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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장 _ 문화대혁명과 천보다 1. ‘되살아오는’ 문화대혁명과 ‘조반파’ 2. ‘중앙문혁’소조장 천보다 2장 _ 천보다와 ‘마오쩌둥 사상’ 1. 천보다라는 인물 2. 천보다와 마오쩌둥 3. 중앙문혁소조와 천보다 3장 _ 파리코뮨의 길을 찾아서 1. 「문혁 16조」 : ‘대신 될 수 없는’ 혁명 「문혁 16조」와 ‘파리코뮨 원칙’ l 공작조 문제 l 혈통론 비판에서 두 가지 노선 비판으로 l 무장투쟁의 제지 2. 천보다의 안티노미 : 공장 문혁에서, 그리고 탈권에서 노동자의 문혁 참여 98 l 탈권투쟁 : 코뮨의 역설 4장 _ 길을 막고 마주선 벽: 국가/당/군대 1. 군 문제의 돌출과 무장투쟁의 격화 2. 성우롄에서 광시 참극까지 : 거대한 어긋남과 스탈린주의로 회귀 3. 파리코뮨 없는 문혁, 그 후과들 4. 사회주의 하의 구조의 변혁 5. ‘사회주의적 민주’라는 남겨진 쟁점 [보론] 남겨진 영역 : 공업문제 5장 _ 문혁 평가의 하나의 우회로 : 정치의 아포리아를 둘러싼 논점 6장 _ 맺음말 : 문혁이 제기하는 정치의 가능성과 아포리아 참고문헌 ㆍ부록 1. 천보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 중의 두 가지 노선」(1966) 2. 천보다, 「마오쩌둥 동지의 깃발 아래」(1958) 3. 양시광,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1968) 4. 류궈카이, 「인민문혁을 논한다」(2005)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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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에는 단지 ‘문화대혁명’뿐 아니라 ‘정치의 아포리아’를 함께 담았다. 20세기의 세계사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그로부터 ‘대중의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할 때, 중국혁명사의 경험은 그 어떤 역사적 경험보다 포괄적인 동시에 극한적이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은 무수히 많은 정치적 실험의 정점이자 실패의 극점이기도 하였고, 그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동시대적인 경험인 동시에 동시대 속에서 해결 불가능한 아포리아를 전면에 부각시킨 매우 비동시대적 경험으로 끝맺었다.
이 책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문화대혁명이 드러낸 근대정치의 아포리아는 간단히 말하자면 ‘혁명’과 ‘이행’ 사이의 난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정치의 자율성과 체계의 변혁 사이의 마주침의 가능성과 난점이라는 아포리아이기도 했다. 문화대혁명이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길을 잃고 표류하다 침몰한 장소는 이 아포리아를 둘러싼 곳이었다.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가서 우리 자신을 그 아포리아 속에 던져 보지 않는다면, 20세기의 역사적 경험 이후 우리는 과연 새로운 세기로 나아갈 정치적 침로를 찾을 수 있을까? 역사에 대한 무지를 동반한 정치적 낭만주의는 손쉽게 되풀이되겠지만 그런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20세기와 더불어 봉인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실수는 덮어 줄 수 있는 그런 낙관주의의 시대에 더 이상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들의 ‘조반’을 중심으로 문화대혁명의 역사를 규명하는 것이 아직도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문화대혁명의 핵심 주체 중 하나인 ‘조반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쟁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혁이 제기하는 역사적·정치적 쟁점 또한 불분명하게 남겨지고 토론의 무대 위로 올라서기 어려워진다. 아직도 중국 외부에서뿐 아니라 중국 내부에서도 ‘홍위병’이라는 더 폭넓은 지칭과 ‘조반파’라는 지칭 사이의 차이가 분명하게 구분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반파에 대한 역사적 규명의 난점은 문화대혁명의 시기 구분의 난점으로도 이어진다. 엄밀하게 말해서 조반파는 1966년 가을·겨울부터 1968년 가을·겨울까지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에 출현한 조반파 대중조직을 지칭하며, 1969년 이후에 유의미한 조반파 활동은 소멸하였다고 할 만큼 조반파는 한시적으로 등장한 세력이다. 이 때문에 조반파의 문제는 문화대혁명의 성격 자체에 대한 평가를 쟁점으로 만든다. 조반파는 ‘보황파’(또는 ‘노老홍위병’이나 보수파)와 대립하여 출현하였는데, 이들 양파는 공작조, 당위원회, 혈통론, 1949년 이후 17년의 체제에 대한 평가 등에서 줄곧 두드러진 대립을 보였다). 조반파에 앞서 형성된 홍위병을 보통 ‘노(老)홍위병’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대체로 1966년 8월 18일의 마오의 홍위병 대접견 이전에 형성된 보수적 조직들로, 조반파는 정확히 그 반대 입장에 섰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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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에 근대정치의 한계와 가능성이 집약되어 있다!
