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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문장
우리가 가졌던 황홀한 천재 이상 다시 읽기
이상임채성 해설
판테온하우스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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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문을 대신하여 _ 산묵집 ─ 「오감도」 작자의 말

1부 제비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어느 시대에도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나의 애송시
서망율도
내가 좋아하는 화초와 내 집의 화초
아름다운 조선말
가을의 탐승처
모색

2부 금홍

여상 사제
약수
Epigram
행복
십구 세기식
슬픈 이야기
실낙원

3부 오감도

산책의 가을
산촌여정
조춘점묘
추등잡필
병상 이후
동경(東京)
공포의 성채

4부 멜론

혈서삼태
권태
최저 낙원
어리석은 석반
이 아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첫 번째 방랑
객혈의 아침
야색(夜色)

5부 거울

정희에게
김기림에게 1
김기림에게 2
김기림에게 3
김기림에게 4
김기림에게 5
김기림에게 6
김기림에게 7
H형에게 보낸 편지
동생 옥희 보아라
남동생 김운경에게

부록

故 이상의 추억 ─ 김기림
이상 연보

저자 소개2

李箱, 김해경金海卿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30년 [조선]에 첫 소설 『12월 12일』 연재를 시작하며 등단했다. 이후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내며 활발한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30년 [조선]에 첫 소설 『12월 12일』 연재를 시작하며 등단했다. 이후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내며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친다.

19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연재했는데, 난해하고 파괴적인 형식에 독자들의 항의를 받고 연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오감도 작가의 말」은 연재 중단 후 쓰여 해당 잡지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1936년「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날개」는 이상의 대표 소설이다. 이듬해는 1937년 2월 사상불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되었고, 같은 해 4월 17일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현대시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며, 1930년대에 있었던 20년대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반발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다. 그는 건축가로 일하다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겉으로는 서울 중인 계층 출신으로 총독부 기사였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20세부터 죽을 때까지 폐병으로 인한 각혈과 지속적인 자살충동 등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기이한 작가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시와 소설을 창작한 바탕에는 이런 공포가 늘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10년에 태어나 1912년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집에 장손으로 입양되었고,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마쳤다. 손가락이 잘리고 빈궁하게 살았던 친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입양한 백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영민하여 학업 성적은 우수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질이 있어 학창시절, 직장시절 내내 그림에 꿈을 품고 열중하였다. 또한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있었고, 예술적 이상향으로 동경(도쿄)을 꼽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선각자이며, 천재,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전위예술의 선구자라고 자처했는데, 식민지 시대임에도 민족적인 자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현대적인 문명에 심취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 고유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유럽이나 일본 문학계에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생활은 나태하고 난잡, 무기력했다고 전해지며,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잡지 [조선(朝鮮)]의 1930년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한 『12월12일(十二月十二日)』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고,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였다. 이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수정하여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소설 『지팡이 역사』 수필 『혈서삼태』와 『산책의 가을』 등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연재되는 동안 삽화를 맡아 그리기도 하는 등 창작 활동은 계속하였다. 친구인 구본웅(具本雄)과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일때부터 각별히 친했으며, 대학입학시 그가 선물한 스케치박스(사구상)에서 필명인 이상이 나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화가 구본웅이 인쇄소 창문사에 이상의 일자리를 주선하여 근무하면서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인 [시와 소설]을 창간하고 편집해 발간하지만 1집만을 발간하고 그만둔다. 이후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백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으나, 가족들의 무지와 가난에 곧 질려서 보름만에 나와버렸다. 1933년, 무질서한 생활로 폐병이 심해져 각혈까지 한 그는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그의 연인인 금홍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금홍을 못잊고 방황 하다가 제비 다방을 마련해 그녀를 마담자리에 앉혔다. 그는 금홍과의 만남 이후에도 여러 여급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간 적은 없었다. 다만 이들과의 관계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면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었다.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러던 그는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이자 친구 구본웅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금홍과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건강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탓인지, 가족과 아내를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 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고, 『봉별기』를 [여성]에 발표하였다.

그의 마지막 여자인 변동림은 『동해』 『단발』 구필 『행복』 『종생기』의 『선』 『실화』의 『연』 등에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1937년 불량선인(사상불온) 혐의로 운 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렀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20세기 한국문학사에 내장된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집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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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54g | 122*185*30mm
ISBN13
9788994943404

책 속으로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보아야 아니 하느냐. 열아문(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오감도 작자의 말」중에서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그것은 발명보다 발견! 거기에도 노력은 필요하다.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중에서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어느 시대에도」중에서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현실은 나를 추방하라 한다.
---「꿈은 나를」중에서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동무도 없어졌습니다. 내게는 어른도 없습니다. 버릇도 없습니다. 뚝심도 없습니다.
---「슬픈 이야기」중에서

