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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_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방법
하나 노송을 보는 세 가지 태도 : 실용, 과학, 심미 둘 바둑의 수는 구경꾼이 더 잘 안다 : 예술과 삶의 차이 셋 물고기도 아니면서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 하는가? : 우주의 의인화 넷 그리스 여신 조각상과 생기발랄한 처녀 : 미감과 쾌감 다섯 기억 속 아련한 청록 비단 치마 눈길 닿는 곳마다 초록 풀꽃 서글퍼라 : 미감과 연상 여섯 명작을 대할 때 영혼의 흔들림 : 고증과 비평 그리고 감상 일곱 제 눈에 안경 : 미와 자연 여덟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여 구현되는 것인가? : 사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착오 아홉 성인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 : 예술과 놀이 열 공중누각 空中樓閣 : 창작의 상상 열하나 눈에 보이는 이미지 너머 그 대상의 중심으로 들어가라 : 창작과 감정 열둘 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도 어긋나지 않는다 : 창작과 율격 열셋 시를 잃을 것인가, 나를 잃을 것인가? : 창작과 모방 열넷 만 권의 책을 읽으면 붓에 신이 들린다 : 천재와 영감 열다섯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 예술과 인생 주쯔칭의 말_ 아름다움, ‘목적이 없는 행위’에 도달하는 것 [부록] 근대 실험 미학 |
朱光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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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아름다운가, 추한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하나의 시각이다.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보는 것 역시 하나의 시각이며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 지’ 눈여겨보는 것도 또 다른 시각이다. 같은 사물을 두고도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며 이를 통해 발견하는 현상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정원에 아름다운 노송이 한 그루 있다. 보는 사람 백이면 백 모두 그것이 ‘노송’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 바라볼 때와 옆에서 바라볼 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볼 때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심정으로 볼 때, 노송은 같은 모습일까? _16쪽
‘미감’이란 무엇인가? 능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미감은 이미지에서 비롯된 직감이고, 이러한 이미지는 독립적이며 현실적인 삶과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심미적 경험 가운데 자신과 사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고, 자신의 감정과 사물의 형상이 서로 교감할 때 진정한 미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극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미감은 의지와 욕망이 수반되지 않으므로 실용적 태도와 다르며, 추상적 사고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과학적 태도와도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쾌감과 연상, 고증과 비평을 심미적 경험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큰 착각이다. _90쪽 예술의 미추가 갖는 의미도 이와 같을까? 보통 사람들은 자연미와 예술미가 대상과 원인은 달라도 아름다움은 같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추함과 예술의 추함도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보편적 오해가 형성된 데는 예술사에서 표면적으로는 상반되나 실제로는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두 가지 학설의 영향이 크다. 바로 사실주의와 이상주의이다. _68쪽 자연의 추함도 예술로 변할 수 있다. 못난이 조롱박이 대가들의 훌륭한 솜씨에 힘입어 걸작으로 탄생할 수 있다. 돼지같이 먹고 마시고 나서 침대에 드러누워 방귀나 뀌는 시골 촌부에게 무슨 고상함이 있겠는가? 하지만 술에 취해 저택 아무 데나 드러누운 유 노파(《홍루몽》에 나오는 늙은 시골 아낙)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예전에는 예술가들이 추한 인물을 작품에 등장시키기 꺼려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술가들이 자연적 추함마저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 예술미의 구현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노인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프랑스 문학가 보들레르CharlesBaudelaire는 사체와 같은 소재로 시를 짓기도 했다. 조각가 로뎅Auguste Rodin과 같은 예술가들이 추한 인물을 소재로 삼은 것 등이 가장 두드러진 예라 하겠다. _109쪽 시의 생명은 시인 개인의 능력만으론 유지할 수 없다. 독자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시를 보면서 독자의 상상력과 감성, 그 생명력이 계속해서 생성될 때 시의 생명도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 시의 생명력은 시가 한 번 완성되었다고 해서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예술 작품이 다 마찬가지다. 창작이 없으면 감상은 불가능하다. 창작은 감상을 포함하고 있지만 감상이 창작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감상은 단지 하나의 느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창작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느낌을 외부로 표출해 구체적인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느낌을 외부로 표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타고난 재능과 상당한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_115쪽 ‘현실적 삶’은 인생을 다소 편협한 시각으로 본 것이다. 현실적 삶이 인생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예술과 현실적 삶은 서로 동떨어져 있다고 여기며 자신의 삶에서 예술에 큰 가치와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의 가치와 지위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예술을 억지로 현실적 삶 속에 끼워 넣으려 한다. 이는 모두 예술을 오해하고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이다. 현실적 삶은 인생 전반을 놓고 볼 때 하나의 단편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예술과 현실적 삶의 거리를 인정할 때 예술과 인생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_183쪽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감상하라!” 하지만 도로 위를 달리는 사람들은 쌩쌩 질주하느라 정작 고개를 돌려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복잡한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프스의 도로 표지판에 적힌 그 문구를 보지도 못하고 달리는 사람들처럼 된다면,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세계가 생동감이 사라진 감옥이나 지옥 같은 세계로 변하고 말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제 이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만큼 나는 알프스산 계곡의 도로 표지판의 말을 다시 한 번 들려주고 싶다. 중국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에게 안녕을 고할 때 “서둘러 가지 말고 천천히 가라.”는 표현을 쓴다. 나도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감상하라!” _195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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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를 두고 섰을 때, 아름다움은 그 실체를 우리 눈에 드러낸다.”
인생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 세상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는 법 “본체, 현실 속, 자신의 처지, 늘 보던 풍경을 직시하면 마치 배를 타고 안개 자욱한 바다 위를 헤매는 것처럼 갑갑하고 어지럽다. 행여 제시간에 육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풍경을 감상할 정신조차 없다. 실용적 태도로 사물을 보면 그것들은 모두 일상생활의 도구이거나 장애물일 뿐이며 탐욕 또는 혐오를 일으키는 대상에 불과하다.” p. 32 ‘바둑의 수는 구경꾼이 더 잘 안다’ 中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인생을 바라보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이입이 어렵고, 사물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현실과 이상의 벽이 점점 높아지며 세상은 더욱더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넓은 의미의 예술이고, 각자 삶은 우리 자신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예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같은 돌을 가지고 위대한 조각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듯이. 이는 돌을 다루는 사람의 소양에 달려 있다. 삶을 이해하는 사람은 예술가이고, 그의 삶은 예술 작품이 된다.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주변의 수많은 사물을 느끼고 감상하며, 감정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우리 삶에는 훌륭한 문장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즉, 누가 그것을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대 미학의 큰 스승 주광첸 선생은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물을 느끼고 감상하는 자세’를 이야기한다. 사물 하나, 풍경 하나에서도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진한 여운과 다양한 감정을 발견하는 힘. 아름다움이 보이고 느껴지는 경험. 여기에서 우리는 삶과 인간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