓인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계몽’의 의지만을 앞세웠던 제1세계 페미니스트들과 제3세계 페미니스트들 간의 갈등을 기억하고 이를 경계한다. 그리고 제3세계 안에서도 소수의 엘리트 여성들이 그 집단의 모든 여성을 대표(representation)하는 것 역시 경계한다. 하나의 강력한 목소리가 다양한 목소리들을 억압하고 은폐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소리나 이데올로기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성. 이를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주된 방법은 다름 아닌 ‘대화’이다.

횡단의 대화는 정착과 이동의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 즉,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면서 대화상대자의 다른 입장에 감정이입하고, 이로써 참여자들은 헤게모니의 좁은 시야와는 다른 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대화의 경계는 전달자가 아닌 전달 내용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대화의 결과는 여전히 다른 입장을 지닌 사람들과 집단들을 위한 다른 기획이 될 수도 있다. (본문 162쪽)

횡단의 정치는 고유한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정체성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연대하는 것을 지양하자고 말한다. 이미 ‘닫힌(달리 말하면 완성된)’ 정체성의 범주 안에서 사고하는 것은 또 다른 타자들을 배제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니라 유발-데이비스는 이들이 공유하는 지식, 대화, 공동체 모두 ‘미완’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이 정치 기획이 언제든 수정될 수 있으며,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한 횡단의 정치가들에게 ‘마지막 목표’란 없다. 횡단의 정치는 늘 길 위에서 진행 중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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