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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티나에서 세계로
박태식
들녘 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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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의 말
성서 약어표와 일러두기
프롤로그_세 가지 질문

「전승과 신학」
1. 전승_이는 내 말인데…
다섯 가지 말씀 | 자유 그리스도인
2. 신경信經_신앙의 탄생
다양한 신경들 | 신경과 선포
3. 하느님_어디에 계신가
간디와 바오로와 예수 | 아빠, 아버지 |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
4. 성령_무슨 일을 하나요
루카복음 | 요한복음 | 바오로서신 | 예수, 교회, 성령
5. 부활_확실합니다
부활에 대한 질문들 | 인자人子 신앙의 탄생 | 종말과 부활
6. 현재_인생 성적표
부활은 현재의 사건 | 요한과 마르코와 바오로 | 다시 렘브란트로
7. 믿음_믿으면 다 되나요
바오로와 야고보 | 다른 목소리들

「관습과 윤리」
8. 음식_개인인가 공동체인가
깨끗한 것과 깨끗하지 않은 것 | 공동체를 위하여 | 사람인가 공동체인가
9. 경제_최고의 경제학자 예수
사유재산권의 포기 | 소유 공동체 | 다시 최순실
10. 동성애_감자가 뜨거워요
바오로의 견해 | 예수의 견해 | 우리 시대의 창조 섭리
11. 율법_율법이여 안녕
예수와 바오로의 율법 이해 | 율법의 끝
12. 자유_예수, 자유의 수여자
예수가 선사한 자유 | 바오로의 자유 | 목표에서 과정으로
13. 평화_그런 평화는 없다
예수와 바오로의 평화 | 제국의 평화, 교회의 평화

「제도와 사람」
14. 성사_만찬례의 발견
최후의 만찬 | 요한, 마르코, 바오로, 루카, 마태오
15. 권위_어깨에서 힘 좀 빼세요
권위주의여 안녕 | 사도권 논쟁
16. 계급_문화에서 소외된 이들
의식주의 소유 | 문자의 소유 | 계급의식의 전복
17. 국가_예수의 정치적 선택
교활한 여우 | 로마에 순종하시오 | 멈추지 않을 것이다
18. 사람_한 사람도 버리지 않습니다
같은 정신으로, 같은 영 안에서 | 다른 정신으로 | 포기하지 마시오
19. 여성_언제까지 뒤에 있어야 하나요
예수 주변의 여인들 | 여성이 성직에 오를 수 있는가?
20. 평등_교회의 민주화
예수의 파격적 가르침 | 바오로의 공동체

에필로그_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주어진 선물이다
지도 보기
신약시대의 이스라엘 | 예수시대의 팔레스티나 | 바오로의 선교지

저자 소개 1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독일 괴팅엔 대학에서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에세이」를 통해 에세이스트로 등단했으며 월간 「춤」으로 영화평론가로 입문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이자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영화 관련 저서로는 『영화는 세상의 암호』 1,2,3권,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2017년 문광부 문학부문 추천도서)가 있다. 이외에 지은 책으로 『팔레스티나에서 세계로』 『넘치는 매력의 사나이 예수』 『종교신학 연구 2018』(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도신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독일 괴팅엔 대학에서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에세이」를 통해 에세이스트로 등단했으며 월간 「춤」으로 영화평론가로 입문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이자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영화 관련 저서로는 『영화는 세상의 암호』 1,2,3권,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2017년 문광부 문학부문 추천도서)가 있다. 이외에 지은 책으로 『팔레스티나에서 세계로』 『넘치는 매력의 사나이 예수』 『종교신학 연구 2018』(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도신경』 『종교사 입문』 『바오로의 편지』 『우리 인간의 종교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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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517g | 153*225*20mm
ISBN13
9791159253898

