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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의 삶에 관한 질문들
세라 워터스가 '빅토리아 3부작' 이후 20세기를 배경으로 쓴 첫 소설.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좌절의 시대인 1940년 런던을 배경으로, 상실의 폐허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직시하고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며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이들의 모습을 촘촘하게 그려냈다.
2019.05.14.
소설/시 PD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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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1944 | 1941 | 감사의 말 |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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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Wa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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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는 계단을 내려가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분명하고, 그곳에 가는 이유도 정확히 아는 사람처럼. 실은 할일도, 갈 곳도, 볼 사람도 없었다. 그녀의 하루는 다른 모든 날과 마찬가지로 백지였다. 어쩌면 매 걸음 고심하여 발 디딜 곳을 만들어내는 중인지도 몰랐다. ---p .15 윤기 있게 흐느적거리는 검은 머리칼은 마치 해초 같았다. 아니, 인어의 머릿결 같았다. 어째서 그림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인어의 머리는 다 금색인 걸까? 헬렌은 의아했다. 진짜 인어가 있다면 머리색이 분명 줄리아처럼 검을 거라고 확신했다. 진짜 인어는 배우처럼 매력적인 여성이 아니라 괴이하고 으스스하게 생겼을 것이다. ---p .69 “정비소 일은 어때?” 케이는 돌아앉으며 물었다. 미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비소는 여자가 바지를 입고 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터 중 하나였기에 거기서 일하는 것뿐이었다. 미키는 일을 해야만 했다. 케이처럼 부유한 집안의 뒷받침도 없고, 들어오는 수입도 없었으니까. ---p .144 “전쟁 기간은 친절의 시대였죠. 사람들은 다들 쉽게 잊는 것 같아요. (…) 지금 내 앞에 있는 평범한 옷을 입은 평범한 사람이 그런 잔혹한 얘기를 들려주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멋진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의 용기와 믿지 못할 선행에 대해. ---p .189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엔 멀쩡한 삼층짜리 집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집 앞에 쌓인 잔해의 높이는 2미터를 넘지 않았다. 결국 집이란 그 안에 사는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빈 공간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중요한 건 벽돌이 아니라 공간이었다. ---p .259 물컹한 인간의 살덩이, 쉽게 부서지는 뼈, 형편없이 가느다란 목과 손목과 손마디…… 그런 끔찍한 아수라장에서 이런 생기 있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흠 하나 없는 곳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케이에겐 기적이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p .284 사무실 안은 냄새가 아주 강렬했다. 탤컴파우더와 파마약, 타자기 잉크, 담배 연기, 암내가 뒤섞인. 벽에는 정부에서 발행한 다양한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테이토 피트와 그 밖의 명랑한 뿌리채소들이 자기를 삶아서 먹으라고 애원했다. ---p .323 그녀가 알기로 남자는 전쟁 초기에 공군 비행사였고, 모종의 추락사고로 다리를 절게 됐다. 그래도 꽤 젊고 괜찮은 편이었다. 여자들이 흔히 “눈이 매력적이네요” 혹은 “머릿결이 멋지네요”라고 하는 그런 유의 남자였다. 특별히 눈이나 머릿결이 좋아서가 아니라 달리 잘생긴 구석이 없어서, 그래도 뭔가 괜찮은 말을 해주고 싶어서 말이다. ---p .330 첫 대공습 때는 사람들을 일일이 다 도와주려 애썼다. 어떨 땐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은 사람을 무심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약한 자들을 돕는 영웅이라도 된 양 일에 덤벼들었는데, 하고 헬렌은 씁쓸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엔 자신에 대한 생각밖에 남지 않는다. ---p .372 “몰래 다니는 것도 신물나고, 구질구질하게 살금살금 다니는 것도 싫어. 우리가 결혼만 할 수 있다면, 아니 그 비슷한 거라도.” 케이는 눈을 껌벅거리다 시선을 피했다. 이것이 바로 그녀 인생의 비극이었다. 그녀는 남자처럼 헬렌을 아내로 맞이하거나 아이를 안겨줄 수 없다…… ---p .428 주변에 펼쳐진 대대적인 파괴의 현장은 보인다기보다 느껴지는 쪽에 가까웠다. 대지를 덮은 칠흑 같은 어둠을 노려보아도 시선에 닿는 것은 없었다. 헬렌은 거미줄이나 베일을 걷어내려는 듯 두어 번 눈앞에 대고 손을 휘저었다. 이곳의 밤은 극도로 농축되어 탁한 물속을 걷는 듯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고, 그 폭력성과 상실감에 겁이 날 정도였다. ---p .474 “내가 한 번도…… 한 번도 두려움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을 것 같아? 세상에서 제일 지독하고 가장 끔찍한 일이지. 법정에 서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어. 길 가던 여자들이 나를 보고 밸도 없는 놈이라고 욕해도 받아넘겼어! 그런데 조용히 혼자서 생각해보면, 재판소도 그 여자들도 다 옳을지 몰라. 그런 의심이 자꾸자꾸 신경을 갉아먹고 파고들어. 나는 진심으로 내 신념을 믿는 걸까. 아니면 그냥…… 단지 한심한 겁쟁이일까?” ---p .574 “차라리 미치고 말지.” 알렉은 고개를 홱 치켜들며 말했다. “놈들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느니. 미친 건 그놈들이라고. 놈들이 사람들을 죄다 미친놈으로 만들고 있는데, 다들 가만히 있잖아. 다들 그게 정상인 것처럼 군다고. 그게 정상이라니, 너를 군인으로 만들고 너한테 총을 쥐여주는데.” ---p .627 역겨워. 늙은이들이라니! 그 인간들이야 좋겠지. 우리 아버지도, 너네 아버지도 상관없겠지. 살 만큼 살았으니까. 그래놓고 우리의 삶을 빼앗으려는 거야. 한번 전쟁을 겪었으면서, 이번에 또 일으켰어. 우리가 젊다는 사실에 배가 아픈 거야. 우리도 자기네처럼 늙기를 바라는 거지. 이건 우리가 일으킨 싸움도 아닌데, 놈들은 그런 거에 눈곱만치도 개의치 않아……” ---p .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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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폐허 속 생의 몸짓을 피워내는 런더너 6인의 드라마
