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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살인 / 7
사내 편애 / 37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 77 밤을 보는 고양이 / 117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 153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 217 옮긴이의 말 / 323 |
Jun Kurachi,くらち じゅん,倉知 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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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 이유도 딱히 없다. 그냥 죽이고 싶다. 속이 후련해질지도 모르니까. 그게 다다. 특별히 재미있어 보인다거나 즐거워 보여서 이러는 건 아니다. 엽기 살인 사이트 등을 보는 사이에 감화되어 흥미가 생긴 것도 아니다. 여하튼 세상에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우둔한 쓰레기들뿐이다. --- p.9 기계인 프로그램은 너무 냉철해서 인간을 관리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면도 있다. 예를 들면, 기계는 잊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잊지 못한다. 컴퓨터니까 당연하다. 기억과 기록이야말로 그들의 본질이니까. 다만 그 특성은 좀 지나칠 정도로 융통성이 없다. 한 사원이 깜빡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한 번 했다고 치자. 인간 상사라면 한동안 그 사실을 기억해도 대부분 오래가지 않는다. 영원히 기억하지 않는다. 그런데 컴퓨터는 다르다. 심보 고약한 시어머니처럼 언제까지나 끈질기게 기억하고 절대 잊지 않는다. 2년이 지나든, 5년이 지나든, 10년이 지나든 간에. --- p.52 케이크는 그렇다 쳐도 그 파는 뭘까? 살인 현장의 정경이 뇌리에 되살아난다. 천장을 똑바로 보고 쓰러진 피해자. 그 입에 꽂힌 길고 하얀 대파. 하늘을 찌르듯 위를 향해 솟은 파. 그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광경. 거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파, 파, 파……. 그런 것을 시신의 입에 꽂아서 뭘 어쩌려는 것이었을까? --- p.92 심야, 완전히 밤도 깊어진 무렵. 이불을 나란히 펴고 잠든 나와 할머니의 머리맡에서 1미터 정도 떨어진 다다미 위에 미코는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달빛만이 빛나는 어둠 속, 앞발을 가지런히 모은 단정한 자세로 어젯밤과 똑같이 뭔가를 보고 있었다. 비스듬하게 조금 위쪽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는 고양이. 귀를 꼿꼿이 세우고 밤의 정적에 귀를 기울이듯, 커다랗고 동그란 눈으로 어둠을 바라본다. 뭘 보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어젯밤과 똑같은 방향을 보며 단지 가만히 앉아 있다. 어쩐지 납득이 안 가는 듯 이상하다는 얼굴로, 가만히. --- p.135 “그건 그렇고, 이건 대체 뭔가?” 나도 처음부터 그것이 걸렸다. 시체의 머리 부분을 중심으로 하얀 것이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두부다.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1944년 12월 초순. 제국육군특수과학연구소 2-13호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 p.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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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살인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 A지역에서 머리글자 A인 사람, B지역에서 머리글자 B인 사람이 살해되자, ‘나’는 완벽한 살인 계획을 세워나간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 사건』을 패러디한 소름 끼치는 변주곡. 사내 편애 ‘인간이 인간을 관리 하는 시스템에는 불필요한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기업인사 관리운용총괄시스템 ‘마더컴’. 그리고 이 인공지능 인사 관리 컴퓨터의 노골적인 편애를 받는 평범한 샐러리맨에게 닥친 웃지 못할 비극의 전말.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방 한가운데 반듯이 누워 평온하게 잠을 자는 듯한 시신. 그러나 입에는 파가 한 개 수직으로 꽂혀 있었고, 머리맡에는 케이크 세 조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인간의 뒤틀린 광기와 욕망에 마주한 오싹한 진실. 밤을 보는 고양이 늦은 밤 어둠 속에서 한곳을 응시하고 있는 고양이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똑같은 방향을 보며 앉아 있다. 어쩐지 납득이 안 가는 듯 이상하다는 얼굴로, 가만히. 고양이가 본 밤의 비밀은 무엇일까.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참을 수 없을 이야기.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두부에 사람 머리가 부딪히면, 사람이 죽는가? 두부가 죽는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나가노현 마쓰시로의 육군특수과학연구소를 무대로 밀실상황에서 발생한 괴사 사건을 다룬, 기상천외한 수수께끼의 향연.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기업 연구소를 배경으로 연구소 실장이 밀실과도 같은 상황에서 물이 든 양동이에 머리를 맞아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끼 고양이가 깜짝 놀란 듯한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신출귀몰하는 괴짜 ‘네코마루 선배’가 해명하는 승부욕 자극하는 살인 미수 밀실 미스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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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똑바로 보고 쓰러진 피해자.
