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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섬으로 가라 외로운 것들끼리 만나고 싶으면 섬으로 가라|섬에 가거든 바람을 이해하라|바다를 좋아하는 나비|아내 모르게|소금과 시|고독의 집, 무덤|마라도의 잔디|구두 수선|우체통|홍도의 원형|시와 산문|그대로 놔둬라 2 아무도 오라고 하지 않았다 섬에 와 있어도 섬에 가고 싶다|섬, 고독을 위하여|별을 보면 시가 보인다|무인도에서 벌레와 나|통하는 것|섬에서 해 뜨는 아침|미쳐보자|섬에 온 여자|겨울 섬 동백꽃|동백꽃 피거든 홍도로 오라|섬 다방|빠져나오기 3 고독해서 떠난다 떠돌며 얻은 시|흰 고무신|뜻하지 않은 일을 만나는 맛|떠나는 사람들|등대가 추억의 지표가 되는 이유|칸나가 무성한 섬|나는 이 섬이 좋았다|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떠나라|초행길|고독은 평등하다|여행하며 읽은 시 4 고독은 죽지 않는다 흐느끼는 시|자판기의 고독|고독해서 마시는 커피|만년필의 고독|죽어도 고독은 죽지 않는다|가을에 쓰는 편지|겨울에서 봄까지|편지를 써라|딱따구리의 시 낭송 5 고독이 주는 선물 무인도를 위하여|고독이 주는 선물|떠나고 싶지 않은 섬|아내에게 써준 비문|겨울에 피는 꽃|외로움을 달래러 섬으로 간다|바다에서 건져낸 시|바다와 섬과 시 쓰는 사람|무엇이 되어 살까 6 섬으로 가는 나그네 바다가 그리워|막연한 정|시 쓰는 즐거움|고독의 기록|방랑기|시인은 섬의 고독을 잡는다|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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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물새는 언제고 혼자다. 도요새가 그렇고 바다직박구리가 그렇다.물 빠진 개펄에 혼자 서 있는 도요새, 바윗돌에 혼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바다직박구리, 이들에겐 고독이 통하는 데가 있어 좋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방향을 본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서슴지 않고 날아간다. 나만 남는다. 이때가 나는 제일 외롭다. 그들은 다른 섬으로 간 것이다. 무녀도에서 비안도로 비안도에서 말도로, 말도 그 먼 섬에 가도 그들은 그렇게 서 있다가 날아간다. 섬에 오면 도요새와 바다직박구리가 내 짝이 된다. 외로운 것들끼리 만나고 싶으면 섬으로 가라, 혼자 서 있는 도요새가 기다리고 있다. 바다직박구리가 너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기다리고 있다.
---「외로운 것들끼리 만나고 싶으면 섬으로 가라」중에서 돌덩이나 조개껍질이 아니라, 지금 바라보고 느끼는 심정 그대로 전하고 싶어서 쓰는 편지, 그것은 한 장면에서 정지된 사진보다 낫다. 섬에서 우체통을 보면 편지가 쓰고 싶다. 지금 나처럼 지붕 끝에 매달려 바다를 보고 있는 빨간 우체통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 외로운 매력에 제비가 집을 짓고 싶어 하고 벌이 집을 짓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가끔 섬에 가면 우체통 위에 있는 제비집이나 벌집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리움의 상징이다. 편지를 쓴다는 거, 이 일은 여행의 습관이고 싶다. ---「우체통」중에서 섬에서 해 뜨는 아침은 그 어느 곳에서보다 맑고 신선하다. 둥근 해가 수평선을 밀고 올라오는 웅장한 모습은 태극기의 붉은 건(乾)과 푸른 곤(坤)의 상징 그대로다. 그것은 하루를 여는 우주의 거대한 몸부림이다. 곤과 건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남녀 간의 사랑이다. 그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파란 바다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 시인은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바닷가로 간다. 윤씨는 내가 그의 집에 머무는 동안 옆에서 그것을 지켜봤다. 그는 내가 그곳을 떠난 뒤에도 돌담에 기대어 떠오르는 해를 보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그것이 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신기하게 여겼다. 그래서 해 뜨는 아침이면 문득 문득 나를 부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이다. 수화기를 든다. “여기 만재돈데, 왜 안 와?” ---「섬에서 해 뜨는 아침」중에서 동백숲 사이로 내다보이는 깊은 바다가 저 아래에서 딴살림을 차리고 있다. 수평선이 뭍에 사는 가족보다 가깝다. 웬만하면 이런 데서 시를 쓰는 등대 관리원이 생길 만도 한데 아직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 만일 그런 시인을 만나면 독한 술로 밤을 새워도 좋겠다. 이런 섬에는 그런 자생 시인이 있을 만도 한데. “혹시 시를 쓰시나요?” “……?” 실례될까 봐 묻지 않았다. “시를 읽으시나요?” 하고 물으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 같고, 그래서 대화에서 ‘시’라는 말을 빼버린다. 그러다 보면 정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오간다. “조용하네요.”라든가 “공기가 맑네요.”라든가 “등대 관리원이 된 지 얼마나 됩니까?” 이런 말은 평생 등대에 몸담은 사람에게는 경솔한 물음이다. 그저 등대 밑에서는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말을 건네는 것이 예의다. ---「고독이 주는 선물」중에서 세상에 태어나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라고 하겠다. 낚시질하고 싶은 사람은 낚시질할 때가 행복하고, 산에 오르고 싶은 사람은 산에 오를 때가 행복하다. 나는 바다와 섬을 좋아했으니 바다와 섬으로 돌아다닐 때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 그러면 그 행복을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록이다. 그림, 글, 사진은 그때를 있게 하는 기록이다. 기록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면서 얻은 일들이 기억력이 사라질 때 사라지고 만다. 사람은 배워가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경험과 흔적을 기록으로 남겨야 또 다른 사람이 그 기록을 이용하게 된다. ---「바다에서 건져낸 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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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람들은 미역 캐고, 나는 시를 캔다.”