책 속으로

간디나 바오로는 자신의 생각을 이리저리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그에 비해 예수는 처해진 상황에 따라 순간순간 하느님의 존재를 알려주는 데 최고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분이 하느님을 가르쳐주는 방식의 가장 친밀한 경우는 제자들과 수시로 나누었던 대화에서 발견된다. 어느 날인가 제자들은 예수 앞에 나와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을 걱정했다. 예수 한 분만 믿고 출가했건만 거지 떼 신세를 면치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한심해서, 또는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이라도 한 번 더 베풀면 허기나 면할까 해서 특별 부탁을 했을 것이다. “스승님, 배고파 죽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반문한다. “새들이 언제 농사를 지어 곡식을 곳간에 저장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혹은 “들꽃이 사람들 몰래 스스로 주변의 잡풀도 뽑고 몸치장을 하거나 옷을 지어 입는 것을 눈으로 본 적이 있느냐” 그런데도 온갖 부귀를 누린 솔로몬 왕의 옷도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한낱 들꽃의 아름다움에 비길 바 못되고, 또한 새들이 굶어 죽었다는 말도 일찍이 들어본 적 없으니 괜한 걱정일랑 말라는 충고이다(마태 6,25-34 참조)._간디와 바오로와 예수 중에서

예수의 신념은 죄인들과 나눈 식사자리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마르코복음 2장 15-17절을 보면 예수가 죄인의 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때를 놓칠세라 바리사이와 율사들이 예수에게 시비를 건다. (…) 율법의 음식 규정에는 깨끗한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의 목록이 있다(레위 11장). 예컨대 돼지는 굽은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아 피하고, 낙지와 문어는 비늘이 없어 꺼린다. 피에는 생명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 멀리하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은 숨을 막았기에 꺼림칙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의인들의 경우고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으려면 돼지라도 잡아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요원한 규정이었다. 그들은 아무것(?)이나 먹느라 절로 죄인이 되었고 그들 집에서 식사를 하면 이 또한 자동적으로 죄인이 되는 일이었다. 예수의 처신을 두고 바리사이와 율사들이 시비를 걸 만했다. 하지만 예수의 생각은 달랐다. 예수는 자신이 죄인을 구하러 이 세상에 왔다고 한다. 예수의 관심은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죄인 집에서 나누는 식사는 그들 역시 하느님의 자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예수를 죄인들 모두 불러 모아 의인으로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인물로 해석하면 큰 잘못이다. 오히려 하느님은 죄인 그 자체로서 사랑하신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하느님에겐 의인/죄인의 구분이 없는 것이다.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 음식은 없다, 사람만 있을 뿐이다._깨끗한 것과 깨끗하지 않은 것 중에서

바오로는 율법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깊이깊이 깨달았다. 일단 법 앞에 서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소용없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통해 역사적인 차원에서 율법을 이해하려 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에서 무려 430년이 지나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졌음을 환기시킨다(갈라 3,18-19). 율법이 경제와 사회와 종교를 옥죄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율법은 인간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게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육체의 욕망에 노예로 살아가는 바오로 자신이 바로 율법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같은 의미에서 율법은 모세 이후 천 년 이상 인간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해온 셈이었다. 예수가 등장해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기 전까지 말이다. 예수의 율법 폐지 선언이 바오로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 1세기 교회에서 최고의 파란을 일으킨 사람은 바오로다. 미적미적하면서 유다교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확실하게 선을 그은 사람이라서 그렇다. 바오로는 율법을 전공한 사람답게 율법 안에 내포된 약점을 파악해냈고, 이를 극복하는 길을 예수에게 배웠다. 비록 살아생전 예수를 만난 적은 없지만 1세기 교회의 어떤 제자들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잘 이해했다. 바오로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율법에 따라 공동체 소속의 징표로 할례를 받고 피 냄새 진동하는 동물 제사를 바치고 있었을지 모른다. 율법이여, 우리에게서 영원히 안녕!_율법의 끝 중에서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 분으로서, 예수에게 실제로 차별이란 없었다. 율법에서 정한 의인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분이다. 예수에게는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의 차별도 없어 시리아 페니키아 이방 여인의 딸을 고쳐주었다(마르 7,24-29). 비단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 외에도 예수가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에서도 본 적이 없다’라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로마인 백인대장(루카 7,1-10 참조)이나, 예수가 숨을 거두는 현장에서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라고 고백한 백인대장(마르 15,39 참조)도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예수에게 남녀의 차별이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예수는 여성에게도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었고(루카 10,38-42 참조), 공동체의 살림을 남성들과 나누어 맡겼으며(루카 8,1-3 참조), 여성 역시 떳떳한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주었다(참조: 마르 16,1-8 마태 28,9-10 요한 20,14-18). 여성도 남성에 비해 한 치의 손색이 없는 제자였던 것이다. 평등사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예수와 함께 하는 식탁에서였다. 복음서에 보면 추종자들이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셔 식사를 대접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예수는 바리사이의 초대를 받아들여 식사를 나눈 적도 있었지만(루카 11,37-54 14,1.12 참조), 세리의 초대에도 선선히 응했다(마르 2,15-17 참조). 어디 그뿐인가. 로마에 빌붙어 유다인을 수탈하는 악명 높은 세관장 자캐오의 초대마저 예수는 받아들였다(루카 19,1-10 참조). (…) 예수의 입장은 확고했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습니다”(마르 2,17). 그리스도인 모두는 동등한 형제자매이며 섬길 분이라곤 오직 아버지 하느님과 스승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 계층이 존재해서 안 된다는 말씀이 그렇게 표현되었고 이는 평등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발언이다._예수의 파격적 가르침 중에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첫 번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전승과 신학」이라는 카테고리에 담는다. 여기서 반드시 고려할 점은 예수가 처음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땅과 유랑 전도사들이 복음을 전파했던 땅이 인종, 문화, 언어, 경제, 철학, 종교 등 모든 점에서 달랐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직관적이고 통합적인 히브리 사고와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헬라 사고가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복음을 전했던 유랑 전도사들은 물론 예수의 가르침과 그분이 갖는 의미를 알리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지만 그들 각각의 이해력과 표현력 그리고 소속 공동체의 사정이 달랐기에 신학도 전달 방법도 들쑥날쑥한 것이 마치 세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처럼 거칠었다. 그러나 모든 유랑 전도사들은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했고, 결국 종교·철학·문화·경제·윤리 분야 등 활발하게 진출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혀갔다. 그리고 마침내 많은 도시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웠다.