그 입에 꽂힌 길고 하얀 대파. 그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광경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의 소름 끼치는 변주곡 「ABC 살인」은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속도감 있는 단문이 상당한 몰입도를 선사하며 ‘묻지마 살인’의 공포감을 고조시킨다. A지역에서 A로 시작되는 이름의 인물이 살해되고, 이어서 B지역에서 B로 시작되는 이름의 인물이 살해된다. 이에 주인공은 완벽한 살해 계획을 세우는데 이윽고 예상 외의 사건이 닥치면서 경악을 금치 못할 파국이 펼쳐진다. SF와 블랙코미디를 조합한 「사내 편애」는 인공지능 기업인사 관리 시스템 ‘마더컴’이 등장한다. ‘마더컴’은 지나치게 합리적이지도 않고, 적절히 모호하며, 조금은 얼빠진 듯한 ‘변덕’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변덕의 극단에서 바로 ‘기계의 편애’라는 웃지 못할 비극이 벌어진다. 시신과 파, 케이크의 조합이 초현실주의 회화처럼 기괴하게 각인되는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파티쉐 전문학교 학생이 살해된 사건 현장, 피해자의 머리맡에는 세 종류의 케이크가 놓여 있고 입에는 길고 하얀 대파가 꽂혀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하는 묘미와 함께, 마지막에 남은 ‘그것’의 으스스함도 맛볼 수 있는 한 편이다. 「밤을 보는 고양이」에서는 회사원 유리에가 시골 할머니 집에서 고양이 미코와 함께 휴가를 보내게 되는데, 동네가 발칵 뒤집어질 만한 사건이 발생한다. 현실의 각박함을 무리 없이 담백하게 담아낸 일상 미스터리이면서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지 않을 수 없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을 수도 있다? 부질없는 상상, 쓸데없는 망상이 절묘한 힌트다! 표제작 「두부 모서리에 머리 부딪혀 죽은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말, 군 특수과학연구소를 무대로 한 밀실 상황에서 괴사(怪死) 사건, 즉 두부의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그려진다. 연구소의 실험 장치인 공간전위장치도 이상야릇하지만, 미치광이 박사와 어리숙한 학도병 등 탐정 역의 할당 및 추리의 진행 방식도 파격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소설적 장치는 전쟁의 광기와 어우러지면서 이 특수한 논리가 지배하는 특별한 무대 속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제목만 보면 바카미스적 트릭이 연상되지만, 전시 중이라는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터무니없어 보이는 밀실 트릭을 현실에 단단히 착지시키고 있다. 마지막 작품인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은 구라치 준의 첫 번째 단독 저서인 『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 이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탐정 ‘네코지마 선배’ 시리즈다. 진기한 체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신출귀몰하는 괴짜, 고양이처럼 영묘하고도 천진한 눈을 한 네코마루 선배다. 그가 신소재 개발 기업의 연구소를 무대로 한 불가능한 밀실 상황에서, 살인 미수 사건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직구’에 가까운 정통 본격 미스터리로, 복선과 추리, 해결에 이르는 과정이 세련되고 명쾌하여 깔끔한 뒷맛을 남긴다. 패러디, 바카미스, SF,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까지, 코믹한 필치, 허를 찌르는 논리, 심상치 않은 여운으로 미스터리 팬들을 매료시키는 구라치 준 월드 스타트 1993년에 도쿄 창원사에서 실시한 공모전에서 와카타케 나나미 상을 수상하며 처음 이름을 알린 구라치 준은 1994년 『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를 통해 정식으로 데뷔했다. 그 후 네코마루 선배가 탐정으로 활약하며 수수께끼를 풀이하는 장편과 단편을 꾸준히 발표하다가 2001년 『항아리 속의 천국』으로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2017년 발표한 『황제와 권총과』로 도서 미스터리를 시도하는 한편, 2019년 출판업계의 내막을 밝힌 『작가들』 등 작품의 폭을 종횡무진으로 넓혀오고 있다. 구라치 준의 소설들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풍이지만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느슨함 뒤에 숨어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트릭이 바로 그의 장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그다지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대개의 미스터리 소설들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착각하는 존재인지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부질없는 상상, 쓸데없는 망상일지언정 일반 상식에서 볼 때 그저 ‘착각’이라 치부하는 단서들도 구라치 준의 미스터리에서는 절묘한 힌트이자 복선이 된다.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기 위한 두뇌의 가동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을 수도 있다’는 가설에서 시작되듯이. 일면 부조리해 보이는 트릭과 복선이 추리 과정을 통해 정합적인 결론에 도달했을 때의 쾌감은 더욱 배가된다. 데뷔한 지 25년이 넘었지만 그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 않아 ‘좀처럼 일을 안 하기로 유명한 작가’, ‘최소한도로 살아갈 정도로만 계산해서 글 쓴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지만, 독자들이 그런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그의 작품을 끈기 있게 기다려온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다행히 최근에는 정기적으로 신간을 발표하고 있으니, 그가 또 어떤 놀라운 작품으로 우리의 ‘후두부’를 강타할지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여섯 편의 개성적인 미스터리, 이런 작품집을 읽고 싶었다. 구라치 준을 안다면, 최고의 한 권이다.” _무라카미 다카시(문예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