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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自序_5
여행_10 거인의 꿈_12 론세스바예스_15 숲_18 첼시Chelsea_21 한 걸음 두 걸음_23 새봄_26 강_28 로그로뇨에서_30 비 묻어오는 날_32 사랑받고 싶다면_35 벌판에서_38 보슬비_41 세비야 순례자_43 대화_46 레온에서_48 부고_52 바위_55 길_57 퐁시스_60 햇살 침_63 산타마리아 성당의 종이별_66 빅 부라더_69 뿔뽀_72 사리아Sarria_75 네가 길이다_78 달팽이_81 가우디의 숙제_84 산티아고의 동백아가씨_87 길은 알고 있다_90 산티아고 광장의 천사_94 산길_97 세상의 끝_100 비 오는 날_104 묵시아_107 그리고 나는 걸었다_111 해설_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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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서
집에 왔는데 마음이 오지 않는다. 몸은 마음의 그림자 하루 또 하루 오늘이 어제가 되어 가는데 몸이 오지 않는다. --- p.10 *생장의 순례자 여권 발급 사무소에서 봉사자가 많은 말을 하며 주의를 주는 것은 바로 나폴레옹 길로 가지 말고 안전한 길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흙길이 아닌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는 것이 좀 불편할 수 있다. 첫날 걷는 노정으론 좀 길다고 느낄 수 있겠으나 조급해 하거나 무리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걷는 게 좋겠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공립 알베르게는 수도원 일부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론세스바예스에는 호텔과 알베르게 몇 개가 있는데 공립 알베르게에 머무는 게 좋다. 샤워시설 등이 훌륭하며 저녁식사에 와인 한 잔을 하며 순례자들과 어울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 노정에 여기서 만난 순례자들과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내려오는 계곡에 송어가 서식하고 있다. 헤밍웨이가 이곳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 p.17 * 순례 길에 이정표지에 놓인 외짝 신발이나 문 앞에 걸어둔 신을 자주 봤다. 신은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꿈을 지닌 존재다. 발을 담고 다닌 신발은 할 말이 많을 게다. 레온 거리를 다니다가 허공에 걸린 신발을 봤다. 신을 허공에 건 사람은 예술가일 게다. 허공에 걸린 신발 한 켤레, 그 자체가 회화요 시가 아닌가? --- p.47 혼자 걸을 때 길은 말합니다. 묻지 않아도 가야 할 곳을 보여줍니다. 바람이 오고 물소리가 옵니다. 고요 속에 딱따구리가 딱딱 풀벌레가 푸륵푸륵 가슴으로 진격해 옵니다. 홀로 걸어야 길이 옵니다. 여럿이 왁자지껄 갈 때 길은 침묵합니다. 온전히 만나지 못합니다. 홀로 나서면 길이 마중을 오고 어깨동무를 하고 못 보던 곳을 보여 줍니다. 길이 길답게 됩니다. --- p.57~58 그리고 나는 걸었다. 생장에서 피레네를 넘어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조금씩 내려놓았다. 성 야고보 계시는 곳 별들의 평원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야고보를 뵙고 다시 길을 떠났다. 피니스테라 묵시아 가는 곳은 산티아고요. 만나는 이들은 야고보였다. --- p.111~112 7. 확실히 「그리고 나는 걸었다」라는 시편에서는, 시인의 그간 걸어온 생애의 체취가 진하게 묻어난다. 노자를 읽으면 노자의 냄새가 나고, 장자를 읽으면 장자의 냄새가 나며, 공자를 읽으면 공자의 냄새가 나듯이 말이다. 공자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라고 하여 본성을 따르는 것이 곧 도이고, 길이고, 말이라고 했겠다. 그렇다면 시인이 건넨 원고뭉치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시인의 몸 냄새가 잔잔하지만 강렬하게 풍겨 온다. 시인의 삶의 체험, 몸무게, 꿈, 사상, 신앙, 유년시절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과학, 고향에 대한 향수, 언어적 습관들이 거기에 매달려 하나둘씩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어조로 기풍으로 배어 나온다. 예수께서도 한 말씀 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하셨는데, 결국 길을 걷는다는 것은 길과 한 몸이 되지 않고서는 걷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시인 역시 길을 걷다가 문득 자신이 길과 하나 되어 있고, 하나 되어 있는 이상, 무엇이 길이고 무엇이 나인지, 구태여 구별이나 구분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 p.120 13. 