우리나라 대표 섬 시인, 바다 시인 이생진 섬으로 섬으로 떠돌며 얻은 고독의 기록 평생 우리나라 3,000여 개 섬 가운데 1,000여 곳에 발을 들인 시인. 그럼에도 갈 수 있는 곳은 언제고 가야 한다는 시인. 시에 그 섬들의 아름다움과 애환, 역사와 자연을 담아낸 시인. 그래서 이생진 시인을 우리나라 대표 섬 시인, 바다 시인 또는 방랑 시인이라 부른다. 시인은 “섬은 내게 시를 쓰게 한다. 섬에 가면 모두 시를 읊어준다. 섬 자체가 시다.”라고 말한다. 1929년에 태어난 이생진 시인은 올해 구순을 맞았다. 열여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동생 넷을 건사하기 위해 돈을 벌어 가며 공부를 해야 했던 시절, 시인은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특히 좋아했다. 그러나 미술은 도화지와 화구가 필요했고, 시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시인은 가난 때문에 문학, 그중에서도 시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평생 섬으로 섬으로 이어진 그의 행보에는 늘 수첩과 화첩이 함께했다. 안면도, 간월도, 황도로부터 시작해서 용유도, 영흥도, 덕적도, 완도, 신지도, 고금도, 노화도, 보길도, 진도, 흑산도, 홍도, 남해도, 거제도, 나로도, 초도, 선죽도, 거문도, 울릉도, 관음도, 우도, 백도, 가파도……. 걸으면서 기록하는 현실감이 좋아 바다를 끼고 하루 종일 걸으며 “천혜의 고독을 행복으로 옮겨놓는 고행”을 해온 시인은 ‘가난의 미학’이자 ‘발로 쓴 시’를 엮은 시집 서른여덟 편을 펴냈다. 뿐만 아니라 산문집 또한 두 편을 펴냈다.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는 그중 첫 산문집으로 1997년에 초판을 출간했다. 시인에게는 산문집 또한 정성 어린 시집과 같았다. 내 가슴에서 시가 다 끝나는 날 나도 산문집 하나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나는 시를 고집해왔다. 그래서 시집은 열아홉 권이나 있어도 산문집은 한 권 없다. 아직 내 가슴엔 시가 남아 있다. 시가 남아 있는 마당에 산문집을 내는 것이 어쩐지 시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산문집도 정성 어린 시집이라 여기고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를 펴낸다. _초판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 머리말 그리고 2018년, 20년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새롭게 출간한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는 초판에 실렸던 원고 가운데 시집 『섬마다 그리움이』(1992), 『먼 섬에 가고 싶다』(1995), 『일요일에 아름다운 여자』(1997), 『내 울음은 노래가 아니다』(1990) 후기와 중복되어 실렸던 글은 제외하고 그동안 단일 작가의 저서로 묶이지 않은 원고를 추려 더한 개정증보판이다. 본문에 실린 그림 또한 이생진 시인이 직접 그린 스케치로, 초판에 실렸던 그림 외에도 거문도와 완도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그림이 추가되었다. 시로 떠오르면 시를, 산문으로 떠오르면 산문을…… 바다와 인생을 노래한 짧은 글과 스케치를 모아 엮다 시인은 말한다. “고기는 낚시꾼이 잡는다 치더라도 섬의 고독은 시인이 잡아야 합니다.” 이생진 시인은 고독을 자양분으로 시를 낳았다. 그에게 섬으로 섬으로 떠도는 일은 “시를 구워내는 뜨거운 석쇠 역할을 위한 수행”이었다. 또한 시인은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나의 그리움은 먼 섬 파도 소리에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시인의 방랑에 늘 함께한 수첩과 화첩에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시로 떠오르면 시를, 산문으로 떠오르면 산문을……. 그러나 시인에게는 세상이 시의 세상인 것처럼 삶도 시요, 산문도 시다. 산문이 필요치 않다. 시 따로 산문 따로 쓴다는 것은 번거롭다. 그래서 어쩌면 내 시는 산문 같고, 내 산문은 시 같을지도 모른다. 나는 시 하나로 족했다. 아니 시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기록하는 데 부족이 없다. 지금 산문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시를 쓴다고 여기지 산문을 쓴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_「시와 산문」에서 시인에게는 그림 또한 시가 아닐까. 그동안 출간된 시인의 시집 서른여덟 편 표지에는 대부분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 실려 있다. 시인은 글쓰기뿐 아니라 그림 그리기 또한 그만큼 좋아한다. 시인이 세월과 함께 묻어둔 화첩에는 그날의 여객선 승선표와 함께 고독이 스케치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인의 시만큼이나 담백하고 꾸밈없는 섬과 바다, 등대와 고깃배, 바위 절벽과 수평선이 그의 손에서 시로 다시 태어났다. 산문집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에는 섬을 떠돌며 쓴 고독의 기록뿐만 아니라 문학 하는 즐거움, 인생의 종점까지 함께한 시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시를 통해 얻은 삶의 맛과 같이 구순 시인이 아니면 누구도 섣불리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담백하게 꺼내놓는다. 평생을 시와 함께 살아온 이생진 시인의 인생 본질에 맞닿은 이야기가 20년 세월을 뛰어넘어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에 온전히 녹아들어 있다. 오염되지 않은 바다와 섬의 기운이, 구순 시인이 사랑한 시가 자연스럽게 마음의 숲을 무성하게 채워 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