-조반파와 천보다를 통해 문화대혁명을 분석한 백승욱 교수의 신작 국내 세계체계론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백승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이 중국 ‘문화대혁명’(약칭 ‘문혁’)에 대한 새로운 연구서를 펴냈다. 문화대혁명을 중국공산당 내의 권력투쟁 과정으로 해석하거나 마오쩌둥의 실패한 유토피아로 해석하는 등의 단편적인 해석을 넘어, 복잡했던 문혁의 흐름 속에서 ‘조반파’(造反派)의 문제를 핵심에 놓고 검토하고(대표 격인 천보다와 함께), 문혁이 드러낸 정치의 아포리아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작업은 넓게는 중국 사회주의 역사 변화를 세계체계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자 좁게는 우리 사회에서도 함의하는 바가 큰 현실적 맥락을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21세기 ‘대중의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할 때 지난 세기의 문혁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참조점이다. 왜 문화대혁명인가? 현대 중국의 모든 모순은 문화대혁명에 집약되어 있다. 복잡했던 문혁의 과정을 중국 관방에서는 서둘러 정리하려 했지만(마오쩌둥이 사회주의적 이상을 향해 추진했던 실패한 혁명) 그럴수록 새로운 해석을 불러일으켰고 현재 속에 남아 있는 역사의 문제로 끊임없이 재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대다수 중국인에게 비극적 경험이었지만, 출신성분이나 당내 권력투쟁이라는 여전한 그림자가 문혁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는 데서 알 수 있듯 그것은 늘 새롭게 해석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은 현대 중국을 넘어 20세기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으로 사유해야 할 지점이다. 1968년의 전 세계적인 신좌파 운동의 한 줄기로서도, 대중 스스로에 의한 정치를 실험한 20세기 가장 큰 혁명 운동으로서도 그러하고, 당과 대중의 갈등, 당 없는 정치, 대중정치의 가능성과 위험성, 사회주의 하의 계속혁명 등 수많은 질문을 안고 있는 정치적ㆍ철학적 담론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미 알랭 바디우와 슬라보예 지젝을 비롯한 서구 철학자들은 문화대혁명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마오쩌둥의 「실천론」과 「모순론」 등의 기록에 의지하고 복잡다단했던 문혁의 양상을 말하지 않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문혁이 멈춘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이 낳은 질문들은 지금 이곳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제기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체계는 어떤 모순을 가지고 있는가? 이 체계는 바뀔 수 있는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 바뀐다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는가? 누가 그것을 바꿀 수 있는가? 거기서 예기하지 못한 후과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등등. 현재 우리 사회의 대중운동 또한 이 영역에서 이미 적지 않은 난관을 겪어 왔고, 지금도 수많은 난점에 부딪히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수많은 정치적ㆍ사회적 고민들에 대해 여전히 동시대적이다. 천보다의 문혁과 조반의 시대 이 책은 문화대혁명의 복잡한 역사를 드러내면서 그 중 ‘조반파’를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의 과정을 핵심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바 있던 중앙문혁소조 소조장 천보다(陳伯達)의 문혁을 살펴보고, 그와 마오쩌둥, 그와 조반파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문혁의 난점을 규명하고 있다. 천보다는 1954년 헌법 초안을 작성하고, 문혁의 개시를 알린 「5ㆍ16 통지」(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통지)와 문혁의 강령적 문건인 「문혁 16조」(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 1966.8.8) 등을 초안한 마오의 최측근이자, 조반파의 몰락과 함께 당내 지위를 상실해 간 ‘조반파의 상징적 배후’이기도 하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조반 운동과 명운을 함께했다는 점에서 그는 문혁의 아포리아를 집약해 보여 줄 수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천보다와 그가 중심이 된 중앙문혁소조는 마오나 홍위병과는 다른, 문혁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핵심 층위라 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은 조반(造反), 즉 반역의 시대였다. 그러나 조반의 호소에 반응한 사회세력은 단일하지 않았고, 유사해 보이는 세력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제어되지 않는 폭력이 대대적으로 확산되어 비극이 끊이지 않는 등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치달았고 복합적인 구도 속에 놓여 있었다. 