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추천의 말
1. 도시의 파편이 만든 비극 2. 가족과 친구들, 감내해야 할 감정들 3. 도시의 지평선을 뚫고 애도의 세상으로 4. 뿌리내릴 곳을 찾아서 5. 일상으로 돌아가기에 우리의 슬픔이 모자란 건 아닐까 6. 그레타와 해리슨, 완전한 가족 감사의 말 |
Jayson Greene
김보람의 다른 상품
|
우리 부부가 그레타를 아기 띠에 단단히 감싸 안고 처음으로 외출했던 날, 스테이시가 걷다 말고 아이의 숨소리를 확인하려고 신호등 앞에 서서 아기 띠 덮개를 열어보았다. 아내가 내게 불안 섞인 농담을 하는데 마침 네 살과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우리 곁을 지나갔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들은 아주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애들은 항상 숨 쉬고 있어요.” 아주머니는 우리를 안심시켰다.
--- p.40 우리를 묶어놓은 사슬을 물속에 흘려보낼 수 있도록 조금씩 놓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그레타를 위한 선택을 요구받지 않을 테고, 그레타의 ‘삶의 질’에 관한 잔인한 계산을 강요받지 않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그레타는 이제 우리가 손쓸 수 없는 저세상에 가 있다. --- p.59 기증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그레타가 계속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레타는 스물네 시간째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열여덟 시간을 더 버텨야 한다. 너무나 위태로워 보이는 딸아이의 자그마한 몸을 보고 있으니 우리가 그레타를 이곳에 너무 붙잡아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가 가야 할 곳은 따로 있는데, 그저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있다니. --- p.65 그레타는 사고 피해자였다. 사고가 일어났다. 받아들이기 몹시 괴로운 사실이지만 앞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입 밖에 내는 법을 익혀야 한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이제 나는 우주의 상처를 헤집으며 “모든 일이 잘 풀리진 않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불길한 전령이 되리라.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최악의 메시지를 상기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자녀든 내 자녀든, 모든 아이들이 살아남는 건 아니다. -p. 129 “사람들은 중요한 사실을 놓칩니다. 상처 난 마음이란 바로 열린 마음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가 말을 잇는다. “치유될 수 있고, 달라질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고, 새로운 틀을 갖추어 새로운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란 뜻이지요. 저는 우리 모두가 이 상처 난 마음을 인정하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길 바랍니다.” --- p.149 자식 잃은 부모들이 모이면, 초보 부모들이나 엄마들 모임과는 정반대로 사회적 수치심과 불명예가 짙게 깔린다. 세상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고아라고 부르고, 배우자와 사별한 이를 홀어미 또는 홀아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자식 잃은 부모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까지 표현해줄 마땅한 말은 없다고 세상이 꾸짖는 것 같다. 그건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이며, 나아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애초에 있어서도 안 될 존재인 것이다. --- p.165 해리슨이 태어난 이후로 나는 모든 곳에서 그레타를 느낀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꽃잎에서도 그레타가 보인다. 천천히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게 조금씩 느껴진다. 그레타는 해리슨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 그레타와 해리슨은 눈 밑에 주름이 진 모양이 똑같다. 동일한 유전 형질, 근소하게 다른 조합, 운명의 평행선을 타고 온 다른 시간. --- p.344 한참이 흐른 뒤에야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깨닫는다. 두려움이다.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부모라면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그레타를 키우면서는 느낄 겨를이 없었던 그런 두려움. 그레타는 넘어진 적도 뼈가 부러진 적도 없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병치레를 할 때마다 해리슨이 우리를 가르친다. 때로는 아이들이 살아남는다. --- p.353 |
|
평범한 일상의 회복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
가족은 사랑의 힘으로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우리는 슬픔을 대단하고 사랑스러운 동료로 여기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 슬픔은 우리 마음을 녹이고 모든 것에 마음을 열게 만드는 다정한 슬픔이기 때문이죠.” _p. 109 중에서 이 책에서는 딸의 죽음만큼이나 남은 가족들이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이 힘겹게 느껴진다. 비극의 치유가 딸의 존재를 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저자의 마음에 절절하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현실은 그저 비극이고 고통이고 분노였다. 저자는 주변의 부모들이 ‘당연하게 느끼는 평범한 행복’을 증오하기도 하고, 가족을 잃은 슬픔을 함께한 시간의 정도로 단순 비교하는 매정한 사회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건 가족과 이웃들의 사려깊은 배려와 사랑 덕분이었다. 조금씩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하던 저자는 그레타와의 추억이 있는 공원에서 ‘이 세상에는 나를 비춰줄 빛이 더 많다’는 깨달음을 얻고, 떠난 그레타와 남은 가족이 행복하게 공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나가기로 결심한다. 저자와 아내 스테이시는 갖가지 애도 모임을 찾기 시작하는데, 심지어는 영매가 진행하는 모임에도 나가본다. 그리고 집을 떠나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명상과 요가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고함을 지르며 고통을 토해낼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닌다. 마침내 그들에게 새로운 아이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그레타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와 아들을 맞이할 준비를 위해 의식집행자를 찾아간다. 그들은 그곳에서 본 죽음과 부활에 관한 강렬한 환상을 통해 상처 입은 자신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때로는 그들의 여정이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기도 하지만 그만큼 절박하고 절신한 것이리라. 그래서 더욱 우리는 그들의 여정을 통해 당연하게 주어진 것 같은 평범한 나날이 실은 굉장한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검은 죽음의 바다 우리는 어떻게 그 바다를 헤쳐 나갈 것인가 세상에는 눈이 아니라 몸으로 보는 것들이 있다. 