1947~1941 전쟁의 시대, 도시 런던에서 부유하는 정체성들, 그리고 사랑에 관한 질문들 『나이트 워치』는 총 3부 구성이며, 연도 역순으로 배치된 각 부의 제목인 ‘1947’ ‘1944’ ‘1941’이 핵심 키워드 역할을 한다. 이 연도들은 워터스가 19세기와 선을 긋고 작품의 무대를 이동했다는 선언이자,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상실과 좌절의 시대를 이야기하겠다는 예고이기도 하다. 전시에 야간구급대원으로 활약하며 수많은 부상자를 구해냈지만 종전 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케이, 전쟁 피해 복구를 돕는 시청 부서에서 일하다 점점 피해자들에 대한 무심함을 느끼며 결혼정보업체로 이직한 헬렌, 전시에 피해 주택을 조사하며 작품을 써온 추리소설가 줄리아, 전쟁중 연인에게 받은 상처와 어리고 미숙했던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제는 안녕을 고할 기로에 선 비브, 병역거부자로서 함께 수감생활을 하다 석방 후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덩컨과 프레이저. 전쟁이 한창인 1941년부터 종전 후인 1947년까지를 배경으로 이들 6인의 젊은 런더너들은 참혹한 전쟁 트라우마와 성역할·병역거부 같은 시대적 고민을 안고서 사회적 계급과 처지, 성정체성과 가치관 등에 따라 저마다의 방식대로 표류하고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불어 도시가 파괴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실의 폐허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직시하고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며 살아남고자 몸부림친다. 작품은 그 치열한 생의 몸짓들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과 욕망에 대한 질문들을 던진다. 한편 작품은 1947년부터 1941년까지 역순 구성으로 전개되며, 케이-헬렌-줄리아 레즈비언 연인들의 관계와 비브-덩컨-프레이저 사이의 애정과 긴장어린 관계를 바탕으로 드라마틱하게 교차하는 인연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즉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며 인물들을 둘러싼 복잡한 감정과 사건이 한 겹씩 들추어지며, 독자들은 그 과정에서 ‘이 인물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었나’를 고민하고 추리하게 되면서 미래로의 진행이 아닌 과거로의 회귀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 또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에서 출발한 퍼즐 맞추기가 완성되는 그 끝에는 가슴 먹먹한 감동의 한 조각이 마련되어 있다. 전쟁 속 비통함보다 그 끔찍함과 무력함에 압도당하는 인간의 내면 “그 꼬마애의 몸통을 들어올리던 게 기억나…… 대체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워터스는 작품 배경을 19세기에서 20세기로 옮기며 1940년대 전시 런던의 생활상에 대해 치밀한 조사를 했다. 거기에 그의 특기인 궁극의 묘사능력이 전쟁중인 무대를 만나 더욱 진한 생생함과 선득함을 발휘하게 되었다. 전시의 피폐한 도시, 공습중의 소음과 냄새,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내면이 자세하게 그려지고 촘촘하게 연결되며, 그러기에 인물들이 발산하는 사랑과 욕망과 증오와 후회의 몸짓들이 더욱 아름답고 선명하게 각인된다. 기사도 정신을 지닌 레즈비언 케이는 전쟁중에 큰 활력을 발산하며 많은 부상자들을 구해내고 자신의 연인에게도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느끼지만, 오히려 전후에는 당시 부상자들의 참상에 사로잡혀 방황하게 된다. 헬렌과 줄리아는 폭탄이 퍼붓는 공습중에도 대피소로 가 웅크려 떠는 대신 집에 머물거나 런던 시내를 다니며 자유롭기를 더 원한다. 비브는 전쟁통에 변화한 관계들로 실망하고 인내해야 했으며, 덩컨과 프레이저는 전쟁의 시대가 망가뜨린 청춘들의 삶과 그 앞에서 무력한 자신들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역사상 가장 심각한 피해를 낳은 제2차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장르와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 인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워터스는 예의 양대 코드를 전면에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전쟁이 초래하는 잔혹함과 무력함, 인간 보편의 욕망과 사랑의 모습들을 자신만의 색깔로 빚어내 확장성과 완성도를 획득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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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하나 찾을 수 없는, 아름답고 정교한 작품.
- 워싱턴 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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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고 사랑스럽다. 이 작품을 거듭 읽고 싶어지는 데에는 어떤 마법도 필요하지 않다. - 옵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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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디테일을 압도하는 보편적이고 격정적인 휴먼 스토리. -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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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작가가 완벽한 기술로 빚어낸 풍성하고 다층적인 작품, - 이브닝 스탠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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