이 책은 이런 복잡한 구도 속에서 해결하지 못한 중요한 질문들을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주류적 해석과는 다르게 문화대혁명을 하나의 대중운동의 맥락 속에서 다시 살펴보고, 대중운동의 긍정성뿐 아니라 그 한계 내지는 아포리아에 주목하고 있다. ‘홍위병=조반파’라는 오해를 넘어서 문화대혁명은 공식적으로 1966년 5월 16일에 개시하여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10년 문혁 중 처음 3년이 가장 왕성하고 활발한 대중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때론 ‘3년 문혁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짧은 기간 동안 ‘공작조 및 노(老)홍위병(보수파) 시기, 공작조 비판 및 철수, 조반파의 등장, 노동자로의 확대 및 경험대교류, 군의 개입과 대규모 학살’ 등이 매우 복잡하게 점철되어 문혁 과정은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는 착종성을 보인다. 이 책은 이 복잡한 문혁의 전개 과정에서 노홍위병과 조반파 홍위병을 구분하여 기존에 오해가 심했던 ‘홍위병=조반파’라는 단순 등식의 오류를 지적해 준다. 흔히 부정적 의미로 많이 알려진 홍위병은 문혁 초기 혈통론을 바탕으로 노골적인 폭력을 자행한 노홍위병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조반파는 1966년 10월 ‘당내 두 가지 노선’(책의 첫 번째 부록)이라는 논점이 공식화하면서 보수파 홍위병에 대항해 결성된 전국적인 규모의 대중 조직이다. 그들 사이에는 문화대혁명의 의미와 목표, 타격 대상, 운동 방식,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실권파’(주자파)에 대한 해석, 당조직을 보는 관점, 문혁 이전 ‘17년’의 역사에 대한 평가 등 많은 면에서 의견이 갈리고, 문혁 ‘초기 50일’의 묵은 감정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두 파의 대립 수위는 점점 더 높아졌다. 이 밖에 마오쩌둥이 당내 권력투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대중을 동원했다는 논리를 넘어, 문혁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는 이분법을 넘어, 이 책은 여러 상이하고 복잡한 문혁의 과정을 드러내면서 문혁의 대중운동적 측면을 재해석하고 있다. 파리코뮨 원칙과 정치의 아포리아 「문혁 16조」를 아주 간단히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 사회주의 혁명의 새로운 단계 : 현재 전개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대혁명이며, 우리나라 사회주의 혁명 발전의 더욱 심오하고 광활한 새로운 단계이다.…… ② 주류와 곡절 : 광대한 노동자, 농민, 병사들, 혁명적 지식인과 혁명적 간부는 이번 문화대혁명의 주력군이다.…… ③ ‘감히’라는 글자를 앞세워, 대중을 일으키는 데 힘쓰자. ④ 대중이 운동 중에 스스로 자신을 교육할 수 있도록 한다. :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대중이 스스로를 해방함으로써만 가능하며, 타인들이 독단적으로 주도하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대중을 믿고, 대중에 의지하고, 대중의 창조적 정신을 존중하여야 한다.…… ⑤ 당의 계급 노선을 단호히 집행한다. ⑥ 인민내부 모순을 정확히 처리한다. ⑦ 혁명대중을 ‘반혁명’으로 모는 사람들을 경계하라. …… 마오쩌둥 사상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문화대혁명의 행동지침이다. (백승욱, 문화대혁명,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 부록 중) 여기서 4조는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조항인데, 그 이유는 혁명의 목표나 강령이 추상적으로 명시되는 경우는 많아도, 방법적인 면에서 ‘대중에 의존해야 하고’, ‘대신 될 수 없는’ 대중의 자율성을 통해서만 혁명이 가능하다고 천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상비군과 관료제를 해체하고, 시민소환제를 도입하여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시행한 파리코뮨의 원칙에 의거했다고 한다. 천보다 또한 파리코뮨 원칙에 의거해 대중에 의한 관료의 직접선출과 직접소환을 말하였고, 근본적으로는 ‘대중 스스로에 의한 해방’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1967년 노동자의 문화대혁명 참여와 탈권(奪權)운동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면서 천보다는 당내 복잡한 구도 속에서 마오와도, 소조 내 ‘ 상하이방’과도 거리가 벌어지며 입지가 좁아졌고, 파리코뮨 원칙을 따르는 것과 노동자의 문혁 참여 반대라는 이율배반적인 견해 속에서 방향을 잃고 만다. 예컨대 1967년 파리코뮨을 모델로 한 상하이코뮨(上海人民公社)이 설립되었을 때 천보다는 그들의 권력 탈취 투쟁에 동의하지 않았고, 조반파의 거세진 탈권투쟁에 적절한 대응방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그들의 몰락과 함께 권력의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다. 천보다가 멈춰선 지점은 문혁의 아포리아를 보여 줌과 동시에 근대정치의 아포리아를 드러낸다. 정치가 대신 될 수 없고 대중 스스로에 의한 것이라면 ‘당’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는 어떻게 마련될 수 있는가? 그리고 대중 스스로의 정치가 방향을 잃고 무정부주의로 가거나 더 큰 폭력으로 전화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문혁 안에는 이런 문제가 이미 배태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조적 제약 속에 놓여 있던 주체들은 과연 자율적이었을까? 이 자율적인 주체들은 그들을 제약하는 구조에 대해 자발적으로 개입해 그 방향을 원하는 쪽으로 손쉽게 바꾸어 낼 수 있을까? 문혁은 ‘대중의 정치적 자율성’이라는 축과 ‘그들을 억압하는 구조’라는 축 사이에서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사회주의 중국에만 고유한 것은 아닐 것이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근대정치에도 고유하고도 특징적인 아포리아일 것이다. 대중운동의 극한까지 나아간 문혁의 경험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