사실 길 위에서, 길을 걷다가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 행운이 곧바로 행복과 직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은총恩寵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서서히, 점진적으로 구도자 닮은 모습으로 변모해 간다.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궁즉통’窮則通의 원리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원래 이 말은 ‘궁즉변 변즉통 통즉변’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에서 나온 말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게 되고, 통하게 되면 오래 지속된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시인은 말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사랑하라 … 그러면 너는 그에게/ 달이 되고/ 별이 되고/ 세상에 머무는/ 많은 것들이/ 네게 와서 꽃이 될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 앞에서/ 네가/ 꽃이 될 것이다”(「사랑 받고 싶다면」 중에서). 마치 『성서』 속에서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1 ~35)고 하신 말씀을 닫힌 가슴의 빗장 열고 그 깊이에서 길어 올린 맑은 샘물처럼 보인다. 뿐만 아니다. 시인은 이제 본격적으로 “바람이 비질하는 /보리밭 길에서/ 잃어버린/ 나를 만난다./나를 버려/ 나는/ 네가 되고/ 너는/내가 되어/ 한 세상 /가누나”(「벌판에서 ―메세타 평원을 지나며」 중에서)라고 노래한다. 그 유명한 사해동포四海同胞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한 단면을 엿보는 듯하다. --- p.124 20. 시인은 지금 ‘원행’遠行중이다. 원행은 멀어서 낯선 곳인데도 마치 근린近隣의 어느 곳을 쏘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스페인 없는 뿔뽀는 있어도/ 뿔뽀 없는 스페인은 생각도 못해”(「뿔뽀」 중에서)라고 하면서 마치 신안이나 목포 해안 근처 어느 선창가에서 잘 삭인 홍어나 혹은 세발낙지를 뜯는 것처럼 정겹게 이방 지대의 음식을 소개한다. 음식물들이 길 위의 것들을 다 설명해 줄 수는 없겠지만, 길을 찾아 걷는 이에게는 어디 그만한 횡재가 또 있겠는가? 그는 ‘뿔뽀’를 소개하면서 마치 ‘완보 증명서’를 받는 듯했을 것이다. 사실 길을 걷는다고 해서 무조건 ‘완보 증명서’를 발급해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곳에서 저곳까지 일정한 거리를 완보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현대 여행상품의 한 품목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품목만을 받는 이들에게는 지상에서 그만한 선물이 어디 또 있겠는가? 달팽이 요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팽이 앞에서 또 한 번의 동질감을 느낀다. “저나 나나/ 알고 보면/ 집 나온 달팽이인데/ 뿔 내리고 조심조심/ 야고보께 나아가야 했는데/ 뿔 두 개로 뻗대느라/ 마음의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달팽이」 중에서). --- p.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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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은 가장 근원적 행위다. 걸으면서 우리는 사피엔스가 되었고 걸어서 먼 길을 떠났다. 조성순은 걷는 시인이다. 그는 아직 길 위에 있고, 걸으면서 산티아고의 시가 되었다. 그가 길을 나서면 햇살과 바람과 돌멩이가 시가 되리라. 해진 신발이 순례의 도반이 되리라. -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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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길, 산티아고 이천 리 하고 삼백 리도 넘는 길을 걸어낸 시인의 길 위의 이야기, 그 속에 들어가 같이 피레네 산맥을 넘고 초원을 거닐며 야고보를 생각한다. 곤하고도 장한 여정에 박수를 보낸다. - 김남선 (농부이며 명상수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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