교회는 예수가 던져준 ‘하느님 나라’의 정신을 올바르게 받아냈을까?
이 책은 예수의 가르침이 최초의 교회, 곧 1세기 교회로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밝히는 데 무게를 둔다. 따라서 전달의 내용을 ‘기억’해내는 것과 기억 자체의 선명성을 중시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합리주의에 근거한 지성이 꽃을 피웠던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가능한 한 감정이입을 하지 않은 채 과거를 기억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론 그 어떤 과거도, 그 어떤 과거의 사건도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후대 연구자들이 ‘선택’하여 ‘기억’해내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렇게 기억해낸 과거를 분석하여 활성화해야 비로소 과거는 힘을 갖기 시작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기억해야 할 과거라고 못 박는 것은 예수가 담아내려 했던 ‘하느님 나라’다. 그 하느님 나라는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가 부르짖었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심판’이고, 한때 모세가 법으로 제정했으나 아직 구현되지 않은 ‘정의’이며, 태초에 하느님이 세운 천지가 망가진 후 아직 회복되지 못한 ‘창조질서’다. 예수는 그 과거를 선택해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다짐함으로써 그것이 바로 ‘현재 성취해야 할 기억’임을 분명히 했다.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1세기 교회의 사명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신약 27권의 작가들 혹은 공동체들이 그분을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달랐다. 저마다 자신이 내린 해석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를 통해 본인들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애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본토에서 냉대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지중해 지역을 거쳐 로마제국까지 뻗어나가 정착했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리스도교의 탁월한 가르침으로 로마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때 공로를 세운 수많은 유랑 전도사들 중 으뜸은 누가 뭐래도 바오로다. 바오로는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태생 로마 시민으로 예루살렘 유학길을 떠났고 히브리어·헬라어·라틴어에 정통했으며 우수한 머리와 뛰어난 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해발 3천 미터의 안티타우루스 산맥을 두 번이나 넘나들었던 지치지 않는 열정의 사도였다. ‘글의 사람’인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으며, 어떤 이보다 정교하게 이를 각 교회로 전달했다. 그리고 이를 받든 1세기 교회는 이제까지 없던 개방적 공동체를 이루어 다방면의 인재들을 흡수하면서 기존의 모든 패러다임에 저항했다. 그 시절의 그리스도교에는 분명 세상을 바꿀 힘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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