나는 술이 거나 ─ 하게 취해서 어떤 여자 앞에서 몸을 비비 꼬면서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사는 몸이오.’하고 얼러보았더니 얼른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되어 버린 데는 실없이 깜짝 놀랐습니다. 얘 ─ 이건 참 땡이로구나 하고 삼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그 여자는 삼 년이나 같이 살아도 이 사람은 그저 세계에 제일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모르고 그만둔 모양입니다.
---「약수」중에서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 즉 애완용 가축처럼 귀여움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다.
---「공포의 성채」중에서

근심이 나를 제한 세상보다 큽니다. 내가 갑문을 열면 폐허가 된 이 육신으로 근심의 조수가 스며들어 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메소이스트’ 병마개를 아직 뽑지는 않습니다. 근심은 나를 싸고돌며 그러는 동안에 이 육신은 풍마우세로 저절로 다 말라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산촌여정」중에서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좁은 방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等待)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권태」중에서

나는 세상의 불행을 짊어지고 태어난 것 같은 오욕에 길든 일족을 경성에 남겨두고 왔다. 그들은 차라리 불행을 먹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오늘 저녁에도 맛없는 식사를 했을 테지. 불결한 공기에 땀이 배어 있을 테지.
---「첫 번째 방랑」중에서

암만해도 나는 십구 세기와 이십 세기 틈바구니에 끼여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 모양이오. 완전히 이십 세기 사람이 되기에는 내 혈관에는 너무도 많은 십구 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의 피가 위협하듯이 흐르고 있소그려.
---「김기림에게 6」중에서

상(箱)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破船)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船體) 조각이었다.

---「김기림, 故 이상의 추억」중에서

출판사 리뷰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쓰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하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웠던 불세출의 문인 이상의 삶과 문학


“태어나서 우리 문학사를 50년 앞당겼고, 죽어서 우리 문학사를 50년 후퇴시켰다고 말해도 될 존재”, “인류가 있은 이후 가장 슬픈 소설을 쓴 사람!” 시인 김기림과 박용철의 이상에 관한 평가다. 그만큼 그는 우리 근대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요, 소설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의 글은 매우 기괴하고 낯설다. 그 출현 이전 이후에도 그와 같은 글을 쓰는 문인은 없었다. 그러니 80여 년 전 그의 글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이 그의 글을 가리켜 ‘정신이상자의 잠꼬대’나 ‘어린아이의 유치한 말장난’으로 치부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그를 죽이겠다며 신문사에 항의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그는 ?오감도 작자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보아야 아니 하느냐. 열아문(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이 책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하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웠던 불세출의 문인 이상의 삶과 문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 그를 가리켜 시인 김기림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破船)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船體) 조각이었다.”

“태어나서 우리 문학을 50년 앞당겼고, 죽어서 50년 후퇴시킨 존재”─ 시인 김기림
“인류가 있은 이후 가장 슬픈 소설을 쓴 사람”─ 시인 박용철


이상.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천재’다. 그러나 26년 7개월이라는 짧은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고 했던 그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했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심지어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쓰기도 했다. “일세의 귀재 이상은 그 통성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일천구백삼십칠 년 정축 삼월 삼일 미시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한 생애를 끝맺고 문득 卒하다.”

사실 이 땅의 수많은 문인 가운데서 이상만큼 자신의 존재를 글 속에 각인해 넣은 사람도 드물다. 이는 그만큼 그가 자의식이 강했음을 뜻한다. 특히 그런 자의식은 산문에서 빛을 발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산문을 읽다 보면 마치 그의 일기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의 생각과 의식,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34년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가 썼던 산문 42편(서간문 포함)을 모은 것으로, 가히 그의 산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급적 원문을 토대로 하되, 한자어와 어렵고 난해한 단어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 글의 가독성과 이해도를 높였다. 기획에서 편집에 이르기까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동안 이상의 글을 읽고 싶지만, 그 난해함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의 발표 시기와 주제를 중심으로 ‘제비’, ‘금홍’, ‘오감도’, ‘멜론’, ‘거울’ 등으로 목차를 나눈 것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제비’에는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관한 절망을, ‘금홍’에는 사랑과 관련된 글을, ‘오감도’에는 도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삶의 부조리에 관한 글을, ‘멜론’에는 죽기 직전까지 일본에서 썼던 글을, ‘거울’에는 서간문에 나타난 지독한 고뇌와 고독을 담았다. 이를 통해 역설과 위트, 독설과 슬픔이 빚은 이상 특유의 문학 에스프리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일기를 읽는 듯 이상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산문의 정수!
시대를 앞선 날카로운 문학적 촉수와 세련된 문체,
역설과 위트, 독설과 슬픔이 빚은 특유의 문학 에스프리


알다시피, 이상은 1929년 경성고공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 일했다. 하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건축이 아닌 문학과 미술이었다. 1930년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발표한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살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 모든 것이 다 하나도 무섭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 가운데에도 이 ‘죽을 수도 없는 실망’은 가장 큰 좌표에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희망한다. …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

하지만 시대를 앞선 예리한 문학적 촉수와 세련된 문체는 기실 이상의 장점이 아닌 아픔이자 고통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그의 글에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기쁨과 행복, 즐거움보다는 역설과 위트, 독설과 비애, 권태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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