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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철학’으로 들어가기
칸트는 누구인가 한국어로 칸트 읽기 모든 철학은 칸트로, 그리고 칸트로부터 1강 『순수이성비판』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계몽, 스스로 생각하기 칸트 ‘초월철학’의 요점 2강 『실천이성비판』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선이란 무엇인가? 칸트철학의 정수(精髓), 『실천이성비판』 3강 『판단력비판』 나는 무엇에서 흡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 또는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판단력비판』서론 칸트의 ‘미학’ 칸트의 이상주의 [종합토론] 칸트 3비판서의 세계 화제 1. 칸트철학은 왜 자유의 철학인가? 화제 2. 칸트철학은 주관주의 철학인가? 화제 3. 칸트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의미는? |
白琮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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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주의적 계몽주의, 곧 합리주의의 정점에 칸트철학이 있다면, 칸트적 합리주의와 낭만주의가 합류하는 지점에서 헤겔로 대표되는 독일 이상주의 철학이 형성되었다. 칸트를 ‘모던’에 위치시키면, 헤겔에서는-놀랍게도-이미 ‘포스트모던’의 징후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낙관주의든 염세주의든 합리주의를 이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22쪽
* 많이 배우되 스스로 물어 분별하여, 배운 것에 얽매이면 안 된다. 그것이 비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비판에 부치자고 한다. 칸트의 유명한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철학함’을 배우는 것이지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76쪽 * 칸트의 비판철학의 탐구는 모두 그 진ㆍ선ㆍ미라는 가치의 원천, 이러한 가치의 가능 원리에 관한 것이다. 비판이란 이들 가치가 생겨난 원천과 그 원천이 뻗어나갈 수 있는 범위를 결정하는, 즉 한계를 규정하는 작업이다. 이 점에서는 3비판서가 다 똑같다. 제3비판서는 미의 본질이 아니라 미의 원천을 추궁하고, 제1비판서는 지식의 본질이 아니라 지식의 원천을 추적하며, 제2비판서는 덕행의 본질이 아니라 덕행의 원천을 해명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216쪽 * 이렇게 해서 칸트는 이성 비판을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철학적으로 답한다. 요컨대, 인간은 세계 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관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238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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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칸트적 이성의 모든 관심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 저자에 따르면 통상 인간은 ‘이성적 동물’로 정의된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고찰에서는 인간의 ‘이성성’과 함께 인간의 ‘동물성’ 그리고 이 두 특성 간의 충돌이 문제가 되므로 칸트의 철학도 이를 주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칸트적 이성의 모든 관심은 다음의 세 물음을 향해 있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인간 이성의 모든 관심사를 수렴하여 일단 이렇게 세 물음으로 정리한 칸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덧붙이고, 앞의 세 물음에 대한 답을 통해 이 마지막 물음의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1강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제1강에서 다루는 첫째 물음은 ‘순전히 사변적’인, 곧 ‘진리’에 대한 것으로, 이 물음에 대한 탐구가 『순수이성비판』으로 결실을 맺어, 인간의 참다운 대상 인식(자연과학적 지식)의 가능 원리인 인간의 선험적 의식의 초월성을 밝혀내기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1강에서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의의와 이 사고 변혁의 결실인 칸트의 초월철학의 세계를 안내하며 강의 말미의 [질의응답]을 통해 칸트철학의 중심 용어인 ‘트란첸덴탈(transzendental)’을 왜 ‘초월적’으로 번역해서 사용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철학 용어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그 용어의 맥락을 아는 일이다. ‘트란첸덴탈(transzendental)’이 칸트 인식론과 형이상학의 중심 용어이기는 하지만, 칸트가 지어낸 말도 아니고 칸트 혼자서 사용하는 말도 아니다. 칸트의 이 용어 사용의 연유는, 그가 당대의 독일 프로테스탄트 스콜라 철학자들과의 사상적 대결 중에 스콜라의 옛 ‘초월철학’을 전복시킬 새로운 ‘초월철학’을 내놓은 데에 있고, 칸트 이후에도 다수의 사상가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들 간의 ‘초월적’에 관한 의미 다툼이 그들 각각의 사상의 고유성을 드러냄과 함께 그들 사상의 상호 관련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비록 서로 다른 의미로 용어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하나의 독일어 낱말 ‘트란첸덴탈(transzendental)’을 하나의 한국어 낱말 ‘초월적’으로 옮기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게 해야만 이 말로 지칭되는 사상들의 상호 연관성과 역사적 맥락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124-125쪽) 2강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제2강의 물음은 ‘순전히 실천적’인, 곧 그 자체로 ‘선’한 것에 대한 물음으로, 3비판서 중 『실천이성비판』은 이 물음에 대한 탐구의 결과를 담고 있다. 그것은 곧 인간이 존엄한 근거인 인간 실천이성의 자율성을 천착한 것이다. 2강에서는 『순수이성비판』과 별도로 『실천이성비판』이 출간된 배경을 비롯해 정언명령으로서의 도덕법칙의 의의와 그에 근거한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를 주로 설명한다. 강의 말미의 [질의응답]에서는 ‘도덕(Moral)’과 ‘윤리(Sitten)’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컨대 도덕의 문제는, 첫째로 선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유래하느냐, 누가 ‘선’이라고 일컫는 것이, 과연 선이며, 무슨 뜻에서 선이냐 하는 것이다. 이 선의 원천 문제가 그 선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다시금 연결된다. 그런데 선을 실천할 인간의 능력을 자유라고 하므로, 도덕 문제의 중심에는 자유 개념이 들어선다. 그 근본 물음의 차이로 말미암아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이 나뉘게 된 것이다.”(142쪽) 3강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3강은 “무릇 내가 행해야 할 것을 행한다면, 나는 그때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를 묻는다. 이 “물음은 실천적이면서 동시에 이론적”이다. 그것은 실현될 수 있는 최고선을 겨냥한 것으로서, ‘최고선’은 실천적인 것 및 도덕법칙과 관계되면서도 이 세계 즉 자연 안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사물들의 이론적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물음은 결국은 “종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간의 희망은 최고선의 실현인데 그것은 결국 신의 도움으로만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제3비판서인 『판단력비판』의 후반부에서 읽을 수 있다. “『판단력비판』에 등장한 판단력, 곧 반성적 판단력이 앞서의 두 비판서에서의 주제인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연결자라고들 말한다. … 『판단력비판』은 칸트가 66세 때인 1790년에 나왔다. 한국의 교수라면 정년퇴직할 나이다. 나이도 그렇고, 시대의 사조도 바뀌고 『판단력비판』과 함께 사실 칸트의 시대는 갔다. 그때에 이미 독일 이상주의, 독일 관념론의 파도가 독일 문화계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오히려 칸트가 새로운 사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후에 독일 이상주의자들은 칸트의 3비판서 중 『판단력비판』에 가장 큰 호감을 보였다. 왜냐하면 『판단력비판』은 더 이상 칸트의 엄밀한 이성주의의 표상이 아니라, 낭만주의적 색채를 농후하게 지니고 있어서 공감이 많이 갔던 때문이다. 바꿔 말해 『실천이성비판』까지의 칸트를 고전주의자라 한다면, 『판단력비판』의 칸트는 낭만주의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칸트는 고전주의의 절정이다. 음악계로 보면 베토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231-23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