그레타를 마주하자마자 내 영혼이 송두리째 불타오르며 증발하는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누가 거대한 드릴로 내 뼈를 뚫고 골수를 뽑아내 버리기라도 한 듯 나라는 존재가 더 가벼워졌다. 고개를 돌려 아내를 힐금 쳐다봤다. 아내 역시 생기를 잃어 잿빛이 된 얼굴로 복도 의자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다. 장모님은 들것에 실려 다른 복도로 옮겨지다가 곧 시야에서 사라진다. 우리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_p. 28 중에서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비극과 슬픔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애써 현실을 외면함으로써 일상에 복귀하고자 한다. 반면 이 책의 저자 제이슨은 철저하게 자신의 상황과 감정의 끝을 마주함으로써 일상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보통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경험하면 그 후유증 때문에 이후의 기억이 뿌옇게 안개가 낀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그는 딸 그레타의 죽음과 이후 그들 가족에게 닥친 일련의 상황을 섬세하다 못해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기록은 그 자체로 희망이었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고, 자신이 놓친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담긴 이 회고록은 슬프지만 우리에게 삶을 지탱해주는 용기와 회복탄력성, 가족의 사랑을 두루 살피게 함으로써 마음에 깊은 위안을 준다. 함께 슬퍼하고 치유하는 애도의 여정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한다 애도의 세상은 여러모로 아름다운 구원의 장소이다. 아름다움은 여기에, 또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 우리가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애도는 같은 여정을 걷는 동행자들과 공명을 일으키며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공간이 될 것이다. _p. 188 중에서 저자와 그의 아내 스테이시가 이 말도 안 되는 비극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곁을 지켜준 가족들과 이웃들의 세심한 사랑의 힘이 컸다. 가족들과 이웃들은 곳곳에서 그들을 단단하게 지켜주었다. 자신들의 일상을 제쳐두고 한달음에 달려와 묵묵히 그들의 곁을 지켜주고, 그들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자신들의 공간을 내어주고, 요란한 언론과 기자들을 피할 수 있도록 그들의 공간을 지켜주고, 그들의 방황을 못 본 체 지나치지 않고 기꺼이 붙잡아주었다. 가족들과 이웃들의 사소해 보이는 배려가 하나둘씩 모여 그들이 힘든 애도와 치유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만들었다. 애도는 당사자만이 홀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들이 충분히 애도하고 치유할 수 있는 건 사회와 주변의 따뜻한 시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작은 배려와 한마디 말이 누군가에게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위로가 될 수 있다. 또한 우리를 지키는 수많은 사랑이 곁에 존재함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조금은 삭막하게 메말라 있던 시선을 거두고 온화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
“우리는 모두 죽게 돼 있어.” 저자가 딸을 떠나보내며 들었던 수프얀 스티븐스의 [Fourth of July]라는 곡의 가사다. 이 노래에는 이런 가사도 있다. “네 인생을 최대한 즐기렴. 그게 만연한 동안에, 그게 밝을 동안에 말이야.” 이 두 가사를 오가며 삶은 계속된다. 그건 슬프지만 아름다운 일임을, 이 책이 보여준다. - 장수연 (MBC 라디오 PD,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의 저자)
|
|
이 책은 아이를 잃은 아빠의 디브리핑 과정이다. 현실에서는 동생 해리슨을 낳으면서 딸 그레타를 보낼 수 있었지만, 심리적 애도는 비로소 책을 통해 완성되었던 것이다. 심리적 애도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 - 하지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관계의 재구성』의 저자)
|
|
경이로운 글이다. 제이슨 그린의 글에서는 밝은 빛과 경쾌함이 느껴진다. 자식을 잃은 비통한 심정과 그 아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써내려간 이 책은 흡인력이 있으면서도 결코 거칠거나 투박하지 않다. - 뉴욕 타임스
|
|
그저 죽음만을 다룬 게 아닌, 놀라운 사랑을 다룬 이야기. 밝고 아름다운 눈으로 삶을 바라보게 해준다. - 워싱턴 포스트
|
|
서로를 하나로 묶는 사랑과 상실의 의미 그리고 상실로 말미암은 슬픔의 의미를 탐구한 그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슬픈 데다가 고무적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
|
온화하고 섬세한 문체로 전해지는 제이슨의 이야기는 참담한 비극을 영적 여정과 기적 같은 경험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굉장히 어려운 위업을 달성해낸다. 끔찍한 상실감을 안고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회고록. - 커커스 리뷰
|
|
저자는 자신의 아픔을 글로 풀어냈다. 아픔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고통과 상실이 우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물론 고통은 풍요로웠던 우리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놓지만, 그 후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꿔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는 인간이기에 고통을 받는 게 당연한, 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틈을 발견한다. - 엘르
|
|
저자인 제이슨 그린은 딸의 생명이 꺼져가는 비극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감정을 굉장히 정밀하고 세심하게 묘사했다. 하지만 이 책을 한 가족에게 닥친 비극을 다룬 책으로만 정의할 수는 없다. 이 회고록은 끔찍한 최악의 일을 직면하고도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기를 택한 어느 부부의 이야기라고 표현하는 게 더욱 적절하다. - 북페이지
|
|
말도 안 되는 죽음의 절망에서 사랑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책. -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 『그래, 지금까지 잘 왔다』의 저자)
|
|
『우리는 다시 한번 별을 보았다』의 저자 제이슨 그린은 비탄에 빠져 광기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아빠로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가족을 향한 모든 형태의 사랑을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또 가족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를 다루고 있다. 재미있고 명료하면서 무척 너그러운 글이다. 그는 뛰어난 작가이기에 자신의 구체적인 상황을 만인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이끌어나간다. - 루시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의 아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