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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대신하여 _ 산묵집 ─ 「오감도」 작자의 말
1부 제비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어느 시대에도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나의 애송시 서망율도 내가 좋아하는 화초와 내 집의 화초 아름다운 조선말 가을의 탐승처 모색 2부 금홍 여상 사제 약수 Epigram 행복 십구 세기식 슬픈 이야기 실낙원 3부 오감도 산책의 가을 산촌여정 조춘점묘 추등잡필 병상 이후 동경(東京) 공포의 성채 4부 멜론 혈서삼태 권태 최저 낙원 어리석은 석반 이 아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첫 번째 방랑 객혈의 아침 야색(夜色) 5부 거울 정희에게 김기림에게 1 김기림에게 2 김기림에게 3 김기림에게 4 김기림에게 5 김기림에게 6 김기림에게 7 H형에게 보낸 편지 동생 옥희 보아라 남동생 김운경에게 부록 故 이상의 추억 ─ 김기림 이상 연보 |
李箱, 김해경金海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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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보아야 아니 하느냐. 열아문(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오감도 작자의 말」중에서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그것은 발명보다 발견! 거기에도 노력은 필요하다.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중에서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어느 시대에도」중에서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현실은 나를 추방하라 한다. ---「꿈은 나를」중에서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동무도 없어졌습니다. 내게는 어른도 없습니다. 버릇도 없습니다. 뚝심도 없습니다. ---「슬픈 이야기」중에서 나는 술이 거나 ─ 하게 취해서 어떤 여자 앞에서 몸을 비비 꼬면서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사는 몸이오.’하고 얼러보았더니 얼른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되어 버린 데는 실없이 깜짝 놀랐습니다. 얘 ─ 이건 참 땡이로구나 하고 삼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그 여자는 삼 년이나 같이 살아도 이 사람은 그저 세계에 제일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모르고 그만둔 모양입니다. ---「약수」중에서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 즉 애완용 가축처럼 귀여움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다. ---「공포의 성채」중에서 근심이 나를 제한 세상보다 큽니다. 내가 갑문을 열면 폐허가 된 이 육신으로 근심의 조수가 스며들어 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메소이스트’ 병마개를 아직 뽑지는 않습니다. 근심은 나를 싸고돌며 그러는 동안에 이 육신은 풍마우세로 저절로 다 말라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산촌여정」중에서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좁은 방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等待)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권태」중에서 나는 세상의 불행을 짊어지고 태어난 것 같은 오욕에 길든 일족을 경성에 남겨두고 왔다. 그들은 차라리 불행을 먹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오늘 저녁에도 맛없는 식사를 했을 테지. 불결한 공기에 땀이 배어 있을 테지. ---「첫 번째 방랑」중에서 암만해도 나는 십구 세기와 이십 세기 틈바구니에 끼여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 모양이오. 완전히 이십 세기 사람이 되기에는 내 혈관에는 너무도 많은 십구 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의 피가 위협하듯이 흐르고 있소그려. ---「김기림에게 6」중에서 상(箱)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破船)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船體) 조각이었다. ---「김기림, 故 이상의 추억」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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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쓰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하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웠던 불세출의 문인 이상의 삶과 문학 “태어나서 우리 문학사를 50년 앞당겼고, 죽어서 우리 문학사를 50년 후퇴시켰다고 말해도 될 존재”, “인류가 있은 이후 가장 슬픈 소설을 쓴 사람!” 시인 김기림과 박용철의 이상에 관한 평가다. 그만큼 그는 우리 근대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요, 소설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의 글은 매우 기괴하고 낯설다. 그 출현 이전 이후에도 그와 같은 글을 쓰는 문인은 없었다. 그러니 80여 년 전 그의 글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이 그의 글을 가리켜 ‘정신이상자의 잠꼬대’나 ‘어린아이의 유치한 말장난’으로 치부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그를 죽이겠다며 신문사에 항의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그는 ?오감도 작자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보아야 아니 하느냐. 열아문(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이 책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하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웠던 불세출의 문인 이상의 삶과 문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 그를 가리켜 시인 김기림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破船)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船體) 조각이었다.” “태어나서 우리 문학을 50년 앞당겼고, 죽어서 50년 후퇴시킨 존재”─ 시인 김기림 “인류가 있은 이후 가장 슬픈 소설을 쓴 사람”─ 시인 박용철 이상.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천재’다. 그러나 26년 7개월이라는 짧은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고 했던 그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했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심지어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쓰기도 했다. “일세의 귀재 이상은 그 통성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일천구백삼십칠 년 정축 삼월 삼일 미시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한 생애를 끝맺고 문득 卒하다.” 사실 이 땅의 수많은 문인 가운데서 이상만큼 자신의 존재를 글 속에 각인해 넣은 사람도 드물다. 이는 그만큼 그가 자의식이 강했음을 뜻한다. 특히 그런 자의식은 산문에서 빛을 발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산문을 읽다 보면 마치 그의 일기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의 생각과 의식,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34년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가 썼던 산문 42편(서간문 포함)을 모은 것으로, 가히 그의 산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급적 원문을 토대로 하되, 한자어와 어렵고 난해한 단어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 글의 가독성과 이해도를 높였다. 기획에서 편집에 이르기까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동안 이상의 글을 읽고 싶지만, 그 난해함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의 발표 시기와 주제를 중심으로 ‘제비’, ‘금홍’, ‘오감도’, ‘멜론’, ‘거울’ 등으로 목차를 나눈 것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제비’에는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관한 절망을, ‘금홍’에는 사랑과 관련된 글을, ‘오감도’에는 도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삶의 부조리에 관한 글을, ‘멜론’에는 죽기 직전까지 일본에서 썼던 글을, ‘거울’에는 서간문에 나타난 지독한 고뇌와 고독을 담았다. 이를 통해 역설과 위트, 독설과 슬픔이 빚은 이상 특유의 문학 에스프리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일기를 읽는 듯 이상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산문의 정수! 시대를 앞선 날카로운 문학적 촉수와 세련된 문체, 역설과 위트, 독설과 슬픔이 빚은 특유의 문학 에스프리 알다시피, 이상은 1929년 경성고공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 일했다. 하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건축이 아닌 문학과 미술이었다. 1930년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발표한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살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 모든 것이 다 하나도 무섭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 가운데에도 이 ‘죽을 수도 없는 실망’은 가장 큰 좌표에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희망한다. …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 하지만 시대를 앞선 예리한 문학적 촉수와 세련된 문체는 기실 이상의 장점이 아닌 아픔이자 고통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그의 글에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기쁨과 행복, 즐거움보다는 역설과 위트, 독설과 비애, 권태가 가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